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순종하는 삶(눅 2:41-52 )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8.

순종하는 삶
누가복음 2:41-52


논지 :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 받는다.


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 생애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33년의 짧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짧은 인생 중에 30년은 사적인 생활을 하셨구요, 또 끝에 가서 3년은 공적인 생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탕절서부터 그 인생을 시작하셔서 그 다음에 부활절까지 그 인생을 마치게 되고 승천을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말씀으로부터 시작해서 2월달부터 부활절이 있는 4월달까지 예수님의 삶, 또 예수님의 사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신 다음에, 나사렛에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자라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30년동안 사적인 생활을 하신 것은 성경에 많이 기사가 없습니다.


2.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열두살 때, 그 30년의 세월 가운데에서 열두살에 일어났던 작은 에피소드 하나를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12살때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42) 유대인들은 13살이면 성인으로 인정을 하고 여러가지 종교적인 행사에 참석을 시키고 그런답니다. 12살이면 이제 그것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부모님이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어릴 때 수학여행만 가도 흥분되는데, 예수님께서 흥분되는 마음으로 이제 성전에 가면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고 여러가지 하나님에 관한 것들, 율법들을 배우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 (43, 49-50)


1. 미아가 됨 (43-48)


1) 유월절 절기가, 일년 명절 중에 최대의 명절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율법도 배우고 각지에서 온 경건한 사람들도 만나고 너무나 은혜스럽고 너무나 열기 띤 그런 절기를 마친 다음에 가족들이 다 나사렛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온 가족이 다 가면 열두살 어린 나이의 예수님도 같이 따라가야 하는데, 따라가지 않고 그냥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43)


2) 온 가족이 북쪽으로 나사렛을 향해서 가는데 저녁 나절에 보니까 이제 하루 쉬어가야겠다고 쉬면서 죽 점검을 해보니까 아들이 그만 없어진 거예요.(43a) 요즘엔 다 핵가족 시대니까 아이가 그저 하나 아니면 둘, 자기들 식구들 끼리만 딱 가니까 이런 일이 없습니다만, 옛날에 유대인들은 여러 사람들이, 동네 사람이라든지 여러 사람이 큰 무리를 지어서 여행을 다녔습니다. 강도를 만난다든지, 맹수를 만난다든지 그런 위험이 있기 때문에 혼자서 여행을 하는 법이 없이 여럿이서 같이 여행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 뭐 한 동네 사람들이 같이 가면, 그 사람들이 일가친척이기도 하고 꼭 집안이 아니더라도 같이 삶을 살아가니까 한 집안 사람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여러 어른들, 여러 아이들 같이 공동체로 일행을 이루어서 여행을 다니니까, 꼭 챙기지 않아도 다 왔으리라 그런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녁에 찾아보니까 없어요. 놀라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왔고, 사흘 후에 성전에서 찾게 됐습니다.


3) 성전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랍비들하고 여러가지 대화를 하면서 율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옛날 유대교 랍비들은 이렇게 오늘날 우리같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질문하면 거기에 답변을 해주고, 이런 대화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그 성전에서 랍비들에게 질문도 하고 답변도 하고 율법을 공부하고 있을 때에 랍비들과 다른 여러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 예수님의 통찰력에 대해서 놀랄 정도가 된 것이지요.


성전에서 그 아들을 발견했어요. 예수님 육신의 부모님들이 놀라고 애를 태웠던 것 때문에 예수님을 책망했습니다. 여러분 집의 아이들 기르면서 애 잃어버렸던 경험 없습니까? 살다 보면 애 잃어 버렸던 기억들이 있지요. 여행 나갔다가 잃어버렸던 경험도 있구요, 낯설은 곳에서 아이를 잃어버리고 찾지 못해서 애태우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애를 태웠겠어요. 그래서 그 아들에게 애태우고 놀라게 하고 근심하게 한 것을 꾸중했습니다. 부모님이 다 가면 그 낯선 곳을 여행할 때에는 같이 따라가야 하는 것이지 안따라간다고 하는 것은 부모님께 불순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모님께 불순종 한 것을 책망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아이들한테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부모님 말씀에 잘 순종해라 그런 이야기를 하지요. 설날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주면서 덕담을 하지요. 아이들이 뭐 돈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덕담을 잘 안듣습니다만 그래도 돈만 줄 수는 없으니까 덕담을 합니다. 그 때 잘 하는 말씀이 뭡니까?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어른들 말씀 잘 들어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순종을 잘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커서 이제 학교에 가게 됐을 때에 학교에 보내면서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다 순종을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린 예수님이 그 육신의 부모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부모님을 따라서 집으로 가야 하는데 성전에 남아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2. 하나님 아버지 집에 머무심 (49) –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


1) 육신의 부모님의 책망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지극히 당연한 대답을 했습니다. 49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내가 아들인데, 아버지 집에 있는데 그것이 뭐 잘못된 것입니까?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집, 이 성전에 있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게 말씀을 한 것이지요. 여러분 아들이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 교제하는 것이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공부하고 아버지의 뜻을 깨달아 알고 그 아버지의 뜻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만나고 하나님아버지와 교제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고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삶을 살기 위해서 공부하고 순종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철저히 순종을 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 보좌를 차지하고 계시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그 소망을 우리 예수님께서 아시고 그 뜻에 순종해서 인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이 뜻에 순종해서 인간을 구원하기 원하는 하나님 아버지이 뜻에 순종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했습니다.(빌2:6-8) 왜 예수님이라고 고통을 당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왜 예수님이라고 죽기를 원했겠습니까? 예수님도 피하고 싶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했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눅22:42)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그 잔을 피하고 싶었어도 죽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뜻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했습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하나님 아버지께 전적으로 순종을 하게 된 것이지요.


순종이 뭡니까? 순종이라는 것은 내 뜻대로, 내 원하는 대로, 내 좋은 대로, 나한테 유익된대로 하는 것이 순종이 아니고, 나한테 불이익이 되더라도 나한테 손해가 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따르는 것이 순종인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을 하신 분입니다.


3)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부모님도 있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 우선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예수님도 철이 다 들었기 때문에 부모님을 따라서 나사렛 집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 먼저 우선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 그 기초 위에서, 그 순종 위에서 육신의 부모님에게 순종해야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부모님께 더 잘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요일4:20)


믿지 않는 부모님이 자기 자녀들이 교회를 가고 그럴 때에 아이를 불러 놓고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 교회 가지 말아라. 교회를 택하든지 부모를 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라’ 그런 이야기를 하지요. 믿지 않는 남편이 예수 믿는 아내를 앉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남편을 택하든지 교회를 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라. 나하고 갈라서고 교회를 다니든지, 교회를 그만 두고 나하고 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협박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성질의 것이 아니구요, 하나님 아버지께 잘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을 기초로 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 가장 수준 높은 순종이기 때문에 그렇게 철저히 희생하면서 수준 높은 순종을 하는 그것을 기초로 해서 부모님께도 순종하고 남편에게도 순종하고 순종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순종의 기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을 했습니다.






나. 부모님께 순종 (51)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한 후에, 부모님께 순종을 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이렇게 부모님께 순종을 할 때에는 그 부모님들 자신이 순종을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여러분 마리아를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는 천사가 와서 성령으로 잉태될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처녀가 애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불이익이고, 그 사회에서 쫓겨나든지 죽을 수 밖에 없는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힘든 일이지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순종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도 천사가 임신한 자기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라고 말했을 때,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마1:24)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님들 다 자신의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한 순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2. 또 예수님의 부모님은 경건한 분들이었습니다.(41-42)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갔습니다.(41)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를 쓰고 힘을 썼습니다. 자기 자신들만 그런 경건의 훈련을 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도 경건한 삶을 살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을 했습니다.(42)


적용 1) 여러분 순종이 뭐 어느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구요, 경건한 삶을 살아야 순종하


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묵상하고 배우고,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아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고집을 다 꺾어버려야 순종할 수 잇는데,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내 생각과 내 뜻을 꺾어 나가야, 날마다 날마다 꺾어 나가야 하나님께 순종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인간이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은 처음 사람 아담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이후로 인간이야말로 불순종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죄악된 존재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들의 피 속에는 반항과 반역과 배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서 바보같이 보이구요, 불순종하고 비판하고 혹은 반항하는 사람들이 영웅같이 보이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삶 아닙니까? 그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정욕과 인간의 미움과 시기와 분노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의지로 조절할 수가 없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서서 나의 연약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나의 죄인됨을 깨달아 알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나의 생각, 나의 탐욕, 내 뜻, 내 고집 이것들을 꺾고 순종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가진 계획, 내가 가진 뜻이 가장 최상의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순종이 안됩니다. 내가 가진 생각보다 하나님 가진 생각이 더 최상의 것이고, 하나님 가진 계획이 더 최고라는 것을 인정해야 순종이 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과 반항과 반역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서 최상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의 뜻이야 말로 나에게 있어서 최상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이 육신의 부모들이 순종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순종하는 부모님 밑에서 예수님이 순종하는 자녀로 훈련을 받게 된 것이지요. 옛말에 “효자의 집안에서 충신난다”고 합니다. 집안에서부터 순종을 잘 훈련 받는 자녀들이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순종의 본을 보이고, 순종을 가르치고 훈련하게 될 때에, 순종하는 자녀를 길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순종을 훈련해 나갈 때에 그 자녀들이 성장해서 그 사회속에서 훌륭한 시민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주면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3) 오늘날 부모님들이 가정에서 순종하는 훈련이 매우 약합니다. 가정 속에서 순종하는 것, 사회 속에서 공중도덕과 질서를 지키면서 순종하는 것, 이런 것들을 훈련하는 데에 굉장히 소홀히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말이지요. 자녀들이 떠들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데도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들이 많아요.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그 곳에서 들고 뛰고 남의 상에 와서 기웃거리고 그래도 부모님들이 그냥 놔둔단 말이지요. 지하철 같은 데에서도 떠들고 왔다갔다 하는데도 놔두고, 뭐 의자에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남의 바지에 다 발로 묻히고 그래도 그냥 놔둬요. 교회에서도 그런답니다. 안내하는 집사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회 와서도 아이들이 떠들고 그래도 그냥 놔둔다고 그래요. 안내집사님이 아이들 뛰어 다니고 떠들고 그러는 것을 잘 이해하고 부모에게 데려다주면 미안해 하지 않고 째려본답니다. 남의 아이를 왜 가지고 그러느냐는 건가 봅니다. 요즘에 뭐 아이들 기 살린다고 그래서, 전부 기만 살아서 전부 각자 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종하는 훈련이 굉장히 약한 것이지요. 가정 속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가정 속에 자녀들이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 버릇없이 논다든지 혹은 반항적인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단호하게 꾸짖고 벌을 주어서 순종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른들께 공경하고 존대말하고, 인사하고 순종하는 훈련을 잘 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3.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그 순종하고 경건한 부모님들께 순종하는 분이었습니다.(51) 51절 말씀을 보십시요.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하고 육신의 부모님들은 인간인데, 하나님의 아들하고 인간하고 그 위치에 있어서 얼마나 격차가 납니까? 이것은 뭐 따질만한 것도 못되지요. 하나님의 아들은 높고도 존귀한 분이고, 인간은 낮고 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육신의 부모님 밑에 스스로 들어가서 그 육신의 부모님께 순종을 했습니다. 육신의 부모님을 받들고 육신의 부모님께 순종하고, 육신의 부모님이 목수 일을 할 때에 그 목수의 일을 배우면서 목수의 아들로서 자라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육신의 부모님께 순종하고 받들어 섬긴 것이지요.


적용)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약한 부분이 순종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 평등 이런 것들에 가장 최고의 가치를 두다 보니까, 순종이 안되는 겁니다. 자기 주장, 자기 권리만 강하게 된 것이지요. 내 자신이 이해가 되고, 자신에게 필요하고 유익된 것이 아니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기 확신이 없으면 순종하지 않아요. 순종이 뭡니까? 순종이라는 것은 내 생각, 내 고집을 내세우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든지 부모님이든지 윗사람이든지 그 분들의 뜻에 내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혹은 내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님께서 혹은 윗사람이 더 크고 더 선한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더 선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신뢰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여러분, 내 때가 될 때까지 순종을 해야 합니다. 내 때가 되어야 다른 사람에게 순종을 요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자녀는 부모가 될 때까지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는 선생님이 될 때까지 선생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급자는 상급자가 될 때까지 상급자에게 순종을 해야 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을 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혹은 가정 속에서나 혹은 교회 속에서나 혹은 세상 속에서나 윗사람에게 순종을 할 줄 아는 것이지요.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순종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예수님께서 이렇게 순종하며 자라가게 될 때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을 받았습니다.(52) 52절 말씀을 보십시요.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 가시더라. 여러분 우리 쓰는 말에 “제 사랑 제가 받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다 자기 할 탓이지요. 자기가 잘하면 사랑을 받는 것이고 자기가 잘못하면 사랑도 못받는 것이지요. 순종하게 될 때에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린 예수님이 성장해 나갈 때에 순종하며 성장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해 나가실 때에 어느날 갑자기 그리스도로서 사역이 된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순종하면서 성장해 나가고 그 신앙과 인격이 성숙해 나갔고, 그래서 이제 성장이 됐을 때에 사역을 할 수 있을 만큼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지요. 순종을 해 나가면서 훈련받고 성장해 나가서,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으면서 사역을 해 나갈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우리 예수님은 어린 시절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했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했습니다. 순종하며 성장해 나가고 순종하며 그 신앙과 인격이 성숙해 나가고,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