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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1:1-12 믿음의 주인공(들러리 되지 말고)

by 【고동엽】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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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1:1-12 믿음의 주인공(들러리 되지 말고)


요삼1:1-12 말씀으로 믿음의 주인공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의자는 제자리에 있어야 그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도 상황에 따라서 여러 위치로 변합니다.
회사에 가면 직원이요, 부장, 차장, 회장이 됩니다.
그러나 집에 오면 한 여자의 남편이요, 아이의 아빠가 됩니다.
곗방모임에 가면 같은 사람이지만 계원도 됩니다.
사람도 각자 처한 위치가 다르고 또 역할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집에서 가장이라고 해서 나가서 가장인 것 만 주장하면 안되고,
또 회사에서 부장이라고 해서 집에 와서 부장노릇 하려 하면 안됩니다.
집에 오면 위치가 남편이고 아빠로 바꿔져야 됩니다. 회사에서 회장이라고 해서
곗방모임에 가서 회장노릇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회사에서 말단직원이라고 집에 와서도 말단직원처럼 하면 안됩니다.
분명히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고 남편노릇도 해야됩니다.
그렇듯이 각자 상황에 따라서 필요에 따라 필요한 일을 필요한 만큼 감당하는 사람이
그 자리의 주인공일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가?
하나님 앞에 내가 정말로 꼭 필요한 사람인가? 힘들게 한 사람인가?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이 가이오에게 편지를 하면서
가이오 네가 순회전도자들을 잘 대접하는 것을 봤다고 기쁘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라고 하는 사람은 도리어
그 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샘플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 한사람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사람은 좋은 샘플로 얘기하면서 그 사람은
여러 사람에게도 예수님께도 또 요한 자신에게도 증거를 받았다 라고 얘기합니다.
데메드리오와 가이오는 성경속에서의 믿음의 주인공이다 라고 얘기하면서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의 주인공이 될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요한이 자기도 옛날에는 잘못했는데 이제 지나고 보니까 너무나 안타까워서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하면서 두 종류의 사람을 샘플로 비교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정곤이 정도만 되면 어디가서 애들은 가라할 때 빨리 20살 돼서
그런 소리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20살 먹어서 어른들이 하는 것 전부다 해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20살이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때는 군대를 가야돼요.
그러면 그때는 군대를 안가고 싶어서 나이가 30살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장가가라고 그러면서 위치가 달라집니다.
그때마다 정말로 필요하고 적절한 사람이 되는 거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머리일 때도 있고 꼬리일 때도 있고 쫓김을 당할 때도 있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집에 오면 어떤 위치가 되고, 교회에 오면 또 다른 위치가 되고,
회사에 가면 다른 위치가 됩니다. 그 속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되는데
어떤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첫 번째 요삼1:5-6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6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첫 번째 배려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돼야 됩니다.
요한3서는 요한이 가이오에게 쓴 편지입니다.
1절에 보면 가이오에게 사랑하는 가이오 라고 하면서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한다고 합니다.
그냥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참으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가이오가 요한의 가슴속에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하는 데 사랑하는 자여 하면서
2절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요한이 옛날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요한은 몸이 건강하길 바라고, 범사가 잘되고, 마지막으로 영혼이 잘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요한이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에 잘되고 몸이 강건해 진다고 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심히 기쁘다고 얘기하면서
5절에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이 나그네 된 자들은 순회전도자를 얘기합니다.
요한은 이때 나이가 90세가 넘었을 때입니다.
이 요한3서를 쓸때는 AD90년정도 되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60년이 흘렀을 때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나이가 많아서 못 가는 대신 자기가 가르친 젊은이들을 통해서
순회전도를 가고 있는 사람들을 가이오가 잘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6절에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했다.
가이오가 얼마나 대접을 잘했는지 증거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이오는 순회전도자들에게 정말로 배려를 많이 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대접을 잘하는 믿음 있는 사람이었다 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믿음직스럽고 지금 하나님나라가 더 확장되는데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었다 라고 요한은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회전도자들이 가면 옷도 빨아 주어야 되고, 여비도 줘야 되고,
여러 가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채워줘야 되는데, 그 일을 가이오가 많이 했다고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려해서 사랑을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는 기쁨이 얼마나 기쁜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는 주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생각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는 것하고, 주안에서 주는 것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주는 속에는 나를 높이려고 주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다 그 속에 들어갑니다.
주면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것보다는 주니까 대견스럽고 떳떳하고 좋거든요.
그러나 우리 주님의 일에 내가 이걸 꼭 해야할 때 내가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이오가 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사랑으로 배려해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에 믿음의 주인공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이 어떤일을 하시는데 그 일에 대해서 내가 동참하는 마음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자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했다고 하는 주인공이 되면 나중에 내가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일 속에서 가이오와 같이 나그네 된 자들에게 대접을 잘해서 모든 일들을 잘 감당하도록 한 사람이 가이오라는 것을
요한은 말하면서 너무나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가이오가 요한에게도 필요했고 우리 주님에게도 필요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더 배려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야 될 줄 믿습니다.


고전13:4-7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안는다는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유익을 구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내가 대접받으려고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내가 내 유익을 구치 않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를 주는 것을 실천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자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주는 배려로 사랑을 실천하는 데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배려해서 나를 상대에게 주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서 나한테 당장은 안주지만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내게 갚아 주세요.
하나님의 방법은 그 걸 통해서 안주시고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내게 해 주십니다. 그걸 아십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받는 것이 아니다.
이번주간에도 주는 것 실천하는 주인공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보아스는 큰 부자였습니다.
룻의 안타까운 소문을 듣고 룻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전부 해결해 준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기업무를 자가 더 가까이 있어도 그 사람이 안 물어주면 자기가 물어주겠다고 하면서
위로해 주고 필요를 채워주고 나중에 룻을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너무나 힘든 와중에 있는 룻에게 위로하며 배려하며 사랑을 베풀어서
룻이 그 일을 잘하도록 만든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소견이 옳은 대로하는 그 시대 속에서 소견에 옳은 대로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보아스는 믿음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정말로 내 가까운 사람에게 배려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요삼1:9-10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서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10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쫓는도다.


두 번째 낮아져서 겸손을 본을 보이는
믿음의 주인공이 돼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하면서 나쁜 사람의 예를
디오드레베가 하는 일을 가지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디오드레베는 으뜸되기를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한다 이 말은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자기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요한이 말합니다.
이 말은 가이오나 디오드레베나 데메드리오는 요한에게 배웠던가 봅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요한은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폄론한다는 말은 헐뜻고 그 말입니다. 유위부족하여 이것도 부족해서 그 말입니다.
형제들 순회전도자들을 접대치도 않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해서 접대했다고
교회에서 쫓아 낸 사람이 디오드레베 라는 것입니다.
디오드레베는 교만했다는 것입니다.
디오드레베는 자기 뜻만 이루려고 하고 받은 은혜는 생각지 않고,
요한에게 배운 것은 다 잊어버리고 으뜸되기만 좋아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자기 착각 속에 많이 살거든요.
나같은 사람 있으면 나와봐 하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 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옆 사람이 평가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모르는 것같이 불쌍한 것이 없습니다. 왜 우리를 모를까요.
말씀안으로 안들어 가니까 몰라요.
말씀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은혜가 느껴지고 애쓰심이 느껴지고 사랑이 느껴지고
나를 향한 관심이 느껴지고 그러면서 나는 엉터리가 되고 죄인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울게 됩니다.
그렇게 가지 않으면 절대로 나를 못보고 내가 잘 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엉터리인 것을 가르쳐 주려면 말로 하면 알아듣지 못합니다.
현실에 큰 문제나 사건을 만나야 드러나게 됩니다.
나도 국동희사모에게 최고의 남편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착각 속에 많이 삽니다.
말씀 안에 들어가 보면 전부 내가 죄인이고 내가 엉터리인 것 만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낮아져서 겸손을 보이게 됩니다.
나의 현실을 인정하고 나의 현실을 깨달으면 내가 낮아질 수밖에 없고
나는 엉터리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져서 겸손의 본을 보이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나락도 제일 처음 꽃 필 때는 꼿꼿이 서 있습니다.
조금 지나서 익어지려고 하면 고개를 살짝 숙입니다.
그런데 노랗게 여물어지면 고개를 푹 숙이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고개가 숙여집니다.
디오드레베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 느껴보지 못하고,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으뜸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것에 주인공이 되면 안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낮아져서 겸손의 본을 보이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는 것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우리는 교만하지 않고 낮아져서 겸손을 본 보이는 믿음의 주인공이 돼야 될 줄 믿습니다.


잠16:18-20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낮아져서 겸손을 보이는 믿음의 주인공에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잠언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날마다 낮아져서
내가 누군가를 잘 알고 겸손을 보이는 주인공이 돼야 될 것입니다.


아굴은 잠언30: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럽니다.
그러면서 2절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아굴이 그렇게 말합니다.
잠언서를 쓸 정도 되면 지혜로운 사람인데도 자기 스스로를 아니까 자기보고 짐승이다.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다.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이 사람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가장 많이 낮아진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아굴은 낮아져서 겸손의 본을 보인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항상 어떤 속에서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낮아져서
다른사람에게 겸손하게 보이는 믿음의 주인공이 다 돼야 될 줄 믿습니다.
그것이 곧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겸손히 낮아져서 본을 보이는 믿음이 주인공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1:11-12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 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세 번째 경건해서 충성을 보여주는 믿음의 주인공이 돼야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그러면서 12절에 데메드리오를 가지고 말합니다.
데메드리오는 디오드레베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예수님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증거한다.
그만큼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증거가 있냐 모든 사람과 자기까지도 인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데메드리오는 충성을 보여주는 믿음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곧 11절에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그랬습니다.
내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그 말입니다.
그래서 곧 9절에 디오드레베를 따라가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그 말은 데메드리오를 따라가라 그 말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만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느니라 그랬습니다. 여기에 충성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내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은 나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충성한 사람이 아닙니다.
국회의원도 충성한 사람이 아닙니다. 장관도 충성한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 다 대접받았기 때문입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충성한 사람이 아닙니다.
충성은 어떤 사람이 충성이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아무대가 없이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잘 감당해 가는 사람이 충성된 사람입니다.
충성은 내가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해 가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경건해서 충성을 보여주는 믿음의 주인공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계2:10-11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서머나 교회에 한 얘기입니다. 10일 동안을 잠깐동안 그 말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충성은 우리 주님만 영광되고 나는 아무것도 안 받는 것이 충성입니다.
나에게 주님이 어떤 대가를 안 주어도 하나님이 원하는 그 길에 온전히 서서
경건히 주님 안에서 주님께만 영광 돌려 드리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고 있듯이
겸손해서 충성을 보여주는 믿음의 주인공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다윗의 두 번째 용사는 3명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예전에 베들레헴에서 먹던 우물물을 먹었으면 했습니다.
그러니까 둘째용사중 브나야아 아비새가 블레셋진영 한가운데 들어가서 물을 떠왔습니다. 다윗왕이 물먹고 싶다고 하니까 왕을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물을 떠 온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갖다 주니까 다윗은 그것을 피라고 물을 먹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충성입니다.
주인을 위해서 나는 아무것도 안되고 주인만을 위해서 산 사람이 충성한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손해일까요. 브나야와 아비새는 손해났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두사람은 솔로몬 때 군대장관이 됩니다.
솔로몬이 처리한 사람이 아도니야, 요압, 아비아달, 시므이를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아비아달만 빼고 3사람을 처리한 사람이 브나야장군입니다.
그때는 충성하니까 손해난 것 같지만
하나님이 브나야를 크게 섰던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충성하면 손해날 것 같아도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날마다 경건해서 충성을 보여주는 믿음의 주인공이 돼서 정말로 하나님이 나한테 무엇인가 대가를 주었다고 하는 고백하며 간증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돈하겠습니다.
첫 번째 배려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낮아져서 겸손의 본을 보이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세 번째 경건해서 충성을 보여주는 믿음의 주인공이 돼서
우리 주님 가슴에 기억된 바 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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