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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오스틴의 복음을 경계하며...

by 【고동엽】 2021. 10. 20.
조엘 오스틴의 복음을 경계하며...


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


조엘 오스틴(Joel Osteen)...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목사중의 한사람이다. 그도 그렇듯 한 것이 그는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Lakewood Church in Huston, Texas)를 담임하고 있으며, 수년에 걸쳐 가장 영향력있는 기독교 인사로 선정된 사람이다. 뿐만 아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들은 나오는 동시에 전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 2004년도에 출간한 그의 첫 번째 책,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은 기독교 역사상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팔렸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이다. 2005년 불황의 늪에 빠졌다던 한국 출판업계에서도 여름(8월)에 초판이 나와서 그해에만 무려 164쇄나 인쇄되었다니 이 말이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닐 듯 싶다. 그리고 작년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책, 『잘되는 나(Become a Better You)』는 현재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부분중에서 도 최고의 반열(a list)에 올라서 있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이 사람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게 만든다. 지난 주(2.3)에 서울 강남에 있는 ㅅ 교회 원로 목사가 설교 시간에 이 사람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호되게 비판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한마디로 복음의 본질을 왜곡해 사람을 혼란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하였단다. 오랜만에 한국 교회 강단에서 전해오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원하는 소식을 접하고도 마음 한 구석의 씁씁한 생각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전혀 관심을 갖고 싶지 않은 이 사람에 대해 또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ㅇ 목사의 공개적인 비판이 있은 후에야 무슨 문제가 있었던 양 보도되는 현실을 보노라니 자괴감마저 든다. 내가 이 사람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은 2005년 중순께였다. 에드먼톤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우연히 TV를 시청하다가 이 사람이 설교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사람이 목사일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생김새나 태도로 봐서 내가 모르는 미국 유명 인사가 일반인들을 상대로 좋은 강연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모습이 설교를 하는 거였고, 그 장소는 방송국이 아니라 그의 교회였다. 그때까지만해도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인상적인 미국 목사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신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그의 첫 번째 책을 읽고 나서부터 그와의 불행하면서도 구체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영어 공부한다는 셈치고 끝까지 완독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내 일생에 책에 대해 그토록 심한 거부감을 가져 본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듯 싶다. 성경 구절이 빼곡하게 적힌 책이었는데도 말이다. 책 내용은 별것이 없었다. 그저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 되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로버트 슐러의 아류작쯤 되는 책이었다. 그런데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교묘하면서도 감칠맛나게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합리화하기 위해 적소적재에 성경 구절을 적용하는 대담하고도 뻔뻔한 그의 성경 적용 기술이었다. 타의추종을 불허할만한 그 기술이 내게는 놀랍고도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경험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Larry King Live Show에 나와서 대담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미국 전국민을 대상으로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였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조차 그들의 구원을 제한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유일한 관심사는 다른 사람의 구원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보편적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와 평화롭게 누리는데 있다고 하였다. 그해 여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을 덮쳤을 때, 오스틴은 다시 한번 래리 킹 쇼에 모습을 드러냈다. 티벳 불교 고승인 달라이 라마와 함께 거대한 자연 참사에 대한 종교적 견해를 피력하는데, 기독교를 대표해서 초청받은 듯 보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오스틴은 다시한번 전국민앞에서 그의 신앙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달라이 라마는 신의 섭리를 말하였지만, 그는 그 순간에도 긍정적 사고를 통한 행복 추구권을 설파하였다. 미국 기독교의 간판으로 TV에 출연한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런데 그와의 악연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2006년 여름, 미국 유학 문제로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였다. 오스틴은 어느덧 한국에서 별중의 별이 되어 있었다. 가는 곳마다 그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치고 그의 책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모교 신학교에서마저 추천 도서로 소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찢어질만큼 통탄스러웠다. 영삼 전대통령 표현대로 우째 이런 일이... 그때의 당혹스러운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를 알았을때부터 긴장을 늦추지 말았어야 했는데... 거짓 복음의 세력과 능력을 만만하게 여긴 내가 부끄러웠다. 그 후,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오스틴의 거짓 복음의 실체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다시 이곳(Calgary)에서 오스틴의 두 번째 책을 접하게 되었고, 역시 한국에서 이미 번역되어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두란노 출판사가 사고를 낸 모양이다. 첫 번째 책에 이어 이번에도 번역과 출판을 도맡았나보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기로서니 이같은 대형 사고를 두 번이나 치다니... 사실 한국에서는 가장 부르조아 기독교 출판사인데도 말이다. 누구 책이 어떤 출판사의 이름으로 번역됐다는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모습에서 한국 교회의 슬픈 자화상을 보게 된다. 특히 한국 대형 교회의 자기 반성없는 모순과 치졸과 오만의 극단을 본다. 기독교 출판 분야와 관련된 사람들은 두란노 출판사라고 하면 마케팅과 트렌드로 무장한 교회 성장과 선교의 선구자격인 ㅇ 교회의 대외 홍보 기관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o 교회는 이 출판사의 브랜드를 이용하여 한국 교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물론 그 영향력이 모두 부정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안타깝게도 최근의 그들의 행보를 보면, 자신들을 마치 미국의 국적 불명의 유사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는 신사유람단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많은 대형 교회의 목사들과 위시하여 이 교회로부터 직간접인 영향아래 있는 수많은 목회자들은 그들이 수입한 유사 기독교 신앙을 한국 기독교의 주류 문화로 바꾸어 놓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런 정황가운데 ㅅ 교회 ㅇ 목사의 지적은 눈물겹게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왜 이제야 이런 말을 하는지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저주받을 거짓 복음이 한국 교회의 산천을 다 뒤엎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한 가지 더 유감스러운 일이 있다. 이왕 드러내고 잘못을 지적하려고 했다면 보다 정직하게 표현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ㅇ 목사 왈, “오스틴은 이단이 아니면서 이단 못지 않게 해를 끼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고 평하였다. 결국 ㅇ 목사는 오스틴류의 복음을 견책하면서도 또다른 면죄부를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인간의 가능성을 구원의 최대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주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세상의 well bing과 바꾸는 주장이 정죄받아야 할 이단이 아니라면, 도대체 기독교 이단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의 믿음의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행위로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 알미니안의 생각마저 기독교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스틴류의 주장은 이단중에서도 상(上) 이단이다.


ㅇ 목사를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다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대형 교회 목사로서 결단코 쉽지 않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 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박수 쳐주고, 그래서 또 교회 이름값이나 알리는 그런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이단 사설을 좋은 복음인양 소개하고 칭찬한 대형 교회들과 연합이라는 미명하에 강단을 교류하고, 목회자들의 개인적인 친분과 관계를 빌미로 한국 교회의 기득권적 카르텔을 형성해 온 지난 날의 과오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대형 교회라는 이름으로 한국 교회에 자행한 비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정치적 담합과 묵인과 방조 행위에 대해 진지하고 엄격한 회개의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대형교회와 이름난 목사라면 무엇이든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이른바 크기와 세력에 포로된 교회와 목회자들도 이번 기회를 거울 삼아 참된 복음으로 교회를 바르게 세울 통렬한 반성과 확실한 각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 어찌 이 거대한 세속적 탁류의 파고를 거슬러 진리가 살아 숨쉬는 생명의 샘으로 성도들을 이끌어 갈 수 있단 말인가!


차제에 다시 옷깃을 여미는 마음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사도 바울을 통해 증거된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라디아서 1:6-10)


주여. 거짓 복음과 거짓 가르침이 횡행하는 이 때에, 주의 지략과 모략으로서 진리만을 온전히 좇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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