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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1:24-33 과거를 교훈삼자
오늘 신1:24-33 말씀으로 과거를 교훈삼자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루는 마귀가 경매를 열었습니다.
진열대에 많은 물건을 놓고 경매에 참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물건은 비매품이라고 써있었습니다. 그것은 팔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낙심’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속에 ‘낙심’만 넣으면 사람을 자기마음대로 흔들어 놓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일을 당하면 낙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안됩니다.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계기를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실수할 수밖에 없고, 항상 잘못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때든지 잘못된 과거를 통해서 새로운 출발은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가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땅 입구인 모압평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을 정탐을 보내서 그 땅을 정탐하고 했는데
갈렙과 여호수아는 올라가자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낙자손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하면서 애굽에 우리를 놔두지 끌고 와서 여기서 죽이려 한다고 원망을 했습니다.
그럴 때 모세는 애굽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더냐,
한걸음 한걸음 안아서 여기까지 왔지 않느냐,
또 광야에서 앞서 가시면서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지금까지 인도해 오지 않았느냐 그
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앞서 지금까지 인도하셨지 죽이려고 이곳까지 끌고 온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
얘기가 신명기 1장에서 출애굽을 회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지난 과거는 뒤로하고 가나안땅 문턱에 와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자고 간절한 마음으로 신명기 1장에서 과거를 교훈삼아서 새로운 출발하자고 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우리에게 어떤 과거를 교훈 삼아야 될 것인지 본문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첫 번째 신1:24
24 그들이 앞으로 가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25 그 땅의 과실을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회보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첫 번째 얻게 하심도 모르고 원망한 과거를 교훈 삼아야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왔습니다.
한 지파에 한명씩 12명을 택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왔는데 갈렙과 여호수아는 올라가자고 하고, 나머지 10사람은 아낙자손이 있어서 못 간다고 얘기를 합니다.
장막중에서 원망해서 하나님께서 할 일이 없어서 우리를 미워하셔서 아모리 족속의 손에
가나안 칠족속의 손에 우리를 멸하시려고 잘 살고 있는 애굽에서
우리를 끌고 와서 죽이려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모르는 원망을 하고 있거든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바로의 종노릇하고 있으니까
거기서 건져주신 것이거든요. 그런데 여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서 잘살고 있는데 왜 끌고 나왔냐는 겁니다.
왜 우리를 아모리사람 손에 붙여서 죽이려 한다고 하나님 마음하고는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얻게 하시려고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거든요
그런데 얻게 하시려는 그 마음을 전혀 모르고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이 원망을 할 때는 ‘가데스바네아’고 현재 이 말을 하고 있는 곳은 ‘모압평지’입니다.
그래서 가데스바네아 이후로 38년이 흐르고 난 다음에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땅을 얻게 하시려고 애굽땅에서 끌고 나왔는데
그 마음은 전혀 모르고 원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려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이끄시면 우리는 육신적으로 좀 편하고, 돈 문제가 풀리고, 아픔이 없으면 ‘아멘’그래요.
그런데 내 마음대로 조금 안되면 대번에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나쁜데로 끌고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식이 생각할때는 부모는 때리고 명령하고 내 마음대로 못하게 하니까 싫어합니다.
그러나 진짜 좋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좋은 것 줄려고 해도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우선 내 맘에 좋은 것만 주라고 합니다. 조금 불편하고 복잡하면 싫어합니다.
여기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 땅이라고 하는 진짜 좋은 것, 하나님 품안으로 넣어서 살게 하려고
끌고 나왔는데 그걸 가지고 시비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38년이 지난 다음에 모세가 과거를 교훈 삼아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자고 간절한 심정으로 애쓰며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실 때 우리에게 너무나 좋은 것을 얻게 하시려고 끌어가신다는 것을 알고 원망하거나 낙심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면 안됩니다.
만일 불평하고 원망했다고 하면 과거를 교훈 삼아서 앞으로는 새로운 출발을 해야합니다.
신4: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 때문에 지금도 언약이 유효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나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말 좋은 것을 얻게 하려는 하나님이신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것을 오해하고 불평하고 우선 힘드니까 싫다고 하는 안타까운일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잘못을 뒤로하고 새로운 계기를 삼자고 신명기에 설교를 3편하면서 얘기를 하는 과정중에 첫 번째 설교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도 나에게 귀하고 좋은 것을 얻게 하시려고 나를 끌어가신다고 인정해서, 지난 과거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하면 과거를 교훈 삼아 새로운 출발의 계기를 삼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녀, 재산, 종을 쳤을 때, 처음에는 주신자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자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괜찮은 듯 합니다. 그러나 3장에 가면 불평을 시작합니다.
그런 욥을 하나님이 하나 하나 훈련시키고 끌고 갑니다.
나중에 가면 욥이 할말을 못하고 전부 하나님이 그래서 그랬군요 라고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니까 하나님이 곱절의 축복을 주심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욥도 지난 과거의 자기의 신앙생활이 어땠는지 교훈 삼고 새로운 출발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잘못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한 속에서 끝나면 안됩니다. 새로운 출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주님이 나에게 가장 귀하고 필요한 것을 주시려고 지금도 들고 서 계신줄 압니다. 얻게 하시려는 것을 모르고 원망하는 과거가 있다고 하면 과거를 뒤로하고 욥과 같이 새로운 출발해서 하나님이 곱절의 축복을 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신1:29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적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두 번째 안아주심도 모르고 두려워한 과거를 교훈 삼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세가 하는 말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아모리 사람에게 멸하게 하려고 데리고 나왔느냐고 얘기하면서
우리는 어디로 갈꼬, 아모리 사람은 너무나 커서 우리는 그곳에 가면 죽을 것 같고
우리보다 훨씬 장대하고,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높이 쌓아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고 할 때에 29절에 모세가 하는 말이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과거를 얘기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애굽에서 끌어 나올 때 어떻게 하셨더냐, 너희들은 홍해 앞에서 죽는다고 원망하고 불평했지 않느냐,
애굽군대를 수장시키려고 다 끌어내서 하나님이 다 수장시키지 않더냐,
물이 없다고 하니까 나무를 던져서 물을 달게 해주었고, 먹을 게 없으면 만나를 거두게 해 주지 않았느냐 얘기하면서 애굽에서 그렇게 했고, 31절에 보면 광야에서는 어떻게 했느냐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하나님께서 너희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불평하냐 이 말입니다.
안아서 광야 40년 가까이를 왔다고 모세가 하나님 심정을 말한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혼자 걸어간 것 같지만 하나님이 안아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그 하나님의 인격을 믿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혼자 간다고요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 분이 나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모래밭을 가는데 두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가다보니 한발자국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가 힘들 때는 나를 혼자 두고 어디가셨다고 불평하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네가 너무 힘들어해서 내가 너를 안고 있어서 내 발자국만 남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아서 이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안아서 이끌었다고 합니까?
왜 이리 힘들게 하냐고 불평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품에 있으면 너무나 안전한 장소입니다.
안아주심도 모르고 두려워했던 지난 과거를 교훈 삼아야 됩니다.
이제 가나안땅 바로 앞인 모압평지에 와서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안아 주시지도 않고, 나를 혼자 놔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나를 안아 주심도 모르고 두려워했다고 하면
과거를 뒤로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왜요? 그분이 나를 끝까지 버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항상 나를 안아서 한걸음 한걸음 필요한 것도 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팔을 의식하고 그 팔을 의식하지 못했다고 하면 이번 주간부터는 다시 한번 새롭게 출발해서 불평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사46:3-4
3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믿어져야 될 줄 믿습니다.
안아주심도 모르고 두려워했다고 하면 그것을 뒤로 돌리고,
우리는 내 앞길에 나 혼자가 아니고 우리 주님 품에 안기어 가니
얼마나 안전하게 갑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품에 안기어 간다는 사실을 꼭 믿고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될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창12장에 보면 기근이 나서 애굽에 내려갑니다.
애굽에 가면 아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자기가 위험하니까
아내가 어떻든지 간에 자기가 살려고 사라를 누이라 속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혼대상1호입니다. 그런데 사라는 내주여 하면서 계속 아브라함을 섬깁니다.
그런데 14장에 보면 가나안 남북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 전에는 아브라함이 두려워 아내도 누이라 속였던 아브라함이 남북전쟁이 나서 롯이 잡혀가고 뺏겼다고 하니까 318명을 데리고 단까지 좇아가서 전부다 찾아옵니다.
12장에 두려워했던 아브라함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는걸 많이 깨달았겠습니까?
그러니까 14장의 아브라함의 모습이 됩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안아주심도 모르고 두려워했던 모습을 뒤로하고 새 출발하니까
14장에 가나안땅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항상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나를 안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니까 두려워했다고 하면 다 뒤로하고 날마다 안아주시고 계시고, 날마다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의 의해서 담대함 속에 앞으로 전진해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신1:32-33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면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물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세 번째 앞서가심도 모르고 믿지 않은 과거를 교훈삼아야 됩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이 일에 여호와를 너희가 믿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너희를 어떻게 해주셨는데 안 믿었다는 겁니다. 무엇을 안 믿었느냐
33절 하나님은 첫 번째 너희 앞서 행했고, 항상 한걸음 앞서 하나님이 가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불기둥 구름기둥이 돼서 앞에 가셨거든요.
그 다음에 장막 칠 곳을 찾아 주셨다는 겁니다. 어디 장막 칠 곳이 있다고 하면 불기둥, 구름기둥이 멈추면 그곳에 장막을 치는 겁니다.
하나님이 다 보시고 장막 칠 곳이 없는 때는 더 끌고 가서 장막 칠만한 곳에다가
멈춰서 장막을 치게 하셨다는 겁니다.
바로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아 주시고 세 번째는 밤에는 불로 따뜻하게 해주시고,
낮에는 구름으로 더위를 피하게 해주시고 너희 행할 길을 지시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했는데도 안 믿었다는 것입니다. 앞서 가심도 모르고 믿지 않은 것을 가지고 모세가 안타까워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 분은 벌써 저 앞에 가십니다.
저는 원래 목회를 하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뜻을 이루어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교회에서 장로가 되고,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도 최고로 열심히 해서 최집사가 열심히 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목에 힘주고 다니려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길이 아니다 라고 나를 딱 막았을 때
내가 하나님을 들이받았는데 제가 넘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세시더라구요.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울고 앉아 있는데 딱 깨달음이 오더라구요.
그러고보니 나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벌써 앞서서 일하고 계셨구나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서가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어 드려야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를 못했습니다.
모세는 지금 믿지 못했던 과거는 벌써 38년 전이라는 겁니다. 이제는 믿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믿고 앞으로 나가니 전쟁에서 한번도지지 않고 다 정복합니다.
아무리 큰 성읍도 순종하니까 여리고성이 다 무너져 버립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앞서가실 때 믿고 따라만 가면 내 앞에 어떤 문제도 다
무너질 줄 믿습니다.
과거의 잘못이 나쁜 것이 아니라 과거는 현재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됨을 알고, 혹시 앞서 가심도 모르고 믿지 않았다고 하면 이제부터는 믿자 그 말입니다.
그래서 과거를 교훈 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사람이 아무리 계획을 해도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집니다.
내가 계획한다고 해서 계획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걸음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가 에서의 낯을 피해서 하란으로 도망가도록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야곱이 훈련받고 연단 받는 길일 줄이야 야곱은 전혀 몰랐습니다.
거기 가서 라반에게 속임 당하고 나중에 많은 재산을 불려서 내려와서
에서를 만날때도 야곱은 잘 몰랐습니다.
어쨌든지 자기 방법으로 해 보려고 했지 앞서 가신 하나님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디나강간사건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는 앞서가신 하나님을 빨리 빨리 깨닫게 됩니다. 디니강간사건을 만나 후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금방 알아듣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지킨 하나님 앞으로 벧엘로 올라가자고 창세가 35장에 말을 합니다.
야곱이 지난 과거에 자기 생각, 계획대로 한 모든 것들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앞서 가시며
인도하시는 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디나가 강간당해서 마음은 아프지만 하나님이 나를 벧엘로 올라가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구나 깨닫고 바로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앞서가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과거가 있다고 하면
우리는 앞서 가신 하나님을 더 믿어 드리고 새로운 출발을 해서 과거가 나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디딤돌로 삼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교훈 삼아야 됩니다. 어떤 과거를 교훈 삼아야 되느냐
첫 번째 얻게 하심도 모르고 원망했던 과거를 교훈 삼아야 합니다.
두 번째 안아 주심도 모르고 두려워했던 과거를 교훈 삼아야 합니다.
세 번째 앞서 가심도 모르고 믿지 않았던 과거를 교훈 삼아야 합니다.
과거는 이제 다 지나갔으니 원망하지 않고,
두려워 하지 않고, 믿지 않았던 것을 이제는 믿고
앞으로도 얻게 하심을, 안아주심을, 앞서가심을 믿으므로
축복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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