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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서지 맙시다(출 13:17)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9.

뒤돌아 서지 맙시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보다 변화 없이 같은 상태로 있으면서 고통받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과거의 구조 가지고는 다가오는 21세기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위 말하는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안고 있어 고민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몇 명 안 되는 사람이 모여서 교회를 시작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압니다. 모두가 각자의 책임을 느끼면서 일들을 잘해 나갑니다. 일의 규모가 작고 손쉽고 모든 일의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친구와 가족간에 정이 오가고 자연스럽게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이대로 지내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얼굴, 낯선 분들이 보입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어쩔 수 없이 예배의 횟수가 늘어납니다. 새로운 단체가 조직됩니다.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착수합니다. 그러니까 전의 교회의 모습, 가족적이던 교회의 모습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교회가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갈 때 여기서 오는 거부감 같은 것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극복하고 적응하면 그 교회는 아주 생동력 있게 성장합니다. 그러나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지난날 가족적인 분위기를 그리워하며 뒤돌아 서는 사람이 있으면 그 교회는 생명력을 잃게 되고 교회는 침체되고 말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새 식구가 오시지마는 먼저 계신 분들이 자리를 내어 주지 않기 때문에 함께 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못되어서 교회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봅니다. 교회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그런 현상이 일어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생동하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가 되려하면 언제나 참신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모두가 힘써야 합니다.

 

어떤 교회는 새 식구가 들어와 좀 열심히 일하려고 하면 "저 사람이 언제 우리 교회에 왔길래 저렇게 까불지?"하면서 밀어 치웁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양을 쳐 본 경험이 있는 어느 선교사님이 "목자가 본 시편 23편"이란 책에서 이 대목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양은 본래가 온순하면서도 자기 자리를 뺏기기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낯선 양이 자기 자리에 오려고 하면 결사적으로 다툰다고 합니다. 양은 뿔이 퇴화 되었기 때문에 뿔은 사용하지 못하고 머리를 사용해서 밀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머리에 아마유를 흠뻑 바르면 파리도 달려 붙지 못할뿐더러 자리 싸움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왜요? 머리에 기름을 흠뻑 바르니까 미끄러워서 다투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면 다른 사람과 다툴 수도 없고 잔이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새로워져야 합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Paul Tillich는 'The Protestant Era'라는 책에서 "Reformation must be continue"라는 말을 했습니다. 신교는 루터나 칼빈이나 즈윙글리의 개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개혁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교회는 계속 새로워져야 합니다. 새로워짐이 멈추게 되면 교회는 부패하고 맙니다. 진리는 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변해서도 안됩니다. 변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의 모습은 언제나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세포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날 때의 사건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0여 년간을 종으로 학대를 받으며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이스라엘 민족의 멍에를 벗겨주시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새로운 땅을 주어 그들이 주인으로 살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을 떠나 왔던고?"하면서 이스라엘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으fi?" 하면서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 말을 누가 했습니까? 버림받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종살이의 멍에를 벗고 자유의 몸이 되어 하나님의 기적으로 보호를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음식을 먹으며 안전한 곳,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가고 있는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려움에 직면하자 애굽으로 되돌아가기를 애원하며 거기서 먹던 고기 생각을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저들을 돌아가게 하려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야하는 목적지가 어딥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목적지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가는 길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면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이루시는 방법이 사람들의 방법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릅니다.

 

일은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모험의 길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전통적이고 방어적인 판에 박힌 생활 방식을 버리고 그를 믿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방법대로 시험을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보면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가는 가장 좋은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었습니다. 그 밖에 다른 길은 멀고, 험하고, 힘들고, 위험하고, 홍해가 가로막힌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 험한 길을 인도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만인 중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마귀의 세력에서 해방시켜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영혼의 가나안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힘이 듭니다. 위험스럽게 생각이 되어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낯익은 곳에서 멀리 떨어져서 광야의 험한 길을 걷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염려되고 불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계시는 한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은 놀램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두려운 일이 또 생겼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먼지를 날리며 좇아옵니다. 남으로는 사막입니다. 북으로는 험하기 이를 데 없는 산악입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처럼 되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싸인 것처럼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들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홍해가 갈라져 육지가 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바다를 갈라 육지같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건너자 하나님께서는 뒤쫓아 오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처리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감격은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며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늘나라의 음식을 즐기려면 하늘나라의 식성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는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하기를 원했지만 다른 것까지 빼앗기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낯이 익던 애굽의 나일강과 광야가 그리웠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장막을 옮겨 치는 일도 지쳤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애굽에는 먹을 것이 넉넉했습니다. 생선과 신선한 채소 많은 양념들이 있어서 여러 가지 맛을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형편은 어땠습니까?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미지근한 물,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하늘에서 눈처럼 내린 만나, 그것도 처음에는 신기하고 놀라웠는데 매일 계속되다보니 신비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은 날마다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가지고 끓이고, 볶고, 굽고, 지지고, 튀기고, 그야말로 안 해 본 것이 없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동안 '모세 부인의 100가지 요리법'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100가지 요리를 만드는 비결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메뉴가 뭐지?" 하는 말이 아니라 "오늘은 어떤 방법으로 요리하지?" 하는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광야 생활에서 지친 저희들은 애굽이 오히려 더 좋았던 것같이 생각되고 가나안은 그 맛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각없는 몇몇 이스라엘 사람들 때문에 모세는 지도자로서의 짐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민수기 11장 26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녹명된 자 중에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셨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더이다'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가로되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했더니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그들이 뭐랬어요?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느냐?"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먼데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이 괴롭힙니다. 남이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가 나를 비난합니다.

 

그러니까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의 형편이 어땠습니까? 지도자를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그랬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말로 공격받는 그 고통을 압니다. 책임을 진 사람 치고 말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회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되려면 다른 사람에게 말 듣는 것도 그가 해야할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처럼 정당하지 않은 비난 거리로 시험할 때 잘 이겨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 접경까지 왔을 때입니다.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항의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각 지파 중에서 족장된 사람을 한 사람씩 불러서 약속의 땅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 가나안 땅을 미리 알아보게 했습니다. 40일간의 탐지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를 보낸 땅에 가보니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이것은 그 땅에서 생산되는 실과입니다."하면서 에스골 골짜기에서 딴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불신의 큰 글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라는 말이 덧붙여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 사람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 사람, 여부스 사람, 그리고 아모리 사람은 산지에 거합니다. 가나안 사람은 해변과 요단가에 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 때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키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합시다. 우리가 능히 이길 것입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들이 키가 큰 것은 사실이나 저희를 지키던 신이 떠났습니다. 저희는 우리의 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에 두려워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그 첩자들이 겁을 집어먹은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크신 약속을 잊은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거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인이 하나님에게 상대가 됩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작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것을 누구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당장 좀 어렵다고 해서 노예 생활하던 애굽을 그리워하고 돌아서려 해도 안됩니다. 사실은 돌아가지도 못합니다.

 

요한 번연이 쓴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보면 그리스도인이 열심히 천성을 향해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반대로 뛰어 내려오는데 숨이 하늘에 닿을 정도이고, 두려움에 사로 잡혀 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더듬는 말로 대답하는데 저기 한 참 올라가면 두 마리의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으르렁대는데 당장 쫓아 나와 삼킬 것 같아서 너무 두려워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해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이왕 세상을 등지고 떠나 이곳까지 왔는데 어떻게 뒤돌아 설 수 있나?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더니 정말 사자 두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으르렁대고 있는데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니까 달려들지 못하는데 쇠사슬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뒤돌아 설 수 없습니다. 아니 뒤돌아서도 안됩니다. 왜요? 하나님께로부터 확실한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21-22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 하니라?"고 했습니다.

 

뒤돌아서고 싶은 생각이 있을 때마다 그의 백성들은 오로지 하늘만 바라보면 되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그랬습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 어디쯤 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포기하지도 않으십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의 갈 길이 멀고 거인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서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사41:10-13) 고 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뒤돌아서면 안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낙심된 자리에서 건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백성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될 때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모세도 사람인데 참는 일이 정말 벅찬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은총을 내려 주셨고 그 짐을 덜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 모세에게 그를 도와 그의 짐을 나눠 질 사람 70명을 보내 주셨습니다. 사람은 큰 일을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를 보세요. 물론 저는 담임목사로서 교회 전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의 힘으로 교회를 이끌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목사님들 전도사님들이 성실하게 저를 도와 목회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교단체, 봉사단체, 교육기관, 성가대, 청지기, 구역을 맡은 분들이 힘을 모아서 일하는 중에 우리 교회가 이루어져 성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기뻐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함께 어려움을 나누며 해결해 나가는 분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모세도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가 무죄를 입증해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힐책할 때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의 종 모세 편에 개입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변호해야 할 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진실을 어떻게 증명해 보여야할는지 막연한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개입해 주실 것을 구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른 것이 보통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아름답게 마무리 지으십니다.

 

여러분, 아무리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다해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요셉을 보세요. 그가 억울하게 감옥에 수감되어 오랫동안 고생했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때가 될 때 그를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그의 간증이 무엇입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이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간증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역사의 군사정치시대는 암흑의 시대요 고난의 시대였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워 승리하신 분이 우리 대통령이십니다. 그래서 이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산 증거가 아닙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뒤 돌아서지 말고, 앞을 향해 나아가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고, 지켜주시고, 마무리를 아름답게 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겁내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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