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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아내

by 【고동엽】 2021. 12. 4.

값진 아내

 

 

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31-6

 

우리는 인류가 첫 가정을 이루었을 때 장면을 성경을 통해서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로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녀를 아담에게 데려왔을 때

아담은 찬사를 했습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정을 이루는 마지막 장면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2:25)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천국 가정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고 서로 승리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이기는 <윈윈 전략>이 필요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런 <윈윈 전략>이 필요합니다.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이런 <윈윈 전략>으로 살 때 잘 살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철저히 누르겠다고 달려들면 결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윈윈 전략>으로 모두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성공적인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주체는 남편과 아내입니다.

베드로전서 31-7절에는 남편과 아내의 바람직한 자세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는 아내에게, 그리고 7절에서는 남편에게 한 베드로의 권면이 나옵니다.

오늘은 아내에게 한 권면을 통해서 아내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4절을 하반부를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값진 아내란 어떤 아내를 말할까요?

 

1. 남편에게 순복하는 아내

 

요새 각 가정마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남편들이 아내 말을 잘 듣습니다.

어느 날 성남 예비군 훈련장에서 결혼한 사람들에게 중대장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자기 혼자 일을 결정하지 않고 아내 말을 듣는 사람은 오른쪽 의자에 않으십시오."

그러니까 예비군 350명 중에 단 한 명만 남겨 놓고 다 오른쪽 의자에 앉더랍니다.

그때 왼쪽에는 딱 한 사람이 남았는데, 중대장이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아내를 휘어잡으셨습니까? 왼쪽에 당당하게 혼자 있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합니다. "제 아내가 사람 많은데 가면 큰일난다고 하잖아요."

 

이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래도 아내에게 "순복하라!"고 합니다.

열등해서 순복하라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와 같이 순복하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2장 뒷부분에 그 개념이 나와 있습니다.

즉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와 같이 순복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보다 열등하시기 때문에 순복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우주적인 뜻과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서 순복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보다 열등해서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의 전체적인 하나님의 섭리의 승리와 평안을 위해서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순복하라!'는 말에는 또 하나의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즉 남편을 사랑 받아야 할 양떼와 같이 생각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은 열등해서가 아니라 남편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에 처음 아담에게 하와를 주실 때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각 가정에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가정에 돕는 천사를 보내주었는데 그 천사가 바로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보고 "아내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구나"하고 깨닫고,

아내 역시 스스로 자기 가정을 위해 하나님이 보낸 천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의 매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돕는 자세 속에 있습니다.

아내의 교양과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역시 돕는 모습 속에 있습니다.

재테크를 잘하고, 말을 잘하고, 사회적인 능력이 있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남편의 믿음을 도와주고, 또 자녀를 도와서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보이고,

가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천사의 모습을 할 때 아내는 위대해집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돕는 손길을 구체적으로 다 받고 살 수는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천지만물이 여러 방면으로 우리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실제적인 도움은 가정의 천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들은 이 세상의 각 가정에 보내주면서 그런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너희들은 가정에서 천사의 손이 되어주고 천사의 일을 하는 돕는 자가 되어다오."

 

겉으로는 남편 중심적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도 남편은 아내 없이는 못삽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크신 일도 아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남편의 이름이 빛나고 아내의 이름은 대개 감추어지지만

실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중한 일을 지탱하는 존재는 바로 아내들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도와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가 믿음생활을 잘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남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믿음과 소망을 가지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남편이 구원을 얻는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바로 그것이 어떤 살림보다 아내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영적 살림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나는 이 가정에 파송된 선교사이다!"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사라고 하면 해외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선교사보다 더욱 중요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바로 가정선교사입니다.

한 나라의 역사와 분위기를 바꾸는 가장 위대한 선교사는 바로 가정선교사입니다.

그러한 역사를 이루라고 하나님은 아내들에게 가정선교사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처럼 가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역할을 하는 아내는 정말 값진 아내입니다.

 

2. 정결하게 행동하는 아내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에게 순복하려고 할 때 어떤 모습으로 순복해야 할까요?

성경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순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1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대개 믿지 않는 남편들은 아내의 말이 아닌 아내의 행동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을 구원해보겠다고 시간이 있으면 남편에게 설교하려고 합니다.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들어도 꿈쩍하지 않는 남편이 아내의 설교로 움직일까요?

아닙니다. 아내의 설교는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절대 설교자가 되지 마십시오.

요즘 사람들은 가르치려는 말만 들으면 "또 설교한다!"라고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혼자 감격해서 아무 때나 설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설교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말이 아닌 순복하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남편은 그 행동에 감동을 받게 됩니다. 왜 감동을 받습니까?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여기에서 '두려워하며'라는 말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말이 많은 수다스런 모습을 느낍니까? 아닙니다. 묵묵한 사랑의 실천을 느낍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애매히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슬픔을 참고 결국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감동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20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그러므로 여기에서 '두려워하며'라는 말은 묵묵히 고난을 참는 모습을 말합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 감격합니다. 속으로 아내를 존경하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정결함을 느낍니다.

결국 아내의 사랑과 교양과 고결함에 압도되어 남편은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옵니다.

그것이 남편을 이끄는 가장 소중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설교하지 마십시오. 대들지 마십시오. 그런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가 남편보다 성격이 강하고 말을 잘해서 남편을 항상 이겨먹습니다.

그것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남편을 물로 만들어서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아내들은 말로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정말 버려야 합니다.

한참 설교해도 듣지 않고 더 완고해지니까 스스로 실망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어떻게 남편이라면서 저렇게 고집을 부려!" 그러니까 더 좋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방법을 잘못 택한 것입니다. 남편이 가깝고 편하기 때문에 더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이가 가까울수록 설교하는 말은 오히려 잘 통하지 않습니다.

그때에는 말이 필요하지 않고 감동이 필요하고, 순복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어떤 아내는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한다고 말로는 자신 없으니까

남편 들으라고 남편 있는 곳에서 기독교 방송도 크게 틀고 열심히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나중에는 아예 집에도 남편이 안 들어오려고 합니다.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방법은 남편을 구원하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순복하는 모습을 보일 때 남편은 그때서야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의 순복하는 모습은 자녀들에게도 큰 교육이 됩니다.

아들도 그렇지만 딸들도 엄마가 아빠에게 잘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성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후 성 어거스틴은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주님 모시듯 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지성으로 섬기는 어머니의 신앙이 그의 영상에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의 구원을 위해 아내가 해야 할 것은 설교가 아니라 순복하는 정결한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가 남편에게 어떤 설교보다 위대한 설교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마음이 단정한 아내

 

오늘 본문 3-4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무슨 말입니까? 외모의 단정함보다 마음의 단정함을 추구하라는 말입니다.

그런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단정함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말만 많아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수치스런 일입니다.

믿고 나니 진국이 되고 순복하는 사람이 되고 겸손해졌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 소리를 듣기 위해서 아내는 정말 기도하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남편에게 하나님에 대한 말을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믿지 않는 남편을 위해 하나님께 더욱 기도를 많이 하는 아내가 되십시오.

 

잠언 31장에서도 아내는 현숙하고 성실한 여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학교에서 많이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 씀씀이가 매우 현숙합니다. 현명합니다. 그릇이 크고 넓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남편이 믿고 의지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견고하게 하는 초석입니다.

아내에게 현숙한 마음이 없으면 가정에서 수시로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꽤 오래 전에 서울의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외모가 괜찮은 여자가 교회를 잘 다녔습니다. 옷도 잘 입었고, 품위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목사님은 교양이 있는 여자인가 보다 라고 좋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나오는데 그 여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대화해 보니까 너무 남편의 핍박이 심해서 견딜 수 없다고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자세히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남편이 중동에서 열심을 돈을 벌어 송금했는데 그 돈을 가지고 미장원 다니고,

좋은 옷 사 입고, 마사지하러 다니고, 계돈을 떼이고 해서 돈을 다 날렸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돌아와서 그런 사실을 알고 교회 다니지 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들었더니 어제는 손지검까지 하는데 너무 핍박이 심해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목사님이 "기도합시다!" 하고 기도하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여종이 하나님은 잘 섬기려고 했지만 가정을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남편에게 대들다가 한 대 맞았는데 적절하게 잘 맞은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 혹시 맞게 되면 왜 맞는지 잘 깨닫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가정 폭력은 없어야 하지만 사실 맞아야 싸지 않습니까?

그것은 핍박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린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매를 듭니다.

그것을 보고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부모님이 핍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잘못이 생길 때에 정말로 아내를 때려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서 남편이 교회를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핍박이 아닙니다.

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십자가이지, 잘못해서 매맞는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남편이 땀흘리며 벌 때 자기도 땀흘리고 사는 심정을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남편이 중동에서 열심히 살겠다고 노력하는데 자기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성실함과 현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절대 손을 들지 못합니다.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가져야 할 마음은 기본적으로 감사와 존경과 이해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값진 마음이라고 여기실 것입니다.

 

4. 내일의 소망을 가진 아내

 

성경을 보면 많은 믿음의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는 사라의 예를 듭니다.

사라가 얼마나 이사를 많이 다녔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남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하셨다고 국경을 오가는 큰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사라가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이사하면 남자보다 여자가 더 힘듭니다.

 

그런데 사라는 묵묵히 아브라함의 뜻에 순종하고 따릅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님처럼 따랐습니다. 성경은 아내에게 이런 모습을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인천에서 목회할 때 조금 성격이 괄괄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착해보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술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된 데는 아내 성격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끔 남편이 술을 먹고 옵니다. 대뜸 욕합니다. "이 인간! 또 술 먹고 들어왔어!"

그 말에 남편도 화가 납니다. 그러니까 그 착한 남편조차 술김에 손을 듭니다.

그런 경우를 가끔 보면서 "둘 다 잘못이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오면 "몸을 좀 생각해서 그만 드세요"라고 부드럽게 말할 때

남편은 그 다음부터 술을 끊으려고 더욱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그처럼 아내가 순복하는 모습을 보일 때 대개의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암에 안 들어도 주라 칭하며 섬길 때 그 가정은 살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뜻이라고 국경을 넘는 이사를 계속 하니 얼마나 짜증이 납니까?

그러나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최선을 다해 아브라함의 뜻을 따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만약 이사갈 때마다 사라가 투덜댔다면 아브라함은 큰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처럼 위대한 인물 곁에는 대개 묵묵히 순종하는 위대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망이 있을 때 선을 행하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내가 소망을 가질 때 어떤 행동이 나옵니까? 남편을 믿고 격려하며 살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격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내는 남편의 자존심을 손상시켜서는 안됩니다.

조금 미흡해도, 조금 마음에 안 들어도 자존심을 지켜주고 내일을 도모해야지,

화가 난다고, 바로 남편에게 자존심을 긁는 소리를 해 대면 행복을 밟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자존심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존심은 있어서...."라고 하지 마시고

남자의 자존심을 꺾어서 좋게 될 일은 하나도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의 명예와 자존심을 짓밟고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천하의 미인이어도 남자의 자존심을 밟으면 그 아내를 좋아할 사람 없습니다.

남자를 잘 조정하고 진정 성공시키려면 먼저 자존심과 명예를 높여주어야 합니다.

 

남자의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아내로부터 자존심의 손상을 입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존심 손상 당하는 것은 웬만하면 참을 수 있지만

아내로부터 무시를 당할 때는 남편은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돈도 못 벌면서..." 그런 말이 남편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모릅니다.

그런 분은 돈과 사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서 요새 가출하는 남편이 속출합니다.

 

옛날에는 아내가 남편의 학대와 괴롭힘에 도망치고 가출했지만,

지금은 남편들이 바가지 긁는 부인 때문에 가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남편이 세상 어디 가서 살 곳이 있겠습니까?

못난 남편이라도 내 남편이 귀중한 줄 알고 최고로 대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아내의 격려와 사랑을 먹으면서 남편은 진짜 조금씩 최고가 됩니다.

 

아내는 자신의 소중함과 가치를 남편의 보화가 되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목사님한테는 친절하게 대하면서 자기 남편에게는 수시로 인상만 쓰고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만 하면 그것은 결코 돕는 천사의 모습이 아닙니다.

아내는 자기 남편이 맘에 안 들어도 자기 남편이 가장 소중한 줄 알고 격려하고,

남편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어 가정을 가정답게 해야 합니다.

 

정말 가정의 행복을 원하시면 남편을 격려하고 남편의 꿈을 후원해주십시오.

남편이 진정 잘되기를 원하고, 가정이 정말 잘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꿈을 꺾고 자존심을 꺾어서 좋은 일이 있기를 어떻게 기대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내에게 믿음을 주실 때 남편에 대한 믿음도 가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말고 이 세상에서 가장 믿어야 할 대상은 무엇보다도 자기 남편입니다.

남편을 믿어주지 못하는 아내에게는 삶은 있어도 행복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목사님도 믿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편을 더 믿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도 아내를 믿어주고 아내의 소중함을 느끼고 아내를 존경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내는 남편도 필요로 할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필요로 하고,

이 사회도 필요로 하고, 우리 교회도 필요로 하는 참으로 값진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아내들은 믿음으로 가정을 세우는 값진 아내가 되시고,

남편들과 자녀들도 사랑과 용서를 통해 훌륭한 가족 구성원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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