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예언자들은 정상적인 계시의 통로가 작동되지 않을 때 등장합니다. 정상적인 계시의 통로가 뭐죠? 정치영역에서는 왕 같은 사람들, 종교 영역에서는 제사장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정상적인 계시의 통로입니다. 이런 정상적인 계시의 통로가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 구원투수처럼 위기의 순간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예언자들입니다. 예언자들은 위기 사역을 감당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공동체에 위기 상황이 도래했습니다. 이때 공동체가 살 수 있는 길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 위기가 도래한 것이므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더 열심히 예배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종교의식의 강화가 아닌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핵심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예언자는 자기를 예언자로 부르시고 파송하신 하나님 중심의 사역을 행했던 자들이고 이런 사역을 했던 참된 에언자들은 당대에는 실패한 자처럼 보였지만 역사를 통해 성경을 통해 그들이야말로 진정 이긴 자임을 증거했습니다. 예언자는 심판의 경고를 하는 순간에도 청중들이 예언의 경고를 듣고 돌이키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사랑하신 가장 중요한 증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던 그 무수한 세월에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예언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이 돌이키기를 기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예언과 묵시의 이 차이를 잘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시대별 구분을 하겠습니다. 얼핏 보면 예언자들은 비슷한 메시지를 선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씩 다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예언자가 사역한 시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언자라고 하는 타이틀을 제일 먼저 들은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예언자의 전형은 모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할 때 예언자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엘리야입니다. 주전 9세기 엘리야와 엘리사 때의 사역과 주전 8세기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의 사역과 주전 7세기 말과 6세기의 예레미야, 에스겔의 사역을 구분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엘리야나 엘리사는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처음 외쳤던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라고 하는 존재는 평화의 시대에는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은 주로 언제 등장하겠습니까?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공동체인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과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기는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이 극단화되면 아예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이스라엘이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위기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왜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 예언자가 된 것이냐면 엘리아 시대가 바로 아합 시대입니다. 아합의 부인이 누구죠? 이세벨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만을 섬겨야 될 북이스라엘 공동체에 바알 신앙을 국가 종교로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될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겸하여 섬기는 것도 위험한 일인데 더 극단적으로 가면 아예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만을 섬기게 됩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바로 이것을 최초로 행하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이라는 신을 국가 종교로 만들려고 한 겁니다. 이때 이러면 안 된다고 큰 소리로 경고한 사람이 엘리야와 그의 후계자인 엘리사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메시지를 경청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100년이 흘러간 겁니다. 이 암세포가 점점 발전한 겁니다. 그래서 주전 8세기가 되었습니다. 이때는 암 3기말 정도 됩니다. 어떻게 보면 마지막 수술의 때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겁니다. 이때 사역한 사람이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입니다. 이 사람들이 주전 8세기 예언자들입니다. 아모스는 주전 760년에, 호세아는 주전 750년에 사역했습니다. 아모스는 남유다 사람이지만 북이스라엘에서 사역했고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사람으로 북이스라엘에서 사역했습니다. 아모스와 호세아 둘 다 “지금이 마지막 수술의 때다, 북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암세포가 너무 많이 퍼졌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북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 우상숭배에 몰두하고 있다, 이를 청산해야 한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모스와 호세아가 피를 토하며 이러한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북이스라엘 왕도, 관료도, 귀족도, 백성도 그 누구도 아모스와 호세아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북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보면서 남유다에서는 미가, 이사야 예언자가 똑같은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멸망 당한 북이스라엘과 아직 멸망 당하지 않은 남유다가 사실은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직시하며 “우리가 살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선포했습니다. 남유다가 북이스라엘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처럼 우쭐대지 말고, 우리도 사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을 숭배하고 있다고, 이 죄 된 삶을 속히 청산해야 된다고 선포한 사람이 이사야와 미가입니다. 아모스와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에서 사역을 했다면 이사야와 미가는 남유다에서 사역을 행습니다. 이때 이사야와 미가의 메시지를 경청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히스기야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대대적인 종교 개혁 운동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남유다는 멸망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히스기야 종교 개혁 운동이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들 므낫세 때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회귀하게 됩니다.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긁어낸 겁니다. 그렇게 100년의 세월이 지나고 주전 7세기 말 6세기 초에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사역을 행합니다. 이들이 행할 때는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급부상할 때입니다.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이 사역을 행할 때는 앗수르 제국이 급부상할 때입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더이상 수술의 희망은 없다, 지금 암세포가 너무 커졌다, 수술할 수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다”라고 하며 수술의 무용성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비극이죠. 그러나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메시지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죄악으로 충만한 남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려고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이 심판을 통해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길 원하신다, 정화되고 갱신되길 원하신다, 그런 자들에게 다시 기회를 허락해주실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를 잘 부여잡자, 이를 잘 잡기 위해서는 이 심판의 시간을 통해 갱신되어야 한다”고 외친 겁니다. 얼핏 보시면 구약에 나와 있는 모든 예언자들이 시대마다 똑같은 얘기를 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시대마다 메시지의 내용들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전 9세기의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경우에는 암 발병 초기,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암이 발생하였으니 이것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고 외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경청하지 않았고 10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암세포가 점점 몸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주전 8세기 앗수르 제국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가 “지금이 마지막 수술의 때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경청하지 않았고 그 결과 마지막 수술의 때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멸망이라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남유다에서는 이사야와 미가의 메시지를 듣고 히스기야가 수술을 단행합니다. 그래서 남유다는 심판이 유보된 겁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므낫세 때에 아버지의 개혁 운동을 지속한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로 회귀하게 됩니다. 그렇게 100년의 세월이 지나고 예레미야와 에스겔 때에는 앗수르는 몰락하고 새로운 신흥 제국으로 바벨론이 부상하게 됩니다. 이때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수술을 통해 회복될 수 있는 희망의 시간은 지났다, 아프고 고통스럽겠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매를 맞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매를 드시는 목적은 우리를 죽이시고자 함에 있지 않고 이 심판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깨끗게 하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정화되고 갱신되길 원하신다, 그리고 정화되고 갱신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존재가 되어서 새로운 기회를 붙잡자”고 외쳤쳤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예언자들이 사역했던 시기, 그 배경을 이해하다 보면 예언자의 메시지에 왜 이런 방점이 찍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큰 맥락에서 9세기, 8세기, 7세기, 6세기를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과 이번 시간에 걸쳐서 예언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교회 내에서의 예언서의 위상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예언서의 중요한 내용도 나누었고 성경에 보면 참예언자와 거짓 예언자가 있는데 그들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해서도 나누었고 마지막으로는 시대별로 예언자들에 대한 분류를 하였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본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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