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마음에 찬송이 있으면(시 47:1-9)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0.

마음에 찬송이 있으면
시편 47:1~9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시편 47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국민적인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전국민이 함께 부르는 하나님께 대한 찬송이요 그 영광의 노래입니다.


한 나라의 국가(國歌)는 그 나라 국민의 정신 상태의 발로요 공통된 감정의 표현이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편은 특별히 이스라엘의 국민적인 찬양인 동시에 특별한 민족적인 의식에 쓰여진 시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노래 속에서 유대 민족의 정신적인 바탕과 민족의 신앙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격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시인은 하나님이야말로 모든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광스러운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서 가슴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복된 일에 참여케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시편 47편 1절을 보세요.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5장 19절에 보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찬미하는 것은 거룩한 의무 중에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입술로 노래하고, 마음으로 노래하고, 손바닥을 치며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 주신 말씀 중에 '손바닥을 치며'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을 오해해서 어떤 분들은 찬송을 할 때마다 손바닥을 치며 해야 되는 줄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 말은 박자를 맞추기 위해서 손바닥을 치거나 마음을 흥분시키기 위해서 손뼉을 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넘칠 때, 감격스러울 때 자연히 손바닥을 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신 말씀 중에 "손바닥을 치며"라고 하신 말씀은 그런 자연스러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억지로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형식으로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것이 좋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시편 103편을 쓴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이 말은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찬송의 올바른 정신입니다. 그리고 찬송하는 사람의 바른 자세입니다. 옛날 성도들은 입술로만 찬송을 부른 것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사실 우리 입술로 부르는 찬송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마음속의 찬송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시간에 성가대가 찬양을 합니다. 이 찬양은 성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는 합창단의 노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찬양대석에 나오기 전에 우리의 찬양이 입술만의 찬양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이 되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듣는 성도들이나 부르는 성가대에게는 은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올라옵니다. 이것이 꼭 필요합니다.


물론 찬양할 때 정확한 음정과 박자, 아름다운 음색과 감정의 표현이 필요합니다. 기술적인 발성과 호흡의 조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찬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얼마나 감격과 감사가 포함되어 은혜 받은 마음을 표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그 찬양이 화음을 이룬 노래로서 우리의 귀는 즐겁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일반 합창단과 성가대의 차이점이 바로 거기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노래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 세상의 가곡이나 가요와 찬송가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찬송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찬송은 곡조가 붙은 기도라고 하는 의미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는 입술로는 찬송을 잘하기가 힘든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 마음으로는 누구든지 찬송을 부를 수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색은 언제나 그 마음속에 찬송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찬송해야 합니까?


오늘 주신 말씀 2절에 보면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온 땅에 큰 임금이 되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 만민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며, 신앙의 대상이시며, 온 우주의 주재가 되시며, 온 세계 인류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이 엄위하신 하나님, 크신 왕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어떻게 찬양하라고요? '손바닥을 치며'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쁨을 못이긴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쁨은 찬송의 생명입니다. 기쁨이 없는 찬송은 사실 찬송이 아닙니다. 허식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기쁨입니까? 세상적인 기쁨입니까? 아들이 고시에 합격해서 기뻐하는 것입니까? 작품이 히트해서 기뻐하는 것입니까? 좋은 결혼 상대자가 나타나서 기뻐하는 것입니까? 기다리던 아이를 낳게 되어서 기뻐하는 것입니까? 선거에 당선되어 기뻐합니까?


우리의 기쁨은 차원이 다른 기쁨입니다. 죄를 범해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사함을 얻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후사가 되었으니 이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의 감격이 여기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세요.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유를 의미합니다. 성도들의 기업은 우리 생각대로 택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후사가 되어 기업을 얻게 된 것은 우리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감사, 감격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칼빈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했다고 생각하면 나는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언제 어떻게 변할는지 나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고 믿으면 내 마음이 든든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해주시는 것이 우리의 큰 축복이 됩니다.


여기 '야곱의 영화'라는 말은 가나안 복지를 가리킨 것입니다. 이것은 저희의 놀라운 신앙의 표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신예 무기가 많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경제가 넉넉한 나라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믿음의 백성이어야만 세계를 지배하고, 이 땅에서 으뜸이 되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기뻐하라 내 영혼아 기뻐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기뻐하라


감사하라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감사하라."


그러면 우리의 찬양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7절 말씀에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려지는 노래입니다.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는 것"이 곧 복음의 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참된 기쁨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시편 19편 8절에 보면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며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했습니다.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꿀송이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기뻐하며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8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보좌에 등극하실 뿐만 아니라, 친히 온 세상을 굽어살피시고, 아무리 작은 구석이라도 빼놓지 않고 치리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하는 정치는 아무리 성현군자라고 해도 굽은 구석이 있으나 하나님의 다스림에는 추호의 불의나 결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통치의 범위를 보세요. 저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방 신을 섬기는 열방까지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자유 우방만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공산 세계도 치리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9절 말씀에서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 저는 지존하시도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공정하신 치리하심으로 인하여 천하는 태평하고, 모든 백성들의 마음은 모두 이 한곳에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겸손하게 나아와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그의 참되신 지도와 의롭고 공평하신 시정 방침을 듣고 감격해 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백성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모여들고, 의와 진리의 왕국의 시민이 되는 즐거움에 감격해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의와 진리의 왕국이 되면 모든 시민 하나 하나가 그 나라의 국위를 선양하고 그 나라의 방위를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 덴마크의 왕 구스탑 2세가 혼자 길을 가다가 외국 사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외국 사신이 왕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대왕께선 한 사람의 호위병도 없이 이처럼 혼자 다니셔도 위험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때 구스탑 2세는 외국 사신에게 "아니오, 위험이라니요. 6백만 우리 국민의 눈이 나를 호위하고 있는데 몇 사람의 호위병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성직자가 호위병을 데리고 다니는 이 시대에 너무 대조가 되는 말이 아닙니까?


온 국민을 자기의 호위병으로 삼은 국왕, 얼마나 행복한 왕입니까?


의롭고 선한 지도자, 공정한 사랑의 군왕에게는 어디에 가나 백성 모두가 경호원이요 보호자인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위엄과 그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백성이 다 방패가 되어준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찬송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마음에 찬송이 있으면 우선 우리 몸의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잠언 17장 23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실 우리 마음속에 노래가 있으면 혈액순환도 잘 되고, 소화도 잘되고, 신경의 긴장이 풀어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엔돌핀이 나와서 건강에 좋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도 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 몸의 질병의 70% 가량이 심리적인 원인 때문에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속에 노래가 있으면 그 만큼 몸에 병드는 확률이 줄어든다는 결론입니다.


어느 미국 잡지를 읽는데, 어느 학자의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건강 상태와 평균 수명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평균 수명보다 더 길고, 건강 상태는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양호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가 하고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집에서나 교회에 와서나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지나치게 많이 불러서 목이 잠기고 병이 생길 정도로 부르라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스트레스 해소한다고 노래방에 가서 맥주 마시며 가요 부르지 마시고 교회에 와서 찬송 열심히 부르세요.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처럼 마음에 기쁨이 있고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공부를 잘하게 될 것입니다. 교사의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학생을 잘 가르칠 것입니다. 사무직원의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사무를 잘 볼 것입니다. 생산직원의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좋은 물건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농부의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농사일이 잘될 것입니다. 군인의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국토방위를 잘할 것입니다. 공무원의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국민들을 친절하게 대할 것입니다. 운전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교통사고가 적어질 것입니다. 주부의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밥을 지으면 물 맞춰 짓게 되고, 찬을 만들면 맛이 있을 것입니다. 가족의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가정이 화평하고 화기애애할 것입니다.


사실 마음속에 찬송이 있는 사람이 장사를 하면 장사가 잘되고 손님에게 기쁨을 줄 것입니다.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그 얼굴에도 반영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모든 유혹과 시험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생각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찬송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한 원한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속에 찬송이 있을 때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헬라의 신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헬라는 섬이 많은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 남해안과 같습니다. 이 여러 섬들 가운데 한 섬에는 싸이렌이라고 하는 여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선부들이 배를 타고 그 섬 옆을 지나가노라면 그 여자들이 바닷가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데, 선부들이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섬에 들러 노래를 듣고 춤추는 것을 보다가 가졌던 돈은 다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거지가 되어 나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선부들은 언제나 그 섬 옆을 지나가게 되면 너무 무서워서 절대로 그 섬에 내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밧줄로 몸을 배에다 매고 그 섬 옆을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나가도 정작 그 바닷가에서 이 여자들이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는 광경을 보고 듣게 되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매었던 밧줄을 다 풀고 또 내려서 몽땅 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은 당시 헬라의 유명한 음악가 올훼오스라는 사람이 배에 같이 타고 그 섬 옆을 지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올훼오스라는 음악가가 거문고를 한 손에 들고 타면서 노래를 부르니까, 배에 타고 있던 선부들이 모두 그 노래에 도취되어서, 그 유혹의 섬 옆을 지나면서도 이 여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들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유혹의 섬을 무사히 지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세상의 음란한 노래가 아무리 크게 들려와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유행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까? 그 마음속에 찬송이 없어서 그럽니다.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빠'나 '클럽'을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마음속에 찬송이 있는 사람은 담대합니다.


이사야 12장 2절에 보면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불안이 없어집니다. 근심과 걱정도 사라집니다. 오직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찬송이 있는 사람은 용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이기고, 달려갈 길을 잘 달리고, 믿음을 끝까지 지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게 됩니다.


마음에 찬송이 있으면 어디서 무슨 책임을 맡든지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합니다. 말하자면 마음에 찬송이 있으면 장미꽃이나 백합꽃 같아서 어디서나 그 향기를 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매력에 끌려서 주님께로 나아오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말할 수 없는 핍박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들에서 찬송을 부르며 밭을 갈았습니다. 바다에서 노를 저으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했겠습니까?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마음에 찬송이 있으면 이적이 일어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체험한 사건을 기억하시지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 낸 것 때문에 시 당국에 고발되어 수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의 마음속에는 찬송이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만 찬송을 부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다 들을 수 있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리고 고랑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옥을 지키던 간수가 회개하고 예수 믿고, 그 날밤 그의 가족까지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찬송이 있어서 우리 삶에 기적이 일어나는 감격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