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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 주일에 찾으시는 사람들

by 【고동엽】 2021. 9. 30.

종려 주일에 찾으시는 사람들

마21:1-11

무성성결교회/최상익목사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루살렘 백성

들이 호산나하며 환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벳바게 마을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면 매인 나귀와 나귀새끼가 있을 터이니 끌어 오라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일 누가 왜 나귀를 끌어가느냐고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나귀를 끌어와 자신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예수님이 타시도록 하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했습니다. 온 예루살렘 백성이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하고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다른 때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오신 사명과 뜻을 철저히 감추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 종려주일을 통해서 자신을 공개석상에 뚜렷하게 나타내시므로 그 동안 여러 가지

각도에서 숨겨져 있던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르므로 이 종려주일에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을 찾으셨는가가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

에게 귀중한 열쇠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침에 "종려주일에 찾으시는 사람들"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2001년도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나는 과연 어떻게 이 종려주일에 나타나고 있는가 스스로 바라보시고 깊은 회개와 결단을

가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고난 주는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일부러 자신을 백성들에게 인기있는 그리스도로 나타내신 첫 번째 이유는 예수

님에게 고난을 드러내 놓고 행할 사람들을 찾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시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제자들에게 자

신이 그리스도이시고 세상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며 만인을 구원하실 뜻을 가르쳐 주시고도

비밀로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공개적으로 입성하시고 많은 이들의 환영

을 받아 온 성에 자신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이신 것은 지금까지 예수를 해하고 싶어도 결

단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위기 의식을 느끼게 하여 예수를 죽이도록 하는 뜻이 종려주일에

담겨져 있습니다.

과연 이일로 인하여 예수를 핍박할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 가룟 유다 였습니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회복을 기다리는 과격파 캐리옷 당의 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따라 다닌 것두 예수님이 전쟁의 왕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기를 바레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전쟁의 왕

이 타는 말을 타지 아니하고 평화의 왕인 나귀를 타시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게 되었습니

다. 자신이 지금까지 바랐던 소원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때부터 예수를 떠날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은 30에 스승을 팔아 버리는 멸망

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2)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예수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더러 내 놓고 적대행위를 하지 않으셨고 많은 백성들의 호응으로

인하여 예수를 처단하는 일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나귀를 타

시고 예루살렘에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시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를 이대로

두었다가는 온 백성들의 사랑이 예수에게 가게 되고 자신들의 입지는 작아지게 될 것이 두

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소극적이든 이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를 제거할 생각과 결단을 가지게 되었

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찾으셔서 자신은 고난을 당하시지만 만민을 구원할 십자가의 고난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종려주일을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때로는 반대자들의 손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그 피로 인하여 인류를 구원할 일을 이루시는 데에는 예수를 사랑

하는 이들로서는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이유없이 예수를 미워하고 그에게 고난을 줄

원수들의 손을 통하여 이 십자가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종려주일에 우리 예수님은 악하게 쓰일 사람들을 찾고 계셨다는 말씀이 됩니다.

이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시 노릇을 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게 하실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2001년도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우리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가시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는가?

금년 종려 주일에 내가 쓰이는 쓰이는데 가룟유다처럼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악하게 쓰임받

는 이들을 찾으시는 우리 주님의 눈에 바로 내가 선택되는 것은 아닌가?

이 시간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모진 바람이 불면 우리는 옷깃을 더 튼튼히 여밉니다.

남을 찌르는 가시가 있다면 찔리는 사람은 그것을 이기기 위하여 신앙의 옷깃을 더 튼튼히

여밉니다. 남의 신앙을 튼튼히 여미는 일에 내가 남을 찌르는 가시로 쓰임 받는다고 하면

이 종려주일에 예수님에게 고난을 줄 사람을 찾으셨던 그 대상자에 바로 내가 해당된다는

불행한 결과가 됩니다.

이 뜻을 깨달으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은 남에게 고난을 주어 그 사람으로 더 큰 구원을 이루는 일에 쓰여

지는 자로 찾아지지 마시고 이 종려주일에 자신을 돌아보고 남에게 기쁨을 주는 성도의 길

을 걸어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헌신하는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종려주일에 자신에게 고난을 주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악역을 찾으셨던 예수님은 두

번째로 찾으시는 사람은 오히려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귀한 것을 헌신하는 사람들을 찾으셨

습니다.

 

1) 나귀를 드려 헌신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3)

본문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쓰시겠다 라는 말씀에 두말하지 아니하고 헌신한 아름다운 모습을 성서는 증

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나는 일이나 대신 무슨 이익을 추구하지도 아니하고 단

지 주님이 스시겠다는 말씀 한마디에 헌신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런 사람을 우리 주님은 오늘 이 종려주일에 찾으시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한끼 밖에 없는 빵을 엘리야에게 헌신하여 3년 6개월 동안 축복을 받았습니

다.

사르밧에 그 과부보다 풍족한 사람은 얼마던지 있습니다.

그런데도 과부는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 나를 택하여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빵을

달라고 하느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야속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하나 더 주셔도 시원찮을 텐데 하나 밖에 없는 것을 빼앗아 가십니까? 하지도 않았습니

다. 그리고는 그녀는 두말하지 않고 자신의 자식과 먹고 죽을 귀중한 빵을 엘리야에게 드

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은 이삭을 드려 헌신하였습니다.

다른 집에는 많은 자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이

삭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100세에 얻었으므로 이제는 더 얻을수 없는 귀중한 자식입

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3일길을 모리아 산을 향하여 걸어 가면서도 한마디의 불평이나

원망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자신의 가장 귀한 물건도 아닌 아들을 드려 헌신하는 모습을 발

견합니다.

 

이것이 헌신이고 이런 사람을 종려주일에 찾으시려고 이 종려주일을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주님은 이 종려주일에 이런 헌신자를 찾고 계십니다.

2001년도 종려주일을 맞으시는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이 아침에 우리 모두 여기에 여러분이 해당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겉옷을 드려 헌신한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겉옷을 나귀위에 얹었고 백성들은 자신의 겉옷을 길에 펴서 예수님을 환영

하였습니다. 겉옷은 신분을 상징합니다. 이러므로 겉옷을 드렸다는 의미는 자신의 명예

와 마음을 드렸다는 것을 표시하게 됩니다. 이 2001년 종려주일에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이런 헌신의 모습을 찾고 계십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제자이면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손으로 못자국과 창 자국을 보아야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를 향하여 내 손과 발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지키려던 자신의 고집과 자존심을 예수님 앞에 그 손과 발을 확인하

지도 아니하고 드린 참다운 헌신이었습니다.

그 뒤로 도마는 참 주의 일꾼이 되어서 인도까지 가서 전도하다가 예수를 위하여 헌신하며

순교했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며 나의 시간을 달라고 하십니다 !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며 나의 물질을 달라고 하십니다 !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며 나의 봉사를 원하십니다 !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며 겉옷같은 우리의 자존심을 원하고 계십니다 !

그런데 우리는 바쁘다고,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것은 제가 먼저 써야겠다고, 이것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살면서 주님께 헌신하고 봉사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이 종려주일 아침 이 시간 우리는 나귀를 드린 이들을 생각합시다.

자신의 겉옷을 드려 자신의 명예와 마음을 서슴없이 땅에 깔아 버린 사람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모두 참다운 헌시의 자리에 서셔서 헌신하는 자를 찾으시는 주님의 눈에 띄어지

는 2001년 종려주일 아침의 참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찬송하며 기뻐하는 이들을 찾으십니다.

종려주일에 우리 주님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기뻐하는 이들의

속에서 만족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사랑을 감사할 표현

이 찬송과 기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찬양하는 이들을 사랑하셨고 당연히 여기셨습니

다.

성전에서 아이들이 호산나하며 예수님을 찬양하자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하여 예수님

께 항의할 때,

 

그렇다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고 반박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생애는 그의 작품처럼 아름답지 못한 고난의 연속의 삶이었습니다.

10살도 되기 전에 부모님을 여의었습니다. 그를 키워준 형은 그를 몹시 미워하였습니다.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었는데 결혼한자 13년만에 부인과 사별하였습니다. 재혼하여 두 부

인에게서 20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10명은 어려서 죽었습니다. 남은 자녀 속에는 20살이

넘어서 잃은 아들도 있고 정신박약가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노년이 되어 이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었고 뇌출혈로 쓰려져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 작곡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을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찬양과 경배와 감사의 노래들

을 말입니다.

참으로 불후의 명작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면서도 비참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

까?

바로 독실한 신자로 세계 역사상 교회 음악가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인 바하입니다.

그가 이처럼 심오한 믿음과 찬양의 세계를 알수 있었던 원인은 그가 인생의 고난을 누구보

다도 더 깊이 체험했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로부터 나온 신앙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 살을 찢는 고난의 삶 속에서도 그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삶으로만

살았고 그래서 불후의 명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귀한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바하와 같은 진실된 마음으로 찬양하고 기뻐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찾으시려고 2001년 종려주일을 허락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정말 일어나 호산나하며 기뻐하고 있습니까?

할 수없이 호산나 찬송하고 할 수없이 성가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종려주일에 참다운 호산나의 찬양을 하는 이들을 우리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이주님의 눈에 발견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아침 종려주일에 헌신하며 찬양하는 성도들을 찾으시는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신 예

수님의 눈길에 한 분도 빠짐없이 헌신하는 성도, 찬양하는 성도로 발견되는 성도들이 되시

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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