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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여인, 라합(수 2:8-13, 17-18) / 지용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6.
존귀한 여인, 라합
여호수아 2:8-13,17-18


오늘 본문의 라합은 기생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기생보다 좀 낮은 창녀입니다. 원어에도 창녀로 되어 있고, 제가 갖고 있는 13권의 영어 성경에도 모두 매춘부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 성경에도 공동 번역이나 새표준 번역에 보면, 정직하게 창녀라고 되어 있습니다.


창녀, 기생은 결코 귀한 신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놀랍게도 그런 신분이, 창녀 라합이, 기생 라합이 변하여 성경 안에서 별처럼 빛이 납니까?


히브리서 11장에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을 발하는데, 바로 라합이 거기에서 빛을 발합니다. 야고보서 2장에도, 라합을 훌륭한 믿음의 여인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장 5절을 보면, 다윗의 할아버지가 오벳인데, 오벳의 할머니가 바로 라합입니다. 즉 다윗의 할머니가 바로 라합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지구촌에서 최고의 가문은 예수님의 가문인데, 예수님 가문에서 라합이 별처럼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말하면, 라합은 예수님의 할머니 뻘입니다. 어떤 면에서 에스더보다 더 귀한 여자, 한나보다 더 귀한 여자입니다. 한나는 귀한 여자라도 예수님의 가문에 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들지 못했는데,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제일 밑바닥의 여자가 제일 높은 자리의 여인, 최고의 여인이 되었을까요? 사람들에게 조롱 받고 멸시 천대 받던 여자가 어떻게 별처럼 빛나는 존귀한 여인이 되었을까요?


그가 자리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에서 이스라엘로,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그의 삶의 주소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편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창녀지만, 종업원인 창녀가 아닙니다. 주막집의 주인으로서 술을 팔고 웃음을 파는 기생이자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몸도 파는 창녀입니다.


그러니 많은 손님을 접했는데,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보통 백성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도우시는 백성이다. 바로 왕이 열 가지 채찍을 맞은 후에 항복하고 그들을 보내 주었다. 그 백성의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명으로 홍해를 가리키니 홍해가 육지같이 말랐고, 그 백성들이 다 건넜다. 양 한 마리까지 빠지지 않고 다 건넜다. 그런데 추격하던 애굽 군사는 모두 수장을 당했다. 그리고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도 그들 앞에서 여지없이 패배했고, 여호와, 야훼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 땅은 모두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복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문을 들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지만, 복 있는 사람은 믿음이 생깁니다. 할렐루야!


로마서 10장 17절에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할렐루야!


오늘 교회에 구경 오신 분, 친구에게 끌려 오신 분이라도 복 받은 사람은 이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 없는 사람은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3년 간이나 들어도 가룟 유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라합은 믿음이 생겨서 깨달았습니다.


‘아하, 우리 여리고는 망하는구나. 이스라엘이 이 여리고를 차지하게 되는구나. 이제 보니 상천하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구나. 하나님 편에 들어서야 살게 되는구나.’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두 사람이 찾아옵니다. 사람에게는 감이 있습니다.


여러분, 택시 운전하시는 분은 사람을 알아보는데 전문가, 박사입니다. 제가 택시를 탈 때마다 “목사님이시지요?”하는 말을 수없이 듣습니다.


“어떻게 아세요?”하고 제가 물으면 “척 보니 목사님입니다.”하고 대답합니다.


감이 있는 것입니다. 저도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알아 보는데 전문가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영분별력을 받고 신령한 은혜를 받아서 전문가라기보다 다니면서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척 보면 감이 옵니다.


라합도 수많은 사람을 접하기 때문에 척 보면 알았습니다.


‘아, 이 사람들이 우리 땅을 엿보러 온 스파이들이구나.’하고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집에 자주 들르는 국가 정보원이 왔습니다. 제가 상상하기에 그렇습니다.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어제 말씀 준비할 때에 그림을 보듯이, 드라마를 보듯이 제게 떠오르며 믿어졌습니다. 아니면 왕이 어떻게 그렇게 금방 군사를 보냈겠습니까?


국가 정보원들이 의혹에 찬 눈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때 기생 라합은 생각했습니다.


‘아하, 저 분들도 감을 잡았구나. 그러면 이제 특수부대원들이 와서 저 분들을 잡아 가겠구나.’


그리고 그는 고민을 했습니다.


“나는 여리고 백성이고 여리고 편에 있는데…. 저들은 하나님의 편인 이스라엘 백성인데 어떻게 하나? 그래, 내가 사는 길은 하나님 편으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그는 자리를 옮기기로 결단하고 그들에게 갔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감으로 아는데, 곧 군사들이 와서 당신들을 잡아 갈 것이오. 지금 나가면 당신들은 잡힐 것이니 빨리 나를 따라오시오.”


라합은 옥상으로 올라가서 그들을 삼대로 덮었습니다. 삼대는 우리 한국의 삼 같은 것으로 말려서 옷을 해 입는 것인데, 그 풀로 그들을 덮은 후에 가만히 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옥상에서 내려가자마자 군사들이 몰려왔습니다.


여러분, 간첩이 한 사람만 나타나도 때로는 한 사단이 움직입니다. 간첩을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군사들이 왔는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대장이 말했습니다.


“그 수상한 두 사람을 끌어내라! 어디 있느냐?”


라합은 모험을 했습니다.


“대장님, 두 사람이 오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무엇 하러 왔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해가 질 때에, 황혼이 들 때에, 성문을 닫을 시간에 그들이 급히 나갔으니 빨리 따라가 보세요. 추격하면 잡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말했습니다. 만일 대장이 “의심스럽다. 집안을 수색하라. 조사하라.”고 했으면 라합은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장이 그 말을 믿고 그들을 추격하기 위해 군사들을 데리고 성문 쪽으로 나갔습니다.


두 사람은 기생 라합 때문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라합이 살게 됩니다. 라합이 하나님 편에 서서 존귀한 여자가 됩니다. 할렐루야!


어느 편에 서느냐가 그렇게 중합니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정치하는 사람은 심각합니다.


‘여당에 서느냐? 야당에 서느냐?’


내가 감옥에 갈 사람이라도 줄을 잘 서면 감옥에 가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별로 죄를 짓지 않았어도 줄을 잘못 서면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여당이냐, 야당이냐 하는 것은 정치 행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내가 여당에 설 것인가, 야당에 설 것인가를 무척 고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느냐, 세상 편에 서느냐 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고민보다 더 심각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 편에서 살면 영원히 살고, 세상 편에서 살면 영원히 죽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의 죄가 많으면 라합보다 많습니까? 라합은 창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창녀만큼 죄를 많이 짓습니까? 라합이 하나님 편에 서니 새 여자가 되고 새 피조물이 되고 예수님의 가문에 든 것처럼 오늘 여러분과 제가 창녀같이 죄가 많아도, 창녀보다 더 죄를 많이 지어도 하나님 편에 서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허물을 덮임 받습니다. 이것은 틀림 없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애국자 브루스가 독립 운동을 하다가 에드워드 황제의 군대에게 포위를 당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고향 가까이에서 당했습니다. 사력을 다해 도망갔지만, 포위망이 자꾸 좁혀졌습니다.


‘영락없이 죽는구나.’하고 포기하는데, 어디서 익숙하게 듣던 개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에드워드 황제의 사령관이 브루스의 애견들을 풀었던 것입니다. 브루스의 개들이 브루스의 냄새를 맡고 따라가면 잡으려고 풀어 놓은 것입니다. 브루스가 몇 마리의 개를 길렀는데, 그 개들이 자기 주인의 냄새를 맡고 짖으면서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쿠, 저 어리석은 개들이 나를 찾아오면 내가 죽는 것을 모르고 찾아오는구나.’


따라합시다.


“개는 개다.”


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절제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좋아도 개는 개입니다.


브루스는 ‘한 번 더 몸부림 쳐보자.’하고는 일어나서 사력을 다해, 가시에 찔리면서, 나무에 부딪히면서 올라갔습니다. 개한테 잡히면 죽으니까 사력을 다해 올라가 보니 반대편 아래에 냇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냇물을 보자 반가워서, 어차피 잡히면 죽으니까 이판사판으로 데굴데굴 뒹굴어 물 속으로 들어가서 한켠에 숨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냄새가 사라졌습니다.


그의 냄새를 맡고 달려오던 개들이 냇가에 오자 물 냄새밖에 나지 않으니 허공을 보고 짖었습니다.


그래서 브루스가 잡히지 않고 살았습니다.


사람마다 냄새가 있는데, 개는 주인 냄새를 압니다.


우리 모두에게 냄새가 있습니다.


제가 신촌에 살 때는 몰랐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부터는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12층에 사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고통입니다. 술 먹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 엘리베이터는 술 냄새가 지독합니다. 담배 골초가 타고 내린 엘리베이터는 담배 냄새가 지독합니다.


그 냄새가 싫어서 저는 아침이나 낮에는 운동도 할겸 대개 걸어다닙니다. 그런데 밤에는 걸어다니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밤에 계단을 올라가면 자동으로 켜지는 센서등의 불이 12층까지 다 켜지니 전기세가 아까워서입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모릅니다. 특별히 밤 11시가 넘으며 술꾼들만 타는지, 술 냄새, 마늘 냄새, 개고기 냄새로 감당하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냄새이고, 죄악의 냄새는 더 엄청납니다. 죄악의 냄새는 지옥의 냄새, 저주의 냄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 가면 은혜의 냇물이 흘러서 우리의 죄악이 다 씻겨집니다.


나아만 장군이 요단 강에 들어가니 깨끗하게 되었듯이, 은혜의 강에 들어가면 죄인인 우리가 의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보배 피가 흘러서 거기에 들어가면 우리의 냄새가 없어집니다. 더러운 내 냄새가 없어집니다. 예수님의 향기만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오늘 예수님 편에, 하나님 편에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편에 서신 분은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따라합시다.


“나는 새 피조물이다.”


내 죄가 많아도 하나님 편에 서면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내가 간음을 했고, 남의 집이나 친구 집에 가서 크림을 훔쳐 오고 립스틱을 훔쳐 오고 도둑질을 했지만, 내가 죄인이지만, 예수님 편에 서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오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여러분, 이 작은 지구촌에도 60억의 사람이 사는데, 이 지구가 수억만 개, 수천억 개 있어도 품어주는 하늘이 얼마나 큽니까?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가슴은 하늘보다 더 넓습니다. 할렐루야!


‘아이구, 내가 하나님 편에 서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해 하실까?’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하나님 편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그리고 하나님 편에 서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가 많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상처를 많이 받았어도 기생 라합만큼 많이 받았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창녀 집에 오는 남자들 중에 젠틀한 신사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창녀 집에 오고, 기생 집에 오는 남자들 중에 괜찮은 남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다 막가파들이 아니겠습니까? 막사는 사람, 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기생 집에 오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와서 라합을 사람 대접해 주었겠습니까? 말을 따뜻하게 해 주었겠습니까? “라합 씨, 라합 양.”이라고 불렀겠습니까? “야, 아무개.”하며 욕도 했을 것입니다.


수많은 남자들에게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리고 친척 결혼식에 가면 친척들이 눈총을 주었습니다.


“아유, 쟤가 왜 왔어? 집안 망신시키려고 왔나? 아니, 창녀 주제에 결혼식에 오면 어떻게 해? 쟤와 놀아난 남자들이 오면 어떻게 하라고 왔나?”


친척들에게도 상처를 받고,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명절에 가면 “오냐?” 하면서도 “아이, 오지 말지.”하며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한없는 상처를 받은 여자가 라합입니다.


여러분의 상처가 많은들 라합만큼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상처투성이 여자도 하나님 편에 들어가니 하나님께서 다 덮어 주시고 싸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상처가 아무리 커도 라합이 받은 것만큼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남편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또 남자들은 아내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회사에서는 높이 높임을 받는데, 집에서는 발톱의 때처럼 취급 받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한테 왕따 당하고, 회사에서 왕따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라합처럼 상처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어떤 상처를 아무리 크게 받아도 괜찮습니다.


라합도 하나님 편에 서니 상처를 싸맴 받고 귀한 여자, 건강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편에 서면 상처를 싸맴 받고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독수리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날기 대회 때 실패한 독수리, 이런 저런 경기에 실패한 독수리, 힘 있는 독수리에게 할큄 당한 독수리, 패배한 독수리들이 벼랑 끝에 모여서 서로 신세 타령을 했습니다.


“이렇게 할퀴고 찢기고 패배한 우리가 살아서 무엇 하겠냐? 우리보다 못난 이들이 어디에 있겠냐?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자.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만장일치로 “죽자!”하고 바다에 떨어져 죽기로 했습니다.


독수리도 날갯짓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날갯짓할 때 살지, 날갯짓하지 않으면 바위에 떨어져 죽고,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기도가 날개와 같은 것입니다. 목사님도 기도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장로님도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의 밥이 됩니다. 그러나 새 신자도 기도로 날갯짓하면 승리하게 됩니다.


독수리들이 바다에 떨어져 죽으려 할 때, 망루에서 파수하고 있던 영웅 독수리, 독수리들의 최고 선망의 대상인 영웅 독수리, 빛나는 독수리가 감을 잡고 좍 날아왔습니다.


“왜 그러느냐?”


“우리, 자살하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실패, 실패하고 할큄 당한 상처가 많은데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때 모든 독수리의 부러움을 받는 영웅 독수리가 갑자기 날개를 쫙 폈습니다. 놀랍게도 곳곳마다 상처가 가득했습니다.


“봐라! 이것은 날기 대회 때 가시에 찔린 상처다. 이것은 윗독수리한테 할큄 당한 상처다. 이것은 싸움에서 받은 상처다. 내가 이렇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것은 보이는 상처에 지나지 않는다. 이보다 더 많은 상처는 내 마음에 받은 상처다. 그러나 내가 인내하고 인내해서 승리하여 오늘의 영웅 독수리가 되었다. 너희들,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느냐? 상처 받지 않은 새가 어디 있느냐? 자, 우리, 힘을 내어 날자.”


그래서 모든 독수리가 힘을 내어 창공을 날아가 새로운 독수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내 상처를 봐라. 내 양손의, 양발의, 허리의 창 상처를 봐라. 내 이마의 가시 상처를 봐라. 등에 매 맞은 상처를 봐라.”하시며 상처를 보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상처는 “내가 이렇게 많은 상처를 받아도 견디고 살았으니 너희도 견디고 살아라.”하는 위로의 상처가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상한 것은 너희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함이요, 내가 이렇게 찔림 당한 것은 너희의 허물을 덮어 주기 위함이요, 내가 상처 받은 것은 너희의 상처를 싸매주기 위함이요, 내가 채찍에 맞은 흔적이 있는 것은 너희의 병을 치료하기 위함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날개 아래 거하라.”


우리 주님께서는 영웅 독수리같이 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상으로 “내가 네 상처를 책임진다. 내가 네 상처를 싸매어 주겠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어떠한 상처를 받아도 하나님 편으로 오면 싸매임 받고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한, 아주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 왕과 같이 그 상에서 먹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저도 제 아내와 같이 대통령 내외분과 마주 앉아 음식 먹은 것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따라합시다


“그것, 별 것 아니다.”


따라합시다.


“세상 높은 사람들, 별 것 아니다.”


여기에 높은 사람들이 계셔서 미안합니다만, 따라합시다.


“높은 사람들, 별 것 아니다. 내가 별 거다. 내가 별이다.”


왜입니까? 하나님 편에 있으면 새 피조물 되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13절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제 아내는 김 씨입니다. 그런데 저랑 결혼하더니 제 아버지, 어머니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있던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 편에 와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대통령, 장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만왕의 왕(The King of Kings)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매일 먹고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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