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위한 개혁신학을 위하여 / 이승구 교수
우리가 신학을 하는 목적은 우리 주님께서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구속하셔서 친히 세우신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모든 바른 신학은 다 '교회를 위한 신학'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말은 마치 사업을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아다니며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사용하든지, 정치는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그 무엇이든지 다 사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말을 주의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현실의 교회가 어떤 모습 가운데 있든지 그것은 묻지도 않은 채 그것을 발전시키고 흥왕케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면 어떤 것이나 다 좋다는 식의 오해가 주변에 난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말을 매우 주의해서 사용해야만 한다.
기본적으로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말은 현실의 교회가 실용적 유익을 추구하는 데 신학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현존하는 현실의 교회가 지향하는 방향이 바르지 못하다면 교회가 그 방향을 계속 지향하게 도움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만일에 그런 신학이 있다면 그런 신학은 바르지 않은 신학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현실 유지와 지금 현재 힘있는 세력을 유지시키기를 원하는 이론가들을 현실에 아부하고 야합하는 자로 언급하고 낙인찍기도 한다. 하물며 신학에서야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진정으로 교회를 위한 신학은 무엇이고, 그런 신학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성경이 가르쳐주는 교회는 무엇인가
첫째로, '교회를 위한 신학'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무엇이며, 그런 교회가 현실적으로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바를 정확히 제시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 '교회를 위한 신학'은 성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신학이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제시하는 신학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성경적 교회상(敎會像)에 비추어서 현실의 교회의 모습을 끊임없이 비판하는 신학일 수밖에 없다.
성경이 제시하는 참된 교회의 모습을 제시하는 과정 가운데서 그런 비판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교회의 모든 상황을 모든 점에서 정확하게 진단하고 살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실천신학자들의 상당한 기여가 바로 이런 부분에서 나타날 수 있고, 나타나야만 할 것이다. 바른 실천신학자들은 우리네 교회가 지금 처한 상황을 성경적 기준에 비추어 정확히 드러내 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말하는 참된 교회의 모습을 향해 나가기 위한 비판이므로, 참으로 건설을 위한 비판이지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참된 성경적 교회론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모습의 부끄러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도 우리는 그것을 싫어하거나 그저 감추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을 회개하면서 더욱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서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서 주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향해 진력해 나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 '교회를 위한 신학'은 우리의 목회 현장이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현장 가운데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바른 교회를 향한 신학적 성찰
둘째로, '교회를 위한 신학'을 하기 위해서는 신학자들과 그들이 있는 신학교, 그리고 참된 목회자들과 교회가 함께 협력해서 이 땅의 교회를 참으로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을 향해 가도록 노력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신학자들과 목회자들과 교회가 각기 다른 꿈을 꾸고, 다른 목소리를 발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현실은 진정한 '교회를 위한 신학'이 나타날 수 있는 분위기를 지닌 현실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참된 모습을 가감 없이 제시해 주는 신학자들과, 그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 교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진단하고 선포하는 진지한 목회자들과, 그런 말씀을 오늘 우리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선포로 받아들이며 기도하면서 성령님께 의존해서 실천에 옮기려는 성도들이 함께 있는 그곳에 진정 '교회를 위한 신학'이 있다.
그러나 그런 신학자들의 목소리가 들려 오지 않을 때, 그리고 진지한 목회자들이 바른 신학 연구에 터하여 성경에 근거한 선포로 우리네 교회를 도전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런 선포보다는 우리의 위로와 평안과 번영을 위한 소리만을 추구하는 성도들로 가득 차는 한국교회가 될 때에 우리에게는 참으로 '교회를 위한 신학'이 없는 상황이며, 바로 이런 상황이 '교회를 위한 신학'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시대야말로 참으로 성경을 위한 신학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 그러므로 신학자들과 신학교, 목회자들과 교회가 참으로 성경적 교회를 위해 함께 한 마음과 한 사상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한다.
신학교육에 더욱 힘써야
셋째로, 참으로 '교회를 위한 신학'을 하기 위해서 신학에 입문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따라서 성경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성경적 사상을 정립시키며 바르게 신학적인 오리엔테이션을 줄 수 있는 신학교육기관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교는 목회적 기능인 양성소가 결코 아니며, 그저 단순히 목회 전문가를 키우는 기관도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내일의 교회의 바른 모습을 제시하고 그런 교회를 이루기 위해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는 헌신자들이 성경적 사상을 형성해 나가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학교는 바로 이런 사명감을 가진 이들을 엄선해서 그들의 사상을 성경적으로 형성시키고 개조해 가며, 그런 사상에 근거해서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그들을 더욱 헌신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신학교에 입학한 이들은 이제 신학교에 있는 기간 동안에 자신들의 생각과 사상을 성경적 신학적 방향으로 바르게 정립하는 일에 온 힘을 다 써야 할 것이다. 신학교에 있는 신학연구원 과정(M. Div.) 3년, 또는 학부와 신학연구원 과정을 포함한 7년의 기간이 우리가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성경에 근거해서 비판적으로 살피고 정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바른 신학을 정립하지 못하고 바른 신학을 해 나갈 수 있는 방법론을 습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평생 결국은 교회를 바르게 섬길 수 없는, 그리하여 교회에 실질적인 해를 가하는 이들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가!
그렇기에 학교에 몸담고 있는 학업의 기간 동안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책을 읽고 생각하여 바른 신학을 정립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결국 우리가 그렇게도 바르게 섬기기를 원하는 교회를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참으로 제대로 섬기기 위해서 우리는 참된 신학의 정립에 우리의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이 과정을 매우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제까지 고귀하게 생각해 온 우리 나름의 잘못된 사고의 틀이 깨어지고, 우리의 잘못된 전통이 깨어지는 일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서 주께서 참으로 우리 안에 이루시기를 원하는 참된 신학의 정립을 통해서만 교회를 바르게 섬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성경적 신학과 개혁주의 교회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우리가 참으로 그렇게 정립해 나가야 할 바른 신학의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성경적 신학이다. 성경적 신학이 아닌 신학은 바른 신학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 시대의 교회가 잘못된 신학 가운데서 잘못된 길을 헤맬 때, 성경의 가르침을 회복시켜서 그 시대의 교회를 참으로 살리며 바르게 섬기는 일을 하였다. 물론, 위에서 말했듯이, 여기에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오랜 전통이 깨어지는 아픔이 동반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우리들이 잘못 형성시켜온 사고방식과 잘못된 신학을 성경적 신학에 근거해서 깨고, 성경적으로 바른 신학을 새롭게 수립하는 작업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적 과정을 생각해 보면 천주교회의 신학보다는 루터의 신학이, 루터의 신학보다는 칼빈과 그를 따르던 개혁파의 신학이 전반적으로 좀더 성경적 가르침에 가까운 신학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기에, 장로교회와 개혁파 교회들에서는 개혁파 신학을 성경의 가르침에 가장 가까운 신학으로 존중하여 왔고, 좀더 성경에 충실한 신학을 제시하기 위해 지금까지 끊임없이 노력해 오고 있다. 월필드(B. B. Warfield)가 말하는 바대로, 칼빈주의는 정상에 이른 복음주의요, 가장 정순한 형태의 기독교라고 하는 믿음이 개혁파 선배들의 믿음과 확신 가운데 있다.
우리는 그 개혁자들의 후예들로서 이 시대의 교회를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것이 이 땅 위에 진정한 개혁파 교회를 드러내고, 참된 개혁파적 목회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진력해 가기를 원한다. 이를 잘 하기 위해서 우리는 참된 개혁파 신학을 배우고, 그것에 충실한 참으로 성경적인 개혁파 신학을 수립하고, 개혁파 교회를 개혁파 목회자로서 섬기기 원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일정한 기간 동안 개혁파 교회 가운데서 좋은 지체(肢體)로서의 경험을 가져 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우리가 개혁파 신학을 지향하는 학교의 일원으로 있으면서 반드시 경험하고, 같이 소원하고, 함께 꿈꾸며, 같이 이루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바른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통해서 진정 '교회를 위한 신학'을 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나타나서 우리네 한국교회에 진정한 개혁파 교회가 든든하게 서 나갈 날을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가 성령님께 의존하고 기도하면서 진정 '교회를 위한 개혁파 신학'을 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승구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조직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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