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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목자가 기대하는 선한목자 (요10:11-18)
여러분이 알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잘 이해하고 있다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가끔 나를 향한 누군가의 오해앞에 저 사람은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또는 어떤 사람의 행동앞에 언어앞에 저 사람은 자기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 생각하십니까? 우리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오셨는지 왜 오셔야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셔야 했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 지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예수님은 자신을 잘 아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려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늘 본문을 통해 나는 선한 목자의 이름을 통해 나는 선한 목자란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의 이름을 통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한가? 어떤 마음으로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며 소개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선한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선한 목자의 모습으로 사역을 감당함에 모범을 보이시면서 우리에게도 선한 목자의 마음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선한 목자의 삶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선한 목자의 신앙을 사역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가정공동체 안에서도 선한목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선한 목자가 기대하는 선한 목자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근거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기대하는 선한 목자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선한목자는 양을 잘 알고 잘 이해하고 있는 목자입니다.
14절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입니다. 내가 내양을 알고 선한 목자는 양들에게 절대 필요가 되어 준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은 양들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양들의 연약함은 주님의 자녀 된 성도들의 연약함이기도 합니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만 되어주신다면 자신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양을 길러본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양에게 필요가 되어 주었던 사람입니다. 죽은 양이라도 사자의 입에서 건져내 올 정도로 양에 대한 애착이 깊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선한 목자앞에 양은 어떤 모습입니까? 양은 대체로 시력이 약합니다. 2-3미터의 앞을 분간을 못할 정도로 약한 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일을 모르는 인생입니다. 아니 잠시 후도 모르는 인생인 것입니다. 무엇인가 내일을 아는 것처럼 자기 뜻대로 살아보지만 금새 구렁텅이에 빠질 뿐입니다. 큰 소리를 치지만 별 것 없습니다. 또한 양은 소화기능이 약합니다.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쓰러집니다. 그래서 선한목자는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야하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 하나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인생들입니다. 밀려오는 유혹하나 소화해내지 못하는 인생들입니다. 그래서 늘 상처투성인 인생들인 것입니다. 자녀, 부모, 회사, 사업등 모든 것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와 쓰러지면 못 일어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겠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목자가 알아서 해줍니다. 또한 양은 털이 길고 엉켜있어 기생충과 온갖 해로운 곤충의 위협으로부터 노출이 되어있습니다. 목자가 제때에 털을 깎아주지 않으면 그 고통을 해결할 방법은 양에게는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를 다 해결할 것 같이 큰 소리를 치지만 아닙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이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너의 필요가 되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인도자가 되어주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상처를 치료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선한목자는 양을 필요로 삼기 위해 양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양의 필요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흘리기까지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이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필요가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선한목자는 양도 선한목자를 안다합니다. 나의 필요가 되어 주시는 목자를 안다합니다. 나의 필요가 되어 주시는 주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나의 필요가 되어 주시는 선한 목자를 믿는다면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 약해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선한목자라 하심은 너희는 예수님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양들은 선한목자를 외면한 채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그래서 사53:6절에서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선한 목자이신 주님보다 제 갈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욕심에 이끌려 적당히 타협하며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정에서 선한 목자 형 지도자는 서로의 필요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요구하며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목사가 선한 목자형 목사라면 성도에게 필요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요한사도는 요삼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합니다. 회사에 들어가도 사람이 선한 목자형의 사람이라면 월급부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회사의 사장에게 필요가 되리라 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사장하나 기쁘게 못하는 것도 은사입니다. 선한 목자형 성도는 교회에서 내가 목사에게 필요가 되어야지 합니다.
선한목자는 힘이 없는 연약한 양에게 더 많은 애정을 주는 목자입니다.
3절에 선한목자는 각각 자기양의 이름을 부른다 했습니다. 목자가 양을 대할 때 양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한 마리라도 소홀히 여긴다면 참 목자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마리 한 마리에 관심을 두는 선한 목자 예수님은 99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더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선한목자형 지도자는 하나를 소중하게 압니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작은 시간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연약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둡니다. 선한목자이신 주님은 하나하나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나를 잊으셨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하에서 식사하면서 한 성도님이 말하시길 교회가 더 부흥되면 목사님 보기가 힘이 드니 목사님 앞에서 식사하자 합니다. 염려마십시오. 목사는 혹 그러하여도 주님은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의 필요가 되어 주겠다 합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이 선한 목자의 마음을 갖는다면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하며 여겨야 합니다. 주님은 99마리를 잊은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에 마음을 둡니다. 자식을 둔 부모가 생일을 맞이했는데 하나가 연락도 없이 못 왔습니다. 자식들은 우리끼리 즐기자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은 참석을 못한 연약한 자식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유명한 양과 목자의 그림을 보면 선한목자는 양무리와 함께 갑니다. 그런데 유독 주님의 품에 안긴 어린양이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사랑하는 양을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양을 안고 가는 것입니다. 이때 어리석은 양들은 주님이 저놈만 안고 가니 쫓아내리라 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도 소외당한 것 같은 사람이 늘 걸립니다. 교회에서도 함께 모여 즐겁고 좋아하는 무리보다는 늘 혼자 있는 듯 하는 사람이 마음에 걸립니다. 선한목자형 지도자는 주일 날 예배후에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중입니다. 홀로 왔고 이름도 없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게 됩니다.
선한목자는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하는 목자입니다.
선한목자되신 주님은 언제나 일보다 사람을 귀하게 아셨습니다. 주님은 더 큰 일을 하겠다고 사람을 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않았습니다. 일을 다 잘하기 위해 제자들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선택을 소중하게 아셨습니다. 선한목자이신 주님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제자들을 이동한 것이 아닙니다. 선한목자이신 주님은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누군가를 이겨먹고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기다려주고 키우고 살리고 주님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회정의를 위해 돌을 들 때 저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여인을 귀하게 여기고 만나 주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자신이 죽으셨습니다. 교회나 가정에서 선한 목자형 지도자는 일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가정에서 돈보다 아내 아이들이 소중합니다. 교회에서 더 큰 일 더 잘하기 위해 누군가를 상하게 함은 선한 목자형 지도자가 아닙니다. 목자형 지도자는 아닙니다. 큰일을 못해도 좀 천천히 해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가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보더라도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은 3년반동안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바다를 잔잔케 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주님은 하신 일보다는 하시지 않은 일일 더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능자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예수님은 목적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영혼 살리는 것이었기에 만가지를 다 하실 수 있었지만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은 영혼을 가장 소중하게 아는 선한 목자이셨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다 떵떵 거릴만큼 부자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고급차를 타고 다닐만큼 능력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100평도 넘는 집에서 살 수 있는 능력이 있길 바랍니다. 호피무늬 코트도 입고 자가용 비행기도 갖고 전국에 별장을 갖고 살만한 능력 있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성도의 진정한 능력은 그런 것을 거절하는데 있습니다. 선한 목자형성도의 관심은 무엇을 누릴 것인가가 아니라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영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만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돈보다도 영혼이 중요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교회학교 젊은이에게 투자되는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게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길 바랍니다.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버림’의 본을 보이십니다.
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거니와 입니다. 선한목자는 희생정신이 있습니다. 선한목자이신 주님이 먼저 희생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양들을 위해 죽을 줄 아는 것이 선한 목자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증거를 부자 되고 건강하고 출세하는 것으로 증명하려 한다면 삯군일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으로 기독교를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삯군에게 목적은 주님도 아니요 양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입니다. 선한목자는 희생을 통해 죽음을 통해 증명하는 것입니다. 가끔 삯군 같은 성도들을 봅니다. 세상의 방법과 똑같습니다. 세상에서 그렇듯 무언가 휘둘려고 합니다. 자기 세력을 모아 힘자랑하려 합니다. 삯군입니다. 무엇인가 환경에 결과가 나서 내가 예수를 잘 믿는 자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늘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있음이 귀할 것입니다. 선한 목자 형 지도자는 앞서갑니다. 모범을 보입니다. 15절입니다. 죽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불타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에 들지 아니할 양들 저들을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소중한 것만큼 우리밖에 잃어버린 영혼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주님의 양이 있고 교회밖에는 주님의 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의 마음에는 나만 잘하고 나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돌아와야 할 양 들이 명단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낙심해 있는 양들의 명단을 가음에 품고 있습니다. 나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한 목자는 한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알지도 못하지만 저들 영혼에 대한 거룩한 부담이 있습니다. 성도님들에게 바로 이런 선한 목자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교회가 우리끼리 좋아서는 아니 됩니다. 성도가 나만 편하자 하면 안 됩니다. 무너지는 소리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여러분이 선한 목자가 되길 바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크게 외치셨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양인데 주님이 우리의 문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하신 주님을 여십시오. 주님을 구하십시오. 주님을 찾으십시오. 다른 문에서 그만 서성거리십시오. 세상에 그만 속으십시오. 우리를 위해 묵숨 까지 버리신 십자가의 사랑 주님은 자신을 고백합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선한목자이신 주님은 양된 우리를 잘 압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한목자의 삶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출처/유재명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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