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번연은 설교와 삶의 방식과 저술에 있어 청교도주의의 대표적인 모범이다. 앞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번연은 비국교도였기 때문에 그의 교회 관계는 엄밀하게 말해서 청교도가 아니었다.그는 국교회와의 타협을 싫어했기 때문에 12년 간의 옥고를 치렀다.
침례교인들은 청교도에서 자랐는데 1640년대와 1650년대에 크게 성장하였다.우리는 앞에서 핸서드 놀리즈(Hanserd Knollys)와 헨리 제시(Henry Jessey)의 삶에서 이러한 성장을 살펴보았다.청교도 시대에서 발생된 침례교인들의 출현에 대해서 마이클 헤이킨(Michael Haykin) 교수는 '키핀, 놀리즈, 키치'(Kiffin, Knollys and Keach)라는 저서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다. 그는 매우 흥미로운 필치로 3K들의 생애를 서술하였다. 그중에서 핸서드 놀리즈(1599-1691)에 대해서 잠시 소개한다.
Hanserd Knollys
그는 케임브리지의 캐서린 홀(Catherine Hall)에서 신학을 하고 린컨셔(Lincolnshire)에서 목회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1635년에 청교도의 확신 때문에 잉글랜드 국교회와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는 같은 해에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641년에 귀국하였다. 그는 침례교인들과 함께 사역했는데 나중에 가장 두드러진 침례교 리더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1646년 침례교 신앙고백의 서명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놀리즈는 런던에서 약 1천 명이 모이는 침례교 대형 교회에서 목회하였다.
1677년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이 작성되기까지의 발전과정에 대한 기록은 '침례교 유산'(Our Baptist Heritage)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1688년에 상황이 호전되자 이미 공식적으로 작성됐었지만 널리 배포하는 것이 부적절했었던 신앙고백을 발간할 수 있게 되었다. 1677년 신앙고백은 1689년 신앙고백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단지 당시에 널리 배포가 됐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청교도의 교리를 대변한다. 침례교인들은 그들의 신앙고백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회중교회의 신앙고백(사보이 선언)에 나오는 청교도 양식에서 따왔다. 청교도 이야기에서 한 가지 흥미 있는 것은 지도급의 비장로교 사역자들의 상당수가 사보이 선언(The Savoy Declaration)에 관련됐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존 오언, 토마스 굿윈, 필립 나이, 윌리엄 브리지, 조셉 카릴, 윌리엄 그린힐, 존 하우이다. 사보이 선언에는 120개의 교회가 대표되었다. 세 개의 청교도 신앙고백서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단지 교회 조직과 침례 부분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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