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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예언서 녹취 2

by 【고동엽】 2021. 12. 7.
예언서의 중심 내용을 4가지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당신은 진짜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 사람이 맞습니까?’ 이런 질문을 예언서는 우리에게 던집니다. 한 마디로 이론적으로는 신자인데 실천적으로는 무신론자가 아닌지, 머리와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전혀 없는, 하나님을 인지하지 못하는 실천적인 무신론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라는 질문을 예언서는 우리에게 던집니다. 로마서 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표면적인 유대인과 이면적인 유대인을 비교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표면적인 유대인입니까? 할례 받고 안식일 준수하고 음식 정결법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일상의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표면적인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종교 의식의 과잉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드러내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에 존재를 다해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언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 질문을 가장 먼저 던져야 합니다. ‘나는 진짜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과 신실하게 동행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증거하고 있는가’, 그래서 이론적인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실천적인 무신론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표면적인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지만 이면적인 크리스천, 신실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고 존재를 다해 순종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질문 앞에 우리를 정직하게 서도록 하는 것이 바로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두 번째 예언서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왜곡된 오해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야,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계약 백성이야, 따라서 우리가 설령 무엇을 잘못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을, 계약을 체결한 언약백성들을 버리시겠어?” 이런 생각을 이스라엘이 했습니다. 선택과 계약이라고 하는 것을 남용한 겁니다. 선택과 계약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심판의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심판이 면제되는 면책특권을 가진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예언서는 선택과 계약이라고 하는 것은 남용되어야 할 특권이 아니라 보다 고상한 삶, 윤리적 삶을 통해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라는 것이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죄를 범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 심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 용서하십니다”라는 식의 면책특권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은 남용되어야 할 특권이 아니라 보다 고상한 윤리적 삶을 통해서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하나의 책임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보다 더 정직하고 진실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연약한 자들을 함부로 억압하거나 착취하거나 지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나의 이익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해서도 안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그가 가지고 있는 재력, 학력, 건강의 유무와 상관없이 존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드러내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입니까? 하나님과 계약을 체결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 입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내 인생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일까를 말씀에 근거해서 진지하게 묻고 말씀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인생의 한걸음 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자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예언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과의 계약이라고 하는 것은 남용될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다운 보다 고상한 삶을 살아내야 할 책임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 예언서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세 번째로 예언서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 그것이 정말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이해인가, 즉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선이해에 대해 도전하고 있는 것이 예언서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에 대해 나름대로 이런저런 신학적인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선택 받았어”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을 배타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 결과, 배타적 선민사상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고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임한다 라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왜 선택하셨습니까? 이스라엘만 사랑하셔서 선택하신 건가요? 아니죠. 이스라엘을 먼저 선민으로 부르심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신 겁니다. 그 변화된 이스라엘 백성이 세계 만민을 하나님 앞으로 견인해내기를 기대하신 겁니다. 이스라엘은 만민을 위한 선민인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자기들만의 하나님으로 독점하고자 했습니다. 배타적 선민사상에 빠져 버렸습니다. 예언서를 보시면 ‘여호와의 날’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날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뭐가 여호와의 날이죠? 하나님이 당신의 전능하심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날이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날이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뭐냐면,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전부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수하게 많은 예언자들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하나님의 대적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구원을 받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너희가 하나님의 대적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이 될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마치 오늘날로 얘기하자면 여호와의 날은 예수님의 재림과 같은 겁니다. 예수님 재림하시면 우리 모두는 구원 받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있는데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그런 견해에 대해 도전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언서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세 번째 강조점은 너희가 하나님에 대해 갖고 있는 그런 이해들이 정말 온전한 것인가, 아니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낯선 하나님,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하나님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예언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목마름이 필요한 겁니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하나님을 더욱 잘 알고 싶다는 목마름이 필요한데 자칫 신앙생활 10년, 20년 하고 나서 나는 마치 이제 하나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예언서를 통해서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나는 하나님의 전부가 100이라고 했을 때 혹여 20~30정도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보다 넓히고 깊게 하는 것이 예언서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익이라 생각합니다.


네 번째로 예언서는 당대의 정치, 경제, 종교 권력자들의 불의와 부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예언서에는 로마서 같은 표현이 안 나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로마서를 보면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떠나 있고 돌이켜야 되는 존재입니다”라는 식의 강조가 나옵니다. 그런데 예언서를 보시면 어떤 예언자도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해 “당신들 모두는 죄인입니다, 모두 회개하십시오”라고 선포하지 않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회개를 촉구한 예언자는 없습니다. 구약의 예언서를 보시면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질타할 때도 구체적으로 왕, 제사장, 재판관, 부자, 장로 이런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책망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떠나 있더라도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N분의 1의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국가가 엉망진창이라고 했을 때 그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이 N분의 1의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건가요? 그렇지 않죠. 위정자를 비롯해서 관료들 이런 사람들이 보다 무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가정이 엉망진창이라고 했을 때 그 가정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N분의 1의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건가요? 아니죠. 엄마와 아빠가 보다 많은 책임감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상 대리자로 세운 자들이 왕, 제사장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에게 위임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직무 유기를 한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백성을 잘 돌보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가지고 부귀영화와 사리사욕을 추구한 겁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지상 대리자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은 겁니다. 예언자들은 그들의 죄를 집중적으로 책망합니다. 예언서는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읽기가 부담스럽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는 예언서의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것이 많아지면 예언서의 말씀들이 참으로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 역사를 보시면 1920년을 기점으로 한국 교회 신앙이 내세화 되고 타계화 되었다고 합니다. 1920년을 기점으로 한국 교회가 가진 것이 많아졌습니다. 그때부터 대형 교회가 등장했습니다. 목사들의 사회 경제적 신분이 상승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지게 되면 내가 가진 것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예언서를 읽다 보면 자기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처럼 부담스러워 집니다. 그래서 예언서를 많은 한국 교회가 잘 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말씀 앞에 온전히 서는 것이 필요하지만, 한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보다 무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교회에서는 중직자들이 무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국가에서는 관료들이 무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중요한 사명이 있는데 우리가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 예언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고 우리 각자가 다양한 영역에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들을 어떻게 신실하게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예언서를 보면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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