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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열매는 자식 (시 127:1-5)

by 【고동엽】 2021.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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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열매는 자식 (시 127:1-5)

- 설교 : 황금성 목사 (멋진교회)

어제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오늘은 교회에서 어버이주일로 지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날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호주의 Mother's Day 어머니날은 아주 조용하게 시작됩니다. 엄마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가족 모두가 까치발로 걸어 다니기 때문입니다. 엄마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은 일단 부엌으로 모입니다. 엄마가 평소에 가장 즐겨먹는 메뉴를 정해서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서입니다. 요리가 마무리되면 뒤뜰에서 꺾어온 수선화나 튤립 한 송이로 아침상을 장식합니다. 그리고 축하 카드와 선물을 준비합니다.
엄마는 침대에서 상체만 세운 채 아침상을 받습니다. 엄마가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자녀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합니다. 남편은 옆에서 신문 기사를 읽어 주며 아내의 식사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해줍니다.

어머니날의 하이라이트는 그 다음입니다. 우선 아이들은 침실 벽에 빨간색 크레용으로 'I Love You, Mom'이라고 써 붙여놓습니다. 그 동안 엄마는 아침상을 물리고 선물 꾸러미를 뜯어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가족들과 행복한 포옹을 합니다. 이 정도면 여왕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호주에서는 어머니날 아침 스토리가 풍습처럼 지켜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아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은 어제 어떤 효도 스토리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가정을 건축하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1 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세운다’는 말은 영어로 ‘Build'(건축한다)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의 갈비뼈를 취해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가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이디어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설계자이십니다. 오늘날의 건축에서 설계자와 건축가가 구별되어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설계자가 직접 건축하는 감독자였다고 합니다. 설계자는 건축가가 설계도면대로 지었는지 감독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을 감리라고 합니다. 감리자의 OK 사인이 떨어져야 준공 허락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설계자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설계한 의도대로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문제는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가족들이 하나님을 내 가정의 건축자로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건축가이시라면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면서 말씀대로 살기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 가정의 건축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 가정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건축을 합니다. 그러나 그 수고는 헛된 수고가 되고 맙니다.

땀 흘려 일하지만 그 수고의 대가를 얻지 못합니다. 소득이 있어도 이내 구멍이 뚫려 사라지고 맙니다.
본문 1-2 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편 127:1-2>

직장은 일하는 곳이고 가정은 쉬는 곳입니다. 일의 보람과 휴식은 행복의 필수조건입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또는 학교에서 일의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 동시에 가정은 쉼의 처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집에 돈을 못 가져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더 많습니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 일 나가고, 저녁에 남보다 늦게까지 일하다가 들어와 늦게 누워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수고해도 허사입니다. 집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 가정은 하나님을 건축가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절에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했습니다. 이 개역성경 본문은 번역에 오류가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이 부분을 다르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야훼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잘 때에도 배불리신다.”

잘 때는 쉴 때입니다. 자면서 수고의 떡을 먹지 않습니다. 수고의 떡은 아침에 일어나 일 나가기 전에 먹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 잘 때에도 배불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먹고 쉬는 곳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 없이 돈 벌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모셔야 돈을 벌어도 벌립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돈을 쓰겠다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본문 3 절을 읽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하나님은 가정이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CEO 이십니다. CEO (Chief Executive Officer) 는 최고 경영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에서 경영하시는 대상은 자식입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부모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부모는 하나님이 CEO로 계시는 기업의 직원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일거리를 맡기십니다. 바로 자식을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상급이라고 했습니다. 자식을 잘 키우면 하나님께 상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며칠 전 뉴스에 친자녀 3 명을 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비정한 부모는 부부싸움을 하고는 4 살, 3 살, 1 살짜리 자녀를 셋방에 둔 채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아이들은 며칠 동안 굶으면서 방 안에 갇혀 지냈습니다. 이웃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아이들은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막내는 침대와 벽 사이에 머리가 끼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또 지난 4 일에는 20 살의 엄마가 아이 때문에 구속 받는 것이 싫다고 서초구의 한 백화점에 15 개월짜리 아들을 버렸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아이가 보채고 운다고 방바닥에 던진 엄마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뇌진탕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빚에 쪼들리고 생활고에 시달린 부모가 자녀들을 버리거나, 동반 자살하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부모는 하나님께 어떤 상을 받겠습니까? 하나님께 상을 받기는커녕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절에서 자녀를 태의 열매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머니는 10 달 동안 뱃속에서 키워 자녀를 낳습니다. 태중에 있는 아기는 부모와 한 몸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보호합니다. 그래서 낳은 자식은 언제나 소중합니다.

낳고 보니 아이는 부모를 쏙 빼닮아 있습니다. 아빠 모습과 엄마 모습을 다 닮고 있습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성격까지도 닮습니다. 걸음걸이까지 똑같이 닮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판박이입니다. 그것이 다 하나님의 설계 때문입니다.

자녀는 커가면서 부모를 흉내 냅니다. 똑같이 따라하면서 배웁니다. 부모는 본을 보이면서 자기의 분신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오히려 부모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잘못 키웠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부모 맘대로 되질 않습니다.

자식을 키울 때 욕심을 부리면 실패합니다. 부모의 기분대로 키워도 실패합니다. 애들 기죽이지 않겠다면서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키우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여러분 인생을 성공하고 싶습니까? 인생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바로 자식입니다. 열매는 자기의 분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열매는 자기와 똑같은 분신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열매는 자식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자식을 낳아 잘 키워야 합니다.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은 부모가 좋은 본을 보이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열매는 철저하게 어미를 닮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고 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언제나 자녀에게 좋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식은 하나님 맡겨주신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신 가정은 예수를 믿는 부모는 반드시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복 받고 사는 모습을 자녀에게 증거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설계사이시고 건축가이시고 CEO 되심을 나타내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녀를 잘 키울 수 있겠습니까?

자식을 키우다보면 부모는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됩니다. 어릴 때는 말을 잘 듣는데 자기 생각이 커가면서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는 윽박지르기도 하고 쥐어박기도 합니다. 애들은 가출하고 싶어질 때가 많지만, 아직 경제적인 자립이 어려우니까 참습니다. 가출하지 않는다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참고 지내던 아이가 크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습니다. 자식의 효도를 받지 못하는 부모는 성문 앞에서 원수를 만났을 때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말로 잔소리로 기도하라고 한다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가르침에 힘이 생깁니다. 교회 빠지지 말라고 가르치려면 부모가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 빠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부모가 책을 읽어야 합니다.
부모가 길에 있는 쓰레기를 주워야 아이들이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부모님이 도덕생활이 몇 점짜리인지 다 압니다.

아이 손잡고 위험하게 무단 횡단하는 엄마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너 혼자서 이렇게 무단 횡단하거라” 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행복출발’이란 재혼전문 정보회사가 있습니다. 대표 최원일 씨는 98 년도에 이혼이 급증하는 것을 보고 제혼 시장을 겨냥한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이혼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들 대부분이 불행하게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이혼을 결행했지만 실제로는 더 불행한 삶을 선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재혼보다는 우선 이혼을 막아야겠다는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혼은 자녀에게 최악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신앙의 본을 보이며 살아야 합니다. 본을 보이며 사는 것은 내 인생을 다스려줍니다.

시부모를 모시면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시부모님은 며느리 때문에 더워도 옷을 벗지 못합니다. 서로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따로 사는 것보다 함께 사는 것이 좋습니다. 서로 인생을 정하게 다듬어주기 때문입니다.

미국 장로교 목사인 크리스 어드만은 「혼돈을 넘어서」란 책을 냈습니다. 그는 가정 안에서 부모가 본이 되어야 할 훈련 영역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가정예배. 빚지지 않고 예산을 균형 있게 쓰는 일. 필요를 가진 이웃들을 돌아보는 일. 집안 치우는 일. 설거지 하는 일. 자기 집 뿐만 아니라 이웃의 집 앞까지 쌓인 눈을 치우는 일. 거절하는 법을 배우는 일. 시간을 규모 있게 사용하는 일. 때로 가족의 식사를 축제 같이 만들어 보는 일. 삶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 등등.

그래서 4 절 말씀에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다고” 했습니다. ‘젊은 자의 자식’이란 ‘젊어서 낳은 자식’이란 뜻입니다. 전쟁에 나선 용사가 손에 화살을 가지고 있으면 든든합니다. 이렇게 젊어서 낳은 자식은 나중에 부모에게 힘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5 절에 보면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자식을 잘 키우면 나중에 부모의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식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했습니다. 전통이란 화살을 넣어두는 통을 말합니다. 용사에게 화살은 많을수록 유리합니다. 하나님은 잘 키운 자식은 많을수록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는 나이를 먹고 점점 늙어갑니다. 그러나 자식이 있기에 든든합니다.

존 하워드페인(John Howard Payne 1791-1852)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 뉴욕에 있다가 영국과 유럽에서 20 년을 넘게 활동했습니다. 평생 가정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독신으로 살다가 아프리카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자 미국 정부는 그의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그의 유해가 도착하자 뉴욕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체스터 아더와 국무위원들이 모두 나와 워싱톤까지 퍼레이드를 했습니다. 그리고 워싱톤 오크 힐 묘지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슨 일을 했길래 죽은 후에 이런 영접을 받았을까요? 그의 공헌은 오직 하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 노래 제목은 스위트 홈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리”

이 가사를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상의 쾌락과 궁전 가운데로 / 내가 돌아다닐지라도 / 나를 언제나 겸손케 하는 것은 / 내 집 같은 곳이 / 다시없음이로다. / 하늘로부터 아름다움이 / 거기서 우리를 신성하게 하고 / 온 세계를 온통 / 다 찾아보아도 / 이런 아름다움을 / 다른 데서는 찾을 수 없다.

  가정, 가정, 감미로운 / 나의 가정 / 내 집 같은 곳은 다시 없도다. / 가정을 떠나서는 / 모든 찬란함도 / 나를 현혹시키지 못한다. / 오, 나에게 / 그 이엉을 이은 / 겸손한 오두막집을 / 다시 다오. / 거기서 새들은 / 나의 부름을 따라 / 모여와서 유쾌하게 노래한다. / 그들을 나에게 다오. /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 마음의 평화를!

  가정, 가정, 감미로운 / 나의 가정 / 내 집 같은 곳은 다시 없도다. / 내가 쓸쓸한 / 평야를 거닐면서 / 달을 쳐다보았을 때 / 나의 어머니가 / 당신의 자녀를 생각하고 있음을 / 나는 느꼈다 / 내 어머니가 우리 집의 / 사립문을 통해서 / 저 달을 쳐다보았을 때 / 그 인동덩굴 얽힌 사이로 / 저 달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 그러나 그 덤불의 향기는 / 이제는 나를 / 즐겁게 하지 못한다.

  가정, 가정 감미로운 / 나의 가정 / 내 집 같은 곳은 다시 없도다. / 정다운 아버지의 / 미소짓는 무릎 아래 / 앉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 그리고 나를 위로하고 달래시는 / 어머니의 애무도 / 얼마나 다정한가! / 다른 사람들은 / 새로운 쾌락을 찾아 / 배회할지라도 / 나에게는, 나에게는 / 다만 가정의 즐거움만을 다오.
  가정, 가정, 감미로운 / 나의 가정 / 내 집 같은 곳은 다시 없도다. / 많은 근심의 짐을 지고 / 나는 돌아오리다 / 마음의 가장 사랑스런 / 위로가 / 거기서 나를 향해 / 미소하리라. / 다시는 / 그 오두막집을 떠나지 않으리. / 그처럼 겸손한 / 내 집 같은 곳은 다시 없도다. / 가정, 가정, 감미로운 / 나의 가정 / 내 집 같은 곳은 다시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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