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에 나타난 지도자의 유형별 분석
박용규 -
Ⅰ. 들어가는 말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지도자의 유형은 일반 지도자의 유형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미국 아이와 대학의 케이 레윈(K. Lewin)과 알 리피트(R. Lippitt)교수는 따르면 지도력의 유형에는 민주주의형(democratic), 권위주의형(authoritarian), 그리고 자유방임형(laissezfaire)이 있다. 오늘날 비기독교계는 물론 일부 기독교계에서도 이 분류 방법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세가지 형태의 분류 방법을 교회사에 나타난 기독교 지도자의 유형 분석에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것은 오스왈드 샌더스(Oswald Sanders)가 지적한 것처럼 기독교 지도자들과 세상의 지도자들과는 다음 몇가지 사실에서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는 비기독교 지도자는 자기 확신을 지도력의 모체로 삼지만 기독교 지도자 즉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모체로 한다. 둘째는 일반 지도자는 사람을 알면 되지만 영적 지도자는 사람과 하나님 모두를 알아야 한다. 셋째는 일반 지도자의 결단은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되지만 기독교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넷째는 세상 지도자들은 지도력의 방법론을 택하는데 있어서도 자기 중심적이지만 기독교 지도자는 하나님의 방법론을 발견하여 따르려고 한다. 다섯째 세상 지도자는 동기 부여가 단순한 성취욕에서 비롯되는 것이 지배적이지만 기독교 지도자의 성취동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또는 소명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 계획 실행 추진 등에서 일반적인 지도자는 자기 의존적이거나 인간 의존적인 것에 반하여 기독교 지도자는 하나님 의존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공동의 목표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리더쉽의 정의라면 기독교 리더쉽은 다른 사람에게 영적으로 영향을 주어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동참 협력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어떤 시각에서 지도력을 평가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런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영향을 주는 주된 요소가 무엇인가라는 영향력의 유형에 따라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지도자의 유형을 지성주의형 지도자, 행동주의형 지도자, 부흥운동형 지도자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Ⅱ. 지성주의형 지도자
지성주의형 지도자는 풍부한 학식을 바탕으로 지성을 통해 당대에 영향력을 미쳤던 기독교 지도자들을 말한다. 지성주의형 지도자는 신학과 성경 뿐만 아니라 당대의 철학을 깊이 연구 섭렵한 뒤 지성을 통하여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여 당대와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발전을 위해 그리고 신학적인 변호를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지도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지성적 리더쉽의 원천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의 계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유형에 속한 기독교 지도자로는 초대교회의 유명한 교부 어거스틴과 종교개혁을 신학적 지성적으로 정립하여 기독교계에 영향을 미쳤던 개혁자 존 칼빈, 그리고 현대 세속주의 지성에 대항하여 기독교 지성을 변호하던 프랜시스 쉐퍼를 대표적인 인물로들 수 있다.
1. 히포의 지성적 변증가 어거스틴
지성주의형 지도자의 대표자 어거스틴은 지성적인 결단력과 감화력을 완벽히 갖춘 인물이었다. 자기가 확신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확신있게 전달할 수 있었던 어거스틴은 지성적 통찰력과 영적 통찰력 모두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의 지도력의 원천이었다. 어거스틴의 지성적인 지도력은 저술을 통하여 마니교와의 논쟁을 통하여 도나티스파와의 논쟁을 통하여 그리고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통하여 잘 나타난다. 지성적인 지도력이 있으면서도 어거스틴은 상당히 포용적인 지도자였는데 그것은 그의 역사관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기독교 역사관이 잘 표현된 서적이 주후 400년에 저술된 고백록과, 413년에 시작하여 427년에 마쳤던 신의 도성이다. 고백록에서는 자신의 도덕적 영적인 갈등과 투쟁의 경험에 근거하여 개인의 삶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변호하고 신의 도성에서는 하나님의 도성과 인간의 도성과의 상호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세계 역사 속에 개입하시며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는 기독교 역사철학을 변호하였다.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는 포용력을 보이면서도 진리의 문제에서는 전혀 타협하지 않았던 어거스틴이었다. 로날드 H. 내쉬(Ronald H Nash)가 어거스틴을 “변증가 어거스틴”이라고 불렀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2. 제네바의 지성적 지도자 존 칼빈
교회사에 나타난 지성적 지도자의 두번째 대표적인 인물은 종교개혁자 존 칼빈(1509-1564)이다. 그의 탁월한 지도력은 지성을 통하여 표출되었다. 칼빈은 23살에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을 쓸 만큼 풍부한 고전지식을 갖고 있었다. 고전에 방대한 지식은 물론 당대의 철학 신학 그리고 인문주의 학문이 신앙을 통해 여과되어 나타난 불후의 명작 기독교 강요는 백만의 설교보다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밴 후저 교수가 말한 적이 있다. 칼빈은 자신이 갖고 있는 신앙을 지성으로 표현했고 그 지성을 통하여 공동의 목적을 향해 가도록 유도하였다. 그의 행정적인 수완이 뛰어났던 것도 그가 당대에 국제적인 인물이 될 만큼 뛰어났던 것도 그리고 영국 스코틀랜드 조국 불란서에 종교개혁을 고무시켰던 것도 그의 탁월한 지성적 지도력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칼빈의 영향력의 핵심이 지성적인 면에 있었지만 그의 리더쉽이 실천이나 사랑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칼빈은 자신의 탁월한 지성을 가르침 저술 실천 등을 통하여 꾸준하게 그리고 유감없이 피력하였다. 추상적인 개혁을 외치지 않고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한 학교의 설립자로서 자신의 기독교적 지성을 현장 속에서 구현하려고 했던 지도자였다. 사실 그의 지성이 실천적인 면으로 다듬어진 것은 목회현장 경험을 통해서이다. 전통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개혁을 부르짖었던 칼빈의 지성적 지도력은 목회 설교 학교교육을 통하여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칼빈은 제네바의 목회자며 토마스 아퀴나스와 버금가는 조직력의 소유자며 위대한 성경교사였다. 이단들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양보도 없으면서 제네바로 몰려드는 수천의 난민들을 사랑의 열정을 갖고 돌보는 아름다운 목자적면이 칼빈의 지성적 지도력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백만번의 허공을 치는 행동없는 설교보다도 실천을 통한 한마디의 가르침이 인간을 감동시키고 공동의 목적에 동참하도록 만드는 것을 칼빈은 잘 알고 있었다. 칼빈의 제네바 목회 현장을 목격한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존 낙스는 제네바야말로 “사도시대 이후 가장 완벽한 그리스도의 학교”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교회와 공동체를 온전히 연결시키는 탁월한 지도력 그것은 사랑이 동반된 지성적 지도력을 통하여만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복음에 사로잡힌 기독교 지성인이었지만 그의 지성은 항상 현장과 함께 있었다. 제이 아이 팩커(James I Packer)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실로 칼빈은 “교회와 공동체 속에서 사심없이 하나님의 명예와 그의 영광을 추구했던 말씀의 설교자며 교사 목사 개혁자 신학자 그리고 영원한 기독교 카운셀러”였다. 이런 뛰어난 지성적인 지도력의 소유자 칼빈은 청교도 설교가 리차드 백스터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 칼빈주의 설교가 조지 휫필드 미국 지성의 초석이라 칭하는 조나단 에드워드 영국의 명 설교가 찰스 스펄전 마틴 로이드 존스 그리고 윌리암 케리 같은 선교의 개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3. 현대 기독교 지성인 프랜시스 쉐퍼
18세에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던 라브리의 설립자 프란시스 쉐퍼(1912-1984)는 지성주의 지도형의 세번째 대표자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빗 포터(David Porter)는 프란시스 쉐퍼의 독특한 특징은 영성과 지성이 실천적이고 사랑어린 관심으로 결합하여 성경적인 진리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25개어로 번역된 23권의 그의 저서는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지성적인 지도자였지만 실천과 사랑이 동반되어 있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었다. 거기계신 하나님(1968),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1977), 이성으로부터의 도피는 그의 기독교 지성이 현장을 통해 다듬어진 결정체였다. 영적인 위기를 극복한 뒤 1954년에 설립된 라브리를 통한 기독교 실천이 있은 다음에야 그의 지성은 빛을 보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영성과 지성과 실천이 그의 성경진리에 대한 확신과 어울려 세속화되고 있는 현대 기독교와 현대인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삶 속에서 진리와 실체를 찾으려고 하는 젊은이들에게 지성과 실천을 통해 기독교 비전과 확신을 심어 주는 쉐퍼의 지도력은 성경에 대한 타협할 줄 모르는 그의 확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었다. 쉐퍼는 신앙을 떠나 이성과 자율로 흐르고 있는 현대 지성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기독교 지성을 밝혀주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였다.
지성주의형 지도자들은 몇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는 기독교 진리 뿐만 아니라 당대의 세상 학문에 통달하면서도 그 세속학문을 기독교 진리를 밝히는데 사용하는 훌륭한 예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번째 특징은 그들의 지성적 지도력의 영향은 당대 뿐만 아니라 후대까지 미쳤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뚜렷한 회심의 체험을 하면서 게시 의존적인 신앙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넷째는 그들의 기독교적 지성이 삶의 현장을 통해 여과되었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Ⅲ. 행동주의형 지도자
교회사에 나타난 두번째 지도자 유형은 행동주의형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기독교 공동체 속에서 실행에 옮기면서 리더쉽을 발휘하던 지도자들을 말한다. 행동주의형 지도자들은 자기의 목숨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그것을 그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겼다 그런 흔들리지 않는 확신은 주변의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쳐 공동의 목적을 향해 함께 진취적으로 전진하도록 만들었다. 행동주의 지도자들에게 우유부단이란 있을 수 없었다. 예스(Yes)와 노(No)가 분명하였으며 공사를 구분하고 사리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판단력과 그것을 실행하는 실천력이 뛰어났던 지도자들이었다. 때문에 영향력 만큼이나 그들의 주변에는 적들이 많았다 기독교 박해나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인물들이다. 이 유형에 속한 지도자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행동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을 표현함을 역설하던 기독교 지도자들이다. 모라비안 공동체의 창시자인 진젠돌프 백작(Count zinzendorf)은 “나는 오직 한가지 열정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오직 그분이시다”고 외쳤다 이처럼 행동주의형 지도자들은 행동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당대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죽은 뒤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던 지도자들이다.
행동주의형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자기가 믿는 진리를 위해서 주저하지 않고 순교했던 초대교회 변증가 저스틴 마터, “80평생 나를 사랑하며 한번도 나를 배반하지 않은 주님을 어떻게 배반하겠느냐”고 외치면서 화형의 이슬로 사라졌던 속사도 폴리갑, 자신의 조국 스코틀랜드의 교회 개혁을 부르짖었던 존 낙스, 독일 히틀러 정권에 아부하면서 신앙을 변질시키고 있던 독일 교회에 신선한 도전을 준것은 물론 생명을 무릅쓰고 히틀러 정권에 항거하다 옥중의 이슬로 사라진 디트리히트 본 훼퍼, 그리고 기울어 가는 조국의 교회와 민족에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도전을 주었던 주기철 목사와 같은 사람을 대표적인 인물로들 수 있다. 행동주의형 지도자는 순교자들과 아나 뱁티스와 같은 급진적인 종교개혁 지도자, 퀘이커 창시자인 조지팍스, 그리고 경건주의 운동의 창시자인 진젠돌프 같은 지도자를 포함한다.
1. 스코틀랜드 행동파 지도자 존 낙스
존 낙스(1514-1572)는 행동주의 지도자형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개신교 신앙을 전파하였던 성 앤드류의 주교 조지 위스하트(1513-1546)가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한 뒤에 그 대신 성 앤드류 교회의 교사이자 설교자가 되었다. 그의 지도력은 확신 영성 그리고 개혁에 대한 의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의 지도력이 힘있고 호소력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실제로 행동을 통하여 자신의 확신을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존 낙스에게 타협은 곧 배교를 의미하였다. 그는 단한번의 미사는 백만의 적보다도 무섭다고 외치면서 스코틀랜드의 개혁을 몸으로 실천했던 행동주의 지도자였다. 더글라스(J. D. Douglas)가 지적한 것처럼 그의 행동주의 지도력은 다음과 같은 확신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영향력이 있었다. 첫째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하고 충분한 법칙이다. 둘째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셋째 목사는 단지 말씀의 교사, 말씀의 종, 그리고 말씀의 청지기이다. 넷째 목사 선택권은 교인이 갖고 있다. 많은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낙스는 교인들이 자신의 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양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직은 그들의 선을 위하여 임명된 것이며 자신을 목회자로 선택한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영적 성숙을 도모하며 그들의 삶을 부요하게 만들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권력과 부의 척도에 따라 행동기준을 달리 설정하지 않았던 행동주의 지도자 낙스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공평하게 사랑하였다. 1572년 11월 24일 에딘버러에서 낙스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참석했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여기 어느 누구에게 아첨하지도 어느 누구를 과찬하지도 않았던 그 사람이 누워있노라”
2. 몸으로 개혁을 외쳤던 울리히 쯔빙글리
암흑시대와 개혁시대가 맞물리던 격변의 시대에 태어나 몸으로 개혁을 외쳤던 울리히 쯔빙글리(1484-1513)는 전형적인 행동주의형 지도자였다. 칼빈이 지성을 통하여 루터가 황금의 입을 통하여 개혁의지를 피력한 것에 비하여 행동으로 자신의 개혁을 진행하여 나갔다. 그의 행동주의 지도력의 원천은 타협할 줄 모르는 진리에 대한 확신이었다. 이런 그의 확신 때문에 그는 루터파와 재침례파 결국은 로마가톨릭과도 불꽃 튀는 논쟁을 벌였다. 그의 행동주의 지도력은 두가지 전환점 성경연구(1919)와 흑사병의 위기(1520)를 거치면서 성숙되었다. 그뒤 행동은 더욱 확신에 찼고 1522-1526년에는 성직자의 결혼을 허용하고 67조항을 택하고 새로운 세례조례를 공포하였으며 신학교를 개혁하고 미사를 폐지하고 권징을 설정하였다. 쯔빙글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었고 목회현장에서 말씀과 성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철저히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면죄부 행위구원 교권주의 성례주의 비성경적 전통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쯔빙글리는 옛질서와의 단절 목회 예배 행정 권징 등을 본질적으로 재구성하였다. 그의 행동주의 리더쉽의 영향은 곧 그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3. 행동주의형의 대표자 본회퍼
루터교의 신학자이며 목사인 디트리히트 본훼퍼(1906-1945)는 행동주의 지도자형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현실 속에서 실천을 강조했던 그의 확신이 잘 표현된 책은 금세기에 들어서 가장 큰 도전을 주었던 저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제자도의 대가(The Cost of Discipleship )이었다. 당시 공개적으로 히틀러와 나찌의 반유대주의 정책에 반대하였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였지만 그의 확신은 죽음 앞에서도 굽힐 수 없었다. 본훼퍼는 훌륭한 지도자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확신을 구현하여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의 행동주의 지도력은 세가지 만남 즉 학문적인 만남 현장과의 만남 그리고 세계와의 만남을 통하여 발전되었다. 20대에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본훼퍼는 1928년부터 29년까지 그의 지성을 바르셀로나에서 목회 현장을 통해 시험할 수 있었다. 목회현장과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통하여 본훼퍼는 두가지 즉 행동으로 구현되지 않는 신학은 생명이 없다는 사실과 독일의 유태인 학대 정권과 밀착된 독일의 거짓 교권을 히틀러 통치의 오용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1933년 4월 본훼퍼는 만일 정부가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고 확신이 들면 교회가 정부의 부당한 행위를 비판할 수 있으며 이런 부당한 행위의 희생자들을 도울 수 있으며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본훼퍼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이들도 본훼퍼의 행동주의 리더쉽에 존경을 금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바로 행동화되지 않은 신앙은 의미가 없다는 그의 투철한 실천정신 때문이다.
Ⅳ. 부흥운동형 지도자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세번째 지도자 유형은 부흥운동형 또는 각성운동형이다. 여기에 속한 지도자들은 뜨거운 가슴의 지도자들이다. 지성주의형 지도자들이 학식과 사상을 모체로 하고 행동주의형 지도자들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고백과 실천을 모체로 한 반면 부흥운동형 지도자들은 영적 각성을 모체로 하여 영향을 미쳤던 기독교 지도자들이다. 부흥운동형 지도자의 지도력의 핵심은 설교에 있었다. 그들의 설교는 쉽고 단순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설교는 영적인 힘이 있었고 대중들을 감동시켰으며 그들의 심령 속에 영적인 감흥을 일으켜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도록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뚜렷한 이념이 있으면서도 포용력이 있었고 철저하게 일을 분담하여 실행하였다. 무디의 학생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과 빌리 그래함의 복음주의 운동에서의 지도력은 탁월하였으며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확장하고 계셨다.
부흥운동형의 지도자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한 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교단과 교계에 영향을 미쳤던 교파형과 교파나 교단을 초월하여 초교파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초교파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에 속한 지도자들은 황금의 입으로 널리 알려진 초대교부 존 크리소스톰 영국의 침체된 교회에 영적인 활력을 불어 넣어준 감리교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형제 영적 감화력있는 설교를 통해 잠자고 있던 영국 신도들을 각성시켰던 침례교 스펄전 목사를들 수 있다. 후자에는 19세기 말 미국, 영국, 카나다 등 영어권 세계에 강력하고 도전적인 설교를 통해 선교열을 고취시켜 세계선교를 촉진 시켰던 무디(D. L. Moody)와 1950년대 이후 세계 복음화를 위해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한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빌리 그래함 등을들 수 있다.
1. 올더스게이트 회심자 요한 웨슬리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쳤던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1703-1791)는 복음운동형 지도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회심 이전의 그의 리더쉽은 회심 이후의 리더쉽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1738년 올더스게이트에서 회심의 경험을 체험한 웨슬리는 기독교 지도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필요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회심 이전에 조지아주의 선교사로 가서 그곳에서 복음을 외쳤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설교와 선교에는 열매가 따르지 않았다 실제적인 회심의 체험이 웨슬리를 위대한 지도자로 만든 것이다. 1738년 5월 회심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웨슬리는 제2의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생명력과 열매가 없던 그의 메시지가 외칠 때마다 구름떼같이 모여든 수많은 청중들의 가슴을 찢어 놓았다 구원의 확신을 체험한 이후 웨슬리는 250,000마일을 말을 타고 달리면서 복음을 외칠 수 있었다. 그런 실천과 확신이 동반되 그의 행동주의 리더쉽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흘륭한 실례가 되고 있다.
2. 19세기의 황금의 입 스펄전
스펄전(C. H. Spurgeon, 1834-1892)은 부흥운동형의 또다른 대표적인 인물이다. 1865년에 그의 설교집은 일주일에 25,000부가 팔리고 있었다. 스펄전 지도력의 원천은 복음에 대한 확신과 그 확신을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에 있었다. 스펄전의 지도력은 후진 양성을 통하여 그리고 그의 설교집과 서적들이 국제적으로 보급되면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평범한 어휘와 뛰어난 유머 감각은 그의 설교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부흥운동형의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지도력은 기도 말씀연구 그리고 구원의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구원의 확신과 체험적인 신앙위에 청교도 신학을 포용한 그의 설교는 청중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의 확신에 찬 지도력으로 1854년에 232명의 교인들이 1891년에 5,311명으로 불어났다. 그동안에 14,460명의 교인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의 부흥운동형 지도력은 인격적인면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더욱 감화력이 있었다. 1850년대에 설립된 신학교는 그가 죽기 전 900명의 목회자를 배출하였고 그의 학생들에게 주는 강의와 다른 몇권의 그의 서적은 고전이 될 정도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오늘날에도 국제적으로 많은 목회자들로부터 추앙받는 이상적인 설교자이다.
3. 20세기 세계선교의 디딤돌 디 엘 무디
19세기 후반 부흥운동의 물결을 일으키면서 미국 영국을 질주하였던 무디(D. L. Moody, 1837-1899)는 부흥운동형 지도자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부흥운동 지도자가 그렇듯이 무디도 회심의 경험을 하였다. 18살 때인 1855년 4월 21일에 있었던 회심의 사건 이후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후 그는 “미치광이 무디”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복음에 불타올랐다 1860년 회심 뒤 5년만에 그는 직업을 아예 포기하고 전도자가 되었다. 오스왈드 샌더스와 마찬가지로 무디에게 기독교 지도자는 곧 영적 지도력을 소유한 사람을 말하고 영적 지도력의 원천은 성령충만이었다. 무디는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였지만 협력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하였던 인물이다. 무디 지도력의 원천은 협동심 조직력 그리고 말씀에 대한 확신에 있었다. 평범한 공무원이던 하늘 목소리의 소유자 생키(Ira D. Sankey)가 1870년 무디를 만난 다음 무디의 불타는 열정에 압도되어 무디의 동역자가 되었다. 그는 강한 확신이 있었지만 아집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연합집회형의 과거부흥운동을 개교회 부흥운동으로 연결시켰다 그의 지도력은 곧 교파를 초월하여 많은 교단의 평신도와 목사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무디의 지도력은 강한 확신 학력을 초월하여 쓰임받을 수 있다는 강한 확신에 기초하고 있었다. 넓은 가슴 짧다란 목 덥수록한 검은 수염 회색의 눈동자를 가진 둥근 얼굴의 사나이의 설교는 매력이 없었고 문법에도 맞지 않았지만 성령충만한 무디의 입에서 나오는 설교는 청중들의 심령을 뒤집어 놓았다. 그의 설교를 들었던 한 영국인이 지적한 것처럼 무디의 설교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는 가장 강력한 열망”을 느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4. 20세기 부흥운동의 빌리 그래함
빌리 그래함은 부흥운동형 지도자의 전형적인 실례이다. 훌륭한 인격과 뛰어난 유머감각 탁월한 리더쉽 조직력 설교적인 재능을 소유한 장신의 잘생긴 이 사람은 부흥운동 지도자로서 완벽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공식적인 전기 작가인 폴락은 그는 겸손하여 배우려는 열심과 남의 충고와 새로운 사상에 귀를 기울이는 아량이 있었지만 그와 함께 성경의 불변의 진리에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서도 반지성주의나 폐쇄주의 분리주의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그의 리더쉽의 장점이었다. 그는 공허한 정치적 종교적 논쟁을 피했으며 비평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 확신과 포용을 병행했던 그의 부흥운동형 지도력 때문에 그는 근본주의자들로부터는 자유주의자의 협력을 받는다는 이유로 자유주의자들로부터는 사회복음을 통한 구원을 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아왔다. 인종문제에 대해서도 양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복음주의신학에 대한 확신 순수한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 그리고 대범한 조직력이 동반된 그의 부흥운동형 리더쉽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켜 교단과 교파의 장벽을 뛰어넘어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Ⅴ. 맺음말
교회사에 나타난 지도자들의 유형 속에서 공통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에 살면서 당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한 역사관과 세계관이 뒷받침될 때에야 가능하다. 역사를 바로 보는 안목 세계를 꿰뚫어보는 세계관은 기독교 지도자에게 필수적이었다. 기독교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기독교 역사에 어떻게 개입하셨고 개입하고 계시며 그리고 하실 것인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둘째 그들의 지도력에는 그리스도를 위한 선한 비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한 신앙의 확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셋째 이들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은 말 글 행동이 일치했다는 점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지도자의 생명은 끝난다. 넷째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권위의 근거를 성경의 계시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지도자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겸손이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분명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시대적인 각각의 상황에 따라 여러종류의 지도자들을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 지성을 통하여 기독교의 진지를 밝혔던 지성주의형 지도자들 기독교 신앙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철저히 실행에 옮기려고 했던 행동주의형 지도자들 그리고 황금의 입을 통해 교회를 교계를 그리고 자신들의 조국과 세계를 각성시켰던 부흥운동형 기독교 지도자들 모두는 하나님이 시대를 통해 그의 나라를 확장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셨던 지도자들의 유형이다. 그러나 각각의 유형은 다른 유형의 장점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 유형의 지도자들은 리더쉽 및 영향력의 성격상 서로 대별할 수 있지만 다른 유형의 모습들을 포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각각의 유형은 장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 지도자의 유형을 통하여 각각의 장점을 살려 균형있는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 지도자는 지성을 통하여 행동을 통하여 메시지를 통하여 그리고 행정을 통하여 영향력을 미치는 균형잡힌 리더쉽을 갖춘 사람들이다.
(주)
1. Fred E. Fiedler, A Theory Leadership Effectiveness(NY:NcGrawHall Book Co, 1967), 12
2. Ted W. Engstrom 크리스찬 지도자가 되는 길 권명달 역(서울:보이스 1978) 123-152
3. J. Oswald Sanders, Natural Leardership and Spiritual Leadership, in Spiritual Leadership(Chicago:Moody Press, n d ), 21
4. Ibid, 19. 또한 보라 Charles R. Swindoll, 건설적인 지도자상 권명달 역(서울:보이스 1982) 14
5. 로버트 클린톤이 지적했듯이 어떤 인물의 생의 분석을 이해하는 데 유형(patterns), 과정(processes ), 그리고 원리(principles)는 필수적이다. 유형은 한 인생의 총체적인 골격 혹은 전체적인 윤곽 과정은 총체적인 유형에 따라 한 지도자를 움직이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과 수단들 그리고 원리는 과정과 유형 내에 존재하는 지도자에게 광의적으로 적용되는 근본적인 진리들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유형을 분석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한 지도자를 the timeline에 따라 총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라 The Making of a Leader:Recognizing the Lessons and Satages of Leadership Development(Corolado:Navpress, n d ), 42.
6. Ronald H. Nash, Augustine of Hippo, in Great Leaders of the Christian church, ed John D. woodbridge(Chicago:Moddy Press, 1988), 90.
7. 23살에 세네카의 관용론을 27살에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였던 칼빈은 자신의 기독교 지성을 제네바의 목회현장에서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던 1936년 바로 그해 파렐의 끈질긴 설득과 권유로 말미암아 제네바에서 시작한 목회는 1538년과 1541년 3년의 공백을 제외하고 그가 죽을 때인 1564년까지 계속되었다. 제네바의 목회의 세가지 방향은 본문설교 성경의 가르침 성례를 통하여 교인들을 영적으로 양육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반대하던 이들도 결국 행동이 뒷받침되는 칼빈의 지성적 리더쉽에 설복을 당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동역자들이 되었다. 또한 영국 스코틀랜드 불란서 등에서 몰려든 6000명의 개신교 난민들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8. James I. Packer, John Calvin and Reformed Europe, in Great leaders of the Christian Church, 209.
9. 한 역사가가 지적한 것처럼 이기적이고 딱딱하고 유머없으며 교조주의며 잔인한 독재라고 칼빈을 평하는 것은 그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실제의 칼빈은 달랐다 그는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과 인간을 섬겼던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본받았던 지도자였다. 영적으로 정직하고 겸손하면서도 가식이 없었던 칼빈은 현대 목회자들이 표상이 되고도 남는다. 우상승배의 암흑에서 건져주시고 복음전파의 사역자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길이 간직하였고 그것이 그의 일생을 떠나지 않았다.
10. James I. Packer, John Calvin and Reformed Europe, in Great Leaders of the Christian church, 209
11. David Porter, Francis Schaeffer and L`Abri, in Great leaders of Christian Church, 361
12. Oswald Sanders, Spiritual Leadership, 14
13. J. D. Douglas, John Knox and the Scots Reformation, in Great Leaders of the Christian Church, 249.
14. Ibid, 252
15. 1738년 동생 찰스 웨슬리가 회심을 경험한 3일 뒤 요한 웨슬리도 런던의 올더스게이트가의 작은 집회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것을 듣는 순간 구원의 확신을 체험하였다. “나의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음을 느꼈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그가 나의 죄 심지어 나 자신을 짊어지셨으며 죄와 사망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구원의 확신이 내게 생겼다” A. Skevington Wood, “John Wesley and Charles Wesley,” in Great Leaders of the Christian Church, 291
16. John C. Pollock, “D. L. Mood and Revival,” 341
17. 어떤 유형의 지도자가 가장 훌륭한 지도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각 리더쉽의 유형은 상호 보완적이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 리더쉽은 상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Cf) Helen Doohan, Leadership in Paul(Wilmington:Michael Glazier, Inc, 1984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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