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에 들어갈 사람
민수기 13:30~14:10
이스라엘 민족은 450년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떠나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액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는 40년이란 세월을 광야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 동안 감격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인도와 보호하심에 대하여 감사 감격하여 찬송도 불렀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에 직면 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도 다 잊어버리고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어떤 때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그 땅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이스라엘 열두지파에서 한 사람씩의 방백 열두 사람을 말하자면 대표 격으로 선출해서 40일 동안의 기한을 주면서 그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그 땅의 형편이 어떤지 좋은지 나쁜지를 다 알아보고 오라고 하면서 올 때는 견본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큰 사명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미리 들어가서 그 땅의 형편을 자세히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탐들은 기한 내에 돌아와 호기심과 기대 속에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 앞에서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두 사람의 정탐가운데 열 사람은 "우리가 가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우리가 꿰매고 온 이와 같은 포도가 열리는 땅입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성곽이 높고 골짜기는 깊고 험합니다. 그리고 그 성안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보다 키가 크고 장대합니다. 우리 생각에도 그런데 그들이 볼 때 아마 우리를 메뚜기처럼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각에는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열 사람의 정탐들은 이 보고를 듣고 있는 백성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 사이에 소란이 생겼습니다. 많은 사람이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도자를 다시 택해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사람까지 생겼습니다. 차라리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바에는 저희와 싸워 패배하는 것보다 애굽에 돌아가서 노예생활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싸워보기도 전에 항복하고 시작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격이 되었습니다.
이때 미처 보고하지 않고 있던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옷을 찢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말을 들어보세요.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조금 전에 여러분께 보고하신 분들의 보고가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키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은 이미 떠났습니다. 저희는 우리의 바입니다. 여러분, 하나님편이 되십시다.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가 능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 쉽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과 못한다는 것은 다릅니다. 주저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면서 낙심 중에 있는 백성에게 용기와 확신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새 힘과 용기를 얻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라 나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 땅을 정탐한 사람들의 보고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땅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던지 좋지 않은 말을 하던지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그 땅을 동경하고 의욕과 희망을 가지고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나서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땅에 대해서 낙심하고 비난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땅에 먼저 들어갔던 사람들의 보고가 어떠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차이입니다. 보기는 같이 보는데 믿음 없는 사람과 믿음 있는 사람의 결론은 완전히 다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무엇을 보나 소극적으로 부정적으로 절망적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이나 안 된다, 못한다, 끝났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대로 보고 판단한 것이지 하나님을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그 땅을 차지하겠다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면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믿음 안에서 가지는 소망이 아니라, 의심으로 그 땅을 바라보고 '그 땅은 쓸모 없는 땅입니다. 더구나 그 땅은 우리로서는 차지 할 수 없는 땅입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의 유혹이 잇는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아래에서만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 대신에 걱정과 실망을 안겨줍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란 도전과 응전의 역학관계"라고 했습니다. 도전이 다른 것 아닙니다. 문제는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느냐? 적극적으로 응전하느냐? 소극적으로 응전하느냐? 하는데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역사를 맡깁니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에게 맡깁니다. 안 된다고, 못한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맡기지 안습니다.
보세요. 약속의 땅에 미리 들어가 부고 와서 보고 할 때 열두 사람중 대다수인 열 사람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 중에 누구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여호수아와 갈렙 긍정적인 보고를 한사람은 기억합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민수기 13장 4절이하게 그들의 이름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났다가 간 것뿐입니다. 인류역사를 위해서 아무런 공헌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여호수아 갈렙의 보고를 듣고 그렇다. 나도 저분들을 따라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열 사람의 부정적인 보고의 영향을 받고 그들 따라 산 사람은 약속의 땅에도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비극입니다.
집에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어머니가 예배당에 나가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아니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요 집에서 웃는 것을 못 봤어요. 주일이면 성경, 찬송가책가지고 예배당에 나가시는데요 평일이나 다름없이 우울해 하셔요. 어머니는 주일을 꼬박 꼬박 지키시는 성주 주일자 입니다. 그런데 주일이 일주일 중에 속박이 제일 심한 날 같아요" 이것은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보는 눈입니다.
그 남편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그 남편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은 모르지만 내 아내도 그렇게 기쁜 모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 신앙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너무 크고 무거워서 한 사람이 들지 못하고 두 사람이 꿰매고 올 수밖에 없을 정도의 포도가 있는 땅입니다. 그 땅에서 나오는 과일은 너무 맛이 있어서 사람들이 먹고 싶어하는 과일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땅에서 나는 과일은 이렇게 맛이 있고 풍성합니다. 이렇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약속의 땅에 대해서 잘못 전해준 사람이 많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처럼 부정적으로 비쳐 진다고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신앙인의 모습은 갖추고 있지만 신앙인의 정신이 없을 때 이런 비극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의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올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런 사람이 기도는 드리지만 영적인 기도, 응답 받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물론 이런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을 하고 설교도 하고, 구원의 교리에 대해서 강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주장이나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보고 찬사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소위 세상 말대로 인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과 무슨 일을 한다면 크게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왜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도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날 정도로 그들의 생활과 신앙고백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과 생활이 너무 분리된 생활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거 참 죄송하고 부끄러운 말씀입니다 마는 신앙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보다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두 주일 전에 우리 연합 남선 교회 주관으로 감사원장을 지내신 한승호 변호사님을 모시고 신앙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법조계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을 대하고 고소한 문제를 다루고 하는 중에 세상 믿지 않는 사람보다 예수 믿는 사람을 다루기가 가장 어렵고 실망스러운 일이 많았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이만했으면 서로 양보하고 화해할 수 있는 문제인데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를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자기는 예수님은 좋아했어도 예수 믿는다는 사람은 싫어했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느낀바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약속의 땅을 가본 사람이 부정적인 보고를 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보고를 듣는 사람들이 실망하고 좌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약속의 땅의 부정적인 면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긍정적인 면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을 보고, 그것을 보고하고 알려야 합니다. 얼마전 어느 변호사 한 분을 만나 이야기하는 중에 자기는 예수를 믿지 않지만 자기 부인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고 성경공부를 하는데 그 이래로 아내의 삶이 너무 변한 모습을 보면서 대단한 관심과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제가 아직은 신앙생활을 시작하지 못했지만 이제 얼마 안 있어서 교회에 나가게 될 것 같다면서 그거야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변호사님의 부인은 약속의 땅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준 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스스로 한 번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약속의 땅의 좋은 면, 긍정적인 면을 보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며 믿음 없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보고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같이 그들 앞에서 담대히 여러분의 입장을 밝히셔야 합니다. 절대로 위선적인 신앙인과 만나서 여러분의 신앙에 부정적인 나쁜 영향을 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가끔 좋지 않은 친구를 만나고 그들이 또한 우리를 유혹할 때가 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의심나게 하고, 불평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게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반항하도록 배후에서 조정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절대로 믿음 없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마세요. 결국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우리를 약하게 만들고,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고, 그 마지막이 비참하게 되고 맙니다.
이 세상에는 형식적인 신앙인들, 육에 속한 신앙인 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모두가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마음에 들면 감사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망과 시비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라도 비난합니다. 이런 사람은 추한 그리스도인, 교만한 그리스도인, 허물투성이의 그리스도인, 합당치 못한 그리스도인으로 나타납니다. 그 입으로 간증한 내용과 그 생활이 너무도 다르고 모순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사람이 되십시다.
여기 오늘 주신 말씀 중에서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세요. 믿음 잇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평안하고, 건강하고, 범사가 자기 소원대로 될 때만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가운데 처해 고난이 극심할 때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만이 그 땅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사람은 그 말이 긍정적입니다.
'같은 말도 툭해서 다르고 탁해서 다르다' '아해서 다르고 어해서 다르다'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던지는 한 마디의 말이 듣는 사람의 일생을 좌절시킬 수도 있고, 희망 속에 용기를 가지고 힘차게 살아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복되고 기쁜 소식의 말씀을 전해서 우리의 이웃이 창조적이고,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간 우리 교회 세계지도력개발원에서는 일선에서 목회 하시는 분들을 모시고 피곤하고 지친 중에 말씀을 나누면서 하나님이 힘 주신다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다고 용기와 확신과 믿음을 심어 주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아름답고 기름진 땅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쉽게 들어 갈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노력하고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땅입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라야 들어 갈 수 있는 땅입니다.
"우리 함께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앞을 나아갑시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생활을 통하여 긍정적인 말, 적극적인 말을 합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 확신과 승리를 안겨 줍시다.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했습니다. 우리가 볼 때 불행하고 불리한 조건들이라고 할지라도 모두가 합력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는 아무리 주위 환경이 어둡고 답답하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에도 어떻게 그렇게 구김살 없이 늠름하게 살았습니까? 종으로 살 때도 열등감 갖지 않고 눈치보려 하지 않고 종으로 충성했습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어도 좌절하거나 의심하거나 원망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죄수를 위로하고 저희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며 도와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었습니까?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지금 당하는 이해 할 수 없는 어려움까지도 좋은 것으로 바꿔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역경 속에서도 조금도 나약해 지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그리고 그이 사랑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늠름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사자 굴에 던진다고 호령하는 왕앞에서 어떻게 그처럼 다니엘이 담대하고 의젓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한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선으로 바꿔주실 것을 믿는 사람이라야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두려워 떠는 자기 백성에게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맙시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이미 그들에게서 떠났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맙시다"고 하면서 그 백성에게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함께 하셔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냅니다.
인간의 본성을 타락이후에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것 보다 부정적인데 관심이 더욱 큽니다. 그래서 선과 공의와 평화보다는 악과 불의와 싸움에 더 매력을 느껴서 그것을 따르기 쉬운 것입니다. 신문에나 잡지를 보세요. 선행을 한데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 없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범죄 사건에 대해서는 관심이 크기 때문에 기사화 합니다. 그래야 신문, 잡지가 팔린다고 합니다. 친구가 성공한 이야기하면 졸다가도 흉보는 이야기를 하면 자다가도 깹니다. 이것이 바로 본성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10퍼센트이고 나머지 90퍼센트는 그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90퍼센트의 반응이 긍정적인 반응이면 그 사람의 삶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이면 그 사람의 삶은 부정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에 항복하지 말고 도리어 그것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수가가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사람은 좋은 것을 따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다녀온 정탐들의 엇갈리는 보고를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악량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거기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에게 시비하고 자신을 한탄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애굽에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사람은 여호수아의 보고를 듣고 "과연 저 사람들이 말이 옳다. 저 사람들이 훌륭하다. 우리는 저 사람들을 따라 가야 살겠다"하고 그들의 믿음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앞서 성공한 사람의 지혜와 그 아이디어와 가치관과 그 추진력 용기와 인내를 본 받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승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닮아 가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사람은 감사 생활합니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원망과 짜증, 불평과 의심대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생활을 합니다. 감사의 마음은 적극적인 감정이요, 긍정적인 감정이요, 창조적인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충만하고 여유 있고 행복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보면 믿음 없는 정탐꾼은 약속의 땅을 가보고 나서 불평과 원망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땅에 데리고 와서 다 죽게 하는구나 하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했습니다. 그러나 꼭 같은 땅에 가보고 돌아온 믿음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감사하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돌아다니며 탐지한 이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하면서 감격해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자유의 몸이 된 것만도 감사한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땅을 마련해 주셨구나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광야 생활할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태양열을 막아주시고 밥에는 불기둥으로 찬 공기를 따뜻하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을 마련해 주시고 그 땅에 들어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을 누릴 생각을 할 때 감격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의 감사의 조건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 적인데 있습니다. 보이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몸에 건강이 있으면 감사합니다. 돈을 많이 벌면 감사합니다. 출세하면 감사합니다. 자녀가 어려운 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면 감사합니다. 아들딸을 낳으면 감사합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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