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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깨닫지 못 하느냐/마가복음 8:13-21

by 【고동엽】 2021. 12. 23.
아직 깨닫지 못 하느냐
마가복음 8:13-21


탈무드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 니다. 사람의 머리 속에는 두 개의 방이 있다. 하나는 기억의 방이고 하나는 망각이라는 방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기억의 방 속에 집어 넣고 또 잊어 버리고 싶은 것 은 망각의 방 속에다 집어 넣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떤 일들을 기억 하기도 하고 어떤 일들은 망각하기 도 한다. 이런 탈무드의 말은 일반 적으로는 진리라고 할 수가 있습니 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진리는 아 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기억과 망 각의 기능에는 때로는 혼란이 일어 날 수가 있습니다. 혼란의 역기능이 일어 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 면 어떤 것은 잊어 버리는 것이 좋 은데 망각해야 할 것을 기억하고 계 속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 런가 하면 반대로 어떤 것은 꼭 기 억하고 살아야 하는데 기억해야 할 것을 쉽게 망각해 버리는 일들이 종 종 일어 납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되어 있는 마가 복음 8장, 이 서두에 보시면요, 정확 하게 말하면 마가복음 8장1절에서 10절까지에 피상적으로 읽어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거의 비슷한 사 건이 거기 기록되고 있습니다. 똑 같은 사건은 아닙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칠병이어의 사건이라고 말합 니다. 칠병이어 들어 보셨어요? 오 병이어 말고 칠병이어도 있습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보면 아주 비슷 한 사건 같지만 안으로 들여 다 보 면 이 두 가지 사건은 여러 가지 차 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굶어 가면서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을 보고 그들에 게 먹을 것을 줘야 겠다 란 문제를 제기한 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의 경 우에는 제자들이 먼저 문제를 제기 한 것으로 되어 있어요. 선생님 큰 일 났습니다. 해가 저물어 가는데 이 많은 사람들의 식사를 어떻게 하 면 좋습니까? 차라리 집에 보내서 먹을 것 먼저 해결하고 그 다음에 와서 선생님 말씀을 듣게 하면 어떻 겠습니까?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 마가복음 8장 보시면요, 자 2절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마가복음8장2 절 같이 읽어요. 시작.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그래서 여기서 보면 예수님 자신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야 이 불 쌍한 사람들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 고 주님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신 것 으로 되어 있습니다.

장소도 다르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사건은 갈릴리 지역 의 벳새다 지역입니다. 그러나 칠병 이어의 사건은 갈릴리의 동북편이라 할 수 있는 이방인들이 주로 많이 사는 데가볼리 지역에서 이 사건이, 이 기적이 일어 납니다.

시간적으로도 좀 차이가 있는데 요, 오병이어의 기적은 하루 동안에 일어난 사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하 루종일 함께 다니면서 하룻동안 일 어난 사건 임에 반하여 자, 마가복 음 8장2절을 다시 보시면 내가 무리 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 께 있은 지. 얼마가 경과했다고요? 사흘이 지나갔다. 벌써 타임도 좀 다르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병이어 의 경우에 이 기적이 일어난 장소는 잔디 위에서 일어 났다. 푸른 잔디 위에서. Green green grass 위에서. 왜 웃어요? 푸른 잔디 위에서 이 기 적의 사건이 일어 났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만 오늘 마가복음 8장6절에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어디 에 앉게 하시고? 잔디라고 안 그랬 어요. 땅에 앉게 하시고 이렇게 기 록되어 있습니다.

또 숫자적으로도 훨씬 차이가 있 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경우에 는 보리떡 5개를 가지고 주님이 기 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는 뭐예요? 5개가 아니라 7개를 가 지고 기적을 행하신 것으로 되어 있 구요 또 기적의 수의 대상, 오병이 어의 기적의 경우에는 몇 사람을 상 대로 기적을 베푸셨습니까? 네 5천 명. 5천명. 오병이어의 경우에는 5천 명 이예요. 거기다가 사람 아닌 사 람까지 포함하면 물론 숫자가 훨씬 많아 지겠죠? 그 뜻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요. 남자들만 5천명이 었단 말 이예요. 그러나 이 칠병이 어의 경우에는 몇 천명이 대상입니 까? 4천명 이예요.

자, 기적이 일어난 다음에 그 나 머지를 수거하는 과정에 있어서 몇 광주리? 오병이어에는 12광주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칠병이어의 경우에는 몇 광주리예요? 7광주리를 거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 기 적이 일어난 후에 반응도 사뭇 달랐 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이런 놀라 운 분을 우리 왕으로 삼으면 적어도 식량 문제는 해결되겠다 그래서 억 지로 임금을 삼으려고 하는 임금 추 대 운동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칠병 이어의 기적의 사건 이후에는 그런 반응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것은 아 마도 유태인의 왕이라는 개념이 이 방인들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 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 습니다.

자, 이러한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거의 비슷한 기적을 두 차례 거듭 거듭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 실은 뭐냐 하면 예수님이 두 가지 기적을 두 차례에 걸쳐 행 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현장에 있었던 제자들 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입니다. 나 같으면 말이죠, 예수님이 이런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모습 을 내 눈으로 한 번만 확인했다면 내 인생 완전히 뒤바뀔 것 같아요. 그런데 두 번씩 보고도 제자들은 전 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 시작되는 13절 에 보시면 이 사건 이후에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 셨다 이번에는 데가볼리에서 다시 갈릴리 방향으로 항해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4절에 문제 가 발생합니다. 자, 본문 14절 다 같 이 읽겠습니다. 시작.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 밖에 저희에게 없더라 그런데 짤막 한 항해지만 그래도 항해는 항핸데 도시락 챙겨 가지고 가는 것을 잊어 버렸어요. 자, 그랬을 때 16절에 보 시면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 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자, 그래서 또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야 우리가 양식 챙겨 가지고 타지 않아 서 큰 일 났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느냐? 그 래서 다시 떡을 인해서 걱정하는 제 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 두 차례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 칠병이어의 기적의 현장, 거기 에 제자들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주 께서 어떻게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봤어요. 이 두 가지 기적의 공통점 의 명백한 렛슨은 이것입니다. 주님 이 우리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우 리들은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 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문제의 해 결자이십니다. 여러분 믿으세요? 예 수님 계시면 그 분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할 수가 있다. 이 기적의 사역 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문제를 해결 해 주셨습니다. 그는 정녕 우리의 모든 Need 우리의 모든 필요에 의 한 공급자이신 것을 기적을 통해 증 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또 걱정하고 있 단 말이죠.

그런데 제자들의 모습만 그렇습 니까? 5년 전, 10년 전 내가 역경에 처했을 때 부르짖었더니 내 기도에 응답하시고 나를 고통에서 건져 내 셨던 놀라우신 그 주님. 자, 주님은 내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주님 내게 오 셨고 과연 나를 구출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소망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우리는 주님 앞 에 흥분하며 감사했어요. 그러나 오 늘의 역경 다시 오늘 내가 처한 환 경 속에서는 나는 또다시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떡하지? 오늘 나는 이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필요가 있 습니다.

자, 그래서 예수님 어떻게 말씀 하십니까? 자, 17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세요. 17절 다 같이 읽 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아시고 이 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 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들 떡 때문에 걱정하는 구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내가 두 번씩 기적을 행하여 너희들의 필요 를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를 신뢰하지 못하느냐? 아직도 내 가 너희들의 문제에 대한 정말 해결 자요 구세주요 그리고 주님이라는 사실을 너희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 하느냐? 그러면서 너희 마음이 둔하 냐? 요즘식으로 말하면 그렇게 너희 대가리가 돌대가리냐? 뭐 이런 말 이예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여기서 깨닫지 못하느냐는 말씀이 단순히 예수께서 제자들이 기억력의 문제만 문제시 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습 니다. 너희 자꾸만 기억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구나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원인, 두 번씩이나 기적을 경험하고도 아직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그들 이 환경 속에서 살아계신 주님의 능 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더 본질적이 고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예 수께서는 지적하고자 하신 것입니 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를 우리는 15절에서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 한 게예요, 본문에서. 15절이 중요합 니다. 15절 같이 읽겠습니다. 15절 시작.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네, 예수 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 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 의하라 이게 무슨 말씀인가? 왜 여 기서 누룩 얘기를 할까요? 누룩은 한 마디로 말하면 영향력에 대한 상 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빨리 퍼지는 것. 이것을 예 수님은 누룩으로 상징하고자 의도하 셨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술을 빚어 만들 때, 우리가 빵을 만 들 때, 우리가 옛날에는 주로 이 누 룩을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발효시 킵니다. 그래서 빨리 퍼지게 하는 것. 주로 누룩은 나쁜 영향력의 상 징으로 많이 쓰여 집니다. 좋은 영 향력의 상징으로 쓰여진 예도 성경 에 있어요. 더 많은 경우에 누룩은 나쁜 영향력의 확산을 의미할 때 상 징적으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예컨 대 고린도 전서 5장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지금 자랑 하고 있는 것, 너희들이 자랑하고 있는 육신적인 자랑 이것은 옳지 않 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룩을 영향력 의 확산에 비유하셨습니다.

자,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 지금 염려하고 있는 이유, 아직도 걱정하 고 있는 이유, 주님을 신뢰하지 못 하는 이유, 두 번씩이나 기적을 체 험하고도 그들의 신앙이 제대로 정 착하지 못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느 냐? 나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 다. 두 가지 영향, 첫째는 무슨 영향 이예요? 바리새 인의 영향, 또 하나 는 헤롯의 영향 때문이다. 이 바리 새 적인 영향 그리고 둘째는 헤롯의 영향 때문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 렇게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꿔야 할 사람들 입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얼마나 자주 우리는 거꾸로 세상에 의해서 우리가 오히려 영향 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영향을 받 았기에 오늘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주님 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리 고 똑 같은 비슷한 사건 앞에서 우 리는 좌절하고 낙심하며 그리고 우 리는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 니다. 어떤 영향이 있었기에. 두 가 지 영향을 지적하십니다. 첫째는 뭐 예요? 바리새 인의 영향입니다. 그 것을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런 말씀으로 말씀하셨어요. 자, 누 가복음 12장1절에 보시면 우리는 바 리새적 누룩의 정체, 그 영향의 정 체를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누 가복음12장1절 다 찾아 보세요. 누 가복음12장1절입니다. 자, 누가복음 12장1절의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 니다. 누가복음12장1절입니다. 시작.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 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 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 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 하라 너희가 바리새 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곧 바리새 인의 누룩은 곧 뭐라고 했습니까? 외식이다 그랬습 니다. 외식주의. 이 바리새 주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외식주의 다 외식.

어떤 분들은 성경 읽다가 외식하 지 말라 이 말씀을 보고서 외식을 안 하신대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외식은 그런 외식이 아닙니다. 바리 새인의 외식이란 것은 겉만 꾸미는 것. 안으로 내용에 대한 관심, 그 내 용을 갖추지 못하고 채우지 못한 채 바깥으로만 관심을 갖는 것, 이것이 바리새 주의의 특성입니다. 한 마디 로 말하면 바리새 주의는 외식주의 혹은 형식주의라고 우리는 정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리새 인들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전통적으로 그 들은 전통을 중요시 합니다. 어떤 종교의 형식, 그 틀을 수호하고 그 틀을 지키는데 아주 민감했던 사람 들이 바로 이 바리새 인들이었습니 다. 자, 그러나 그들의 맹목적 오류, 그들의 결정적 오류, 그들의 삶에 있어서 주님을 실망시키고 있었던 오류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종교의 형식, 이 틀을 갖추는 데는 열심이 있었지만 내용을 갖추는데 열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 인들을 책망하실 때에 주님의 신랄 한 고발 가운데 하나가 회 칠한 무 덤이여 회 칠한 무덤이여 자, 무덤 을 겉으로만 꾸미는 거예요. 무덤 열심히 겉으로 꾸며야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 안에는 썩고 있습니다. 죽어 있는 뼈다귀들이 그리고 냄새 와 부패함이 그 속에 가득 차 있습 니다. 그런데 겉만 꾸미는 거예요.

자, 우리는 이런 바리새 적인 종 교, 바리새 인들의 신앙 생활의 특 성을 아주 예리하게 주께서 지적하 신 한 대목을 복음서에서 읽어 볼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23장23절, 한 번 다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마 태복음23장23절의 말씀입니다. 마태 복음23장23절입니다. 바리새 인들이 어떤 유형의 신앙생활을 했느냐를 우리가 잘 알 수가 있는 대표적인 대목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자, 마태 복음23장2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 들과 바리새 인들이여 너희가 박하 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 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주께 서 바리새 인들의 신앙 생활을 말하 면서 너희들이 십일조에는 열심이다 그게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 예요. 십일조한 것을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 나중에 보시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때때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위 이 땅의 크리스챤들, 이 시대의 크리스챤들 의 신앙 생활이 바리새 인의 수준에 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해 야 한다고 느낄 때가 많이 있어요. 바리새 인들이 우리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바리새 인들을 책망하신, 그들을 고발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 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이 십일조는 열심인데 십일조란 게 그 당시 종교 인들의 대표적인 특성이었어요. 그 러니까 하나님 열심히 믿는 사람 그 러면 그 당시 예수님 당시에 십일조 열심히 하는 사람. 종교의 틀, 종교 인의 삶의 틀을 만드는 사람. 그 시 대 하나님 믿는 사람이면 어떤 사람 이냐? 십일조 열심히 하고, 요즈음 말로 하면 주일 성수 하고, 주일날 꼬박 꼬박 나오고 그리고 예배 열심 히 참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때 때로는 성경공부도 하고 이것이 기 독교인들의 모습이겠죠. 그리고 헌 금 하고 봉사 하고 이런 모습들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중요한 것 이에요. 나 쁜 것이 결코 아니에오. 그러나 예 수님이 문제 삼은 것은 뭐냐 하면 이러한 십일조 외적으로 드러난 종 교인의 틀을 만드는 이런 삶에는 열 중하면서도 더 중요한, 뭘 강조했습 니까? 의와 인과 신. 의롭게 사는 것 그리고 사랑하며 사는 것 그리고 믿음직스럽게 신실하게 살아 가는 것 이런 삶의 태도, 진정한 삶의 내 용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 이것 이 바리새 인들의 삶의 문제점이었 단 말이죠.

오늘의 그리스도 인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제가 지난 금요일 날 미 국에서 왔어요. 와서 제 컴퓨터를 열어 보니까 우리 교인 중의 한 분 이 저에게 전자우편으로 E-mail을 보냈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로 기도 하다가 본인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 았지만 교육적 목적을 위해서 이 편 지를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편지를 쓰신 분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바쁘실 텐 데 귀찮게 해 드린 것 같아서 죄송 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위해서 이 말씀을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편지를 씁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그러니까 두 주일 전에 있었 던 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수지 행 노선 버스를 기다리 고 있었습니다. 3부 예배를 마친 후 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고 몹시 찬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밤새 내린 눈으로 교통이 불편해서 인지는 몰 라도 셔틀 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이 길었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데리고 한참 기다렸는데 몇 대의 차를 보낸 후 저희가 맨 앞에 서게 되었습니 다. 마침 버스가 한 대 오기에 곧 타겠거니 하면서 춥다고 보채는 아 이들을 달래고 있었는데 그 버스가 대기 행렬의 중간쯤에 서는 순간 중 간 이후에 서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올라타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기 다리는 줄이 꽤 길었음에도 불구하 고 순식간에 중간에서부터 타기 시 작하니까 맨 앞에 서 있던 저희들은 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어이 가 없는 일이 교회 앞 마당에서 벌 어진 것입니다. 그 날은 마침 성찬 식까지 한 주일이었는데 어떻게 교 인들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얼떨떨하 기 까지 했습니다. 그 교인들 중에 는 자기 자녀들 손을 잡고 올라 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와 아이들 은 어쩔 수 없이 더 기다리다가 뒤 에 온 차를 타고 집에 왔습니다. 좀 지나간 다음에 이미 지나간 일을 새 삼 목사님께 말씀 드리는 것이 유치 해 보이기도 해서 그만 두려고 했으 나 만일 본당에서 갑자기 화재와 같 은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런 의식 수준을 가진 교인들이라면 과연 질서있게 대피할 수 있을까 라 는 의문이 들었기에 말씀을 드리기 로 했습니다. 솔직히 차량 승차를 질서 있게 하기 위해서 인력을 투입 한다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초등 학생들도 새치기를 하지 않는 세상 에 교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교회가 앞으로 이 사회에서 무슨 역 할을 할 수 있을까 라는 탄식이 나 옵니다. 물론 제 자신도 나을 바 없 는 사람이기는 하지만요. 얼마 전에 는 본당의 의자 맨 가에 앉아서 버 티고 있던 교인이 안내위원이 좀 들 어가서 앉아 달라고 부탁을 하자 성 질을 부리면서 끝까지 그 자리를 고 수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설교 시간에 내용을 적으면서 은혜를 받던데 저는 그 분 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심히 산 란해 졌습니다. 신앙이 성숙의 단계 를 밟아 간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 웃에 대한 최소한의 양보와 배려도 무시하는 일부 교인들의 모습을 보 면서 그야말로 설교만을 들으려 오 는 사람들로 교회가 채워 지지나 않 을까 라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습 니다. 물론 이웃 사랑과 봉사를 남 몰래 실천하는 지체들이 많이 있다 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가끔 가다가 상식 이하의 일이 벌어 지는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착잡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회 왜 나 오십니까? 왜 신앙 생활 하십니까? 저는 교회 나오는 이유, 신앙 생활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다면 구 원이라고 생각해요. 구원. 이 구원 문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 수 믿고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 아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습니 다. 그런데 구원 받았다는 것은 마 지막이 아니 예요. 출발입니다. 신앙 생활의 출발입니다. 이제 구원 받은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 니까?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 가는 것, 그리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삶 을 살아 가는 것, 예수님의 발자취 를 따라 가는 것, 그것이 목적 이예 요. 구원 받은 자로서 주님이 기뻐 하시는 삶을 날마다 살아 가는 것. 그런데 우리가 교회 와서 예배를 드 렸습니다. 종교인의 모습에 예배 드 렸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받았습니 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예배를 드렸고 설교를 들었기 때문에 어떻 게 살아야 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 이예요. 내 신앙이 증명되는 순간은 예배시간이 아닙니다. 예배가 끝나 고 나서부터가 증명이 되는 것입니 다. 그러나 예배 시간에 받은 바 은 혜가 불과 몇 미터 되는 저 마당까 지도 연장될 수가 없다면 우리의 가 정 생활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 갈 까요? 우리의 직장 생활은 어떻게 살아 갈까요? 우리가 과연 이런 우 리가 세상의 소금이고 빛일 수가 있 을까요? 저는 한국 교인들의 최대의 문제는 예배 드리는 것은 신앙 생활 이고. 여러분, 질서 지키는 것, 그거 신앙 생활 이예요. 예배 드림과 꼭 마찬가지 신앙 생활입니다. 이웃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 그리고 장애 인을 아끼는 것, 그들에게 앞장 서 는 것, 장애인 파킹 장 있으면 파킹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신앙 생활 이 예요. 그리고 이웃들을 구체적으로 돌보는 것, 그리고 빛을 드러 내는 것, 그리고 이웃들에게 자상하고 친 절한 모습으로 다가서서 내가 손을 벌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 랑을 나타 내는 것, 이것이 신앙 생 활의 모습이란 말이죠. 그런데 만약 우리에게 변화의 의지가 없다면 교 회 나오고 예배 드리는 것 조차도 주님 앞에 오히려 송구한 일일 수가 있습니다.

저는 바리새 인들의 최대의 문제 가 뭐냐? 바리새 인들의 문제. 그들 은 변화의 의지가 없이 종교 형식을 수호하는 데만 열심이 있었던 것입 니다. 이 바리새 인들이 누굴까요? 우리가 바리새 인들을 비판할 자격 이 있을까요? 어쩌면 바리새 인들의 모습은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 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부끄러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 예수님의 제자들의 신앙이 자라나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오히 려 그들이 바리새 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따라서 어느 정도의 찬송과 기도에는 익숙해 졌 지만 아직까지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 가는 일에 관심이 없었던 제자들. 바리새 인의 누룩을 주의하 라. 너희가 바리새 인의 영향을 받 고 있다. 신앙의 형식과 틀에만 관 심이 있을 뿐 신앙의 삶을 형성하는 진지한 삶의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없 는 너희들이여, 바리새 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게 주님의 말씀 이예요.

두 번째는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 라고 말씀하십니다. 헤롯의 누룩. 우 리가 본문을 마태복음16장하고 비교 해 보시면요, 마태복음16장에는 이 렇게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 인과 사두개 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렇 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렇게 되 어 있어요. 바리새 인과 헤롯. 왜 이 차이가 났을까요? 사실상 헤롯과 사 두개 인은 한 통속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헤롯과 사두개 인은 같은 통속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헤 롯은 로마로부터 임명을 받아서 그 당시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리고 있 던 왕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분봉 왕이다 이렇게 되어 있죠. 로마 정 부의 임명을 받아서 팔레스타인 땅 을 몇 개의 구분으로 나누어서 그것 을 통치하던 자가 바로 헤롯왕이었 습니다. 물론 헤롯이 많이 있지만은. 그러나 헤롯 가문에게 공통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들이 다 욕심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돈에 대한 욕심 이 많았던 것이 헤롯 왕가의 대표적 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백성들에게 필요 없이 세금을 부과 했습니다. 물론 이 세금의 상당한 부분은 헤롯 왕가가 그들이 중간에 서 가로채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뇌물을 즐겼습니다. 이 철저하게 헤 롯 왕가가 대표하고 있는 라이프 스 타일, 그것은 세속주의 혹은 물질주 의 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 당시 바리새 인들과 함께 쌍 벽 을 이루고 있었던 또 하나의 종교 계층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두 개 인들입니다. 주로 사두개 인들은 제사장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들은 정치적으로 로마와 결탁해서 친 로마적인 삶을 살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그들은 헤롯 왕가와 어 울렸습니다. 그들은 종교인이면서도 종교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 니라 그들을 지배했던 중요한 관심 은 돈이었습니다. 저는 바리새 주의 가 형식주의, 외식주의를 대표한다 면 바로 헤롯주의 혹은 사두개 주의 는 세속주의,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물질주의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이 헤롯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 영향을 주기는커녕 그들이 오히려 물질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제자들의 신앙은 자라나지 못하고 그들은 온전히 주 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눈이 멀어 버린 원인, 그들의 신앙 이 맹목적이고 신앙이 성장하지 못 하고 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물질주의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자 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 증거를 볼 수가 있 는데요 자, 다시 본문 마가복음8장 에 보시면 15절에서 예수님이 유명 한 이 경고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 었을 때 삼가 바리새 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건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이죠? 헤롯의 누룩 을 주의하라. 바리새 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사못 흥미롭습니 다. 우리 16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세요. 다시 읽습니다. 시작. 제자 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 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가만히 읽어 보시면 이게 동문서답이예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뭐 라고 말씀했어요? 바리새 인과 헤롯 의 누룩을 주의하라 의미심장한 얘 기를 했는데 누룩 소리가 나오니까 제자들은 얼른 마음 속에서 무얼 떠 올렸어요? 떡. 떡만 생각하고 있었 으니까 누룩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 씀하신 의도도 깊이 생각하지 못하 고 당장에 아 예수님도 떡 얘기하시 는 구나. 자기가 그러니까 모든 사 람이 떡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제자들을 지 배하고 있는 것이 물질에 대한 관심 뿐이었습니다. 물질에 대한 관심.

물질은 오늘 이 시대의 최대의 우상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황금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들을 우리는 볼 수가 있지 않습 니까? 저는 이런 휴머를 들었는데 옛날에 우리가 아주 위기에 처하거 나 어려움에 처하면 우리가 누구를 불렀습니까? 우리 하나님 믿는 사람 들은 하나님 찾지만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은 어머니를 찾죠? 어려운 일 에 처하면 어머니 이북 출신들은 오 마니. 요즈음은 어려움에 처하면 오 마니를 찾는 게 아니라 오, 머니 하 고 찾는 대요. 시대의 풍자 일 수가 있습니다. 돈 앞에 무릎을 꿇고 황 금 앞에 무릎을 꿇는 현대인들의 모 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왜 이런 이야기를 하셨을 까요? 너희들 내 제자들도 다르지 않구나. 늘 떡 생각만 하고 있구나. 물질 생각만 하고 있구나. 물질은 필요합니다. 성경은 물질의 필요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우리의 숭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어 떻게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의 물질 주의를 극복할 수가 있을까요?

저는 물질주의를 극복하지 못하 는 사람들의 현상을 두 가지에서 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우 리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인 데 우리가 정말 물질주의를 극복한 다면 그것이 우리 헌금 생활에 나타 나야 돼요. 물질적으로 헌신하지 못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물질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건 다 헌신 하는데 내가 물질은 드릴 수가 없다 이것은 내가 아직도 물질주의의 노 예로 살고 있다는 증거죠. 저 유명 한 요한 웨슬레가 이런 말을 남겼습 니다.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회개는 신용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정말 변했다 회개 했다 라면 그것을 어디서 알 수 있느냐 하면 그 돈을 사용하는 용도를 보면 알 수가 있어요. 전에는 나를 위해서 내 욕심만을 위해서 쓰여지던 돈.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서 그리고 이웃들을 위해서 사용될 수가 있느냐 이것이 내 물질관, 물 질과 관련된 내 가치관을 시험하는 척도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미국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라 고 그러는데 미국의 어떤 침례 교회 에서 목사님이 지금 침례를 주는 거 예요. 저기서. 그런데 한 성도가 들 어 오질 않아요. 자꾸만 들어 오질 않아요. 그래서 왜 안 들어 오느냐 고 그러니까 목사님 나 지금 지갑을 갖고 있어서요 그 때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형제여 Oh brother, 당신의 지갑도 침례를 받으셔야 합니다. 지갑도 침례를 받 으셔야 합니다. 지갑까지도.

침례라는 것이 무얼 의미합니까? 이 Baptism 이란 것은 물 속에 들 어갈 때 내가 죽었다는 것 이예요.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 이 예요. 물에서 나올 때 나는 주님과 함께 부활되었다 새로운 사람이 되 었다. 전에는 나를 위해서만 사용되 던 이 물질에 대한 가치관이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역을 위해서 사용된 다. 이 물질에 대한 구체적 헌신이 야말로 내가 변했고 내가 회개했고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증거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 증거 가 우리에게 있느냐 말 이예요. 물 질적인 헌신을 하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교회를 어 떤 물질을 이용하려는 장소로 생각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 사귀어서 내가 취직이나 하고 혹은 적당히 돈이나 얻을 수가 있지 않을 까. 과거에 한국 교회에서 6.25사변 직후에 외국에서 원조 물자가 오니 까 그것 때문에 교회 나왔던 사람들 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옛 날 선교사님들이 가만히 보니까 순 수한 동기가 아니고 이 쌀 얻어 먹 으려고 오는 교인들이 있어서 과거 에 선교사들이 뭐라고 불렀나 하면 riceChristian 이라고 불렀어요. 라이 스 크리스챤.

지금은 우리가 그런 지경은 아니 지만 그러나 그런 동기를 가지고 예 수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니깐 축복 받는다더라, 물질적 인 축복. 신앙의 유일한 동기가 물 질의 축복이 되어 있는 사람들. 오 해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으면 축복 도 받아요. 그러나 그것이 예수를 믿는 이유는 아니죠. 만약 물질의 축복 때문에 예수 믿었다면 이런 사 람은 내가 신앙 생활함에도 불구하 고 물질적 축복이 오지 않는다 하면 이 사람은 언제든지 주님을 버리고 떠나갈 사람 이예요. 그것 때문에 믿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보 다 위대한 꿈이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삼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 을 이루는 도구로 내 인생이 쓰임을 받을 수 있다. 이 더 높은 프라이드 와 그리고 더 높은 기쁨 때문에 인 생을 사는 사람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 이 이 물질 앞에 굴복하고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리새 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 이런 것을 경계 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생각이 물질에 서 해방되지 못한 이 제자들의 모 습. 주님의 가슴 얼마나 안타까웠을 까요? 그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 까? 18절 보세요. 자 18절 같이 읽 겠습니다. 18절 다 같이 시작. 너희 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 하느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 하느냐. 제자들이 보아야 할 것은 주님이었습니다. 그들 앞에 예수님 이 계셨습니다. 그는 누구이십니까? 창조자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그 리고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칠병이 어의 현장에서 그 많은 사람들의 필 요를 공급하시던 놀라우신 주님이 그 앞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보지 못하고 떡을 보고 있어요. 지 금.

여러분의 시선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내 눈이 열려 살아계신 주님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 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러면 뭐가 걱정 이예요? 그 주님이 내 곁에 계 시면. 왜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느냐?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 냐? 주님이 내 앞에 계시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의 말씀이 내게 용 기가 아닙니까? 그가 말씀하시면 천 지는 변할 수가 있습니다. 그가 말 씀하시면 세상은 새로워 질 수가 있 습니다. 말씀하시는 주님, 주의 말씀 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고 그리고 그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던 제자들의 안타까운 모습. 어찌하여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가 마태복음 16장에 보시면 요 이 바리새 인들이 자꾸만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주님 당신이 메시야 라면 진짜 메시야 라면 더 위대한 표적을, 더 놀라운 표적을 보여 주십시오. 이제 주님은 이런 바리새 인들의 요구를 일축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들 에게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 는 없다 왜 그 장면에서 요나의 표 적을 말씀하셨을까요, 여러분? 요나 의 위대한 사건은 뭐예요? 그가 물 속에 들어 갔다가 몇 일 만에 살아 나옵니까? 사흘 만에 살아 나와요. 이것은 십자가의 그림입니다.

주님의 가장 위대한 기적은 그가 여러분과 저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 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믿 습니까? 그가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그 가 우리의 소망인 줄 믿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생명인 줄 믿습니다. 그 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함께 하십니다. 왜 염려하십니까? 왜 걱정하십니까? 부활의 주님, 살 아계신 주님이 내 앞에 계시고 내게 말씀하십니다. 그 주님을 붙잡으시 기 바랍니다. 그 주의 음성을 들으 시기 바랍니다. 그 분을 따라 가시 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승리인 것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염려하고 있습니까? 왜 깨닫 지 못하십니까? 아직도 깨닫지 못하 십니까? 기도하십시다.

여러분,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뭐가 걱정이세요? 하나님이신 예수, 구세주요 주님이신 그 분, 전능하신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사랑 하시는 여러분, 뭐가 걱정 이예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사실 이지만 정말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그 분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일어 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응답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새 로워 질 것입니다. 피할 길은 생길 것입니다. 홍해 바다는 열릴 것입니 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신뢰 하시기 바랍니다. 돈 걱정 하지 마 시고 예수님 그 분을 신뢰하시기 바 랍니다. 주여 내가 당신을 신뢰하겠 사오니, 그리고 당신을 따르겠사오 니, 그리고 당신의 사람이 되겠사오 니, 나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 다. 기도하십시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 합니다. 오늘도 주 앞에 나와 주의 말씀을 받습니다. 오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성 령으로 임하시사 우리의 영혼 속에 당신의 능력으로 베풀어 주시고 우 리가 완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살아 가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함께 하시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 는 것을 확인합니다. 오 나의 생명 이신 주님, 나의 사랑이신 주님, 주 님 바라보며 살겠사오니 우리를 도 와 주시옵소서. 날마다 숨쉬는 순간 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 려움 없네 어려움과 고통이 찾아 와 도 그 주님 바라보면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자비로운 손 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그 분 바 라보시고 그 분을 따라가시는 그 기 쁨으로 충만한 우리들의 삶이 되도 록 하나님 역사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 통케 하심이 오늘 주 앞에 나와 예 배를 드린 사랑하는 에스더와 또 이 복된 주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 하며 이제 이 말씀 붙들고 살기 위 하여 주를 의지하고 다시 삶의 장으 로 나아가는 당신의 모든 백성들에 게 성령의 권능과 능력과 인도 하심 으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 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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