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사랑의 공동체(행 4:32-37)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0.
사랑의 공동체
사도행전 4:32-37


논지: 성도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되고, 사랑을 실천하여 나눌 때,


사랑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어린아이들은 연약합니다. 그래서 병균이 잘 침투가 되고 질병에 잘 걸리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예방접종을 미리 하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전영병이 한 번 돌았다 그러면 아이들이 다들 그만 한꺼번에 병에 걸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도 아직 어릴 때에는 그렇게 연약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오늘 사도행전 4장입니다만, 사도행전 2장에서 형성된 교회가 이제 막 형성되어 어린아이 같은 교회인데 거기에 사탄이 역사해서 굉장히 큰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 초대교회신앙공동체(32a, 33)


1. 핍박(4:1~21)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전략을 다양합니다. 첫째는 핍박을 하는 것이구요, 위협과 협박과 폭력을 사용해서 핍박을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교회 내부에 분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구제하는 일 때문에 사도들을 불평하고 불만하고 원망하는 일들이 있어서 교회분열 위기에 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는 교회 안에서 부패와 세상과의 타협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사도행전 5장에는 아나니아와 삽비아가 거짓말하고 세상의 여러가지 죄악된 풍습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아직 어린 교회였지만, 이런 다양한 사탄의 공격을 아주 효과적으로 강력하게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오늘 4장 말씀에도 벌써 핍박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인 사도 요한과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3:6~8).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오게 되었고 그 사람들에게 설교해서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4:5). 이렇게 사도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사도들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유대종교의 지도자들이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4:18, 21)






2. 성령충만(4:23~31)


그런데 이런 핍박의 위기에 처한 어린 교회가 합심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4:24). 부르짖어서 간절히 기도할 때에 성령 강림의 역사가 또 일어나게 됐습니다.(4:31a)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으로 인해서 온 교회가 성령충만하게 됐는데, 4장 31절에서 또다시 한번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성렁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32절 상반절 말씀에는 뭐라고 말씀하냐면, 그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한마음과 한뜻이었다고 말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성돋르은 예수님께서 죽으시므로 나를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확신을 했습니다. 성령충만한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했습니다. 이런 강한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서 결속력이 강한 신앙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4:32a)


이렇게 강한 확신을 가진 결속력이 강한 신앙공동체가 되다보니까 어떤 핍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ㅇ낳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에, 또 내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어떤 협박을 하든지, 세상권력이 어떤 위협을 하든지 거기에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이 두렵지 않았고 죽음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앙공동체는 이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시시하게 보이는 교회가 권력이 강하게 핍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니까 세상사람들이 그 교회를 보고 두려워하며 존경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나. 사랑의 공동체(32b~35)


1. 이렇게 성령충만한 신앙공동체는 부활신앙을 담대하게 증거할 뿐만 아니라, 그 부활신앙, 천국영생 소망의 삶을 이 땅에서 실천헤서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천국 소망 가졌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증거했는데, 증거한 그 삶을 살았어요, 증거한대로 삶을 살았습니다. 이땅에서 천국의 삶을 그들은 살았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면서 교회 안에서 사랑이 풍성한 그런 천국 같은 삶을 실천을 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사랑이 충만한 공동체가 되니까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세상사람들이 존경하는 공동체가 된 것이지요. 초대교회는 나이는 어렸지만 그러나 이렇게 분명한 확신을 가진 공동체였기 때문에, 신앙공동체였기 때문에,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로서 핍박이나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오늘 32절 하반절 말씀에는 이렇게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삶을 살아갈 때에, 그들의 삶의 목표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목표였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소유를 가지게 됐을 때에, 그 소유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고 은혜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소유를 가지게 되고, 이 땅에서 소유를 축적하게 될 때에 그것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썼습니다. 근면하게 일하고 검소하게 절약하고 그래서 자꾸 모아진 소유가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이다라는 청지기 의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쌓아둘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쌓아둘 생각을 하게 되니까 32절 하반절 말씀같이 제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32b) 소유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고, 소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그것을 다 내려 놓았습니다. 소유에 대해서 자유한 사람이 됐던 것이지요.






3. 이렇게 소유에 대해서 자유하게 된가 그 신앙공동체 안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들, 그 형제들을 위해서 자기 소유를 내놓을 수가 있었습니다.(34:35) 자기 만을 위해서 그 소유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편리, 자기 편함, 혹은 자기 향락, 자기 사치, 그것을 위해서 소유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형제를 위해서 그것을 사용했습니다.


초대교회 신앙공동체 안에 핍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핍절한 사람이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 여러가지 부족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뭐 어느 사회나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입을 것이 없어서 핍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중에 낙심하고 좌절해서 정서적으로도 여러가지 면에서 다 핍절한 상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소외된 사람들이었고 외로운 사람들이었고, 절박한 형편 중에 낙심하고 좌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서로 한 형제로서 사랑의 공동체였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 안에 있는 그 핍절한 사람들의 형편을 이해하고 그들 위해서 배려하고 나누고 베푸는 일들을 했던 것입니다. (34a) 내가 가진 소유를 가지고 핍절한 형제를 도와줌으로 인해서 그 형제를 절박하고 어려운 상황가운데에서 벗어나게 만든 것입니다. 외롭고 소외된 상태 가운데에서 벗어나게 만든 것입니다. 진정 한공동체, 신앙공동체에 있게 만들었고, 그들이 우리가 어떤 사회적인 형편 가운데 있든지 소유가 많든지 적든지 우리가 다 한 신앙공동체 속에서 한 형제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되었고, 사랑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고, 초대교회는 이 땅에서 천국을 형성하는 그런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지난 월요일 화요일에 당회원수련회를 했습니다. 우리 당회가 가을에는 새해 여러가지 목회계획을 놓고 같이 토론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그런 수련회를 가지구요, 또 1월달에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같이 경건수련하는 그런 수련회를 가지게 됩니다. 이번에 당회원수련회는 금년에 우리교회 표어가 ‘사랑으로 한몸된 공동체’라는 표어를 가졌기 때문에 공동체 훈련에 힘을 썼습니다. 성경을 공부해도 같이 공동체로서 성경을 공부하구요, 기도를 해도 같이 공동체로서 기도하고, 여러가지 삶을 나누는 일들, 또 여러가지 일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도 그냥 내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 주구요, 또 쪽지를 추첨을 했어요. 그래서 쪽지를 추첨하면 내가 기도해야 될 분들 이름이 거기 씌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성찬식을 해도, 성찬식을 하게 되면 같이 다 나와가지고 같이 성찬할 때에 떡을 그저 받아서 내가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떡을 받아서 상대방에게 먹여주고, 잔도 상대방에게 먹여 주고, 목사님 장로님들이 서로서로 먹여주고, 그리고 같이 끌어 안고 인사하고, 기도할 때에도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잡고 기도하고 같이 끌어안고 기도하고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1) 이렇게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고 같이 찬양하고 성찬도 나누고 혹은 발을 씻기고 하는 일들을 통해서 개인적인 만남과 개인적인 접촉이 그 가운데에 일어났습니다. 사실 우리 당회원들이 같이 이렇게 회의를 모이지만, 회의는 하지만, 같기 개인적인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기는 참 어렵습니다. 숫자가 많기 때문에 여러가지 교회일을 놓고 여러가지 계획을 위해서 여러가지 실천을 위해서 회의하고 토론하고 그러지만 그러나 인격적인 만남이라든지 개인적인 교제라든지 접촉이라든지 그런 것이 참 어렵지요. 그런데 이 수련회를 통해서 함께 기도하고 서로 떡과 잔을 먹여주고 같이 손을 붙잡고 기도하고 같이 끌어안고 기도하고 그러는 중에 우리가 서로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맥박이 함께 통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또 우리 심장이 같이 뛰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그 가운데에 강하게 역사하심으로 그래서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고 서로 강하게 사랑을 나누고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우리가 한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입니다.


2) 저는 사실 우리 영락교회 목사인데 교회법으로 직책으로 목사이지만, 우리 교인들하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교제를 가진다든지 만남을 가진다든지 접촉을 가진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교인숫자가 많기 때문에 참 어렵습니다. 제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뭐고 하면 우리 교인들과 사랑으로 교제를 나누고 그래서 내가 우리 영락교회, 한 공동체 안에 소속되어 있고 같이 사랑을 나누는 가족이다, 그런 강한 의식이 약하다는 것이 늘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당회원 수련회에 목사님들 장로님들과 같이 사랑을 나누는 중에, 그 가운데에서 우리가 한 영락교회의 가족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도 강하게 우리가 한 공동체고 우리가 사랑으로 묶인 한 가족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강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고, 강한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 이제 느끼게 된 것이지요.






4. 초대교회가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여러 사람들이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쓴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바나바입니다.(36~37)


바나바는 자기 소유를 교회에 내 놓았습니다. 핍절한 형제를 돕기 위해서, 핍절한 형제에게 사랑을 베풀고 바로 세우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본래 이름이 따로 있는데, 바나바라는 별명을 붙이게 됐어요. 바나바라는 별명은 권위자(36), 그것은 위로하는 자의 아들, 격려하는 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로하는 사람이요 격려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지요. 그 공동체 안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외롭고 소외되고 눈물흘리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으로 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사랑이 충만하고 훈훈하고 따뜻한 사라으이 공동체로 만들어 나간 것이지요.


공동체 안에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혹은 이간질하고 분열을 시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 교회가 늘 어려움을 겪습니다만, 이 바나바는 정반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를 사랑의 공동체로 만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지요.


예) 미국의 카네기재단에서 지난 연말에 ‘올해의 영웅들’을 선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방송에서 올해의 영웅을 발표를 했는데, 여러분 영웅이라면 어떤 사람이 영웅이겠습니까? 영웅이라면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나 장비 같은 사람, 혹은 수호지에 나오는 노지심 같은 사람, 서양사람들 영화에 나오는 람보 같은 사람, 덩치가 크고 근육질의 사람이고, 한번 나서면 싸움을 잘해서 적을 한꺼번에 많이 물리치는 그런 사람이 영웅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카네기 재단에서 선정해서 발표한 영웅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화염에 휩싸인 승용차 안에 들어가서 11살 짜리 어린이를 구조한 사람,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무장강도와 격투를 벌이다 팔에 총상입은 사람, 바다에서 빠진 친구를 구해내고 자기는 그만 힘이 빠져서 숨진 사람, 성난 황소 4마리에 포위된 여성을 구출한 사람, 이런 사람들 여러 사람들을 영웅으로 선정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생각하는 영웅의 기준은 어떤 것이가 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생명까지도 내놓는 그런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 사랑이 충만한 사람, 그런 사람을 영웅으로 선정을 했다는 것이지요.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바로 바나바가 영웅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그래서 그 교회를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로 만들어 간 바나바가 영웅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바나바 같은 영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영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영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이렇게 초대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됐을 때에, 그 당시 불신세상에 굉장히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당시 불신세상이라는 것은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강자가 약자를 먹는 그런 세상이지요. 약자는 냉혹한 세상 속에서 그만 버려진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무관심하고 돌보지 않는 세상입니다. 오히려 약자의 것을 빼앗고 착취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된 사람을 그냥 다 내버리고 아주 좌절하고 절망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세상이지요. 그런데 초대교회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공동체였습니다. 연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 고독한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베풀고 나누어서 일으켜 세우는 그런 것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연약한 사람, 고독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교회가 되다보니까 세상 속에서 희망이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공동체, 들어가고 싶어하는 공동체, 그런 공동체가 된 것이지요.


여러분, 현대사회를 한마디로 우리가 규정한다면 고독과 외로움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회가 현대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이 되어 인간관계가 점점 피상적인 되었습니다. 교통수단과 기업이 발달되다 보니까 가족과 이웃공동체가 다 분산이 되어 흩어져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도시화로 인해서 사람들이 각각 고립되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 정신이 고독과 외로움과 소속감이 결여된 그런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핍절한 현상을 가지는 것이 오늘 우리 시대의 현상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굉장히 많은 병리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자살이 증가하구요, 요즘은 또 인터넷 사이트 중에 자살사이트라는 것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지 가르쳐주는 사이트까지 있고, 다른 사람을 돈받고 죽여주는 일까지 다 생겨나고, 너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요? 고독한 결과 일어나는 병리현상들입니다. 알코올중독, 약물남용, 음난물이나 인터넷에 중독되는 것, 이런 것들이 점점 심화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독과 외로움, 소속감이 없는 시대정신 속에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 교회가 희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에 들어가면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고 사랑을 베풀고 나누고 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교회 속에서는 사랑으로 만나고 사랑으로 교제하는 공동체다, 교회 속에서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 품어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너무나 아쉽게도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매스컴에게 두들겨 맞는지요, 매스컴의 보도 가운데에는 왜곡되고 편향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국교회가 세상의 위로와 희망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런 사랑의 공동체에 내가 들어가서, 내가 그 속에서 위로를 받고 싶다, 그런 공동체가 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 영락교회는 처음 교회가 세워졌을 때에, 해방 후에, 6.25전쟁 직후에 이 땅에 여러가지 핍절한 백성들, 혹은 고독하고 외롭고 황폐한 이 나라, 이 사회 속에 우리 교회가 희망과 위로의 교회였습니다. 영락교회에 가면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가 있다, 영락교회에 가면 내 친구들을 만날 수가 있다, 고향사람 만날 수가 있다, 영락교회에 가면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다, 그런 희망을 우리 교회가 줬습니다. 영락교회에 가면 위로를 받을 수가 있고, 격려를 받을 수가 있고, 사랑으로 위로받고 나누고 베푸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우리 교회가 희망의 교회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닌 분들도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니고 다른 교회에 다니는 분들인데도 그 해방 후에 전쟁 후에 여러가지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분들, 어려움을 겪어던 분들, 그런 분들이 우리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을 하고, 정신적인 위안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금년의 우리 교회 신앙생활 표어가 ‘사랑으로 한 몸된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성도들이 천국 소망 가진 성도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함으로, 한마음 한 뜻되어 사랑함으로, 가진 소유를 나누어 사랑함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구석구석 여러가지 부서에서, 혹은 구역같은 소그룹에서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나가야겠습니다. 이번주에는 특별히 명절주간 아닙니까? 가정 속에서 혹은 직장, 고향, 혹은 이웃 속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좋은 명절이지요. 개인적인 만남과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이 되고, 그래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 교회가 초대교회 같이, 초창기의 우리 영락교회같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듦으로 인해서 이 세상 속에 위로가 되고 이 세상 속에 희망이 되도록 만들어 나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