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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연합한 이방인(사 45:37 ) / 지용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6.

하나님께 연합한 이방인
이사야 56:37


오늘 2부 예배 시간에는 아마 우리 교회가 세워진 후로 제일 많은 분이 오셨을 것입니다. 예배당이 가득했는데, 3부에도 이렇게 많은 분이 오셔서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무척 기쁩니다.


이번에 대구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프린스 호텔에 묵었습니다. 교회까지 25분 정도 걸렸는데, 앞산이라는 곳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집회 시간마다 저를 태워 주신 분이 "목사님, 이 추운 겨울에도 앞산에 올라가면 양지바른 곳에는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같은 땅, 같은 겨울이지만 햇빛이 비치는 양지는 개나리꽃이 피고 음지는 꽁꽁 얼어붙는 것처럼, 오늘날 지구촌이 죄악으로 얼어붙어 있지만 은혜의 빛, 축복의 빛이 비치는 양지, 인류의 태양이신 예수님의 빛, 만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의 빛이 비치는 양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양지는 바로 양곡교회요, 주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같은 대한민국 땅에 있어도 양지에 있어야 겨울에 따스합니다.


같은 지구촌에 있어도 교회에 있어야 은혜의 빛, 축복의 빛을 받습니다.


식물들은 어떤 면에서 참 안타깝습니다. 산불이 나도 도망가지 못합니다. 산 아래에서 불이 타 올라와도 꼭대기에 있는 나무가 피난을 가지 못합니다.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이 나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피난갈 수 있는 다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리를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다리를 활용해야 합니다.


다리를 활용하여 양지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 축복의 빛이 쏟아지는 교회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음지에서 얼어붙는 나무도 양지로 옮기면 꽃을 피웁니다.


신앙의 음지에서 망하는 사람도 교회로 걸어 들어오면 축복의 양지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은혜의 양지, 하나님 축복의 양지는 히브리 백성들입니다. 이 지구촌에 많은 나라, 많은 족속들이 살고 있지만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빛을 비추어 주시고, 축복의 빛을 비추어 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시고, 만나를 먹여 주시고 눈동자처럼 지켜 주신 나라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라합은 이방인이고 웃음과 술을 파는 기생이지만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기생 라합은 술손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야! 히브리 민족의 하나님께서는 굉장하시대. 글쎄 홍해를 갈라서 육지 같은 길을 내시고 자기 백성 200만 명을 다 통과시키셨대. 그리고 뒤따라오는 애굽 군대는 물로 다 덮어서 수장시켜 버리셨대. 그래서 애굽 왕 바로가 항복했대. 열 가지 재앙을 받고는 항복했대. 하나님같이 위대하신 분은 없으시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래.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신대. 그들이 여기에 오면 가나안 땅은 이제 다 그들의 것이 된대."


이 소식을 들은 기생 라합은 '아하! 하나님께서 히브리 백성을 축복하시는구나. 복 받고 사는 길은 이스라엘 백성 편에 달라붙는 것이구나.'라고 깨닫고 이방 땅 여리고에 살았지만 히브리 백성 편에 섰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때 하나님께서 "야, 기생 주제에 거룩한 내 백성 편에 붙으면 안 돼. 저리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수아 대장도 "너는 기생이 아니냐? 저리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여호수아가 라합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라합은 이스라엘 최고 가문인 다윗 왕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고조모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1절에 별같이 빛나는 믿음의 사람들이 소개되는데, 거기에 라합의 이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지구촌 최고의 가문인 예수님의 가문이 나오는데, 거기에 라합이 나옵니다. 기생 출신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으니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갈라놓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달라붙으면 하나님께서 같은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룻은 이방 여자입니다. 모압 여자인데, 어쩌다 기구한 운명으로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죽어서 홀로 사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은 남편에게서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아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구나.'


그래서 자기 땅에 있지 않고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룻을 축복하시고 다윗 왕의 할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이아몬드같이 귀한 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생이든, 플레이보이든, 물찬 제비든, 강도든, 마약 중독자든 상관없습니다. 판사든, 대통령이든, 머슴이든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영적인 이방인도 하나님께 달라붙으면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여당 국회의원이 어떠한 일로 야당에 속한 국회의원을 핍박하고 금방 감옥에 집어넣을 것 같이 으르렁거리다가도 그 야당 국회의원이 여당으로 입당하게 되면 핍박하지 않습니다. 감옥에 넣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와줍니다. 그것이 정치 사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까마귀라도 고향 까마귀를 보면 반갑답니다.


어떤 귀한 사람이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제게 장서를 보냈습니다.


'…목사님은 전국에 다니시면서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니, 나라의 망조인 지방색을 좀 없애 주세요….'


물론 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밝히지 않고 '제 고향은 대한민국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래도 고향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움직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입장만 같아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기 동창생 모임, 심지어 같은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클럽도 생기는 것입니다.


한 무서운 강도가 깊은 밤에 서울의 한 집에 쳐들어갔습니다.


"일어나! 손 들어!"하며 칼을 들이대니, 잠결에 일어난 주인이 손을 들지 않고 덜덜 떨기만 했습니다.


"손 들어! 손 들라니까!"


"밤손님, 관절염이 심해서 팔을 들 수 없어요. 너무 아파서 손을 들 수 없어요."


"관절염이라고요?"


"예, 관절염 때문에 몹시 고생하고 있어요."


"아이고, 고생 많겠네. 여보시오, 나도 관절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약, ○○○약을 먹고 나았소. 당신도 한 번 그 약을 써 보시오."


"나는 생활이 구차해서 약 사 먹을 돈이 없어요."


"아, 그래요? 그럼 어떡하나…."하더니, 강도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주며 "이 돈으로 약을 사 먹고 빨리 나으시오."하고 돌아갔습니다.


같은 병을 앓아도 통하는 것입니다.


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팔이 안으로 굽는 것과 같습니다. 이상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법을 정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달라붙으면 내가 복을 주리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때리시고 채찍질하시고 용서하시는데,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 불에 넣으십니다. 아무리 악한 죄를 지어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혼내기만 하시고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데,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작은 죄를 지어도 지옥 불에 던져 넣습니다. 야당 의원이라도 여당에 들어오면 여당의 공격을 당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 신앙의 양지에 들어와서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의 양지, 축복의 양지로 들어오는 길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이 신앙의 양지, 축복의 양지로 들어오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I am the way…."


우리 나라 성경에는 "내가 곧 길이요…."라고 되어 있는데, 그 길은 하나뿐인 길을 말합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제쳐놓고는 하나님을 믿는 길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으며 유교를 믿으며 다른 교를 믿으면서 하나님도 믿는다.'고 말하는데, 무식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한 길(one way), 예수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회에서 회의를 하여 정한 것이 아닙니다. 유엔에서 법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예수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박씨 집안의 딸이 이씨 집안으로 시집가면 이씨 집안 사람이 됩니다. 이씨 집안의 어머니가 낳은 것도 아니고 이씨 집안의 아버지가 피를 준 것도 아니지만, 이씨 집안의 아들과 결혼하면 박씨 집안의 딸이라도 이씨 집안의 가족이 되고 이씨 집안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생 라합이든, 모압 여인 룻이든 상관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교회의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양지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길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가족이 된 증거, 표증이 무엇입니까?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은 결혼하면 비녀를 찔렀습니다. 그래서 비녀를 찌른 여자를 보면 결혼한 여자라는 것을 다 알았습니다. 비녀를 찌르면 어제 처녀가 오늘 아주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비녀는 어른이라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여자들이 비녀를 다 버려서 혼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임집사님은 처녀인지 아줌마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임집사님은 지금도 19년 전, 20년 전과 똑같습니다. 주름살도 하나 없습니다. 그래서 처녀인지 아줌마인지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결혼하면 비녀를 찔렀기 때문에 '아, 저분은 결혼을 했구나.'하고 알았습니다. 비녀는 결혼한 여자라는 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으니, 그 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표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3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sign)이니…"


강아지가 큰 길에서 두 아저씨를 따라가고 있으면 누구의 강아지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갈림길에서 두 사람이 헤어지는 순간에 그 강아지가 누구의 강아지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왜입니까? 강아지는 주인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표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 생활을 할 때도 우리 입의 말과 노래가 다르고 삶의 스타일이 달라서 예수님을 믿는 표가 나기도 하지만, 전혀 나지 않는다 해도 주일에는 뚜렷이 나게 됩니다. 주일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축복의 양지에서 사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 교회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믿어요. 예수님을 믿어요."라고 해도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가족이 아닌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으면 믿는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다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께 연합한 하나님의 백성은 목숨을 걸고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가족의 표인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교인이 아니고,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 교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 신앙의 양지에 들어와 사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의 표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교과서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교과서가 있습니다. 우리의 교과서는 성경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성경은 우리의 나침반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나침반이 없습니다. 그들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왜 사는지를 모릅니다. 먹으려고 사는지 살려고 먹는지를 모릅니다. 세월 따라 물결 따라, 바람에 구름이 가듯이 여론 따라 그냥 가다가 막연하게 끝나고 맙니다. 판사님도, 의사님도, 검사님도, 대통령 각하도 아무런 차이가 없이 다 같습니다.


신앙의 양지에 살지 않고, 나침반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여론에 밀려 덤벙덤벙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다가 마지막 종착역에 서게 되는데, 그때 사탄 마귀가 데리러 오니 덜덜 떨며 이를 갈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을 때 그 얼굴이 얼마나 험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천사가 데리러 오니 평화롭게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잘 살아도 아무리 성공해도 박사 학위를 일곱 개 가지고 있어도 나침반이 없으니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노래를 부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확실한데 그런 노래를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그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양지에 사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하는 하숙생인 것입니다. 제가 이 노래를 아는 것은 버스에서나 그 어디에서나 이 노래가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제 머리는 좋고 노래는 늘 들려오니 어떻게 합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하숙생이라 가다가 끝나지만, 우리는 나침반을 따라 사니 분명합니다. 나침반 없이 망망한 바다를 가는 뱃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답답하게 살아가는데, 우리는 분명한 나침반을 갖고 살아가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이 바로 신앙의 양지에 사는 사람들의 증거입니다.






그러면 신앙의 양지, 교회에서 사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태양이 비치는 양지에 개나리꽃이 피듯이, 하나님의 은혜의 빛, 예수님의 생명의 빛이 비치는 신앙의 양지인 교회에 있으면 제일 먼저 받는 축복은 영혼이 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할렐루야!


삼천 년 된 미라, 말라붙어 썩지 않고 있던 미라에서 밀이 나왔습니다. 바싹 말라 죽은 것 같은 밀, 삼천 년 된 밀이었지만, 혹시나 하고 어떤 학자가 그것을 땅에 뿌리고 흙으로 덮은 후에 물을 주었더니 거기에서 싹이 났습니다.


생명은 대단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불신자들, 영적인 이방인들이 삼천 년 동안 말라붙은 밀같이 사망의 잠을 자고 있지만, 그들도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옥토에 심겨져 은혜의 빛을 받고 성령의 생수에 잠기면 영혼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오늘 처음 예수 믿어도 오늘 영혼이 삽니다.


육신은 죽어가지만, 육신은 한 번은 죽지만, 우리의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죽는 것은 육신이고,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영혼은 육신과 헤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낙원으로 가게 됩니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우리는 아버지 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늙은 영으로 살지 않습니다.


헬라 신화에 이런 로맨스가 있습니다.


제우스에게 아우로라라는 예쁜 딸이 있었습니다. 아우로라가 여행을 하다가 기가 막힌 미남 청년 티토루스를 만났는데, 그만 그 청년에게 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걱정이 생겼습니다. 아우로라는 신이라서 영원히 처녀로 있는데 티토루스는 사람이라 늙어서 죽을 것이 아닙니까? 아우로라가 아버지 제우스 신에게 부탁했습니다.


"아빠, 제 결혼 선물로 나의 신랑 티토루스를 죽지 않게 해 주세요. 영원히 살게 해 주세요."


그래서 티토루스가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꾸 늙어갔습니다. 아내는 처녀처럼 젊은데, 남편은 할아버지가 되어서 죽지 않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아우로라가 얼마나 후회를 했겠습니까?


'차라리 죽게 그냥 둘 걸.'


그런데 우리의 영혼은 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셔서 영혼이 살아나면 늙지 않습니다. 늘 청춘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교회에 처음 오신 분은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임하시면 여러분도 믿게 됩니다.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셨던 김영태 박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왕진을 하고 있는데 환자가 죽었습니다. 그러니 식구들이 의사 선생님을 잡아 죽이려고 대들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친척들까지 합세해서 뒤쫓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강이 있었습니다. 맞아 죽는 것보다는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강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죽기가 너무 억울해서 어릴 때 물장구를 치며 놀던 일을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해 물장구를 쳤더니, 물에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겨우 살아서 집으로 가니, 아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에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이놈아, 의학공부보다는 수영부터 배워라."


자신은 어릴 때 물장구를 치고 놀았기 때문에 물에 빠졌어도 살아났지만, 서울에서 태어난 아들은 물장구치며 놀았던 적이 없으니 그런 일을 당하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수영을 배우라고 한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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