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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굳게 서라(왕하 4:28-37)/ 지용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6.

굳게 서라.
열왕기하 4:28-37


미국의 우리 교회에 밴 한 대가 있습니다. 그 밴이 이리 박히고 저리 박히고 이리 찌그러지고 저리 찌그러지고, 언제나 지저분했습니다.
그 밴을 새로 부임한 전도사님께 맡겼습니다. 서울대학교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립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능한 인재를 제가 미국으로 불러서 우리 교회를 섬기게 했습니다. 대학원 공부도 마쳤고 미국에 있는 신학대학에서 신학 공부도 한 분이라 우리 교회 전도사님으로 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물 밴이 전도사님을 만나고 나더니 새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전도사님이 박힌 것, 쭈그러진 것을 다 펴고 안팎으로 얼마나 깨끗하게 사용하는지, 마치 자동차가 부활된 것 같았습니다. 늘 고물로 있던 자동차가 주인을 잘 만나니 그렇게 바뀐 것입니다.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도 자꾸 관리해야 됩니다. 먼지가 묻어 있는 부분이나 찌그러진 부분을 그냥 두면 거기에 사탄이 들어와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틈을 타지 못하도록 구겨진 것, 찌그러진 것을 바로 펴고 언제나 반짝이는 믿음의 자동차로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됩니다. 특별히 말씀에 깨어 있어야 됩니다.
말씀에 깨어 있는 사람은 얼굴도 다르고 눈도 다릅니다.
링컨 대통령에게 한 장관이 어떤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각하, 이 사람은 아주 유능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마음에 들면 장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링컨 대통령이 그 사람의 사진을 보더니 얼굴이 잘못 생겨서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장관이 말했습니다.
"각하, 이 사람이 이렇게 생긴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아니오. 이 사람의 얼굴을 보니, 이 사람은 성경 한 절도 읽지 않은 것 같소."
링컨 대통령이 그 사람의 생김새나 피부를 본 것이 아니라 다른 면을 본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못난 사람도 잘나 보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잘난 사람도 도둑놈 고수 같아 보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우리 속 사람도 새롭게 하고 겉모양도 새롭게 합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가 말씀에 잠길 때 마음도 새로워지고 얼굴도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수넴이라는 아늑하고 조용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한 귀한 부인이 살았습니다.
여러분, 서울에, 대구에, 부산에, 광주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사람이 최고로 귀한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원에, 마산에, 진해에 많은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사람이 최고인 것입니다.
수넴의 그 귀한 부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의 사람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니 모든 성도들도 사랑해서 시편 16편 3절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면 교회도 귀하고 하나님의 종도 귀하고 성도도 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관심이 없으면 교회에도 관심이 없고 주의 종에게도 관심이 없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면 모든 성도도 귀히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을 특별히 사랑하고 섬겨서 하나님께 기억됩니다. 하지만 남편은 늙었고 아이도 없습니다. 그러니 사는 즐거움이 없어 보이는데도 잘 살았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선지자 안나는 결혼한 지 7년만에 과부가 되어 84년간 혼자 살았습니다. 84년간 혼자 산 여자에게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주야로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에 살았습니다.
남편이 주는 즐거움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에는 비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주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에는 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 없어도, 아내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있으면 이 세상을 능히 기쁨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수넴 여인은 아들도 없고 딸도 없었지만, 남편도 늙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기쁨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수넴 여인이 사는 마을 앞으로 요즘으로 하면 목사님인 엘리사가 자주 지나다녔습니다. 여인은 엘리사 목사님을 볼 때마다, 그때는 식당이 제대로 있는 것이 아니니 '얼마나 시장하실까?'하고 마음이 쓰였습니다.
다 같이 믿음 생활을 해도 목사님께 마음을 쓰고 목사님을 걱정하는 교인이 있는가 하면 아예 관심이 없는 교인도 있습니다.
수넴의 동민 모두가 하나님을 섬겼지만 수넴을 지나가는 엘리사 목사님에 대해 관심을 가진 가정은 그 한 가정뿐이고 관심을 가진 사람은 그 여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수천 명의 교인이 있지만 제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 교인은 많지 않습니다.
한 번은 어떤 분이 제게 "목사님,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12년 동안 양곡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잘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12년 동안 우리 교회에 다녔다고 하는 그분을 제가 몰랐습니다.
'이 분이 우리 교인이었나?'
누구의 잘못입니까? 물론 제 잘못입니다. 12년간 우리 교회를 다녔는데 제가 몰랐으니 목사로서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도 저와 피장파장입니다.
우리 교회를 12년간이나 다녔는데 어떻게 제가 얼굴도 모른단 말입니까?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특별히 귀히 여겨서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저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a holy man of God)이에요."
저는 오늘 오후에 이 말씀을 읽다가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Who am I)? 사람들이 나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고 부르는가? 내 아내가 '내 남편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아들들과 딸이 '우리 아빠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야.'라고 하는가?"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한국의 목사님들, 아니 세계의 모든 목사님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불림 받기를 원합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주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은 남편에게 '저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니 우리가 특별히 대접합시다."하고 의논한 후, 엘리사가 그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자기 집으로 모셔서 정성을 다해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엘리사가 늦은 시간에 그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그 마을에 호텔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넴 여인이 또 남편과 의논했습니다.
"여보, 우리 집에 방 하나를 더 짓고 침상과 의자와 책상과 촛대를 준비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엘리사 선지자가 늦은 시간에 이 마을을 지나가실 때는 우리 집에서 묵으시도록 해 드립시다."
남편도 아내의 의견에 찬성해서 방을 아름답게 짓고 침상과 아담한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준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성경을 읽으며 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부이이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집회를 인도하러 다니다보면, 저도 특별한 대접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강사 목사를 대접하기 위해 특별히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서울의 한 교회에서 집회를 할 때,그 교회 교인인 회사 사장 내외분이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호텔에서 교회로, 교회에서 호텔로 저를 꼭 태워 주었습니다. 운전 기사를 두고 남편이 직접 운전하고 부인은 제가 차에 타서 기도를 마치고 나면 따끈한 차를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고마운지 그 내외분을 위한 기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에서는 복음을 마음껏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강사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들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강사는 이상한 차를 타게 하고…, 그러면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그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곧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하러 왔는데 이러면 안 되지요.'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지만 말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마음을 써 주면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엘리사도 수넴 여인의 정성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그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식사 대접을 해 주더니, 이제 방까지 마련해서 해 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소금을 먹으면 물을 쓰는 법입니다.
엘리사는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생각하다가 비서, 늘 함께 다니는 종 게하시에게 부인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부인이 오자 엘리사가 물었습니다.
"부인, 왕이나 군대 장관에게 부탁할 일이 있소?"
저 같은 목사도 대통령도 만나고 장관도 만나고 도지사도 만납니다. 저 같은 사람도 때때로 높은 사람을 만나는데, 엘리사는 당시 그 나라의 최고 지도자이니 어떠했겠습니까? 엘리사의 후원 없이는 왕이라도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엘리사가 부탁하는 것은 왕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정도로 나라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양곡교회도 그런 힘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양곡교회의 후원이 없으면 도지사도 못하고, 우리 양곡교회의 후원이 없으면 국회의원도 안 되고, 우리 양곡교회의 후원이 없으면 나라도 안 되는 힘있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힘있는 엘리사가 부인에게 그렇게 물어본 것은 무슨 부탁을 하든지 들어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부인은 "우리는 그저 편안합니다."하고 구할 것이 없다고 하며 그냥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그 부인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남편은 이미 늙어서 벼슬을 할 수도 없고 아이도 없으니 부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 부인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어떻게든 보상을 해 주고 싶어서 게하시에게 물었습니다.
"게하시, 내가 이 집에 무엇을 주면 좋을까?"
"하나님의 사람이여, 이 집에는 아이가 없습니다. 이 집에 재산은 많지만 아이가 없습니다."
게하시의 말을 듣고 엘리사는 다시 부인을 불렀습니다.
"부인, 돌이 되면 아들을 품에 안을 것이오."
"저를 속이지 마세요. 저의 남편은 늙었고 저도 이런데 어떻게 아기를 가집니까?"
그러나 돌이 되니 엘리사의 말대로 부인은 아들을 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입의 말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저도 감히 오늘의 엘리사처럼 여러분에게 축원합니다.
여러분 중에 아기를 가져야 되는데 갖지 못한 분은 내년 이맘 때, 돌이 될 때 아들을 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도 엘리사처럼 밥도 얻어먹고 여러분의 집에 가서 잠도 자고 축원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했다 치고 제가 축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잉태하지 못한 하나님의 딸들이 있으면 내년 이맘 때 아들을 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입의 말이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한 젊은 부부가 쌍둥이를 안고 제게 왔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예쁘던지요. 그 예쁜 아기를 한꺼번에 둘이나 낳은 것입니다. 쌍둥이에게 기도를 해 주려니 복잡했습니다. 한 아기라면 제가 안고 기도하면 되는데 아기가 둘이나 되어서 '주여,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요?'하고 속으로 기도했더니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라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품에 있는 아기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아빠 엄마가 아기를 안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직장에 가도 아기 얼굴이 삼삼하답니다. 새파란 청년이 부끄러움도 없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저희 때만 해도 첫 아기를 낳으면 부끄러워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른 앞에서 "내 새끼! 내 새끼!"하며 줄줄 빨고 야단입니다.
하긴 저도 첫 아들 성이 낳았을 때에 부끄럽기도 하고 좋기도 해서 안기도 하고 때로는 포대기로 업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느 가게 앞에서 아기를 업고 있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남자답지 않던지, 그 후로는 제가 아기를 업지 않았습니다. 안기만 했습니다.
좌우간 부모가 젊어서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가 그렇게 예쁜데, 나이 들어서 얻은 아들은 얼마나 예쁘겠습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녀에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는 돈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천지를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아들딸입니다. 아들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며 잘 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넴의 그 아이가 잘 자라서 아버지를 따라다니니 아버지는 신바람이 납니다. 그런데 추수 때인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농장에서 뛰놀던 아이가 갑자기 "내 머리야! 내 머리야!"라고 합니다. 아직 어려서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못해 "내 머리야(My head)! 내 머리야(My head)!"라고 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디가 아파?"하며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으니 열이 나서 머리가 펄펄 끓습니다.
아버지가 종에게 말합니다.
"빨리 이 아이를 엄마에게 데리고 가라."
그래서 아이가 엄마에게 갔지만, 그 당시 병원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얼마 후에 아이가 죽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일찍 죽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보다 더 오래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집도 많습니다. 아기도 많이 죽습니다. 태어나면서도 죽고, 한 살에도 죽고, 두 살에도 죽고, 열 살에도 죽고, 많은 아이들이 죽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할 일이 아닙니다. 아이가 다섯 살에 죽어도 5년 동안 아이를 통해 사랑을 느끼고 행복하게 산 것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아들이 일곱 살에 죽어도 7년간 아이 때문에 행복한 일, 감사한 일이 많지 않았습니까? 아들이 죽어도 원망하면 안 됩니다. 그동안 주셨던 기쁨 때문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오래 살면 더 좋지만 일찍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감사해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저희 바로 옆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한 스물 다섯 살 된 꽃다운 아가씨가 이모 집에 놀러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UCLA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이틀만에 죽었습니다. 병명도 모르고 그냥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모부와 이모가 가슴을 쳤습니다. 조카가 놀러왔다가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죽었으니 말입니다. 병명이라도 알기 위해 부검을 하려 했더니, 그렇게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한 달 후에나 할 수 있다고 하더랍니다. 그런 일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모르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은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나귀를 준비했습니다. 사환에게 나귀를 급히 몰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는 갈멜산으로 빨리 가자고 했습니다.
한편 엘리사는 부인이 오기 전에 영감으로 알고 걱정합니다.
'아, 수넴 여인에게 무슨 일이 있구나. 수넴 여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구나.'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제가 서재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막내아들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아니, 내 마음이 왜 이렇지? 성찬이가 어디에 있지? 하나님, 왜 이렇지요?'
서재에서 뛰어나와 성찬이를 찾았습니다. 성찬이가 막 기어다닐 때인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보, 성찬이, 성찬이가 없어요."
"어! 방금 여기에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하고 목욕탕에서 손빨래를 하고 있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아내 뒤쪽에 있는 욕조에 거꾸로 쳐박혀 있는 성찬이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내가 빨래를 한다고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놓았는데 아이가 거기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그것도 모르고 빨래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건져내니 아이가 물을 토했습니다. 조금만 늦게 발견되었다면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가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아이를 구원하신 줄로 믿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마음에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거든, 여러분의 남편, 딸, 군에 있는 아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거든 특별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때는 여러분의 남편이, 딸이, 아들이 위험한 일에 처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수넴 여인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게하시야, 밖으로 나가 보아라. 혹 수넴 여인이 올지 모르겠구나."
"어떤 여인이 나귀를 타고 오고 있습니다."
"수넴 여인이 분명하다. 너는 달려가서 남편이 평안한지, 자기가 평안한지, 아이가 평안한지 물어보아라."
게하시가 달려가서 물었습니다.
"부인, 남편이 평안하오? 당신이 평안하오? 아이가 평안하오?"
부인은 평안하다고 대답하고 계속 달려가 엘리사의 발을 붙잡고 막 울었습니다. 게하시가 엘리사에게서 부인을 떼어놓으려 하니,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그냥 두어라. 그 부인에게 지금 괴로운 일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숨기시는구나."
여러분, 영적으로 사기 당하면 안 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큰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시는 큰 사람이지만, 수넴 여인이 와서 그렇게 울어도 왜 우는지를 모릅니다. 남편이 죽었는지 재산을 다 잃었는지를 모릅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지만, 사람은 모릅니다. 목사라도 영적으로 신령하다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실 때만 알지,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으시면 모릅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지용수도 모릅니다.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점쟁이에게 묻듯이 "하나님의 사람, 어떻게 할까요?"하고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도 않으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은 영적인 사기꾼입니다. 신령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직하지 못한, 진실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서 사기 당하는 일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엘리사는 정직했습니다. 모르면서 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지도 않은 것을 받은 것처럼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으셔서 무슨 일인지 모르는 엘리사에게 부인이 말했습니다.
"제가 언제 아들을 달라고 했나요? 제가 언제 아들을 달라고 구했나요?"
무슨 말입니까?
구하지도 않은 아들을 안을 것이라고 해서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들이 죽었으니 그 슬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서야 엘리사가 알았습니다.
'아하! 아들이 죽었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저도 교회를 섬기다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착하고 의롭고 귀한 사람은 오래 오래 장수하면서 교회를 빛내고 섬겨야 되는데 그런 사람은 일찍 데려 가시고, 이 세상을 일찍 떠나가면 좋을 것 같은 사람은 끈덕지게 오래 살도록 놓아두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우리가 측량 못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측량 못할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그대로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독자를 내게 제물로 바쳐라."
그때 아브라함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들을 주실 때는 언제고 이제는 바치라 하십니까?'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따라가니 "오!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이셨군요."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해가 안 되어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내하시기를 바랍니다.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은 것을 안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게하시야,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을 갖고 가라.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 말고 그 사람이 네게 인사해도 대답하지 말고 기도하면서(기도하라는 말이 본문에는 없지만 인사하지 말라는 말이 그런 뜻입니다.) 가서 그 아이의 얼굴에 내 지팡이를 놓아라. 그러면 아이가 살아날 것이다."
엘리사는 그런 믿음이 와서 게하시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게하시가 엘리사의 말대로 허리를 묶고 지팡이를 갖고 "오! 주여. 오! 주여…."하며 갔습니다. 길을 가다 친구나 아는 사람을 만나도 모른 체했습니다. 사람들이 인사를 해도 그냥 갔습니다. 사람들이 "게하시가 이상하네. 내가 인사를 해도 자기가 뭐라고 인사도 안 받아?"하며 욕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 합시다.
"사연이 있다."
여러분, 제가 6개월만에 돌아왔으니 여러분을 얼마나 가까이 하고 싶었겠습니까?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강단에서 뛰어내려가 가까이에서 여러분 얼굴도 보고 악수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2부 예배와 3부 예배 후에는 내려가지 않고 강단에 있었습니다.
따라 합시다.
"사연이 있다."
어지러워서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내려갔다가 쓰러져 보십시오. 저희 어머니께서 얼마나 놀라시겠습니까? 다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게하시가 하나님의 사람이 명한 대로 가서 아이의 얼굴에 지팡이를 놓았는데도 아이가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돌이 되면 아들을 품에 안으리라 한 말은 그대로 되었는데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놓으면 살아나리라고 한 말은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해도 하나님께서 들어 주셔야 되지,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사가 잘못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말대로 해 주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하시는 나쁜 사람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물질에 정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게하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않으셨습니다. 게하시가 엘리사의 지팡이를 갖고 갔고 엘리사의 말대로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게하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가 싫으셨던 것입니다. 게하시가 엘리사의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놓았을 때 아이가 살아났다면 그는 더 큰 문제를 일으켰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곧 하나님께서 게하시를 제거하십니다. 열왕기하 5장에서 그를 저주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엘리사가 부인과 함께 부인의 집에 와 보니 아이가 죽어 있습니다. 지팡이의 효력이 없었습니다. 엘리사는 문을 닫아 걸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이를 살려 주셔야 합니다."
성경은 줄여서 말씀한 것입니다. 엘리사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기도한 후 아이의 위에 올라가서 아이의 눈에 자기 눈을, 아이의 손에 자기 손을, 아이의 입에 자기의 입을 대고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아이가 따뜻해졌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의 체온이 전달되어 따뜻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포기하지 않고 또 기도했습니다. 또 아이의 위에 올라갔습니다.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살아났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무엇입니까?
따라 합시다.
"포기하지 말자. 굳게 서자."
우리 눈에 아무 증거가 보이지 않을 때도 믿음에 굳게 서고 말씀에 굳게 서야 합니다.
엘리사는 자기 지팡이를 게하시가 갖고 가서 아이의 얼굴에 놓으면 아이가 살아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기도하면 살아날 줄 알았는데 기도해도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한 번 아이의 위에 올라가서 기도해도 아이는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니 하나님께서 아이를 살려 주셨습니다.
우리도 믿음 생활하면서 한 번, 두 번, 몇 번 해도 소용없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끝까지 굳게 서서 전진해야 합니다.
이 땅에 우리 교회를 짓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쉽게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 수단과 방법을 다 써도 교회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7년간 여기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장로님 한 분은 날마다 여기에 와서 일곱 바퀴를 돌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여기에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우리 교회에 충성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 중의 한 분이 박철만 집사님이십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으로 잘 생기셨고 부인은 간호사인데 토요일마다 그 큰 교회 청소를 혼자 하십니다. 미국에서 500석 되는 교회이면 큰 교회입니다. 그 큰 교회 청소를 10년간 구석구석 다 하시는 분인데 아이가 없습니다. 부인 집사님도 새벽기도도 열심히 하시고 착하신데 결혼한 지 십 몇 년이 되어도 아이가 없습니다.
박집사님이 이번에 장로님으로 피택되었는데, 제일 많은 표가 나왔습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충성하시니 표가 일등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없습니다. 제가 1993년 미국에 있을 때 부인 집사님에게 안수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잉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미국에 갈 때마다 안수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 7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잉태되지 않았습니다. 그 집사님 부부를 보면 제가 부담이 되었습니다. 어찌 그리 기도발도 받지 않는지 말입니다.
또 생각해 보면 하나님도 조금 그러하십니다. 교회 일도 하지 않고 충성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들딸을 쑥쑥 잘 낳게 하시면서 그렇게 충성하고 착한 부부에게는 왜 한 아이도 주지 않으십니까?
이번에도 제가 미국에 가자마자 그 집사님 부부, 헌 신랑과 헌 각시를 불러 놓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니 박집사님이 아멘 해 놓고는 "목사님, 우리 박상아 집사는 몸이 약해서 잉태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부인 집사님은 몸이 너무 약합니다. 그래서 제가 부인 집사님에게 "운동을 해요. 운동을. 그리고 잘 먹고…."라고 했더니, 부인 집사님이 "그게 마음대로 잘 안 돼요."라고 했습니다. 운동도 하고 포기하지 말고 끈덕지게 계속해서 기도하라며 그 집사님 부부를 혼냈습니다.
그런데 박집사님이 장로님으로 피택된 일주일 후에 부인 집사님의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잉태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합니까?
44세 된 부인이 첫아기를 잉태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굳게 서야 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고 충성해도 안 되어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 엘리야가 하나님께 비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섯 번이나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지만 또 기도했습니다. 일곱 번째 기도하니 하늘에 손바닥만한 구름 한 조각이 떠올랐습니다. 마침내 구름이 뒤덮여 축복의 비가 내렸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향해 큰 꿈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그 꿈을 말하면 여러분이 놀랄까 봐 저 혼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장로님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우리 교회를 지은 다음부터 오늘까지 계속해서 그 꿈을 갖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야 됩니다.

 

오늘은 말씀을 많이 전하고 싶지만 시계를 보니 지금 마쳐야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말씀을 다 전하지 못합니다.
이것만은 꼭 기억합시다.
따라 합시다.
"포기하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굳게 서자. 굳게 서자."
말씀 위에, 믿음 위에 굳게 서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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