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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하나님의 동역자 (고전 3:1~9)

by 【고동엽】 2023.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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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동역자 (고전 3:1~9)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오래 전 미국 서부 지역의 한 산골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외딴 어느 산골에 요한이라는 남자와 그의 아내 베티와 그들의 어린 두 자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일주에 한 번 멀리 떨어진 마을에 나가 장을 보아야 하는데 먼길이라 일주일에 한 두 밤 정도는 꼭 마을로 나가서 자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시장을 보러 간 뒤, 아내는 빵을 굽기 위해 우선 장작부터 쪼개어야 했습니다. 그녀가 뒤뜰을 나가 도끼와 큰 통나무를 하나 집어드는 순간 통나무더미 속에서 큰 독사뱀 한 마리가 갑자기 덮쳐 그녀의 넓적다리를 물어버렸습니다. 그녀는 이제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녀는 죽을 것만 생각하여 절망하거나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뱀의 독이 온 몸에 퍼질동안, 즉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우선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은 살아 있어야 하므로 그들이 먹을 빵을 구어야겠다고 생각이 미치자 정신없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빵을 굽기 시작했습니다.
때는 뜨거운 여름이라 햇살은 따가웠습니다. 몸에 점점 힘이 빠지고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그녀는 큰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말하기를 "이제 곧 엄마는 아주 오랜 깊은 잠을 자게 되니 네 동생을 잘 돌봐 주어야 한다. 빵과 우유도 잘 먹이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하려고 미친 듯이 여러 곳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녀의 온 몸은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그녀의 혈관에서 독이 씻겨져 나와 생명을 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뱀에 물려 죽게 된 바로 그 순간에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 이와 같은 기적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3절에 보면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소경이 배운 것이라곤 길거리에 앉아서 손을 내미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이 나이가 40이나 되었으나 참 불쌍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장님을 보는 순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소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처럼 개인적이요, 높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서 이루어져 나갑니다. 은혜스러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미처 모를 때에도 하나님은 계별적이고 섭리적이고 높은 경륜 속에 그 능력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은 이루어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재하므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살아 있고 여건이 허락되니 이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귀중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사건이든 그 속에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필요치 않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고 고용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이루어나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질그릇과 같아서 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보화가 있습니다. 그릇의 그릇됨은 그릇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용도에 있습니다. 즉, 담기는 내용에 의해 그릇의 가치도 달라진단 말입니다. 어떤 목적으로 쓰여지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큰 뜻을 위해서 오늘도 쓰여지고 있다고 하는 자기 정체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협동하여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동시에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말씀의 전달자를 필요로 하십니다. 로마서 10:14에 보면 "저희가 믿지 아니한 자를 어찌 부르리오. 듣지 못할 자를 어찌 믿으리오. 전파하는 이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 전파할 자가 꼭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직접 사랑하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통해서 사랑하시고 나를 통하여 사랑을 나타내고 사람을 통하여 그 능력을 확증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나큰 역사를 위해서 우리가 필요하고 우리가 그 손에 고용되고 있다고 하는 그 의미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일이란 그 일 자체만으로는 무게를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일이란 쉬운 일이요 가벼운 일이며, 사랑 없이 하는 일은 언제나 무거운 일입니다. 같은 일일지라도 그 일의 의미를 알고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쁨과 감사로 행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가볍고 즐거운 일이며 또 영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뜻을 모르고 억지로 행하며 끌려가는 사람은 원망과 불평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은 어떤 고생을 해도 그 고생 자체가 기쁨이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고용된 기쁨과 특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어 살지 못하면 죄에 붙들려 살게 되고, 하나님의 고용인이 아니면 마귀에게 고용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연히 해야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있으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지 못하면 이제는 죄와 사망과 마귀의 종이 되어 비참한 존재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소명 속에 사면이 있고 사면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이 소명을 모르는 자는 항상 불행하고 무가치한 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자격을 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그것으로 자격은 되는 것입니다. 그가 부르셨으니 그 부르심 자체가 자격입니다. 젊었으니 일하고 늙었으니 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일하고, 사명이 있으니 살아 있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 앞에서는 일방적으로 똑같은 부르심과 사명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의 생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농사짓는 표현을 재미있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주 기능적입니다. 여기에 비사가 있습니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그리고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심는 자와 물을 주는 자는 다같이 고용된 일군이요, 또한 일반인입니다. 봉사의 기능적 성격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할 수 있는 일, 즉 나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꼭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정말 나라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분이 그 나라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들에게 "너희는 앞으로 자라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고 물었답니다. 재미있게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는데 그 중의 한 아이는 전공(電工)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자기가 공부할 때 종종 전기불이 깜박깜박하는데 깜박거리지 않는 전등을 만들기 위해 전공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 한국에 돌아와서 똑같은 질문을 아이들에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거의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은 한 사람이면 됩니다. 모두가 대통령이 되겠다니 복잡할 수밖에요.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는 내게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효과적으로 주셨어요. 놓일 자리에 놓으면 성공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은 시시하다고 안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못해서 못하고 그래서 아무 것도 못하고 맙니다. 항상 남의 일만 부러운 것입니다. 항상 내일로 모래로 일을 미루어 나갑니다. 이 사람은 은사를 소멸하게 됩니다.
나는 심는 자입니다. 부지런히 심고 당신은 불 주는 자입니다.
열심히 물을 주세요. 이렇게 부분적으로 맡은 각자의 사역이 있습니다. 아내가 할 일이 있고 남편이 할 일이 있습니다. 젊은이가 할 일이 있고 노인들이 할 일이 있습니다. 노인이 젊은이의 일을 하겠다고 하면 주책이라 합니다. 각각 맡은 일이 있습니다.
맡은 바 분복, 맡은 바 사명, 내가 받은 은사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또한 내가 하는 일은 전부가 아니고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할 일과 네가 해야할 일이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불만이 생깁니까? 이유는 모두가 다 나와 같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불만의 요인이 있습니다. 또 여러 가지를 내가 다 하겠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이 있고 남이 해야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은사를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내가 필요하듯이 저 사람도 필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듯 저 사람이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은사를 소중히 여길줄 알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본다면 남편이 돈을 벌어오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아내가 돈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돈을 벌어들이는 위치에 있다고 으시댈 것도 없으며 쓰는 사람이라고 비굴할 필요도 없습니다. 각각 기능이 다를 뿐입니다. 다같이 소중한 임무입니다.
이것이 유기적으로 연합되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좀더 실존적으로 말하면, 어떤 환경이던지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원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심을 때도 있고 물 줄 때도 있습니다. 항상 심는 것도 아니고 항상 물을 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 경우가 다같이 하나님의 일함에 필요한 계기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건강할 때는 건강한 대로 할 일이 있고 병원에 입원했으면 입원한 대로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꼭 건강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고, 젊어야 하고, 지식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후회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중단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을 이룸에 있어서는 결코 예외가 없습니다. 병이 나면 건강할 때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이 때야말로 모처럼 진실하고 모처럼 겸손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억울한 일로 약 4개월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뒤 방문을 하였는데 저는 할 말이 없어서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하고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은 명랑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저는 이름만 집사였지 신․구약 성경을 한 번도 통독을 못했어요. 이번에 모처럼 성경을 많이 보았고 진지하게 무릎 끓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낯선 사람에게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감옥에서 한 방에 있던 사람에게 전도했노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일생에 있어서 그 4개월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자유 하면 자유한 대로, 부자유하면 부자유한 대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고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차원에서는 어려운 여건에서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절대로 중단은 없습니다. 모든 환경이 기능적으로 고용되어 감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환경에서 이 시간에 바로 내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모두가 일반입니다. 보편적이라는 말입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어떤 환경도 예외가 없습니다. 물을 주는 자나, 심는 자나, 거두는 자나 다같이 일반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고용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본문에서는 사역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뜻은 하나님 앞에 고용된 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란 말입니다. 우리는 섬기는 부분만 하면 됩니다. 주인의 일까지 간섭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심고 물을 주고,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심는 자나 물주는 자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수고는 하겠으며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뿐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이 결정적인 역사는 하나님 손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잠언 16장 1절에 보면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응답은 하나님께로 있느니라"고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가 함께 해야 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플러스 알파의 역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내 노력대로 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하면 된다. 안 되는 것은 되게 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할 말이 아닙니다. 안 될 것은 안 됩니다. 너무나 많이 체험했습니다. 내가 수고하고, 내가 진실하고, 내가 심고, 내가 물을 주겠지만 가을에 추수가 되고 안 되고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으나 결과는 하나님께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부지런히 뛰지만 결과는 하나님 안에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약 먹고 수술하고 치료했다고 다 낫는 것입니까? 죽을 사람은 죽습니다. 생명의 문제는 하나님의 일이요, 결국에는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묵묵히 기다려야 합니다.
초조와 불안은 금물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사역 앞에서 가부를 말할 것이 아니라 그가 정하신 가을을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의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최고의 덕은 인내입니다. 이것은 신앙적인 인내입니다.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농부의 신앙입니다. 그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의 결정과 그의 심판과 그의 은총을 기다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는 말이 옳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심고 저 사람이 물주고 또 다른 사람이 거둘 것입니다. 내가 심고 내가 거두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어거스틴을 믿음으로 정성껏 키웠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으로 키웠는데 웬일인지 13년 동안이나 방탕을 합니다. 전혀 말을 안 듣습니다. 마침내는 어머니의 말씀을 뿌리치고 로마로 가버립니다. 이 어머니는 낙심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로마에 간 결과로 암부르스를 만나고 그는 회개하고 성자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이 13년 동안 어머니는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늘 심고 내일 거두겠다는 망상을 버립시다. 내가 심었다고 내가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때에 따라 다른 사람이 거두기도 하고 내 아들이 내 손자가 거두기도 합니다. 내가 피땀을 흘려서 심고 애써서 썩어지는 밀알이 되고 오랜 뒤에 누군가가 거둘 때에 그 거두는 것을 멀리서 보고 기뻐할 수는 없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진정한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심은 것도 없이 남이 심은 것까지 거두겠다고 하니 여기에 불평과 원망이 있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심고 부지런히 가꾸고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가을을 겸손하게 기다립시다. 누가 심었는지 거두어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은혜로 기뻐할 줄 아는 믿음이 있어야겠습니다. 다만, 맡은 자에게 있어야 할 것은 충성입니다. 오직 충성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심는 자와 물 주는 자와 거두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진실과 겸손과 충성된 동역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이 부름에 응답해야 합니다. 내게 주신 환경, 지식, 내 처지, 바로 이대로 주의 부름이 있음을 알고 주님 앞에 응답할 때에 주께서 허락하시는 가을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의 동역자된 귀한 신분을 망각하고 하나님 뜻을 외면하고 살았던 나의 생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 실패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내 나약함을 통하여 강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사 오늘도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믿고 주의 동역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게 하옵소서. 열심히 심고 열심히 물주고 가꾸는 중에 주께서 허락하시는 가을에 거두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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