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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 이해편◑/Comprehensive

마리아의 끈기 요20:1∼18

by 【고동엽】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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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outube.com/watch?v=sFqBo_RXbtk

◈마리아의 끈기 요20:1∼18 1997.08.31.이재철 목사 설교 스크랩

 

◑마리아의 끈기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하여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의 문이 열린 채, 마땅히 그 속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단숨에 달려가 제자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요20:2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서 없어 졌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생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대로

죽음을 깨트리고 부활하신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사도들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1. 대부분 사도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눅24:11

 

사도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주님의 부활을 깨달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말을 허탄케 여기며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생시에 그토록 강조하셨던 부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티끌만큼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수없이 듣긴 들었으되, 그 말씀을 머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다 흘려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황량한 사막과 같은 심령을 지니고 있던 그들은,

진실을 말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허탄한 거짓말쟁이로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진실을 담을 수 없는 밑 빠진 독이었던 것입니다.

 

 

▲2. 그러나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즉시 일어나 주님의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과연 무덤 속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고,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와 수건만 잘 정리되어 개어져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 대로였습니다.

 

두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말이 허탄한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이었음을,

그 현장에서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뛰어 너머,

‘사흘 후에 부활할 것’이라던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할 차례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찾아야 할 때였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증언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바로 부활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깨닫지) 못하더라.” 요20:9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 다음으로 부활의 현장에 들어간

두 번째 증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현장에서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지도, 깨닫지도,

믿으려 하지도, 없어진 주님을 찾아 볼 엄두를 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안타깝게도 본문 10절이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 가니라." 요20:10

 

누가복음은 이때의 상황을 더욱 상세하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눅 24:12

 

‘기이히 여겼다’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긴 했지만,

그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희한한 일이라 여기면서

그만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사도들보다 좀 더 나았을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무덤까지 달려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참 생명이 없는 사람들에게, 오늘 이 세상은, 단지 ‘생노병사’만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자연인은 오직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있을 뿐이기에,

그 심령 속에 생명을 머금지 못한 인간들은,

지금 살아있다 하더라도, 실은 '미래의 무덤'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많은 자연인들은, 부활을 사실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실에만 집착하면서 목숨을 걸고 삽니다.

그곳에 영원한 행복이 있는 양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3. 막달라 마리아의 생명에서 오는 끈기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다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자는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제자들에게 뛰어가 그 사실을 알린 자도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역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자기 집으로 되돌아감이 마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판에,

그녀에게 그 순간 달리 찾아 갈만한 곳이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원문 11절은 ‘그러나’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한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디로 갔습니까?

"(그러나)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고 있더니" 요20:11a *헬 De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무덤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곳은 막달라 마리아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꺼려하는 묘지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시신이 사라져 버렸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의 무덤이라도, 하루에 연거푸 두 번을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막달라 마리아는 비어 있는 주님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곳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왜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줄 알지 못했음에도

그 빈 무덤을 다시 찾아갔습니까?

왜 막달라 마리아는 그냥 집으로 되돌아 가버린 제자들과는 달리

홀로 주님의 무덤 앞에서 서럽게 울어야만 했습니까?

 

 

 

주님 생시에 주님께로부터 들었던 생명의 말씀들이 고스란히

그녀의 심령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 생명이, 그 생명의 능력이, 그 생명의 힘이 그녀로 하여금

다시 주님의 무덤을 찾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했습니다.

 

 

◑적 용

 

▲1. 무덤에서 생명의 예수를 발견하다

무덤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의 현장입니다. 사망의 확인장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생명을 머금은 심령을 지니고

다시 주님의 무덤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은 더 이상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거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뵙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곳은 죽음이 묻힌 무덤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진원지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의 현장이, 아무 생명이 없는 무덤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처럼 끈기 있게 예수님의 생명을 기대한다면,

무덤이 변하여, 생명의 주님의 부활의 임재가 충만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2. 생명의 예수는 끈기로 만난다.

제자들은 아예 포기했고,

베드로와 요한은 가까이 왔으나 포기했고,

막달라 마리아만이 끝까지 인내하며, 버텼습니다.

 

한 아기가 중병에 결려 고통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포기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부모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 같이’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103: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이사야66:13

 

막달라 마리아는 그런 사랑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마음에 품고서, 엉엉 울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듯한 그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요20:16

대사도 베드로와 요한마저 받지 못했던 사랑을 말입니다.

 

끈기 있게 매달려, ‘사랑의 주님’의 그 사랑을

마리아처럼 반드시 체험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주님을 버릴지 몰라도, 그 순간에도, 주님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랑을 깨닫는 사람만이... 마리아처럼,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97.08.31.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편집

 

1. 전체 요약 Summary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 새벽, 빈 무덤을 보고 제자들에게 알렸으나 대부분의 사도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까지 달려가 확인했지만 부활을 깨닫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마리아는 떠나지 않고 무덤 곁에서 울며 머물렀고, 그 끈기로 인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되었다.
부활의 주님은 현실의 ‘무덤 같은 인생’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찾는 자에게 생명으로 임하신다는 메시지이다.


2. 묵상 포인트 Meditation Points

  1. 말씀을 머금는 마음 vs. 흘려보내는 마음
    • 제자들은 부활의 말씀을 들었지만 ‘밑 빠진 독’처럼 흘려보냈다.
    • 나는 말씀을 담는가? 흘리는가?
  2. 부활의 현장에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신앙
    • 기적의 자리에도 영적 무지가 있을 수 있다.
  3. 영적 끈기—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마리아
    • 믿음의 열매는 ‘머무르는 끈기’에서 나온다.
  4. 무덤이 생명의 자리로 바뀌는 은혜
    • 우는 자리, 막다른 골목이 부활의 현장으로 변한다.
  5. 주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
    • 내가 주님을 포기해도,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3. 강해 주석 Exegetical Notes

● 요한복음 20장 2절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 마리아는 부활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부활했다”는 결론이 아니라 “누가 가져갔다”는 현실적 판단을 먼저 했다.
  • 부활은 인간의 경험을 뛰어넘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 누가복음 24:11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 허탄(λῆρος, lêros): “헛소리”, “섞어 말한 것”, “부조리한 이야기”
  • 제자들이 마리아를 신뢰하지 못했음을 강조.

● 요한복음 20:9

“아직 깨닫지 못하더라”

  • 깨닫다(συνίημι/οἶδα 의미 포함):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진리의 영적 이해.
  • 말씀을 들은 경험과 성령의 깨달음 사이의 간극을 보여줌.

● 요한복음 20:10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 영적 미지와 신앙적 회피를 암시.
  • 기적의 문턱에서 돌아가는 인간의 나약함.

● 요한복음 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

  • 그러나(δέ) → 마리아와 제자들의 태도 차이를 분명히 강조.
  • ‘울다’ κλαίω는 통곡, 감정의 폭발을 의미.

● 요한복음 20:16

“마리아야”

  •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호칭은 이름을 부르는 ‘개인적 사랑’.
  • 마리아는 “랍오니”(나의 선생님)로 응답하며 가장 강한 관계적 회복을 표현.

4. 자료 노트 Research Notes

  •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에게 귀신 7을 쫓아냄 받은 자(눅 8:2). 사랑의 빚이 큰 사람은 사랑을 크게 반응한다.
  • ‘빈 무덤’ 논증: 초대교회 부활 신앙의 핵심 근거 중 하나.
  • 부활의 첫 증인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당시 사회적 관습을 깨트리며 진정성을 강화한다.
  • 마리아의 행동은 초기 교회의 신앙 체험 구조(무덤—체험—선포)의 원형을 제공한다.

5. 원어 정리 Key Greek Words

단어원어의미
허탄하다 λῆρος (lêros) 허무맹랑한 말, 망상
울다 κλαίω (klaió) 큰 소리로 울다, 통곡하다
이름을 부르다 φωνέω (phonéō) 친밀한 부르심
깨닫다 οἶδα/γινώσκω 영적·관계적 앎
돌아가다 ἀπέρχομαι 떠나버리다, 뒤돌아서다
무덤 μνημεῖον (mnēmeion) 기억·기념의 장소

6. 금언(메시지/한 줄 명언형)

  • “말씀을 머금지 않으면 기적 앞에서도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
  • “부활의 주님은 끈기 있는 심령에게 먼저 다가오신다.”
  • “무덤이 생명의 자리가 되는 순간은, 포기하고 집으로 가지 않을 때이다.”
  • “주님은 우리가 포기해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 “믿음은 한 번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머무르는 것이다.”

7. 예화 Illustrations

  1. 병든 아이 옆을 떠나지 않는 부모
    • 많은 사람이 포기해도 부모는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 마리아의 끈기는 바로 이런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적 인내.
  2. 황량한 사막의 그릇과 ‘밑 빠진 독’
    • 말씀을 흘리는 사람은 진리를 담을 수 없다.
    • 제자들의 심령을 상징적으로 보여줌.
  3. 무덤을 두 번 찾는 사람은 없다
    •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다시 갔다.
    • 비정상처럼 보이는 행동이 최고의 믿음을 만든다.

8. 주제별 정리 Thematic Breakdown

● 믿음과 의심

  • 제자들: 부활의 말씀을 믿지 않는 전형적 인간 모습.
  • 신앙은 증거보다 마음의 상태에 좌우됨.

● 끈기와 인내

  • 마리아: 떠나지 않는 사랑 → 부활의 첫 증인.
  • ‘머무름’은 신앙의 핵심 행위.

● 사랑의 동기

  • 마리아의 행동은 단순한 의무가 아닌 사랑의 반응.
  •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다.

● 영적 무지 vs 영적 민감성

  • 동일한 현장을 보고도 깨닫는 사람은 따로 있다.
  • 말씀을 마음에 담는 자만이 해석의 눈을 가진다.

● 부활 신앙

  • 무덤이 생명의 자리로 변하는 체험.
  •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는 신앙의 역동성.

마무리 적용

  • 제자들처럼 기적 앞에서도 포기하고 돌아가는 신앙이 있는가?
  • 마리아처럼 울며라도 주님 앞에 머무는 끈기가 있는가?
  • 내 삶의 ‘무덤’이라 부르는 자리가 부활의 현장으로 바뀌길 기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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