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율법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 / 마 5:17-19

by 【고동엽】 2021. 12. 20.

율법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 마 5:17-19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어서 움직이지 않고 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을 온 세상이


믿고 있을 때, 갈릴레오라고 하는 사람은 그 믿음을 부인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학설을


주장했습니다.


그가 쓴 '천문대화'라는 책을 통해서 이를 뒤집어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그 당시에 세도가 대단했던 교회의 종교 재판소에 끌려 가서 70의 나이에


참회복을 입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아마 노령이고 주변 분위기가 워낙 공포스러워서 그랬는지 자기의 주장을 철회 하기로


마음 먹고 그는 성경 위에 손을 얹어 이렇게 서약을 했습니다.


'저는 태양이 세계의 중심이며, 움직이지 아니하고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어리석은


학설을 거부하고 비판하고 저주합니다.


동시에 다시는 이런 혐의를 받을 수 있는 글을 발표하거나 주장하지 않기로 맹세합니다.


'그렇게 하고는 이제 손을 들어 항복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고행을 하도록


언도를 받았고, 그의 책은 다시는 보급되지 못하도록 금서목록에 들어 가서 배포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법정에서 끌려 다시 나올 때 그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


수년 전 요한 바오로 2세가 350년 만에 처음으로 교회가 갈릴레오에 대해서 내린 판결은


잘못되었다고 시인을 하고 갈릴레오에 대하여 사실상 무죄 선언을 한 것입니다.


350년 만에 겨우 이와 같은 바른 판단이 나온 것입니다.


왜 제가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끄집어 내느냐 하면, 한번 사람이 무지의 소치로 오해를


하기 시작하면 그 오해를 푸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 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지에서 생긴 오해든, 편견 때문에 생긴 오해든, 또는 어떤 이해 관계 때문에


생긴 오해든 간에 그 오해가 굳어져서 자기 자신에게 진리로, 정설로 되어 버리면


그 다음에는 그것 때문에 옳은 것을 전부 다 부정해 버리는 무서운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 지도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청년이 등장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들은 주의 깊게 지켜


보았습니다. 그리고 점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행동, 또 예수님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그는 틀림


없이 율법을 무시하는 인간이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아주 가볍게 여기든지 혹은 이제는


율법을 폐지해도 된다는 선동을 하고 다닌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하지 못할 것을 수십, 수백 가지를 정하여 지키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는데


예수님은 공공연히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그리고 왜 안식일 범하느냐고 질문하면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의 주인은


나다.'는 식으로 대답하십니다.






매사가 이와 같은 식이고 보니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사회가 지탄하고 정죄하는 세리나 창녀, 그 밖의 여러 죄인들을 예수님은 오히려 자기 곁에


끌어 모으시고 그들을 변호하는 것 같은 언사를 서슴지 않으시며 심지어 어떤 때는 그들의


악을 정당화 시키는 것 같은 말씀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오해는 점점 더 깊어 질 수 밖에 없었고 복음서에 20회 이상이나 나오는 예수님에 대한


음해, 비판, 공격으로 비화되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나


율법사들이나 바리새인들을 보고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그들에게


아주 무섭게 저주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누가 옳습니까? 예수님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위에 계시는 초 율법적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세상을 율법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율법 아래로 내려 오셔서 죄가


없으면서도 죄 있는 사람처럼 율법에 복종하고 계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을 가장 정확하게 해석하는 율법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근본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인정할


진대 유대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것이라도 예수님을 보고서


'아, 우리가 잘못 되었구나. 그러므로 우리가 고쳐야겠다.' 하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유대 나라 지도자들이 오해한 것처럼 예수님이 율법을 경시하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 일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거꾸로 율법을 너무 높이 평가


하시고 율법을 절대 권위로 인정하셔서 오히려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7절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오해하지 말라.


'주님은 그런 오해를 계속 받고 계셨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율법이나 선지자,


즉 구약 성경을 폐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높이며 복종하고 있는가를 18절, 19절에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면 없어졌지,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 일획이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일획'이라는


것은 구약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 철자 중에 가장 작은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일점'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가장 작은 철자에 찍는 작은 점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 기록된 글자 하나, 작은 점 하나도 헛되이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19절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누구든지 이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경히 여기거나


잘못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멸시를 받아 가장 작은 자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이 율법의 말씀을 그대로 가르치고 그대로 지키는 자는 천국에서 존경을 받을 것이다.'


얼마나 예수님께서 율법을 높이 평가하셨는지 모릅니다. 어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어린애처럼 벌벌 떠시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정도의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피눈물을 쏟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마자 가룟 유다를 앞세우고 군대가 몰려와 그를 포위 했습니다. 베드로가 엉겁결에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서 휘둘렀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이 '칼을 집에 꽂으라.'고


하시면서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지금 내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해서


하늘에 있는 수십만의 천사들을 불러 올 수 없는 줄 아느냐? 만약에 그 천사들을 불러서


이 무리들을 전부다 쫓아 버리고 내가 십자가를 지지 않게 된다면 구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질 것이라고 예언한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


지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된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천지가 무너져도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나는 천사를 보내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나는 말씀대로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다.' 하시고는 십자가를 지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폐하러 왔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한 가지 배우고 넘어가야 합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이 들어 있는


구약 말씀을 예수님처럼 우리도 높이 받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끔 교회 다니는 분들 중에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구약은 큰 의미가 없다거나


그렇기 때문에 신약만 열심히 읽어도 된다는 식으로 똑똑한 체 하면서 구약을 잘 안 읽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약은 딱 떼 버리고 가벼운 신약 성경만 달랑 들고 교회를


다니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 하루에 구약 몇 장, 신약 몇 장을 함께 읽으라고


권면을 받지만 구약은 읽다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때문에 금방 적당히 읽어


버립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런 태도가 있으면 고쳐야 합니다.


어거스틴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신약은 구약 속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


속에서 드러난다.' 구약 안에 신약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은 신약에 있는 내용을


미리 예언하고 예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약에 가면 구약이 나타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약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는 신약이 해석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불트만이라는 신학자는 그리 좋은 신학자는


아니지만 이 말 한 마디는 바로 했습니다.


'우리가 신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 아래 서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은 신약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말들을 종합하면 구약과 신약을 차등해서 대우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있는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17절에 있습니다. '나는 완전케 하려 함이니라.'


완전케 한다는 말은 성취한다는 뜻이요, 완성한다는 뜻이요, 끝맺음을 해 준다는 말입니다.


두 가지를 먼저 이야기 합시다.






완전케 하신다의 첫번째 뜻은 예수님이 구약의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창세기 3장 16절의 원시복음을 시작으로 말라기에서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하는 최종적인 예언까지 구약 39권을 훓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


그가 어떻게 오실 것, 그가 오셔서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교훈을 하실 것, 어떻게 죽으실 것, 어떻게 살아나실 것, 그리고 그를 통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구원 받을 것인가를 다 예언


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의 계산에 의하면 예수님을 예언하는 구약의 내용은 적어도


직,간접적으로 전부 다 합해서 15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그를 지명하고 있습니다. '저분이 오시면, 저분이


오시면' 하고 구약은 수 천년 동안 예언을 했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일단 실체가 등장한 이상 과거 그에 관해서 한 이야기는 이제는


다 완결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이


종결되었습니다.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케 하셨다는 의미는 두 번째로, 율법을 종결 시켰다,


율법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10장 4절에 더 구체적인 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느니라.'


성경을 잘 모르시는 분이나 연세가 드신 분들에게는 조금 딱딱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귀담아 들으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시면 다 알아 듣게 하십니다.


모세 5경이 율법입니다. 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그 율법에는 세가지 법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의식법, 시민법, 도덕법입니다. 그러면 의식법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제사와 관련된


법이요,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과 레위인에 대한 법이요,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성소,


즉 장소에 관한 법이요, 제사를 드리는 절기에 관한 법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의식법


입니다.


출애굽기에도 많이 나오고, 레위기에도, 신명기에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레위기를


읽다 보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수많은 제사들이 나옵니다. 이런 것이 다 의식법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의식들은 전부 장차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그 죽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모든 제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번제로 죽은 염소처럼, 속죄제로 죽은 양처럼, 화목제로 죽은 황소처럼 우리 예수님도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라는 것을 그 제사를 통해서 전부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어린양의


제물로, 자기 자신이 대제사장이 되어, 그리고 십자가를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성소의


번제단으로 삼으시고, 그 위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보혈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실체가 와서 진짜 제사를 드린 결과 지금까지 그림자 같이 구약에서 드리던 모든 제사는


이제 일단락된 것입니다. 끝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4절입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죄를 위해서 다시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죄를 다 속할 수 있는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제사가 이제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구약에 있는 모든 제사는 이제


끝났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민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민족 가운데서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내 것이다. 나는 네 하나님이다.' 하시고는


'너는 그러므로 거룩해야 된다. 다른 민족하고 구별 되어야 된다.'면서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을 통치하셨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신정 국가라고 합니다. 이 신정 국가를 하나님이


세우시고 직접 다스리시는데는 자연히 구체적인 법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성들이


서로 이해 관계 때문에 싸울 때 판결을 내려 주어야 할 어떤 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법, 저런 법을 많이 만들어 주셨는데 이것이 시민법입니다. 예를 들면 '남자가


여자 옷을 입으면 안 되고, 여자는 남자 옷을 입으면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 시대에 산다면 바지를 입고 예배 드리러 온 여자들은 다 쫓겨 나가야 합니다.


'이런 음식은 먹지 말고, 저런 음식은 먹어라.' 이것이 다 시민법입니다.






이런 시민법도 이제는 예수님이 오시므로 막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셨으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선택 받은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자마자 그 순간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는 끝난 것이고


신정 통치도 끝난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만 두고 "너는 내 백성이다."


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마당에 시민법


이 왜 필요합니까? 필요 없습니다. 그 대신 예수 믿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전세계의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시민법이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도덕법이 있습니다. 도덕법은 십계명에 압축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법입니다.


이 법은 폐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시는지, 왜 살인하지 말라고 하시는지, 왜 간음하지 말라고


하시는지, 우리는 이 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중을 읽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영원히 존속되는 이상, 이 법도, 이 법의 정신도 영원히 존속됩니다. 하나님의 도덕법은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기에 다 포함이 됩니다. 이 법은 하나님의 거룩을 상징하는 영원한


법입니다. 이 법을 율법에 주셨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