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의 술집
고린도전서 12:13
오늘 낮 시간에는, 세상의 왕궁들을 다 모아 놓고 대통령궁들을 다 모아 놓고 엄청난 빌딩들을 다 모아 놓아도 양곡교회 하나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우주, 이 지구도 그 가치는 교회보다 못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할렐루야! 또 예수님의 몸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시고, 교회에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영광이 항상 거하십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을 충만케 하십니다. 교회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찬송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노래방에 계시면서 "다 내게로 나오라. 나를 찬송해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목사님, 노래방에도 찬송이 있습니다."라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 찬송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노래방에 와서 찬송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교회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할렐루야!
교회에서 기도하여 응답을 받고, 지은 죄를 교회에 와서 용서 받고, 또 교회에서 영생하는 말씀을 먹고 성찬에 참여하여 영원히 살게 되고, 만족하게 되고, 정신적으로 보람이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장에 양이 입히고 골짜기에 양곡, 곡식이 덮이는 모든 복이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일생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 충성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오면 좋고, 돌아갈 때는 그리워서 교회를 다시 쳐다보는,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교회에는 한 가지 용도가 더 있습니다.
교회를 술집이라고 하십니다. 바로 직선적으로 그렇게 표현은 하지 않지만, 교회는 술집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이것은 하나의 의무입니다.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거나 마시지 않는 것은 자유이지만, 교인이 성령의 잔을 마시는 것은 의무입니다.
『We were all given the one Spirit to drink.』
마시도록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성령의 술잔으로 성령을 자꾸 마셔야 됩니다.
물론 성령님은 인격자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항상 인격체로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내가 이제 내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라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주님,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하는 근심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예수님께서 여기에 계시면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있을 때는 예수님과 같이 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예수님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예수님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면 보혜사가 내려 오셔서 모든 사람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그냥 계셨다면 지금 연세가 2000세이십니다. 2000세가 되신 할아버지 예수님께서 거기에 계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려면 이스라엘까지 가야 됩니다.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올라가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성령님께서 우리 각 사람 안에 임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성령님은 예수님 대신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대신 보내 주신 성령님이십니다. .
성부, 성자, 성신은 삼위일체 한 영이십니다. 그런데 세 인격체가 있습니다.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태양은 하나이지만 태양의 본체가 있고 열이 있고 빛이 있는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잎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분명히 Three persons, 세 인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부, 예수님은 성자, 보혜사는 성령이신데, 서로 다릅니다.
따라합시다.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고 성령은 성부가 아니시다."
성자는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은 성자가 아닙니다. 또 성령은 성부가 아닙니다. 다 다릅니다.
그런데 따라합시다.
"성부, 하나님이시다. 성자, 하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이시다."
서로 다른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Three persons in one. 하나 안에 세 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에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암컷과 수컷이 교미해서 새끼를 낳는 것은 생물학적인 차원입니다. 아버지는 남자고 딸은 여자지만 아버지와 딸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것은 생물학 차원이 아니고 사회과학 차원입니다.
그런데 성부 성자 성령은 하늘 나라 차원이기 때문에 우리의 세상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밤송이를 까면 알밤이 나오고 벼를 찧으면 쌀이 나오듯이,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것은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가 계신데 하나다.'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부인하면 이단인 것입니다. 이것은 공부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으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을 받으면 '아하,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인데 하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반드시 받아야 됩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부터 죽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본격적으로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신 후에 숨을 뿜어내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Receive the Holy Spirit.)"
성령을 예수님께서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도, 500명 성도들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너희들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500명 되는데, 120명만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낮 1부, 2부, 3부에 나오신 분들이 밤에도 다 나왔으면 우리가 다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모두가 다 나오지 않는 것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낮 예배를 드렸던 분들이 다 나와서 지금 예배를 드린다면 혼돈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예수님께 부탁을 받았는데도 500명 중에 120명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용수 목사가 500명에게 부탁했는데 열 명만 나왔다 해도 그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120명이 모여서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성령은 인격체입니다. 그래서 한 번 오신 성령께서는 떠나가지 않으십니다. 영원히 우리 안에 계십니다.
"내가 너를 그와 같이 버리지 아니하리라.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 수 있어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못하십니다.
호남의 한 장로님이 어떤 일로 시험에 들었습니다.
장로님도 시험들 수 있습니다.
따라합시다.
"장로님도 사람이다."
장로님도 사람이라 화낼 수 있고 실수할 수 있고 시험들 수 있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어떤 일로 시험에 들어서 그만 교회를 10년 간이나 다니지 않고 술만 마시는 술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타락하면 아주 독한 술꾼이 된답니다.
장로님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는 술꾼이 되어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하루는 점쟁이가 술집 문을 열고는 말했습니다.
"여기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는데 어서 가 주시오. 점괘가 내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허허, 술집에도 예수쟁이가 다 오나?"
술집의 주인이 자기 집 안채에 점쟁이를 불러다 놓고 점을 보는데, 점쟁이가 아무리 점을 쳐도 점괘가 나오지 않으니 가게로 왔던 것입니다. 진짜 귀신 들린 점쟁이는 예수 믿는 사람을 알아 봅니다.
점쟁이가 "아니오, 여기에 한 사람이 있어요. 제발 좀 가 주시오. 점을 칠 수가 없어요. 점을 치게 제발 어서 가 주시오."하면서 자꾸 장로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장로님이 얼마나 거북했겠습니까? 그 술집을 뛰어나와 옆에 있는 나무 아래에 엎드려 울며 회개했습니다.
"내가 교회를 떠난 지 10년이나 되었는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내게서 성령을 거두어 가지 않으셨네요."
그리고 교회에 가서 그날 새벽부터 일등 장로님이 되었답니다.
혹 이 말씀을 듣고 '나도 한 10년쯤 교회를 떠나가 볼까?"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는데,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험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상합니다 한 번 오신 성령께서는 떠나가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천국까지 이끌고 가십니다.
마귀는 어쨌든 지옥으로 끌고 가려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천당까지 인도하시기 때문에 성령 받은 사람은 지옥에 갈 수 없습니다. 지옥으로 가고 싶어해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그러니 하늘 나라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할렐루야!
성령께서는 인격자로서 보혜사로 오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벌써 거듭난 것입니다. 성령 받는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이름이 하늘 나라 생명록에 기록되었습니다. 천사도 그 이름을 지우지 못합니다. 권세자도,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피조물이나 그 누구도 성령 받은 사람의 이름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방해할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도와 주십니다.
"내가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낸다."라고 하실 때 '보혜사'는 the Counselor, Counselor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오셔서 늘 감동을 주십니다.
'아이고, 오늘은 좀 쉴까?'하면, '아니야, 교회에 가야지. 교회에 가.'하시며 자꾸 우리를 감동해 주십니다.
'야, 오늘은 저기 한번 가볼까?'하면, '안 돼. 거기에 가면 시험 들어. 우리는 거기에 가면 안 돼.'
그리고 진리를 자꾸 사모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지저분한 책을 보면, '아이고, 왜 그래? 성경을 읽어. 성경을.' 하시고, 노래방에 가면 '아이고, 왜 그래? 양곡교회에 가. 양곡교회에 가.'하는 감동을 주셔서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가 자신을 좀 나타내려 하면 '야, 주님 영광만 나타내.'하시며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시고 우리는 낮추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4절에 말씀하십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성령께서는 우리를 자꾸 낮추시고 주님만 높이도록 하십니다.
성령님은 참 고마운 분이십니다.
'너, 남편이 그러면 되느냐? 남편으로서 아내를 그렇게 괴롭히면 되겠니? 그러지 마라.'
'너, 아내가 남편에게 그렇게 하면 되느냐? 성경에 무엇이라 가르쳤더냐?'
이렇게 자꾸 깨닫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성령님께서는 분명히 인격자이시고, 인격자로 카운셀러로 우리에게 오셔서 대화하시고 인도하시는데, 또 성경은 성령은 마치 물 같고 술 같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계속 마시고 계속 채워야 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도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성령을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릇에 물건을 채우듯이 가득 채우라는 것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그러나 이상해도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한번 받으면 성령님은 늘 내게 계십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듯 물을 마시듯 계속해서 성령을 채울 때 우리가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라도 장로님이라도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전도도 못하고 생기도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어도 꺼벅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고, 힘이 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말씀을 먹어도 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어른들이 약주 한 잔을 하시면 밥맛이 돌아온다고 하듯이, 말씀이 맛이 있습니다. 설교가 맛이 있습니다. 성경 읽을 때 맛이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경만 읽으면 잠이 오는 사람은 성령의 술에 취하지 않아서입니다. 성령의 술에 취하면 성경의 입맛이 나서 좋아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은 술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13절에 보면, 성령 충만해서 막 기뻐하는 성도들을 보고 사람들이 "저 사람들이 술에 취했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아침 아홉 시인데 술에 취하다니!(It's only nine in the morning!) 아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다." 할렐루야!
성령을 술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술은 먹으면 먹을수록 얼마나 손해가 많습니까?
잉거솔은 '술잔과 입술 사이에는 악마가 왔다 갔다 한다.'고 했습니다. 술을 마실 때에 술잔과 입술 사이에 악마가 왔다 갔다 한다고 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술아, 네 적당한 이름이 없느냐? 내가 이름을 지어주리라. 악마다.'라고 했습니다.
긴도는 말하기를 '술은 아이들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고, 아내를 공포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고, 어머니의 머리를 쉬게 하는 것이고, 부모를 무덤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잠언 23장 21절에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술 취하면 부끄럽게 됩니다. 노아는 의인인데 술 취하니 발가벗고 누워서 창피를 당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롯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창세기 19장에 보면 술을 많이 마시고 딸 침상에 올라가서 딸하고 사랑을 해 가지고 아이를 낳습니다. 큰딸한테 올라가고, 그 다음날에는 작은딸한테 올라가서 아이를 낳습니다.
술을 마시면 개처럼 됩니다. 온전한 사람도 술에 취하면 그만 이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도 한번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20년 전에 영주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 목사님이 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학교 선생님 한 분이 술을 마시다가 그만 통행 금지 시간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사택으로 가는 길은 파출소 앞을 지나는 길뿐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열두 시가 넘었으니 잡히는 것은 분명하고 그렇다고 집에 가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머리가 좋은 선생님이 그만 개처럼 기어서 파출소 앞을 지나갔습니다.
경찰이 보니 분명히 개처럼 기어가는데 개가 아니었습니다.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거 누구요?"
"술 먹은 개요."
그래서 경찰이 그 선생님을 잡지 못했답니다. 개를 어떻게 잡겠습니까? 학교 선생님도 술을 마시니 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포도주를 조금 마시는 것은 약이 됩니다. 그러나 술을 많이 마시면 몸도 상하고 인격도 상하고 다 상하게 됩니다. 술이 사람을 얼마나 해롭게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술을 마시면 그렇게 해로운데도 세상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술집에 가는 것은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고 사는 재미가 없으니 가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사니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술이라도 마셔야 하지 않겠나 하게 됩니다.
그러나 술은 마시면 망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술은 마실수록 축복입니다. 마실수록 신사가 됩니다. 마실수록 훌륭하게 되고 부자가 됩니다. 유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술을 마시면 담대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의 나이가 40이라 했으니, 40년간 일어나지 못한 앉은뱅이를 만납니다. 그때 베드로에게 믿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우리를 보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일어났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오천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회에 이적과 기적이 나타나는 것은 전도의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병이 낫는 것도 감사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한 학생이 피부병으로 고생하다가 저랑 같이 기도해서 깨끗이 나으니 외할머니, 할머니를 비롯해서 친척 열세 분이 한 날에 와서 등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아 보아도 또 죽습니다. 우리 육신의 병은 나아 보아도 또 죽습니다. 그러나 낫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4일 만에 살아나니까 나사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물론 나사로는 나중에 또 죽습니다.
어쨌든 기적이 일어나도 결국 사람은 죽습니다. 영혼만 영원히 삽니다. 할렐루야! 훗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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