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 4:23-24)
하나님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예배 장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본문은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발견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정과 신령의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1. 왜 예배자를 찾으십니까? 그만큼 예배가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가 우리의 앞으로의 운명을 가릅니다. 가인과 아벨을 나누는 기준은 오직 예배였습니다. 에서와 야곱, 다윗과 사울을 가른 것도 예배였습니다.
2. 성도는 바른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 '찾는다'는 말은 '경배한다'는 말인데, 부모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간절함이 이 단어에 숨어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아무리 어려워도 자식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찾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이 찾는 것은 사람이 찾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예배 프로그램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오늘날 열린 예배다, 현대예배다, 찬양예배다, 구도자예배다, 드라마예배다, 전통예배다 참으로 예배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이 예배 프로그램을 찾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예배들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관점하고는 너무 다르다는 걸 말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 프로그램을 찾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람들은 예배의 순서에도 민감합니다. 헌금을 설교 전에 해야 하는지, 설교가 끝나고 해야 하는지도 관심거리이며, 헌금 후에 호명을 해야 하는지, 호명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또 성경은 신약과 구약을 함께 본문으로 해야 하는지, 찬송은 몇 장을 해야 하는지, 축복으로 끝낼 것인지 주기도문으로 끝낼 것인지 등등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다면 한번쯤은 성경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씻고 봐도 예배 순서나 종류는 없습니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대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중 일부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나름대로의 예배 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인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드려야 한다는 조상들의 가르침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장소로 고집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예배 관을 수정하신 것입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예배의 존재입니다. 장소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속 말하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이라고 하심으로 오직 그 관심을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예배의 대상을 잘못 선정하면 아무리 노력하고, 혼신을 다하여 예배드려도 소용없습니다.
시96:7절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잊지 마십시오. 예배의 목표는 하나님입니다.
5. 누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격자인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시고 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자가 바로 예배자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을 구원의 아버지라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요1:12-13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자들이니라"
▶새롭게 태어난 사람, 즉 중생을 경험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육체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모시지만,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하는데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아직 성령의 사람이 아니기에 그가 혹 예배처럼 생긴 의식을 행한다고 해도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를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사가 거부된 후에 안색이 변하여 아우를 미워하고 심지어는 동생을 쳐죽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인정하는 사람의 행위가 아닙니다.
삼상16:7절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예배자는 겉이 아니라 속으로 하나님을 먼저 아버지로 모셔야 합니다.
6.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신령'은 말 그대로 성령님을 말합니다. '진정'은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길 수 있습니다.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이뤄집니다.
벧전1:23절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예배를 드리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성공적인 예배자가 먼저 되시기 바랍니다. /할/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짐을 서로 지라(갈 6:1~5) / 임영수 목사 (0) | 2021.12.04 |
---|---|
자유와 그 한계(막 3:1-6) / 임영수 목사 (0) | 2021.12.04 |
향기로운 예배를 드리자! (민 28:1-8) (0) | 2021.12.04 |
그리스도의 제자된 이의 대인관계(막 9:38-42 ) / 이종윤 목사 (0) | 2021.12.04 |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암 3:1-8) / 이종윤 목사 (0) | 2021.12.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