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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때가 차매(갈 4:1-7) / 이종윤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8.

때가 차매

갈라디아서 4:1-7

 

 

 

오늘 말씀을 보면 '때가 차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때를 정하시고 그 때를 이루시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하나님은 갑자기 일을 일으키지 아니하시고 자기 시간표를 갖고 일하십니다. 물론 갑자기 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계획 속에서 하십니다. 자기 시간표를 갖고 정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점진적 계시(Progressive Revelation) 방법을 사용하여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 급하게, 또는 너무 늦게 행하시거나 오시지 않고 자기의 완전한 시간표를 따라 모든 일을 정확하게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3가지 길로 계획을 행하십니다.

 

 

 

I. 세속사(史)

 

하나님은 세상사를 통해 역사를 이루십니다. 세속사를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해적들이 들끓었고 지상엔 적대하는 당파들이 있었습니다.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눅2:1)가 승자가 되기까지 시민전쟁은 쥴리어스 시이저의 살해로 절정에 이르렀고 지중해 연안의 세계는 무질서로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오시기 얼마 전에 아우구스투스가 평화를 이루었

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일지 아는 이는 없지만,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아니하시고, 오늘도 때가 차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할 것입니다. 처음 오신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은 왕으로서 다스리고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때가 찼을 때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어엿하게 설 수 있도록 주님의 의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의를 갖고 주님 앞에 설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의로, 믿음으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어엿하게 설 수 있는 우리 모두

 

 

 

II. 구속사(史)

 

세속사에 이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실체입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제사 제도는 신약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실체가 나타나실 때가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율법과 자유의 문제가 그리스도를 통해 확인됩니다. 율법을 완성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아래 있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자유롭게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숙한 성도로서 책임을 갖고 하나님을 섬겨합니다.

 

 

 

III. 지금은 우리가 믿을 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속사와 구속사가 완성되어도 그것을 믿지 않으면 지금의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씨를 많이 뿌리고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할 때인 것입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고 가꾸면 하나님께서 추수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이 성장할 때이며, 마지막에 주님이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불교와 유교로 영적 공황상태에 있던 우리나라의 세속사에 서양에서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파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복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받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때가 찼기 때문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때가 차면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일지 아는 이는 없지만,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아니하시고, 오늘도 때가 차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할 것입니다. 처음 오신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은 왕으로서 다스리고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때가 찼을 때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어엿하게 설 수 있도록 주님의 의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의를 갖고 주님 앞에 설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의로, 믿음으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어엿하게 설 수 있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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