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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창 6:11-22)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2. 5.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 창6:11-22

 

 

설교 이수영 목사

 

 

오늘 본문은 지구역사에 전무후무했던 홍수에 의한 인류의 대재앙을 전해주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노아라는 사람이 살았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을 남기고 온 천하를 다 물로 쓸어버리신 일이 있습니다. 이 홍수는 정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창7:11-12는 "...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24는 비가 멎은 후에도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다"고 전합니다. 8:5에서는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한 것 보면 물이 다시 줄어드는 데에 걸린 날이 또 150일 정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 합치면 온 천하가 물에 뒤덮혀 있었던 날만도 거의 1년이 됩니다.

 

노아 때의 이 홍수의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창7:19-23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노아 시대의 이 홍수사건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대개 그 초점이 방주의 모양과 크기, 그 방주에 들어가는 짐승들의 종류와 숫자, 그리고 온 땅을 뒤덮은 홍수에 맞추어져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홍수 그 자체보다도 홍수가 나게 된 원인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창세기의 홍수이야기는 홍수의 원인이 인간의 죄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이 홍수이야기는 그 때의 홍수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는 사실 이상으로 그 당시의 인간의 죄의 홍수 또한 극에 달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조금 앞서는 6:5에 보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다"고 하며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또 오늘 본문 첫 몇 절을 보면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다"(6:11) 하고,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했다"(6:12) 하며,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다"(6:13)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라"(6:6- 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6:17)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홍수이야기가 진정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홍수 그 자체나 사람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본문은 홍수와 그 홍수를 부른 인간의 죄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에 대응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노아 시대의 홍수가 자연의 변덕에 따라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일어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3),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6:17).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의지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인간의 주도적인 행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홍수이야기는 노아를 별 특징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6:9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전할 뿐 다른 묘사가 거의 없습니다. 노아는 이 홍수 이야기 내내 한 마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리시고 명하시는 데 대해 일체의 질문이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6:22)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이 홍수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는 그저 묵묵히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행할 뿐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노도 없었고 돛도 없었으며 그 어떤 항해수단도 없었습니다. 승무원도 필요 없었습니다. 즉 노아의 방주는 항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살려두시기 위해 만들게 하신 피난처였습니다. 거기 탔던 사람들의 운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방주를 탄 사람들이 구조된 것이 전혀 사람의 어떤 지혜나 힘이나 숙련된 기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부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벌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살려두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창6:8은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말함으로써 노아가 살아남은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이지 노아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시려는 의도를 노아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건조하라고 권면 아닌 명령을 하셨습니다. 방주를 무엇으로 어떤 모양으로 얼마나 크게 만들 것인지도 일일이 지시하셨습니다. 누가 그 방주에 들어갈 것이며 무엇들을 얼마씩 함께 방주에 들어가게 할 것인지도 하나님께서 친히 다 일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의 시작과 범위와 기간의 날자까지도 다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언제 방주에 들어갈 것인지를 말씀하셨고, 홍수가 끝나자 방주에서 나오는 데에 관한 특별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노아를 방주 속에 들어가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방주를 닫으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홍수도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닙니다. 8:1에 따르면 오직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창세기의 홍수이야기는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홍수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베드로후서는 2:5에서 이 노아 때의 홍수를 언급한 뒤 2:9에서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는 건지시며 불의한 자는 벌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벧후3:9에서는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에 앞서 참으시는 동안 빨리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눅17:24에서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하신 후 26-27에서는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심판이 불시에 임할 것임을 분명히 하셨고, 갑자기 닥칠 재앙에 대비하지 않고 있는 인간들을 경고하셨습니다.

 

다시 벧후3:13에서는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말합니다. 우리가 의로우신 심판자 하나님을 믿는다면, 비록 지금은 악과 불의를 겪으며 고난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실 새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벧후3:11-12에서는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합니다. 이것은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희망 때문에 오늘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하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사건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은 인간과 이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며 인간과 이 세상의 일에 관해 무관심하시거나 무력하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아무렇게나 살라고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세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며, 인간의 모든 행동을 예의 주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사건은 인간의 사악함과 사람들 사이의 비인간적 행위가 사회와 문명의 존재 자체를 붕괴시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인류의 존재와 그 사회의 존속을 위협하는 부패와 타락을 그냥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다 하셨던 이 세상이 인간의 죄로 더럽게 뒤덮히는 것을 그냥 놔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인간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악한 자들과 불의한 세상으로부터 당하는 고난 때문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 때 홍수로 세상을 깨끗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우리 주변의 악하고 불의한 자들을 쓸어버리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으며, 그 심판은 불시에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세상의 사악함을 단숨에 뒤엎어버리고 쓸어버리실 것입니다. 그 심판은 무섭고 단호하며 결정적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들리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소홀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믿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노아 시대의 홍수사건은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응답은 단지 두려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우리를 위협하시기보다, 사랑과 자비와 은혜로 우리를 얻고자 하십니다. 홍수로 세상을 깨끗하게 하신 후 하늘에 무지개를 세워 보여주신 것은 홍수의 궁극적 목적이 오직 심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창조와 복된 삶의 보장에 있는 것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시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결코 이 세상을 버리시거나 아주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는 또한 노아와 같이 이 세상과 짝하기를 거부하며 의로운 삶을 사는 이를 남겨두시고 그들을 보존하시며 그들을 씨앗으로 하여 새 인류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깨끗하게 하시고 새 인류, 새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사건이 노아 시대의 홍수사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에서 나와 다시 땅에 발을 디딘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8:22)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질서와 삶의 리듬을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아담에게 약속하셨던 것과 같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창1:28-30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꼭같은 복을 노아와 그 자손들에게도 주고 계시는 하나님을 창9:1-3에서 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노아 시대의 홍수이야기는 홀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드러내줍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하신 인류의 역사를 홍수로 지워버리시고 노아로부터 새롭게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불의하고 비정상적인 삶의 환경 속에서도 정의와 정상적인 삶의 질서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며 의롭게 행하는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복된 삶을 약속하십니다. 홍수 후의 무지개를 생각합시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은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했습니다. 노아처럼 말없이 그저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종하여 행하는 이가 복있는 사람입니다. 세상과 짝하여 살지 말고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창6:9)하는 삶을 삽시다.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삶을 살려고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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