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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 녹취 5

by 【고동엽】 2021. 12. 7.

이제 예언서 본문을 공부하겠습니다. 먼저 이사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는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약 예언서입니다. 400회 이상 인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장을 기준으로 보면 예언서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갖고 있습니다. 이사야라는 인물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것은 많지 않은데 왕족이나 귀족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왕실의 서기관이었고 탈무드에 의하면 웃시야 왕의 사촌이나 조카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경은 아니지만 이사야 승천기라고 하는 위경이 있는데 거기에서 이사야는 므낫세 왕 때 통나무에 들어가서 톱으로 켜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인물들이 등장할 때 “누구는 톱으로 켜 죽임을 당하고”라고 되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사야라고 많은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가장 중요한 배경은 앗수르의 부상입니다. 앗수르가 제국으로 부상할 때 이사야가 메시지를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집어삼키려는 상황 속에서 그 앗수르를 신으로 숭배하지 말라는 겁니다. 외국과 동맹을 맺으려 하지 말고 이런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을 드러내고 하나님과 동맹을 맺어라, ‘앗수르와 동맹을 맺지 말고 하나님과 동맹을 맺으라’고 하는 것이 이사야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66장까지의 이사야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말씀을 하나 뽑으라 하면 2장 22절입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한 마디로 이사야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누구를 의지하는 것이 구원의 길인가’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도 중요한 순간에는 하나님을 망각합니다. 여기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에서 그 인생 안에는 강대국, 돈, 권력, 군사력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의존하지 않고 힘 있는 강대국이나 그들의 군사력이나 돈, 권력을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질타하는 것이 이사야 예언의 핵심입니다. 이사야를 비롯한 예언서를 이해하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겁니다. 예언서를 이해하려면 그 당시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시대의 배경에 대해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이사야가 주전 8세기 예언자인데 이때 굉장히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최초의 제국이라 할 수 있는 앗수르의 등장입니다. 정확하게 주전 745년부터 디글랏빌레셋 3세라고 하는 앗수르의 왕이 제국의 황제로 등장합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작은 나라들을 삼키면서 엄청나게 통치 영역을 확장합니다. 앗수르 제국이 주전 8세기에 등장하고, 그다음부터 고대 근동의 역사를 보시면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라고 하는 5대 제국이 연이어 등장합니다. 이 제국의 서막이 앗수르입니다. 앗수르가 주전 8세기 중반부터 제국으로 부상하면서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이 디글랏빌레셋 3세라는 왕이 주전 740년부터 738년 사이에 아람에 있는 소 왕국들을 다 정복했습니다. 그다음에 북이스라엘, 남유다, 애굽을 정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제국이 등장한 이후부터 많은 나라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앗수르에게 언제 잡아 먹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저런 위기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는 겁니다. 중요한 것이 734년부터 732년 사이에 있었던 시리아 에브라임 전쟁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시리아 에브라임 전쟁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제가 볼 때는 이 표현이 별로 좋은 표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리아 에브라임 전쟁이라고 하면 시리아와 에브라임이 전쟁을 한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아니라 시리아와 에브라임이 힘을 합쳐 남유다를 공격한 겁니다. 이 전쟁을 보통 시리아 에브라임 전쟁이라 하는데 시리아라고 하는 나라는 성경의 아람이라는 나라입니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입니다. 즉 시리아는 아람,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힘을 합쳐 남유다를 공격한 것이 주전 734년에 있었던 시리아 에브라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가 중요합니다. 주전 8세기 중반에 앗수르 제국이 등장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앗수르 제국이 작은 나라들을 하나 둘씩 집어 삼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잡아먹이지 않으려고 작은 나라들이 힘을 합쳤겠죠. 왜냐하면 1대1로 대적하게 되면 앗수르에게 상대가 안됩니다. 그래서 작은 나라들이 살길은 서로 힘을 합쳐서 앗수르와 전체 나라가 싸우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만이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전 734년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깃발을 든 겁니다. 앗수르와 싸울 나라를 모읍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에돔, 모압, 암몬이나 이런 나라들이 동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아와 에브라임 깃발을 들고 작은 나라들과 연합군을 구성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동참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남유다입니다. 그때 남유다의 왕이 아하스입니다. 이 왕은 우상숭배에 몰두한 왕이었는데 나름대로 국제 정치를 읽는 탁월한 시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뭘 봤냐면 이미 앗수르가 고대 근동 전체를 장악하는 제국이 될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나라끼리 힘을 합쳐 앗수르와 싸우는 것은 자멸 행위다 라고 판단을 하고 아하스는 이 연합군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작은 나라들이 다 앗수르와 전쟁하겠다고 힘을 합쳤는데 유일하게 남유다가 동참하지 않은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앗수르와 전쟁을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북이스라엘 모든 군대가 앗수르와 전쟁하겠다고 출병하면 북이스라엘은 무주공산이 되어 버립니다. 이때 남유다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되면 북이스라엘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남유다가 동참하지 않으니까 전쟁을 개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꿔서 이 전쟁에 동참하지 않는 남유다부터 공격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남유다를 통치하고 있던 아하스 왕을 폐위시키고 아람의 왕자인 다브넬이라는 사람을 남유다의 왕으로 세우고 이후에 남유다 군대까지 동참하게 만들어서 앗수르와 싸우자, 이것이 바로 시리아와 에브라임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나라가 힘을 합쳐서 남유다를 공격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 7~9장의 배경입니다.

 

당시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1대1로 싸워서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아람은 더욱 강력합니다. 그런데 이 둘이 힘을 합쳐 남유다를 공격하는 거니까 남유다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하스가 살기 위해서 앗수르 왕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가 지금도 남아 있는데, 그 편지에서 아하스는 자신을 ‘앗수르 대왕의 아들’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앗수르에게 구조 요청을 한 겁니다. 이것을 막으려고 한 사람이 이사야입니다. 지금 남유다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는데 여기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앗수르와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 이것이 이사야의 메시지입니다.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하면 앗수르가 당장은 남유다의 구원자처럼 다가오겠지만 결국 앗수르는 남유다의 정복자가 될 것이다, 구원자처럼 다가오는 앗수르가 언젠가는 남유다를 지배할 것이다, 그러니까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라, 앗수르와 동맹울 맺지 말고 하나님과 동맹을 맺어라, 이것이 바로 이사야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아하사는 이사야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앗수르를 불러들입니다. 그 결과 앗수르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사야를 이해하려면 이 시대적 배경을 아는 것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전 8세기 앗수르 제국의 등장, 시리아 에브라임 전쟁, 그 맥락에서 이사야 7~9장의 말씀이 선포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사야가 총 66장으로 긴 편인데 1~39장을 제1이사야, 40~55장을 제2이사야, 56~66장을 제3이사야 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1~39장을 제1이사야, 40~66장을 제2이사야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보수적인 신앙인들은 이사야 하면 전체를 다 주전 8세기 예언자였던 이사야가 썼다고 이해하는데 어떤 신학자들은 1이사야, 2이사야, 3이사야를 말하고, 어떤 신학자들은 1이사야, 2이사야를 말하니 조금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이사야 전체를 이사야라는 한 인물이 썼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한 인물이 썼다고 해도 이사야를 자세히 보시면 1~39장, 40~55장, 55~66장까지 이 말씀을 듣는 청중이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39장은 주전 8세기 남유다 백성들을 청중으로 한 말씀입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40~55장은 주전 8세기 남유다 백성이 아니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사야 40장 1~2절을 보시면 갑자기 톤이 달라집니다. 1~39장은 회개를 촉구하는데, 40장 1~2절을 보시면 갑자기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들에게 외쳐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 노역의 때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말합니다. 1~39장은 주전 8세기 남유다 백성을 대상으로 하여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지금의 죄된 삶을 지속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이것을 경고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면 갑자기 40장에 오면 분위기가 바뀝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매를 맞은 백성들을 위로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노역의 때가 끝났다고 합니다. 이 노역의 때가 끝남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겁니다. 배경이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전체를 한 명이 기술했건, 아니면 이사야와 그를 계승했던 제자들이 기술했건 이것과 무관하게 이사야서 안에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1~39장은 주전 8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핵심 내용은 죄 된 삶을 살고 있는 남유다 백성을 향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40~55장은 남유다는 이미 멸망했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수치와 모멸과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70년 포로 생활을 견딘 자들을 위로하는 메시지, 그리고 다시 이들이 가나안 본토로 돌아갈 것을 말하는 것이 40~55장에 나옵니다. 이 장의 청중은 고레스 칙령이 선포되기 전후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있던 포로들입니다. 56~66장은 이제 바벨론 땅에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고 성전을 재건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돌아와서 성전까지 건축했는데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적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55~66장에서는 귀환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서 경험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보통 진보적 신학자들은 이사야를 1~3이사야로 나누고 보수적 신학자들은 한 사람의 이사야가 전체를 썼다는 입장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사야서를 몇 사람이 기술했건 이사야 안에 서로 다른 시기, 배경, 청중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겁니다. 1~39장은 주전 8세기, 40~55장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사람을 청중으로, 56~66장은 귀환 포로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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