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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의 식당(시 65:1-4 ) : 교회 / 지용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6.
지상 최고의 식당
시편 65:1∼4


토끼는 평생 토끼 집에서, 새는 영원히 변함없는 새 보금자리에서, 개미는 영원토록 똑같은 개미 집에서 삽니다. 빌딩 하나 세우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움막집을 짓고 초가집을 짓고 함석집을 짓고 기와집을 짓고 빌딩을 세웁니다. 세계 도처에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학교, 사옥, 박물관, 기념관, 시청, 중앙청, 대통령궁, 왕궁, 호텔 등등 세계 도처에 큰 건물이 많이 있습니다. 으리으리한 집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집들을 다 모아 놓아도, 이 세상의 왕궁과 대통령궁을 다 모아 놓아도 양곡교회 하나만큼의 가치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왜입니까? 양곡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9장 3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영광이 항상 여기 교회에 계십니다.


또 우리 주님께서는 책 한 권도 쓰지 않으셨고 편지 한 장 남기지 않으셨지만, 한 가지 남기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 이하를 보면,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여,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 어떤 사람은 엘리야, 또 더러는 예레미야나 다른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피조물인 사람, 한갓 선지자들에 비유하니 주님께서 섭섭해 하셨습니다.


“그래,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주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제대로 고백하니 주님께서 흡족해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너희 하나님 아버지시니라.” 할렐루야!


선생님이 가르쳐 주어도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신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도와 주셔야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my church)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주님께서 ‘내 교회(my church)’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이 있는 곳에, 야고보나 요한이나 여러분과 제가 믿음을 고백하는 곳에 교회를 세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세계의 나라들을 다니면서 보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교회를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을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는 교회가 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바로 ‘주님의 몸(his body)입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현대 회사를, 대우 회사를, 삼성 회사를 통하여 우리 나라를 복 주지 않으십니다. 청화대나 도청, 중앙청을 통하여 우리 한국에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백악관을 통해서 이 지구촌에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양곡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을 채우시고, 은혜를 주시고, 넘치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왕 중에서도 뛰어난 다윗 왕도 성전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는 “내가 내 궁궐에 영원토록 거하기를 원치 아니하고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26편에는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라고 찬양했습니다. 또 시편 122편 1절에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라고 찬양했는데, 그가 이렇게 찬양한 것은 그의 궁궐보다 하나님의 집이 100배, 1000배로 귀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84편의 기자도 1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했고, 10절에는『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마귀의 사람은 교회를 비판합니다. 신문에 ‘교회가 썩었다. 목사가 썩었다. 장로가 썩었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대개 마귀의 일꾼이 많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면 신문에 그렇게 내지 못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 10장 12절에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교회의 허물을 신문에 공개하고 방송하면서 어떻게 교회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방송이 기독교 방송이라 할지라도 그 신문이 기독교 신문이라 할지라도 교회가 썩었다느니, 교회가 어떻다느니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면 교회의 자랑스러운 것은 공개하고, 허물은 덮게 될 줄로 믿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허물을 들추어 내어서 까발리는 마귀의 자식은 하나도 없기를 축원합니다.


양곡교회를 비롯하여 아무리 좋은 교회라 하더라도 흠 없는 교회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완벽한 교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거룩하기만 한 교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만큼 되는 것입니다. 부족한 죄인들이 모여서 섬기는 교회가 어떻게 완벽할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교회의 허물을 까발리는 신문은 보지 마십시오. 교회의 허물을 까발리는 방송은 듣지 마십시오. 정말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매스컴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노아의 사랑하는 아들들이 노아의 허물을 덮었듯이, 교회의 허물을 덮어주는 참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는 너무 귀합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는데, 오늘 본문 1절에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산에서, 집에서, 들에서 찬송하지만, 그러나 함께 모여서 뜨겁게 찬양하는 곳은 교회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뜻을 이루어 드리는 찬송의 집인 것입니다.


시편 22편 3절에도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라고 말씀하시는데, 찬송이 울려 퍼지는 교회에 주님께서 강림하셔서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찬송의 챔피언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찬송할 때 늙도록 부하고 존귀케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찬송으로 가득찬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것이 국립 관현악단의 단원이 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성가대원 되는 것이 국립 합창단원이 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우리 모두도 성가대원처럼 주님을 찬양하는 하나님의 귀한 사람들입니다.


찬송이 울려 퍼지는 곳은 교회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세상 여기 저기에 있어도, 세상의 모든 유명한 음악 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다 모아 놓아도 양곡교회의 찬양과는 겨루지 못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2절에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마가복음 11장 1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산에서, 어떤 사람은 기도원에서, 어떤 사람은 집에서, 골방에서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들으시기 받으시고 응답하시는 최고의 기도 장소는 하나님의 교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니 교회, 이 집보다 더 귀한 집이 어디에 있을 수 있습니까?


기도는 정확하고 틀림이 없습니다.


어제 참 재미나는 간증문을 읽었습니다. 한 신학생이 등록금은 마련해서 지불했는데 기숙사 입사비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해도 기숙사 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기숙사 입사비를 주세요.”하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펑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유리 깨어지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시커먼 물체가 유리창에 부딪쳐 떨어졌습니다. 밖으로 나가 보니 큰 부엉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데 날아왔으니 기도 응답인 것입니다.


‘웬 부엉이인가?’


그때 동물원이 생각나서 창경원으로 가지고 가서 동물원 원장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아니, 어디서 이런 부엉이를 구했지?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크고 좋은 부엉이인데.”


“사실은 제가 기숙사비가 없어서 기도하는데 펑 하고 떨어져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숙사 입사비가 얼마인가 묻더니 아랫사람에게 무조건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숙사에 입사한 것입니다.


기도하면 재미있는 일이 많은데, 기도의 집이 바로 교회입니다. 할렐루야!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 자 누군가」


여러분, 모두에게 근심 걱정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아뢰는 자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라고 3절에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또 귀한 것은 죄를 씻어 주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아무리 거룩하게 살려고 애써도 때때로 실수합니다.


어느 청년이 “나는 목사님이 되기를 원했는데 기질이 좋지 않아서, 방탕한 기질이 있어서 목사님이 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생활이 거룩하고 깨끗해야 되는데 자기는 방탕한 기질이 있어서 목사님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잘 아는데, 자기는 방탕한 기질이 있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어쩌면 나와 그렇게 똑같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방탕한 기질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살고 말씀으로 사니 이렇게 사는 것이지, 거룩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그러니 남의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 어떻게 그런 짓을 하지?”하는 말을 하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부터 깨끗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방탕한 기질이 있지만, 성령님의 은혜로, 말씀으로, 십자가의 피로 이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가다가 그림자를 만드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순간순간 우리가 죄를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품었던 죄를 실수해서 지으면 시편 68편 말씀대로 죄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감당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죄가 기도 응답을 막습니다. 내게 오는 모든 축복을 막습니다. 죄가 나에게 얼마나 손해를 보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짐을 감당하지 못해도 교회에 오면 그 죄짐을 주님께서 씻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씻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씻어 주시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시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만 용서를 못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교회가 얼마나 귀한 집입니까? 어느 시청에서, 어느 도청에서 어디에서 죄를 씻어 줍니까? 죄를 씻어 주는 곳은 여기, 교회뿐입니다.






그리고 4절에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뜰은 먹는 곳입니다. 뜰은 먹고 마시는 곳입니다.


또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름다움을 우리 말로는 그냥 추상적으로 번역했는데, 본문은 추상적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것입니다.


“We are filled with the good things of your house, 너의 아버지의 집에서 좋은 것(good things)으로 만족한다.”


우리 표준 번역에도 “우리가 주의 집에서 온갖 좋은 것을 누리는 복을 누린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식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식당입니다. 무엇을 먹습니까? 생명의 양식을 먹습니다. 할렐루야!


생명의 양식을 먹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는 곳은 교회뿐입니다. 서울 대학에서, 하버드 대학에서 생명의 양식을 먹지 못합니다. 아무리 고급 식당에서도 생명의 양식은 먹지 못합니다.


여기, 교회에서 먹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상 양식도 중합니다. 우리 한국 격언에 ‘밥알 하나가 열 귀신 쫒아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밥을 먹으면 귀신 같은 병도 물러간다는 뜻입니다. 영국 격언에도 ‘음식은 모든 의사보다 더 많이 치료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가 병을 잘 치료해도 밥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없어도 밥을 잘 먹으면 병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 할머니는 무엇을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밥을 먹지 않으면 “밥 먹어라. 밥 군사가 이긴다.”라고 하시곤 했습니다.


같이 해 보십시다.


“밥 군사가 이긴다.”


밥맛이 없어도 먹어야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이 아무리 귀하고 중해도 먹는 것보다 중한 일은 없습니다.


1942년 어느 날, 시카고 대학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로 시운전을 했습니다. 테르미 교수의 지도 하에 원자로 시운전을 하는데, 째깍째깍하니, 원자핵이 원자로에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니 모든 학자들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긴장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시계가 ‘땡, 땡 … ’하고 12시를 알리니까 테르미 교수가 “그만 합시다. 밥이나 먹고 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인 중요한 실험을 하는데도, 12시 되니까 “밥 먹고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실험을 중단하고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 다음에 계속했던 것입니다.


과학의 연구도 귀하지만 먹는 것이 우선입니다.


먹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기도를 가르치실 때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할렐루야!


양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아내의 손 끝에 남편의 건강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 끝에 자식의 건강이 있습니다. 아내가 게으르고 어머니가 게을러서 밥을 잘 해 주지 않고 계속해서 인스턴트 식품을 먹이고 라면이나 끓여 주면 남편과 아이들이 다 병골이 되는 것입니다. 간이 상하고 심장이 상하고 온 세포가 기를 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부지런해서 자연 식품, 싱싱한 채소나 싱싱한 생선을 먹이면 그 남편이 건강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됩니다.


잠언 31장 10절에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4절, 15절에 보면, 현숙한 여인은 무역하는 배와 같아서 멀리 가서 양식을 구해 오고 장을 보아 와서는 이른 아침에 음식을 준비하여 식구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딸들이여, 사명을 갖고 양식을 준비하여 여러분의 가족이 건강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음식은 아무리 먹어 보아도 200년을 살지 못합니다. 150년도 못 삽니다. 만일 어느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200년을 살 수 있다고 하면 그 식당은 손님으로 터져나갈 것입니다. 200년을 산다고 하면 한 그릇에 천만 원을 해도, 일억 원을 해도 사람들이 그 식당의 음식을 먹으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200년을 살게 하는 식당이 없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 200년이 문제 아닙니다. 2000년이 아닙니다. 2억 년이 아닙니다. 2억 년도 엄청난 세월인데, 2억 년도 영원에 비하면 순간입니다.


생명 양식을 먹으면 영원히 삽니다. 영원히 삽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생명 양식을 먹는 것은 예수님을 먹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합시다.


“말씀이 주님이시다. 주님이 말씀이시다.”


그래서 말씀의 양식을 먹으면 우리는 영생하는 것입니다. 신비롭습니다.


어떻게 먹습니까? 귀로 듣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요한복음 5장 24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로마서 10장 17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6절) 할렐루야!


이것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먹으면 영원히 삽니다. 이백 년, 이천 년이 아닙니다. 영원히 삽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당이 어디에 있느냐 말입니다.


좋은 식당에서는 좋은 음식이 나옵니다. 고급 식당에서는 고급 음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사는, 영생하는 음식보다 더 좋은 음식을 파는 곳이 어디에 있느냐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성찬을 먹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3절에서 58절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찬은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제정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을 보면, 유월절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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