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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남편

by 【고동엽】 2021. 12. 4.

값진 남편//

 

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3장 7절

 

80년대 초 그 당시 제가 너무 좋아하던 유일하게 불렀던 팝송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사랑에 빠진 여자(Woman in Love)"라는 팝송입니다.

그 노래를 들으면 처음부터 가사와 멜로디가 마음을 압도하는 것을 느낍니다.

 

* Life is a moment in space.

* When the dream is gone, it's a lonelier place.

* 인생은 우주 공간에서 한 순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 그런데 만약 꿈이 깨어질 때, 인생은 더 외로운 사막이 됩니다.

 

80년대 초 저는 이 팝송을 수없이 부르면서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1979년 책을 읽다가 마담 드 스파알의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여자의 일생에서는 역사고, 남자의 일생에서는 에피소드다"라는 글입니다.

여자는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데 남자는 사랑을 가볍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랑으로 누군가를 울리는 것은 큰 죄다!"라는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를 들으니까

그 가사에 너무 공감이 가고, 사랑을 안다는 것이 참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매일 그 노래를 듣고 아주 외울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그때 가장 잘 불렀던 찬송은 찬송가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인데

그 찬송을 하다가도 곧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를 부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남자 성도가 무슨 "사랑에 빠진 여자"라는 팝송을 좋아하느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하면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면 이게 보통 노래가 아닙니다.

주님의 신부로서 우리의 신랑이 되신 주님을 향한 놀라운 사랑의 고백이 됩니다.

 

* The road is narrow and long,

* When eyes meet eyes and the feeling is strong.

* I turn away from the wall.

* I stumble and fall. But I give you it all.

* 눈과 눈이 마주치고 사랑의 감정이 강할 때에

* 오히려 사랑의 길은 좁은 길이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 그래도 저는 사랑의 장벽에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한이 있어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 I am a woman in love

* And I'd do anything to get you into my world, and hold you within.

* It's a right I deserve over and over again. What'd I do?

* 저는 사랑에 빠진 여자입니다.

* 당신을 나의 세계로 받아들이고 소유하고 싶어 무슨 일이든 할 것입니다.

* 그것은 나의 영원한 권리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이런 진한 사랑의 고백을 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우리 남편들은 사랑을 일생의 중요한 역사로 생각하는 아내를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값진 남편, 사랑을 아는 남편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값진 아내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는데

오늘은 반대로 본문을 통해 어떤 남편이 값진 남편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지혜와 상식이 있는 남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어떤 분은 아내 생년월일도 모르는 분이 있습니다. 너무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내를 사랑할 때 '지식을 따라'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아내의 생일, 결혼기념일, 좋아하는 것, 취미 등에 관심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처럼 관심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그 사랑이 바로 진짜 사랑입니다.

 

그리고 '지식을 따라'라는 말은 상식을 존중하고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자는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 흔들리지 않는 바람막이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큰 도움은 주지 못해도 아내에게 든든한 맛 하나는 주어야 합니다.

 

서울 강남의 성모병원에서 몇 년 동안 남편 병치레하던 아내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으니까 그래도 남편이 병상에라도 누워있을 때가 든든했다고 합니다.

돈 많이 벌어주면서 불안감을 주기보다 병상에 누워있어도 든든함을 주어야 합니다.

누가 든든합니까? 잔소리하지 않고 말없이 사랑과 관심을 주는 사람이 든든합니다.

 

때로 깐깐하게 행동할 필요도 있지만 아내에게만은 절대 깐깐해서는 안됩니다.

자동차를 들이받고 와도 "도대체 눈이 어디 달렸느냐?"고 윽박지르면 안됩니다.

부부는 실패를 꼬집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관계입니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남편의 사랑과 관심과 위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가정에서 아내의 신앙문제로 크게 부부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남자가 화를 참다못해 '당신 것 모두 가지고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커다란 가방을 방 한가운데 쫙 열어 놓고 말합니다.

"다 필요 없어요. 이 가방에 하나만 가지고 갈래요. 당신 어서 가방 속에 들어가세요'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자기만 의지하는 사는 아내에게 너무했다 싶어서 곧 남편이 사과했다고 합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그 어느 것보다 남편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고,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아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는 남편

 

본문 7절 말씀을 계속해서 보십시오.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창세기 2장 24절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서는 먼저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즉 남편은 혼자 살 수 있는 독립심과 용기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지 않으면 진정으로 아내와 동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은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는 결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와 같은 집에서 산다고 해도 남편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 우뚝 서야 합니다.

언뜻 보면 부모 품을 떠나는 것은 불효인 것 같고 마음에 아픔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지불금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나오는 결혼생활을 위한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하는 교훈을 가장 먼저 가르쳤을까요?

더 좋은 말로, 더 좋은 충고로 결혼에 대한 교훈을 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떠나지 않는 결혼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한다는 말씀에는 몇 가지 실제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1) 남자는 결혼한 순간부터 부모의 재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효도가 그때부터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순간부터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물론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도와주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려는 마음을 가지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섭섭한 일이 자주 생기고, 형제간에도 의가 상하게 됩니다.

자녀들은 결혼한 순간부터 더 이상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삶을 마감하고,

그때부터는 부모님에게 드리는 삶을 시작하면서 그 영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말씀에 함축되어 있는 교훈입니다.

 

2) 남편은 아내와 자기 어머니를 비교하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비교하면서 판단하면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자꾸 실망하게 됩니다.

남편이 어머니를 높이고 아내는 낮추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반대로 어머니를 낮추고 아내를 높이는 것도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남편은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존중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3)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명령은 남편에 대한 명령이기도 하지만

시어머니에 대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시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며느리의 남편사랑보다 더 숭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숭고할수록 멀리서 지켜보면서 기도해주는 것이 낫습니다.

결코 며느리보다 앞서서 남편의 앞길을 이끌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4)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여자도 부모를 떠나라!'는 말입니다.

툭 하면 친정에 가버리는 아내가 있다면 그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부모도 그런 딸을 감싸 안으려고 하면 그것은 딸의 결혼생활을 망치는 것입니다.

분명히 딸을 사랑하지만 부모는 딸을 확실히 떠나보내야 딸에게 행복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새로운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과거를 끊으라고 하십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면 탯줄을 끊고 어머니와 자식관계를 새로 만들듯이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으면 부모와 자식관계도 새롭게 설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떠나 아내와 동거하려는 마음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거한다는 말은 정신적인 면만 의미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이혼의 가장 큰 이유는 성격의 차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성 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은 가볍게 보면 절대로 안됩니다.

 

때로 정신적으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신앙에서도 영혼과 육신이 함께 가는 일원론적 신앙이 바른 신앙이듯이

부부관계에서도 영혼과 육신이 함께 가는 모습이 바람직한 부부관계입니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성 문제에 대한 해결을 서로에 대한 헌신으로 규정합니다.

헌신이란 무엇입니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남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 헌신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4절 말씀을 보면 남편은 아내의 요구에 따라야 하고,

아내는 남편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성경은 부부간의 헌신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와 마음과 생각과 몸으로 동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3. 이해심이 있는 남편

 

본문 말씀을 계속해서 보십시오.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아내의 감정적 부분, 정서적 부분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이란 그릇과도 같아서 한번 그릇이 깨지면 다시 붙이기가 어렵습니다.

 

여자에게는 남자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감정과 정서가 있습니다.

여자가 백화점 좋아하는 것! 남자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지만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려고 하는 남편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분명히 사랑한다고 하는데 아내는 오히려 감정이 상합니다.

아내가 자기 감정을 지나치게 내세워서 그런 결과가 생기기도 하지만

남편이 아내의 감정을 너무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흔히 진정한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는 이해라고 합니다.

나의 감정을 열정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라

내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이해의 깊이가 바로 사랑의 척도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에게는 이해심이 많은 따뜻하고 넓은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외출해야 하는데 아내가 화장대 앞에서 너무 오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화가 나서 아내에게 비꼬아 말합니다. "발라봐야 소용없어!"

얼마나 기분 상하는 소리입니까?

여자에게 아름다움은 가히 절대적인 이슈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분 상하는 소리를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 남편은 아내의 현재의 모습과 위치를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결혼 전에 보니까 얌전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보니까 아내가 대단합니다.

자녀들에게 대하는 것을 보니까 은혜가 충만하기보다 짜증이 충만합니다.

그때 "속았다!"라고 하지 마시고 그 상황을 잘 대처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외모에 대한 이해도 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 외모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남자는 피부 가죽이 두꺼워서 나이가 들어도 여자보다 덜 외모가 상합니다.

반면에 여자는 아이 낳고 키우면서 미모는 없어지고 점차 정방형이 되어갑니다.

그래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듯이 남편은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특히 아내가 자기와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단점도 덮어주어야 합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장점은 금방 잊어버리고 단점은 오래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성공적인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단점을 덮어주는 이해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남편은 "내 성격 알잖아!"라고 하면서 고치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성격을 그대로 가족에게 투사해서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가장 큰 교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라고 하지 말고

아내의 처지와 형편을 이해하려고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4. 아내를 생명의 동반자, 은혜의 동반자로 아는 남편

 

본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남편은 아내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을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유일한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동반자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서로 존중하고 서로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해야 하지만 남편은 자기 맘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남편은 아내와 상의하고 아내와 모든 영역을 같이 나누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께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나눌 때 그곳에 바로 천국이 펼쳐질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고 생각하며 순복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이사에서 불평 없이 아브라함을 따라주었습니다.

정말 사라는 훌륭한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훌륭한 남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종으로 여기지 않고 일생의 동반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면서도 울지 않았고, 기근을 만나도 울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조카 롯이 잡혔을 때도 울지 않았고 롯과 헤어질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집안 갈등으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어쩔 수 없는 집에서 내보낼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바쳐야 하는 상황에서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37세에 아내 사라가 죽자 노인 아브라함의 눈에서 드디어 눈물이 보였습니다.

그처럼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일생의 동반자로 여기고 아내를 위해주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진정 동반자로 여길 때 정상적인 아내는 반드시 순복할 것입니다.

아내가 순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왜 성경대로 살지 않느냐?"고 하지 마십시오.

여권이 높아지고 아내의 성격이 못되서 순복하지 않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 경우에 자기를 동반자로 여기고 더 사랑해 달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아내의 순복을 원한다면 남편은 아내를 동반자로 여겨주어야 합니다.

 

이런 동반자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간의 대화를 잘하는 것입니다.

제발 헐뜯는 대화를 하지 마십시오. 오직 칭찬하는 말, 격려하는 말을 하십시오.

좋은 이야기는 천 마디를 해도 좋지만 나쁜 이야기는 한마디만 해도 해가 됩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시간을 의지하시고 마음이 가라앉기를 바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렇지 않고 감정대로 말해버리면 그 사이에 틈이 생기게 됩니다. 문제가 확대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는 아내는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는 남편은 참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이제 아내를 위해서, 아내의 신앙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에게 돈과 보석과 지위를 주려고 하기보다 기도해주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 사랑하고 동반자로 아껴주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합니까? 그래야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그곳이 바로 에덴일 것입니다.

 

가끔 어린아이들이 묻습니다. "아빠! 천국은 어떻게 생겼어!"

어떤 아빠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우리 집과 같은 곳에 바로 천국이야!"

이 땅에서의 에덴의 삶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가정 천국이 그 비결입니다.

그러나 가정에 천국의 삶이 없으면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항상 사랑과 이해와 용서를 앞세워 천국 가정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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