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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작품(엡 2:8-10) / 지용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6.
하나님의 작품
에베소서 2:8-10


신사의 나라로 불리는 영국이 원래는 바이킹의 나라, 해적의 나라, 도적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그 도적들이 머리가 아주 좋아서 교회 성가대원들이 최고로 귀한 여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세계 각국의 여자들을 끌어다 살아보니 유럽 교회의 성가대 여자들이 최고로 귀했습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유럽의 교회에 가서 성가대석에 앉아 찬양하는 아가씨들을 끌어다가 아내로 삼았습니다.


끌려간 성가대원들은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으시는데, 왜 우리를 해적의 아내가 되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불한당 같은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자녀를 성경으로 가르쳐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사백 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에 도적이 참 많았습니다.


국왕 제임스 1세는 도적을 뿌리 뽑기 위하여 큰 도둑이든 작은 도둑이든 도둑은 무조건 사형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바꾸는 것은 성경 뿐인 줄을 알고 성경을 번역해서 많이 보급했습니다.


그때 암스트롱이라는 청년이 염소 한 마리를 훔치다가 잡혀서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가 교도관에게 소원을 말했습니다.


“교도관님, 제가 죽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무엇이냐?”


“우리 임금님이 귀한 성경을 번역해서 보급하고 계신데, 제가 죽기 전에 그 성경 한 권을 다 읽은 후에 죽고 싶습니다.”


교도관이 왕에게 보고하니 “오! 염소 도둑치고 기특하구나. 성경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 사형 집행을 연기하라.”라고 했습니다.


허락을 받은 청년이 성경을 손에 들고 기뻐하는데, 교도관이 말했습니다.


“빨리 읽어라.”


“교도관님, 성경은 빨리 읽으면 뜻을 모릅니다. 천천히 읽어야 뜻을 압니다. 하루에 한 절씩 읽겠습니다.”


성경은 신구약 66권으로 되어 있는데, 장 수는 1,189장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3장씩 읽고, 주일에 5장을 읽으면 1년에 한 번 읽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나이만큼은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1년에 한 번은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절로는 31,202절입니다. 31,202절을 하루에 한 절씩 읽으면, 제가 계산기로 계산해 보니, 85년 6개월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그 청년이 백 살이 넘어도 다 읽지 못합니다.


그 이야기를 또 왕에게 보고하니, “야! 염소 도둑의 지혜가 한이 없구나. 그러면 집에 가서 읽게해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염소 도둑이 집에 가서 매일 한 절씩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빛나는 새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만든 이야기가 아니고 실화입니다.


성경이 염소 도둑의 생명을, 육신의 생명과 영혼의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과 저를 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고 우리 삶을 진급시킵니다. 군인이 진급할 때 기쁘고, 회사원이 승진할 때 기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주일 낮마다, 주일 밤마다, 삼일마다 우리에게 젖어서 우리의 영혼을 강건하게, 육신을 강건하게, 부부생활을 복되게, 삶을 보다 성공적으로, 우리 명예를 더 귀하게, 우리 인생을 더 값진 것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시간이 여러분의 한 주간 삶 중에 최고로 값진 시간이 반드시 될 줄로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의기 소침하게 만들고, 맥빠지게 만들고, 열등 의식에 젖어서 패배하는 쓰레기 같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비교 의식입니다. 가난, 배우지 못한 것, 좋지 않은 환경이 아니라 비교 의식입니다. 비교 의식이 사람을 열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지 않은 상황에 있어도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살면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기원전 336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 모든 왕들 중에서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원정을 앞두고 학계, 정치계, 경제계의 모든 인사들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축하 인사를 하러 왔는데, 알렉산더가 기다리는 당대의 최고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가 몸소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습니다. 운동장에서 햇볕을 즐기며 누워 있는 디오게네스에게 갔습니다. 그는 집도 없이 한 평의 땅도 없이 드럼 통 같은 나무통 속에서 뒹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왕이 와서 그 앞에 서 있어도 디오게네스는 그냥 햇볕만 즐길 뿐이었습니다.


“디오게네스, 내가 도와 줄 일이 없소?”


“예, 있지요. 대왕께서 거기에 서 계시니 햇볕이 가리워집니다. 좀 비켜 서 주시지요. 그것이 나를 도와 주는 것입니다.”


알렉산더가 비켜서도 디오게네스는 왕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햇볕만 즐겼습니다.


당당한 그의 배포에 알렉산더 대왕은 뒷말을 잊어버리고 그냥 돌아서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만일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저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 알렉산더에게 부러운 사람이 없었지만 디오게네스는 부러웠던 것입니다.


거지같이 살아도 비교하지 않으면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비교하면 아무리 좋은 조건에 있어도 당당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중학교도 못 다닌 사람이 허다하니 대학을 졸업했으면 당당하게 살 수 있을 법한데,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도 열등 의식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일류 대학을 다녔는데 나는 삼류 대학을 다녔다.’


또 일류 대학을 졸업한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학과가 좋지 않아서 열등 의식이 있습니다. 일류 대학의 법대, 의대를 다녀도 수석하지 않고 고시에 합격하지 않아서 열등 의식이 있습니다. 또 우리 나라의 최고 대학에서 수석해도 열등 의식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일류 대학이 세계 백 위의 대학에 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대통령도 비교 의식으로 미국 대통령과 비교하면 열등 의식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어도 비교 의식으로는 만족하게 살 수 없습니다. 비교 의식은 행복을 빼앗아가고 의욕을 빼앗아가고 용기를 빼앗아가고 감사를 빼앗아가고, 늘 열등 의식으로 인생을 패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의 의식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에서 14절에 말씀하십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마귀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으로 별명이 지어집니다. 물론 계명성은 바벨론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영적으로 악한 천사장, 타락한 천사장을 가리키는데, 그가 별들 위에 자기 의자를 만들어 하나님과 비기려고 합니다. 구름 위에 의자를 만들어 하나님과 비기려고 합니다.


여러분, 많은 천사를 거느리는 천사장이 된 것은 보통 일이 아닌데, 감사할 줄 모르고 하나님과 비교합니다.


‘하나님은 저렇게 높은데 왜 나는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지 못하나?’하고 비교하다가, 결국 높아지려다가, 하나님께서 땅에 내동댕이치시니 그 졸개들과 함께 내려온 것이 오늘의 귀신이고 사탄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모든 사람에게 역사할 때, 마귀가 우리를 꼬드길 때 비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남편을 보아라. 그리고 네 이웃의 남편을 보아라.’하고 비교하게 합니다. ‘네 아내를 보아라. 드럼통 같지. 네 옆사람의 아내를 보아라. 코스모스 같지.’하고 비교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3장 4절을 보면, 감히 하나님과 비교하게 합니다.


마귀가 이브를 꼬드깁니다.


“야, 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눈이 같아진다. 네 눈의 높이가 하나님과 같아진다.”


감사하며 살던 이브가 하나님과 비교하니 자기는 너무 초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같이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먹었는데, 망하지 않습니까?


비교 의식은 우리 삶의 온갖 의욕을, 용기를, 행복을 다 앗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비교 의식이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의식, 창조 의식으로 무장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살아가면서 창조 의식을 적용해야 늘 거기에서 보람을 얻으며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이고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지만,‘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고 택하셨다.’는 창조 의식이 있을 때, 법관들 앞에, 산헤드린 공회원 앞에, 상위 공무원들 앞에 당당하게 맞서 복음을 전합니다.


여호수아는 사십 년간 모세의 몸종이었습니다. 모세의 시종이지만 창조 의식을 가질 때 아무에게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요단강을 가르면서 모세 버금가는 위대한 영도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상류 사회에 살고 아무리 넓은 집에 살아도 비교 의식을 갖고 살면 행복할 수도 없고 당당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여집사님은 열 몇 평 아파트에 살다가 서른 몇 평의 아파트로 이사한 후 좋아서 함박꽃 웃음을 피웠습니다. 새 아파트, 넓은 집이 너무 좋아서 누워도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뒤에 백화점에 갔다가 여고 동창생을 만났습니다.


“너 어디에 사니?”


“○○○에 산다.”


“아파트에 사니?”


“그래, 아파트에 산다.”


“몇 평인데?”


“46평이야.”


그때부터 기쁨이 사라지고, 행복이 사라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렇게 좋던 새 아파트가 보기도 싫고 남편이 너무 무능해 보였습니다. 퇴근해 오는 남편도 보기 싫었습니다.


‘무능한 남편을 만나서 이렇게 초라한 집에 산다. 내 친구는 46평에 사는데.’


그 친구의 남편은 술주정꾼이고 내일 모레 망할 사람인데, 그것은 생각하지 않고 아파트 평수만 비교하니 그런 것입니다.


월셋방에 살든 전세방에 살든 창조 의식을 갖고 살면 만족하게,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장 10절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란 말입니다.


작품과 생산품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장장이 아닙니다. 공장에서는 똑같은 물건이 생산되어 배출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공장장이 아니라 창조주이십니다.


여러분과 저는 따로따로 다르게 지어진 하나님의 작품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서로 앞뒤로 인사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의 별들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다의 모래알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꽃들, 식물들은 다 같은 것 같아도 다릅니다. 눈송이도, 빗방울도 다 다릅니다.


60억 인구 중에 지문이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쌍둥이도 같지 않습니다. 다 다릅니다.


7년 전쯤에, 제가 미국 우리 교회를 섬길 때 새벽기도회에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얼마나 신바람이 났는지 모릅니다. 정말 흥분해서 새벽기도를 인도했습니다. 특별히 UCLA 학생들이 밀려와서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는지 저도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 새벽기도 철학이 알파와 오메가, First와 Last, 처음과 나중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교인 보다 먼저, 제일 먼저 가서 기도하고, 교인보다 늦게, 가장 늦게까지 기도한다는 것이 제 철학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할 일 없는 할머니들이 하루 종일 기도하는데 거기에 맞추면 저는 망합니다. 그래서 제 시간에 맞추어서 기도하는데, 그때는 제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UCLA 학생들이 8시 반이 되어도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다가 보아도 기도하고 있고, 또 보아도 계속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하도 답답해서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공부는 언제 하느냐?”


“우리는 모두 장학생입니다.”


어쨌든 그 학생들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또 잊지 못하는 사람 중에 쌍둥이 자매가 있습니다. 쌍둥이 자매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헤어 스타일을 하고, 화장도 똑같이 해서 나란히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이렇게 보아도 똑같고 저렇게 보아도 똑같았습니다. 그래도 그 남편은 한번도 처제에게 “여보.”라고 부른 적이 없고 아내에게 “처제.”하고 부른 적이 없답니다.


다 다릅니다. 쌍둥이도 하나님의 다른 작품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일부러 남과 같아질 필요가 없습니다. 해는 낮에 빛을 발하면 되고, 달은 은은하게 밤에 빛을 발하면 되는 것입니다. 달이 주제 넘게 낮에 나타나서 해와 경쟁한들 누가 달을 쳐다보겠습니까?


가끔 낮에 달이 뜰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태양 옆에 있으면 달은 존재가 없습니다. 달은 밤에 떠서 은은하고 아름다운 빛을 뿌리고, 태양은 낮에 떠서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밤에 태양이 뜬다면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별은 별빛만 뿌려야지, 별이 태양빛을 뿌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타버리게 됩니다.


절대로 남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자기 개성에 맞게, 키가 큰 사람은 키가 큰 대로 살고, 키가 작은 사람은 작은 사람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키가 큰 사람이 일부러 작게 할 필요가 없고, 작은 사람 일부러 크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이태리에서 50센티미터나 되는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거인처럼 걷는 것을 한 학생을 보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일어나겠습니까?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살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자전거를 타는 처지라면 일부러 운동하려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하는 마음으로 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저도 3년간 자전거를 타고 심방했습니다. 저와 아내 두 사람이 타고 다니니 빵꾸가 자주 나서 그렇지, 괜찮았습니다.


좌우간 우리가 창조 의식을 갖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면 열등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창조 의식을 갖고 살면 내가 존귀하게 됩니다.


이 우주에 나 같은 작품은 하나뿐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상이 귀한 것은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온 세계에 하나뿐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만일 모나리자상이 백 개 이백 개 상품처럼 생산되었다면 아무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뿐이니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나리자상보다 백 배, 억만 배 귀합니다. 이 세상에 나같이 생긴 사람은 나 한 사람뿐입니다. 여러분같이 생긴 사람은 여러분 한 사람뿐입니다. 이런 작품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꼭 필요하셔서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명과 사명과 길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살아야 됩니다.


사실, 생각하면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되어도 고마운 일인데, 밀레의 작품이 되어도 고마운 일인데, 반 고흐의 작품이 되어도 고마운 일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 되어 지금도 빚어지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는 미완성 작품입니다. 아직 완성이 아닙니다. 천당 가는 날에 완성되고, 아직도 빚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모든 상황을 통해 우리를 빚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 나와 같이 일하신다.’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귀합니까?


그리고 창조 의식으로 살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2장 6절에는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과 저는 땅의 작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작품입니다. 땅에서 빛을 발하다가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앉는 하나님의 하늘의 작품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존귀하고 얼마나 감사한 존재입니까?






또 창조 의식을 갖고 살면 내 마음, 내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비교 의식으로 사는 사람은 ‘내가 어떻게 살까? 무엇을 할까?’하지만, 창조 의식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작품인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할까요? 제가 어떻게 살까요?’하고 기도하며 사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자신에게도 좋고, 가족에게도 좋고, 교회도 좋고, 사회와 나라, 세계도 좋은 줄로 믿습니다. 사업을 해도, 연구를 해도, 취미 생활을 해도, 오락을 즐겨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기에게 좋고, 가족에게 좋고, 교회에 좋고, 세상에 좋은 것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성공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한 소아마비 소녀, 양다리를 못 쓰는 아가씨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한창 발랄하게 뛰어놀 때인데 걷지 못하니까 열등 의식에 사로잡혀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독약을 먹고 죽었는데 아침에 살아났습니다. 눈을 뜨니까 눈이 더 말똥말똥하고 몸이 생기찹니다. 딸이 자살하려는 것을 알아챈 어머니가 독약을 꺼내고 영양제를 집어 넣었기 때문입니다. 영양제를 먹었으니 몸이 더 좋아진 것입니다.


소녀는 강에 가서 물에 빠졌습니다. 동민들이 보고 건져내었습니다.


소녀의 친구가 와서 말했습니다.


“야, 하나님께서는 너만 할 수 있는 일을 주셨을 거야. 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거야. 너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딸이야.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찾아봐.”


그 말이 하나님 음성같이 들렸습니다. 소녀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다가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고 이탈리아 방송국의 유명한 상담자가 되었습니다. 상처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상담해올 때 힘을 주고 격려를 해 주는 보배로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휠체어를 타든 걸어다니든, 가난하든 부요하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만이 하실 일을 맡기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일을 찾아 모두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여러 가지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 가지 악기만 잘하면 아름다운 화음이, 음악이 연주 되듯이 한 가지만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잘하고, 우리 부목사님들은 열심히 심방하고 교육하고, 성가대원은 성가대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한 가지 일만 잘해도 교회가 되는 것처럼, 여러분이 한 가지만 잘해도 이 세상이 아름다운 낙원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마귀의 뜻을 따라 사니 마귀의 작품인 히틀러 같은 사람이 나오고, 마귀의 작품인 공산당이 나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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