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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밭을 갈라(호 10:9-15)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0.

마음의 밭을 갈라

호세아 10:9-15

 

 

 

한번은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향해서 여러 가지 진리를 가르치시면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러 들에 나갔습니다. 더러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얼마 안되어 새가 와서 그 씨를 주워 먹었습니다. 더러는 돌작밭에 떨어졌습니다. 곧 싹이 나서 자라기는 했는데 뿌리가 깊지 못하기 때문에 햇빛이 쬐니까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습니다. 싹이 나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만 가시덤불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숨이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옥토에 떨어졌습니다.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잘 자랐습니다.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사람의 마음을 비유해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말하자면 밭과 같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유대 땅에 가보면 밭이랑이 좁고 길며, 밭과 밭 사이에는 작은 길이 있습니다. 길에 서서 씨를 뿌리기도 하는데 씨가 길에 떨어져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씨 뿌리는 법이 있는데, 나귀 뒤에다 씨자루를 싣고 자루 모퉁이를 잘라 구멍을 내고 나귀를 끌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씨를 뿌립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길가에도 씨가 뿌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씨가 길가에 뿌려지면 얼른 새들이 날아와서 주워 먹어버리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마음은 기독교의 진리가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적대시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기독교는 우리 인간 생활에 적응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기독교 없이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독교를 귀찮게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의 사는 것이 언제나 평탄하기만 하다면, 어려움이 없고 눈물이 없다면 몰라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래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힘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리고 흙이 얇은 돌작밭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이 밭은 모두가 돌은 아닙니다. 흙이 얇은 밭에 돌이 깔려 있습니다. 갈릴리지방의 땅이 그렇습니다. 여기 저기 밭 가운데 바위가 나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씨가 떨어지면 싹이 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땅이 너무 얇기 때문에 뿌리가 내리지 못해서 양분을 땅에서 흡수하지 못하므로 결국 해가 나면 얼마 안가 말라죽고 맙니다.

 

무슨 일이나 시작하는 것이 끝내는 것보다 쉽습니다.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대개가 도중에 포기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도중에 실패할 때 그것이 뜻하는바가 무엇이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를 생각지 못했을 때 당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생활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서 너무 쉽게만 생각하다가 당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가시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팔레스틴의 농부들은 퍽 게을러서 가시넝쿨을 윗부분만 잘라 불살라 버립니다. 얼른 겉으로 보면 퍽 깨끗해 보이지만 땅 속에는 아직도 가시넝쿨의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가시넝쿨이 다시 무성해집니다. 그런데 가시넝쿨은 곡식보다 더 빨리 자라기 때문에 씨의 생명을 막아버리고 맙니다. 성경에 보면 세상의 염려와 근심, 걱정의 넝쿨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옥토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부드럽고, 돌도 없고, 가시덤불도 없어서 씨가 떨어지면 움이 나고 싹이 자라 열매를 맺게 하는 땅입니다. 그런데 갈릴리와 같이 아주 메마른 땅에서 이런 결실을 얻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언제나 삶을 통해 나타나야만 합니다. 기독교는 사색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길가와 같이 딱딱한 마음, 많은 사람이 내왕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돌작밭과 같이 겉은 부드러운 흙이 있지마는 속에는 돌이 많은 옅은 마음이 있습니다. 가시덤불이 덮인 흙과 같이 여러 가지 세상의 염려와 자기의 욕심으로 싸인 험한 마음이 또한 있습니다. 그리고 옥토와 같이 부드러운, 돌도 없고 가시넝쿨도 없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을 보니까 이 네 가지 마음 이외에 다른 한 가지 종류의 마음 밭이 있습니다. 그것은 묵은 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호세아 10장 12절 말씀을 보세요.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했습니다. 예레미야 4장 3절에 보면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했습니다.

 

여러분, 묵은 땅은 어떠한 땅입니까?

 

요사이 도시 변두리에 나가 보면 밭은 밭인데 오랫동안 농사를 하지 않고 버려 둔 땅이 있습니다. 본래는 부드럽고 좋은 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돌보지 않고 그냥 버려 두어서 땅은 굳어지고 잡초가 무성한 묵은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땅에 그냥 씨를 뿌려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너희 묵은 땅을 갈라"고 하나남이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나가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네 가지 종류의 마음 밭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안에 들어오면 이 네 가지 밭 이외에 묵은 땅과 같은 마음 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묵은 땅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이 묵은 땅은 본래부터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본래는 부드럽고 기름진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쟁기도 대지 않고 그냥 버려 두니까 이렇게 땅이 굳어지고 잡초가 우거지게 되었습니다. 묵은 땅에 비가 내리고 햇빛이 쪼이면 세월이 갈수록 땅은 더 굳어만 갑니다. 이 묵은 땅에는 본래 아름다운 곡식이 자라 많은 열매가 맺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묵은 땅에는 곡식은 별로 보이지 아니하고 여러 가지 보기 싫은 잡초만 우거져 있습니다. 하도 오랜 세월 묵은 땅으로 내버려 두어 돌보지 않으니까 이제는 가시 같은 것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곡식으로 덮인 옥토야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묵은 땅, 잡초로 우거진 땅은 보기도 싫습니다.

 

물론 묵은 땅에 열매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혹시 곡식 씨앗을 뿌려서 싹이 난다고 해도 무성한 잡초 때문에 숨이 막혀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묵은 땅은 버려진 쓸모 없는 땅입니다.

 

묵은 땅도 하나님이 주시는 햇빛을 매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밤마다 주시는 이슬도 받고 있습니다. 때로는 흠뻑 땅을 적셔 주는 비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묵은 땅은 받기만 하지 거기에 대한 아무런 보답이 없습니다. 햇빛도 그저 받습니다. 이슬도 그저 받습니다. 비도 그저 받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쓸모 없는 땅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쓸모 없는 것만 아니고 장해가 되는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묵은 땅 옆에 밭이 있으면 묵은 땅에 자라는 잡초의 씨가 날아와서 좋은 옥토에 떨어져 옥토에도 잡초가 자라게 만듭니다. 묵은 땅은 쓸모 없을 뿐더러 많은 곡식을 내는 좋은 밭에 지장을 주고, 더럽히고, 방해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묵은 땅은 마귀를 위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옥토 같은 마음에 맺는 열매는 성령의 열매라고 하면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묵은 땅이 되면 육체를 따라 살기 때문에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묵은 땅은 본래는 옥토였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하는 동안에 그 마음이 황무해지고 굳어졌습니다.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습관이 뿌리가 점점 깊어져서 이제는 어떻게 하기 어려워졌고, 완고해지고 고집만 세졌습니다. 여러 가지 잡초, 그러니까 세상의 생각과 사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교만한 마음, 비열한 생각으로 마음의 밭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묵은 땅과 같은 마음은 하나님의 햇빛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슬도, 단비도 쓸데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아무런 느낌도, 감동도 없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마음속이나 그 생활에 아름다운 결실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습니다.

 

열매가 없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묶은 땅처럼 된 마음이 오래 되면, 좋지 못한 지식, 좋지 못한 씨를 옆에 있는 옥토와 같은 마음에 퍼지게 해서 좋은 곡식을 맺는 옥토까지 더럽혀서 쓸데없고 방해가 되는 묵은 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묵은 땅과 같은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는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라" 했습니다. 먼저 묵은 "땅을 갈라"고 하십니다. 무슨 씨를 뿌리기 전에 묵은 땅을 예리한 부삽으로 깊이 갈아엎어야 합니다. 잡초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가시덤불도 뿌리까지 뽑아 불태워버려야 합니다. 얕게 갈면 안됩니다. 깊이 갈아서 속에 있는 뿌리까지 뽑아서 얼른 불살라 버리고, 혹은 땅에 깊이 파묻어 썩혀 버려야 합니다.

 

밭을 가는 것을 농경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밭을 가는 것을 심경(心耕)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마음의 밭을 부지런히 가는 인생의 신실한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밭을 가는 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 국민의 마음 밭은 어떻습니까? 묵은 땅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몹시도 거칠고 메마르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고 거칠어졌습니다. 잡초 투성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독버섯과 벌레가 수두룩한 황폐한 마음 밭이 되었습니다.

 

도시의 하늘도 오염으로 더러워졌습니다. 연기와 해독가스로 하늘의 맑은 공기가 혼탁해졌습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독가스와 하수도의 구정물 때문에 맑은 강물이 흐려졌습니다. 대기와 강물의 오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마음의 오염이요, 정신의 부패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더러워졌고, 양심이 오염이 되었고, 정신이 혼탁해졌고, 심령이 흐려졌습니다. 이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염된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 부패한 양심을 아름답게 정화해야 합니다. 썩은 정신을 깨끗이 순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아름다운 꽃을 심어야 합니다. 싱싱한 풀을 가꾸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의 화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형형색색의 화초가 우거지고 깨끗한 향기가 풍기는 마음의 화단을 저마다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밭을 갈고 아름다운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의 밭을 어떻게 가꿀까요?

 

거짓의 독버섯을 뽑아 버리고 진실의 씨앗을 뿌립시다. 우리 마음의 밭도 그냥 내 버려 두면 거짓과 허위의 독버섯이 우리의 생명의 근본을 좀 먹습니다. 거짓과 허위의 독버섯이 무성한 밭을 상상해 보세요. 그것처럼 무섭고 그것처럼 추악한 것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진리의 씨앗이 싱싱하게 자리는 푸른 마음의 밭을 생각해 보세요. 그처럼 아름답고 그처럼 믿음직스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탐욕의 잡초를 뽑아 버리고 사랑의 화초를 심어야 합니다.

 

이기심과 배타심, 허영의 악취가 가득한 탐욕의 잡초를 우리 마음 밭에서 먼저 뽑아야 합니다. 협동과 친절, 화목의 맑은 향기가 풍기는 사랑의 화초로 가득 찬 마음의 화단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인생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사랑의 화단을 가꾸는 인생의 성실한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만의 해충을 다 없애버리고 상록수를 심어야 합니다. 그 넓은 그늘은 우리의 휴식처가 되고, 그 무성한 가지는 시원한 바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합니다. 우리의 마음 밭에 겸손의 나무를 심읍시다. 교만은 불쾌를 낳고 겸손은 화목을 낳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거칠고 황폐해졌습니다. 메마르고 가는 곳마다 악취가 심합니다. 마음의 밭을 버려두면 묵은 땅이 되고, 잡초가 우거지고, 색은 자꾸만 더러워집니다.

 

우리는 쉬지 말고 마음의 밭을 항상 푸르고 아름답게 갈아야 합니다.

 

저는 농민화가 밀레의 '씨뿌리는 사람', 고갱의 '씨뿌리는 농부'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한 젊은이가 넓은 밭에서 열심히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의 몸에는 생기가 충만하고, 그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하고, 그의 팔과 다리에는 씩씩한 기운이 넘쳐흐릅니다. 단순하면서도 힘찬 그림입니다. 소박하면서도 뜻이 깊은 그림입니다. 우리는 생각이라는 씨, 말이라는 씨, 행동이라는 씨를 뿌리면서 살아갑니다.

 

파종에는 시기가 있습니다. 씨앗은 봄에 뿌려야 합니다. 추운 겨울 얼어붙은 땅에 아무리 씨앗을 뿌려도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딱딱한 콘크리트나 바위에 씨를 뿌리면 돋아나지 않습니다. 씨앗은 봄에 뿌려야 합니다. 봄에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을에는 수확을 거두어들입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인생의 밭을 갈고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사람은 저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가 없습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우리는 심지 않고 거두려는 어리석은 농부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둡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잊지 알아야 합니다. 거두는 시기는 종자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봄에 심어 여름에 거두는 경우도 있고, 가을에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의 농사는 일년 후에 거두는 경우도 있고, 10년 후에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젊어서 뿌린 씨앗을 늙어서 거둡니다. 당대에 거두지 못하고 그 다음 대에 가서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뿌린 씨를 자식이 거두고, 자식이 뿌린 씨를 손자가 거둡니다. 이 세상에서 뿌린 씨를 저 세상에서 거둡니다.

 

오늘의 세대가 열심히 일하면 다음 세대가 번영의 결과를 거둡니다. 과거의 세대가 게으르고 방탕했으면 오늘의 세대가 불행과 파멸의 결과를 거둡니다. 현재는 과거의 아들이요 미래의 어머니입니다. 지난날의 나의 행동이 오늘의 나를 결정하고, 오늘의 나의 행동이 내일의 나를 지배합니다.

 

개인이건 가정이건 국가이건, 흥망성쇠는 우리가 어떤 씨앗을 뿌리느냐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너희 묵은 땅을 갈라."

 

묵은 땅을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갈아야 합니다. 아파도 오랫동안 사랑해 오던 죄악의 깊은 뿌리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묵은 땅을 갈기 전에는 씨를 뿌려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복음을 전할 때 제일 먼저 부르짖은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의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복음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을 볼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왜 전에는 열매를 맺었었는데 요사이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묵은 땅에는 아무리 씨를 뿌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묵은 땅이라도 갈아엎어 부드러운 땅이 되면, 잡초를 뿌리째 뽑아 버리면, 그 다음에는 옥토가 되어 씨를 받을 수 있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옛날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선지자 중에 요나를 기억하시지요? 요나는 본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마음이 옥토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자기 생각과 고집이 강퍅한 마음으로 굳어졌습니다. 묵은 땅처럼 되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명령도 어기고 반대 방향으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배 밑창에 내려가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이 큰 풍랑의 원인이 누구 때문인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걸려 바다에 던지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큰 고기 뱃속에 들어가 그의 굳은 마음이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고기 뱃속에서 묵은 땅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두 번째 기회를 주셔서 옥토에 씨를 뿌려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외치게 되었고 니느웨 온 국민이 회개하는 큰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묵은 땅이라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 열매 맺지 못했다고 실망할 것 없습니다. 이제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성령의 모습으로 내 마음 밭을 갈게 하면 다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임어당(林語堂)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은 중국에서 나서 오래 미국과 유럽에 여행하고 영어와 중국어로 많은 책을 쓴 분입니다. 그 분은 목사의 아들입니다. 샹하이에서 기독교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베이징에 가서 교수로 있을 때 점점 딴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철학을 기독교 철학보다 더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곁으로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이성대로, 자기 힘으로 살면 되는 것 아니냐?' 하고 생각하게 되고, 인본주의 사상이 점점 들어가 결국 유물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자기 부인을 따라 뉴욕에 있는 메디슨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다가 그 목사의 설교에 감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 번 가고, 또 가고, 여러 번 가는 중에 그 마음에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온전히 과거를 청산하고, 그 교회에 입교해서 교인 생활하다가 일년 후에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온 세계에 자기는 다시 기독교로 돌아왔다는 것을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밭이 묵어 있었고 잡초가 났었습니다. 그러나 그 묵은 땅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씨앗이 그 땅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임어당 박사는 온 기독교는 물론 온 인류에게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된 것입니다.

 

"너희 묵은 땅을 갈라." 묵은 땅은 갈아엎어 옥토가 되게 해야 합니다. 묵은 땅을 그냥 두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묵은 땅이라도 다시 갈면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농사해 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묵은 땅을 갈고 곡식을 심으면 특별히 농사가 잘됩니다. 묵은 땅이 다시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우리가 묵은 땅을 갈면 하나님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충만히 내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의 묵은 밭을 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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