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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쉬게 하시는 주님(마 11:25-30) ; 안식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2. 9.

우리를 쉬게 하시는 주님

마11:25-30

 

새문안교회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오늘 본문 가운데 28-30절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이 얼마나 반갑고 고맙고 위로와 평안을 주는 말씀입니까? 오늘날 세상은 살아남기 위한 무한경쟁과 이로 인한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에 갈수록 피곤해지는 세상입니다. 한편으로는 일을 못하고 쉬어야 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좀 쉬고 싶다"는 바램이 강박관념처럼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때입니다. 쉬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쉬는 것 같지 않은 쉼은 쉼이 아닙니다. 마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쉼이 진정 쉼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고 따라서 진정한 쉼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말씀이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조금 더 눈여겨 살펴야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아무런 짐도 수고도 없고 그저 일 안 하고 편히 쉬기만 하면 되게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지 "내가 너희를 아무 일도 안 하게 하리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오기 전의 멍에와는 다르지만 새 멍에, 주님께서 메워주시는 멍에가 있고 그에게 열심히 배워야 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쉬게 하리라 하시고는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하시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해야 할 아무런 일이나 수고가 없어서 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일이고 주님께 배우기 때문에 마음이 평안할 수 있어서 쉼을 얻게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을 안 해도 되고 배울 필요가 없어서 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을 시키시고 우리를 가르치시는 이가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그 일이 쉬워지고 가벼워짐으로써 우리에게 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쉬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쉬는 것 같지 않은 것처럼, 일을 하고 수고를 하면서도 마음이 평안하면 늘 피곤하지 않고 활력에 넘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을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안과 기쁨과 일의 참된 의미와 그로 인한 삶의 활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신 말씀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멍에를 안 메고 배우지 않아도 되기에 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메워주시는 멍에를 메고 주님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우리가 하는 일이 그 바른 목표와 참된 의미와 옳은 방법을 따르게 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으며, 그래서 그것이 우리에게 쉼이 되는 것입니다. 가치 없고 보람 없고 기쁨 없는 일을 하며 사는 인생은 정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삶이며 고단함을 넘어서 절망의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살 필요조차 없는 삶일 것입니다. 주님께로 나아오면 주님께서 우리의 할 일을 덜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에 가치와 의미와 보람과 기쁨을 보태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로 나아오라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본래 유대교의 문헌에서 멍에라고 하는 것은 랍비들의 가르침에 따라 각자가 메야 하는 의무조항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선생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못 해석하거나 변질시키거나 부풀리며 무수한 규율들을 만들어냈고 그것들을 모두 엄격하게 지켜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한없이 무겁고 어렵고 힘든 멍에로 만들어놓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무겁고 어렵고 힘든 멍에를 짊어지고 수고하면서도 마음의 평안이 없거나 위선적인 삶을 살아야 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의 새로운 율법해석과 가르침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그 자신의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와 기쁨을 되돌려주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한 것은 꼭 특별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만을 향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특별히 수고하지 않는 사람이나 무거운 짐을 지지 않은 사람들은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이나 노약자들은 제외하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율법 아래 있었습니다. 즉 율법에 관한 랍비들의 가르침이라는 무거운 멍에를 메고 지키지도 못할 규정들을 다 따르고 지켜야 하는 수고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그 자유함을 깨닫지 못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향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것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지 않고는 진정 쉼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말씀에 접하며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누구이길래 우리에게 쉼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면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때에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앞부분인 25-27절의 말씀입니다. 이 앞부분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25-26절은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짤막한 공중기도를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27절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25-26절의 기도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시고 계시의 근원적 주체이시라는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5절의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 할 때의 "이것"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다스리시는 일도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계시하시는 일도 모두 그의 주권 안에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나라의 진리는 겸손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어른들과 지식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 없고 어린아이들만이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과 "어린아이들"을 언급하신 것은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을 대비시키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과 아이들을 대비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은 하나님나라의 진리는 세상사람의 경험과 지혜와 교육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스스로를 잘났다고 여기며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어린 아이들"은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되어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응답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기 위한 선행요건이 겸손임을 말씀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기도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이시고 계시의 주체로 밝히신 예수님께서는 27절에서는 그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언급하십니다. 기도 속에서 이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지만 27절에서는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더욱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단지 하나님과 당신 사이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중보자의 과업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사탄과 귀신들, 모든 질병과 연약함, 바람과 파도, 육신과 영혼, 생명과 죽음 등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갖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당신께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며 하나님으로부터의 모든 위로와 안식과 평화와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이 분명한 선언이 자연스럽게 28절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부르심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인가 하면 바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말씀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제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장담하실 수 있는 것인가 하면 바로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하신 아들로서 하나님의 위로와 안식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 했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참된 쉼의 유일한 보증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것은 모든 일과 수고로부터 다 면제되어 놀고먹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따르고 섬기고 배우라는 부르심입니다. 그의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진정한 쉼을 얻는 길입니다. 예수님에게 나아오면 그가 주시는 삶의 참 의미와 목표와 방법 때문에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기쁨과 보람이 있고 그래서 참된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30)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일 자체를 덜어주시거나 대신 해주셔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짐이 가벼워지게 하는 기쁨과 보람을 얹어주심으로써 우리의 멍에가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병이나 재난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같은 병이나 재난을 당하더라도 그 때문에 무너지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쉼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 불안, 불확실성, 무의미함을 극복하는 데에서 오는 기쁨과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전체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자기의 삶과 이 세상의 문제를 다 알고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교만과 착각에서 헤어 나와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온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한 사람만이 삶의 기쁨과 보람과 마음의 진정한 평안과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쉼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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