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사는 나그네 인생 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 현대성과 세상성에 물들어 가는 교회 21세기 기독교의 ‘앨빈 토플러’로 평가되는 데이비드 웰즈(David F. Wells)는 그의 책「거룩하신 하나님(원제, God In The Wasteland)」에서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가 처한 근본적인 문제점의 원인을 ‘현대성’(modernity)에 물들어 가는 ‘세상성’(worldliness)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기독교 지성이 평가하는 이 시대의 교회의 정황에 대해 들어보자. “성경의 표현으로 말해, 현대성은 우리 시대의 세상성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삼고 하나님에 대한 모든 생각을 부차적인 것으로 분류하는 모든 기존 문화에서, 세상성은 타락한 가치와 신념의 체계요, 행동과 기대의 체계다. 세상성은 어떤 시대에서나 죄를 정상으로 보이게 하고 의를 이상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리고 현대성은 우리 시대의 풍요, 편의, 마술 등으로 자신의 가치를 매우 교묘히 은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처하는 자들도 현대성의 가치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인식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위의 책, p.55) 교회의 세속화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세속화는 농도와 기법에 있어서 이전 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몇 십 년 전만해도 ‘교회가 세속화되어 간다’는 말은 믿는 자들에게는 수치와 모멸감을 느끼게 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작금에는 교회의 세속화를 교회의 존재 이유인양 내세우는 뻔뻔스런 교회와 목회자들이 적지 않다. 물론 대놓고 “우리 교회는 세속적인 교회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없다. 그러나 목회 철학에서 목회 방식에 이르기까지 세상성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는 이들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례로, 요즘 한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교회 형태가 레포츠교회이다. 교회 건물 안팎에 수영장, 헬스실, 농구장, 라켓볼실등 다양도 체육 시설을 만들어서 지역주민들과 성도들의 여가와 건강 생활을 도모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삼는 교회이다. 레포츠교회라는 말은 2004년 <국어국립원 신어자료집>에 수록되었을 정도이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한편 교회의 대형화 추세와 함께 이제는 교회가 돈이 되는 사업에까지 발을 뻗치고 있다. 교회 토지와 건물을 이용하여 발 빠르게 부동산 사업과 임대 사업에 뛰어드는가 하면, 심지어 교회 안에 은행을 예치하여 금융 사업에 관여하거나 교회를 쇼핑몰과 같은 다목적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교회 건축이 유행이다. 물론 이런 교회는 전체 한국 교회 숫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상적인 만족과 물질적인 편의를 핑계 삼아, 이런 교회를 모범과 비젼으로 추켜세우는 덜 떨어진 목회자들과 자아 충족과 물질 세속적 축복을 교회가 추구해야 할 최대 가치로 여기는 지극히 세속적인 성도들이 점차 늘고 있다. 그럼에도 더 심각한 문제는 더 이상 현대 교회의 현대성과 세상성을 죄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성에 물든 교회를 향한 경계와 심판의 메시지 세상성에 물든 현대 교회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2)는 사도의 교훈을 우습게 여긴다. 도리어 위엣 것(영적인 가치) 때문에 땅엣 것(세속적인 만족)을 잃을까 전전긍긍한다. 천국이 있다고 확신하지만,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모두 누리기 전에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어느 교인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는 말씀을 듣고도 당장 죽더라도 세상에서 한번 호강해 보는 것이 꿈이라고 되뇌이는 교회 주변인들이 득실거린다. 그러나 참된 성도라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5,6)는 엄중한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교회의 세상성은 철저하게 인간의 만족과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거짓된 신앙으로 위장된 속임과 변명에 불과하다. 세상에 골몰하는 교회와 신앙은 영적인 삶의 가치를 유린할 뿐 아니라 참된 교회가 표방하는 모든 진실을 손상시킨다. 믿음으로 사는 나그네 인생의 묘미 현저하게 세상성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태의연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성경은 ‘땅엣 것들을 사랑하고, 세상과 벗하고자 하는 태도’를 명백한 죄로 규정한다(요 2:15, 17). 이에 대해 성급한 혹자는 그렇다면 성도는 세상에서 살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과 차단된 도피주의적인 삶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성도나 불신자나 모두에게 이생을 마치기까지 유일한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방식은 불신자와의 삶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즉 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예속되거나, 몰입되지 않으며, 주어진 삶의 목적과 본분을 다하는 삶이어야 한다. 성경은 이러한 삶은 ‘믿음으로 사는 나그네 인생’(히 11:13)으로 묘사한다. 믿음의 나그네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향해 나아가지만(고후 5:1), 세상의 현실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만나는 온갖 환난과 핍박과 낙심과 싸우며 극복하며 나아간다(고후 4:8-10). 왜냐하면 현재의 아무리 큰 고난일지라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롬 8:18). 성도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 같이 살아도 오롯이 그 삶을 기쁨과 감사로 감당할 수 있다. 불과 구름 기둥으로 광야의 이스라엘을 지키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성도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나그네 인생은 세상에서 하늘의 평안을 맛보는 삶이요, 이미 세상에서 승리한 삶이다(요 1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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