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학의 정의
일반학문은 창조 세계의 한 영역을 부분 제한하여 그 대상을 삼아 이성의 방법으로 그 지식을 얻는다. 그러나 신학은 창조주 하나님을 대상으로 믿음의 방법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즉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여 종합, 통일하는 학문이다.
일반학문의 방법론인 지성으로 사물들을 직접탐구하는 방식은 희랍초기부터 확립되었다. 근세에 데카르트는 진리의 표준과 지식의 확실성을 이성에서 구하므로 내재철학 곧 근세철학을 세웠다. 근세영국의 경험론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표상만이 지식을 구성하는 재료라고 확정하였다. 독일의 칸트는 경험론적인 주장에 이성이 지식구성에 공헌함을 함께 세우므로 바른 학적 지식이 성립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칸트는 이렇게 학을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현상세계만 국한했다.
칸트의 철학이후 신학도 일반학문처럼 지성으로 하며 신학의 대상을 경험세계에만 국한하여 하기로 한 이후에는 신학의 대상을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인간의 종교경험으로 돌렸다. 그 결과 종교학과 인간학이 되었다. 근세신학의 아버지인 F.슐라이어막허는 인간의 종교적 의식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신학이라 하였다. 따라서 성경계시를 사람들의 종교경험의 기록이거나 이방 종교사상들을 받아들여 만든 사람들의 창작물로 본다.
이성에는 절대적인 표준도 없고 확실한 규범도 제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결국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에 이르렀다. 죄성이 이성에 과도히 역사하므로 물질적인 실재에 대한 바른 지식도 바르게 제시할 수 없다. 이런 이성으로 신학할 수 없다.
믿음으로 신학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하심 혹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해서 신학하는 것을 말한다.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므로 신학은 이 계시를 그 직접적인 대상을 삼는다. 자기 계시이므로 하나님을 그 자체대로 나타낸다. 하나님 존재 자체의 계시는 인간이 감당하지 못하므로 자신을 굽히어 계시하셨다. 이것을 자아겸비라 한다. 즉 인간의 표현방식(의인화)을 사용하셨다. 계시의 내용도 자연이성은 이해할 수 가 없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계시에는 하나님의 존재, 인격, 경륜과 작정, 그리고 그의 사역을 포함한다. 참 신지식 곧 창조주와 구속주의 지식은 다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한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계시가 성경 계시이다. 창조가 신지식의 다른 원천이지만 창조 혹은 자연은 성경계시를 통해서만 기능한다. 인간의 유한성과 죄 때문에 창조에서 직접적인 신지식을 얻지 못한다.
신지식은 사람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알고 섬기게 한다. 이 섬김으로 인간 본연의 본분에 이르므로 영생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을 섬김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이다.
2. 신학의 근본원리
하나님 지식은 창조주와 구속주 되심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지식을 얻으면 그는 멸망에서 구원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 지식은 구속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한다. 구속주를 믿음으로 그 구속주가 창조주이심을 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지식의 시작이고 전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구속주로 나타내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고, 그에게서 얻은 지식이 참 신지식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참 신지식의 표준이며 원리이다. 따라서 모든 신학의 참과 거짓의 여부는 그리스도에 의해 판정된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로고스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기 객관화이므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서만 참 하나님 지식을 얻는다.
그러므로 유대교는 특별계시인 구약에 의존하여 하나님 지식을 추구하여도 그리스도를 배척하여 거짓 신학이 되었다. 모하멧교는 코란경에 특별계시를 담았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거부함으로 인간의 자력종교가 되었다.
기독교신학도 구속주이며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구원임을 인정하는 신학이 바른신학이다. 따라서 18세기에 복음을 당대의 사상에로 번역하여 형성된 신학작업은 신학의 근본원리인 그리스도를 벗어나고 바로 제시하지 못하므로 바른 신학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성경의 그리스도를 방기하여 일반계시로 돌아가 “신개신교주의”라 한다.
3. 일반계시
1. 창조 자체
창조작업을 통하여 나타낸 최초의 자기 계시이며 그의 지식와 지혜, 권능과 영광, 존재와 인격을 나타내셨다. 창조는 비필연적인 자기 계시의 방편이며, 창조를 이루시므로 그 지혜와 권능을 즐기며 자기향유를 기뻐하셨다.
2. 창조계시
(1) 창조 세계를 통하여 나타내시는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계시함을 뜻한다.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존재와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분임을 안게 하셨다.
(2)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므로 인간의 구조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와 자 신의 창조물됨을 현시함
3. 도덕계시
하나님께서 인류의 종족들과 인간의 양심에 윤리법을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스리심을 알게 하셨다.
4. 일반계시의 가치와 의의
1. 모든 종교의 기초 : 모든 종교는 창조계시에 근거하여 창조주의 존재 또는 신의 존재와 활동을 상정한다. 그러나 생활의 법규를 정할 때는 일반계시인 도덕법과 윤리법에 의존한다.
2. 문화활동의 기초 특별계시가 전달되지 아니한 종족들도 문화활동을 하였다. 일반계시가 모든 시민생활과 종교생활의 기초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3. 복음의 예비 일반계시는 언어, 사상, 종교, 도덕생활을 가능하게 하므로 복음전파의 길을 예비하였다.
5. 일반계시의 불충분성
1. 일반계시의 명료성
일반계시가 우리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존재, 신성과 영광을 분명히 알게 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핑계할 수 없게 한다.
2.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관계에 관하여는 불충분하다
일반계시는 하나님과 영적인 사물과 인간구원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3. 죄는 일반계시와 이 계시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을 어둡게 하였다.
죄가 들어온 이후부터는 모든 사람들이 본성으로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 려고 하지 않는다. 죄가 억압하기 때문이다.
4. 기독교의 기초로서 전혀 불충분하다.
일반계시를 통하여 구원하는 은혜, 속죄 등을 알 수 없다. 일반계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시는 구속 과정의 일부가 아니고, 그 예비과정에 속한다.
6. 일반계시와 자연신학
인간의 지성으로 자연의 구조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증명하고 정립한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이르지 못한다. 토마스는 자연이 원래 불완전하게 창조되었으므로 은혜를 통해 자연을 앙양하여 피조세계를 넘어 신적 존재에까지 동참하게 된다고 보았다.
7. 특별계시
특별계시는 창조 후에 말씀으로 온 계시이다. 말씀의 형태로 왔으므로 특별계시는 말씀계시라고도 한다. 일반계시로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와 권능을 알리셨고 그의 존재와 창조 사역을 알리셨다. 그러나 일반계시로는 자기의 작정과 구원경륜 또 인류의 역사진행 경륜과 역사의 종말을 알리실 수 없으므로 말씀의 형태로 인류에게 계시하였다. 이 계시는 계시를 받으면 알 수 있는 합리적인 존재들에게 하셨고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직접 적용되는 백성들에게 이루어졌다.
특별계시는 비구속적 특별계시와 구속적 특별계시로 구분된다. 창조 직후에 말씀으로 와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언약관계로 만들었고 또 창조계발과 보존의 책임을 지우신 것은 구원과 상관없는 특별계시이다. 그러므로 이 계시는 특별계시로서 비구속적 특별계시이다.
그러나 타락 후에 온 특별계시는 인류구원을 위해서 왔다. 그러므로 구원의 방식과 구원에 이르는 길을 계시하시므로 구속계시 곧 구원계시가 되었다. 그러므로 구속적 특별계시라고 한다.
8. 율법과 복음
특별계시는 율법과 복음의 형태로 왔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독촉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율법이 몽학선생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은 율법이 계명들을 지키라고 명령하므로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해서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가 어서 와서 구원을 이루어 줄 것을 열망하게 하므로 그 임무를 다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율법은 완성되었다. 이 복음과 율법의 이해로 교회가 유대교와 분리, 독립하였다.
로마교회는 예수 믿음에 율법의 준수 곧 선행으로 완전히 구원하는 믿음에 이른다고 가르쳐서
믿음을 율법의 길에 넣어 기독교를 유대교화 하였다. 루터는 구원은 선행과 무관하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다 하였다. 구원을 얻는일은 율법과 무관하여도 믿음에 이르는 예비과정 곧 회개의 일을 하기 위해 율법이 개입해야 한다. 율법의 선포로 사람을 절망과 지옥에로 몰아 넣은 다음 은혜가 선포되어 예수 믿음에 이른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만 선포하므로 그들을 믿음에로 인도하였다. 루터는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구원서정적으로 이해했지만 바울은 구원사적으로 이해하였다.
율법은 구원의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으로 역사한다. 율법은 구원성취를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른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라 살게 되어있다. 율법을 의식법, 형벌법, 도덕법으로 나눈다. 이 도덕법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규범으로 작용한다.
9. 자연과 은혜
계시는 은혜의 방식으로 왔다. 특히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호의로서 왔다. 그러므로 은혜는 죄에서 치료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 은혜는 자연의 완성과 앙양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로마교회에 의하면 자연은 처음부터 불완전하게 왔다. 따라서 은혜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은혜가 자연을 보충할 뿐만 아니라 앙양하여 피조 상태를 넘어 신적 존재에까지 동참하게 된다. 따라서 은혜는 죄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 대립한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은혜가 오기 때문에 자연질서를 억압하고 능가해도 되는 줄 알면 자연을 파괴하게 하여 생명을 끝나게 한다. 로마교회에 의하면 은혜의 역사는 자연의 회복이 아니라 보충과 앙양이기 때문에, 구원과정의 종국이 피조물의 수준을 넘어서서 신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혹은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의 통보이다.
현대신학도 동일하다. 칼발트는 회복선을 앙양선으로 정착시킨 신학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계시와 성육신을 통하여 인간을 자기의 존재에까지 인양하므로 자기가 사랑이심을 증명한다. 현대 자유주의자들이 다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개혁신학에 의하면 신화가 아니라 창조의 회복이다. 피조물의 본래의 자세에로 돌아가서 하나님 섬김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은혜를 입어 영화되어도 회복된 피조물로 남는다. 그러므로 은혜는 창조의 회복을 목표한다. 따라서 구속에 이른다. 그러나 로마 교회의 앙양은 회복된 피조물이 아니라 신되기이다. 이것은 성경이 원죄로 정죄한 것을 구원과정의 종국으로 삼아 성경진리를 배척한다. 그러므로 신학함에 있어서 은혜와 자연의 관계가 바로 이해되어야 한다.
10. 성경의 무오
1. 성경의 내용에 있어서 오류가 없다.
성경이 그 담고 있는 내용에 전혀 오류가 없어서 계시된 내용을 그 의도대로 다 담고 있다.
2. 성경의 계시를 담지하는 문장에 오류가 없다.
성경의 계시를 담고 있는 문장들이 잘못되었거나 그릇되게 되어 내용을 곡해할 가능성이 배제 되었음을 말한다.
3. 성경의 기록이 지시하는 역사적 사실들과 실제 사실들 간에 일치함을 무오라고 한다. 이 역사적 사실들에는 과학적인 사실들이 포함된다.
성경의 역사적인 기록들은 역사적인 사실들과 실제로 일치한다. 역사적 과학과 과학이 말하는 것이 성경과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성경의 진리의 지식에 아직 이르지 못해서이고 또 성경을 그룻되게 현재의 지식을 표준으로 해서 거기에 맞추기 때문이지 성경 자체의 기록의 오류가 결코 아니다. 과학적 지식은 언제든지 시대 제약적이고 한정적이다.
4. 성경의 첫 원본은 무오하다.
지금의 사본들은 탈락이나 잘못된 기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근본에 있어서는 아무런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교부들이 각기 다른 사본들을 갖고 있어서도 공회의를 모일 때 그들의 성경이해와 인용이 완전히 일치하였다. 번역본도 영감성을 지니므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되었으면 원리적인 무오성을 지니다.
11. 성경의 영감
하나님께서 성경의 기록자들과 그들의 기록에 호흡하셨다. 하나님께서 호흡하셨다고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뜻한다. 성령의 특별하고 직접적인 역사로 성경이 기록된 역사를 영감이라고 한다.
1. 유기적 영감
성경의 저자는 성경저자의 교육과 지식, 인격, 문화적 배경을 다 활용하셨다. 저자들이 영감되었을 뿐 아니라 문장들과 단어들이 다 저자들에게 공급되었으므로 영감되어 오류가 끼어 들지 못한다.
2. 전체적 영감
성경의 일정한 부분만 영감된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 영감이 이루어졌다. 모든 성경부분들이 다 성령에 의해 저작되었고 사상들과 단어들이 다 성령에 의해 공급되고 지시되었다.
3. 축자영감
언어는 사상의 담지자이므로 사상의 내용 뿐 아니라 문장과 단어에 이르기까지 영감되어 무오하다.
12. 성경의 해석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 전하고자 하는 뜻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경의 문맥 가운데서 해석되어야 한다. 즉 성경은 자기 해석자이므로, 성경이 성경해석의 최종권위이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성경 모든 부분은 바로 이 중심에 의해 해석되야 한다.
성경은 일상적 언어로 명백하게 자기의 뜻을 전한다 따라서 명백한 뜻을 현대의 문화적 상황으로 어거하면 안된다. 고대와 중세교회는 당대문화에 의해 성경을 해석하므로 우화적 해석을 산출해 냈다. 우화적 해석은 성경본문의 분명한 뜻을 무시하고 심오한 뜻을 추구하여 신령한 뜻이라는 희랍철학적 의미만을 구하게 되었다.
이 우화적 해석은 종교개혁에 의해 배척되었다. 루터와 칼빈은 하나님의 간섭과 구원사역은 구체적인 역사 내에서 발생하므로 성경의 문자적 문법적 의미가 성경의 바른 뚯으로 받게 되었다. 이 문자적 문법적 해석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에 도달하였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의 성경해석은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
성경의 중심이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가 구약의 목표이므로 구약을 기독론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예표론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바울이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가 반석으로서 이스라엘이 그 반석에서 생수를 마셨다. 이스라엘의 홍해를 건넘은 세례 받음을 사전에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근세 성경해석은 해석의 문맥을 철학 곧 당대의 사고방식에다 두었다. 그러므로 복음이 당대의 사상과 상황을 해석하고 변개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당대의 상황을 표준으로 해석되어 당대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도 당대 사상에로의 성경의 번역은 계속되었다. 예수의 부활은 신약의 보도대로 실제 발생한 것이 아니지만 부활했다고 선포할 때 그 선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부활이 그 마음에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예수는 믿음으로 부활하였다.
철학에 의한 성경해석은 성경의 본래적인 주장을 과도하게 변형하므로 철학에 의한 해석이 아니라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해석법을 고수해야 한다. 새로운 철학체계나 현대인의 세계관과 성경이 합치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의 내용을 변형하면 안 된다. 현대의 사고 방식과 맞아야 기독교 신앙이 선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그리스도는 성경의 제 시대로만 선포되면 수납된다. 자연인들이 기독교 선포를 받아들이느냐 않는냐는 성령이 결정한다.
13. 성경과 교회
믿음과 도덕에 관한 진리에 대해 성경과 교회 어느쪽이 권위를 갖고 결정하느냐에 대해 로마교회와 종교개혁은 과격한 차이와 대조를 갖는다.
1. 로마교회는 교회가 정경을 확정하였으므로 교회가 성경을 지배해야 바른 권위가 행사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은 칼빈의 말대로 사람들의 결정에 우리의 신앙을 의존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창조하였으므로 교회는 성경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2. 로마교회는 그의 신랑인 그리스도의 영에 인도되기 때문에 교회가 무오하고 교황의 결정도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회가 구원에 관한 필수적인 문제들에 관한 결정에 있어서 무오한 것은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르침 받을 때만 이다.
3. 로마교회는 성령의 인도에 의해 무오하므로 공의회의 결정에 오류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성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말씀이 없는 유아세례도 공의회의 결정이므로 바른 교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문가의 의견에 성경을 종속시킴을 뜻한다. 또한 그리스도가 공의회를 주재하는 경우는 공의회가 그의 말씀과 그의 영에 의해서 지배되었을 때만 이다. 공의회가 바른 교리를 생산한 경우는 니카야, 콘스탄티노폴리스,에베소, 칼케돈 뿐이다.
4. 로마교회는 주교는 권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제의 권위는 그 자체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부름 받은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때에만 타당하다.
5. 사도적 계승을 강조하는 로마교회는 교회의 전통을 사도적 전통으로 주장하여 성경과 함께 전통을 두 계시의 원천으로 삼았다. 사도들이 자기들의 기록에 넣지 않은 내용을 추후에 교회에 가르치고 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그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에 진리의 영에 의해 모든 진리에도 인도 받았으면 무엇을 더 추가할 필요가 있었는가?
6. 로마교회는 교회가 성경을 해석해야 하는 이유로 개인들이 개별적으로 구원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구원을 매개하고 그 공동체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이 지접역사하셔서 개인 영혼을 구원하신다. 또한 성경은 자체로 역사하는 자기 가신성을 갖고 있다.
7. 로마교회는 주장하기를 교회의 선포가 어디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발견할지를 말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의 해석을 통한 선포에 의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면 사람들이 다 구원에 이른다.
8. 로마교회는 교황 무오성을 교리화하므로 신앙과 윤리의 영역뿐아니라 교황으로서 하는 일은 다 무오하다. 그러나 교황이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 결정한 것은 실은 전문가들의 견해일 뿐이다. 무오성은 성경만에 귀속히고 성경의 진술을 받는 것만이 무오한 신앙교리가 된다.
종교개혁의 원리들에 의해 성경과 교회의 관계를 보면 교회는 성경에 종속해야 한다. 교회는 말씀에 의해 발생하였으므로 구원진리에 대한 모든 권위는 성경에 있고 성경에서만 유래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그 저자로 가지므로 신적 권위를 갖고 교회는 여기에서 도출된 부차적 권위를 갖는다. 그 부차적 권위도 성경에 매일 때만 허락되고 정당화된다.
14. 신학의 대상
신학의 대상인 무한한 영적존재인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이 직접 탐구,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이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 즉 인격과 그의 사역을 말한다.
1. 하나님의 존재
1. 창조주 하나님 성경과 자연에서 자신을 창조주로 계시하신 존재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경륜 곧 자기의 작정대로 무에서 만물을 만드셨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구속주로 계시하신 하나님 자신을 구속주로 계시하신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의 인격으로 일하사 친히 피조물을 입으셨고 속죄사역을 이루시어 모든 창조와 인류를 자기에게로 회복시키셨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로 계시하신 하나님 삼위일체 곧 한 하나님이시고 한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다. 우리는 이 삼위일체를 한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믿는다. 이신앙에 구원이 있다.
4. 무한한 영 곧 절대적 인격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자기완결적 존재여서 필연적 존재이시다. 그러나 무한한 영 곧 절대적 인격이신 하나님은 자신을 자발적(비필연적)으로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다.
2. 하나님의 사역
1. 하나님의 창조 창조는 자발적으로 영원한 작정을 가지고 비필연적으로 창조하셨다. 창조가 존재에 필연적이면 유출설이 된다. 태초에 창조의 첫날에 모든 우주를 창조하셨다. 이때 시간도 창조하셔서 시간이 모든 피조물의 존재방식이 되었다. 영의세계도 피조 세계이므로 우주창조와 함께 창조되었다. 그리고 이 우주를 나머지 날 동안에 현재와 같이 정비하셨다.
이 우주를 지으실 때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인격)을 따라 지으시어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2. 하나님의 섭리 섭리는 창조를 다스리고 보존하심을 말한다. 피조물의 근본특성은 의존성이므로 창조를 계속 붙들고 유지하셔야 한다. 따라서 시간내에서 진행되는 모든 발생과 사건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함이다. 섭리의 근본은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인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시고 종국에는 죄를 완전히 제거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신다.
3. 하나님의 구원 = 창조의 회복 창조다음으로 큰 사역은 인류의 구원이다. 구원의 역사를 그의 인격으로 친히 이루셨다. 구원을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다.
4.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 창조의 완성은 구원의 완성과 창조의 계발로 이루어진다. 창조의 계발은 종국에 인류의 문화업적으로 장식된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와 권능이 찬란하게 현시되는 것을 보는데 도달한다. 구원의 완성은 복음이 성령의 역사로 적용되넝 모든 택자들이 다 중생하여 구원의 진행이 완료되므로 이루어진다. 이 창조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으로 이루어진다. 악을 소제하고, 의가 완전히 서므로 백성들이 영생에 이른다.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통치의 절정이다.
15. 9장 중생 이성의 역할
신학은 중생인이 한다. 중생한 지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한 진리를 문장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전체를 조직하고 체계화한다. 이일이 신학 작업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성이 규정되고 자기 능력과 한계가 설정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 변화되므로 처음 아담의 의식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하나님의 지식체계와 상응해서 지식을 얻어 자기의 지식 체계를 구성한다. 이성이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사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신대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상을 뒤따라 말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해석과 사상에 우리의 사상을 맞추는 것이다. 그 계시에 의해 우리의 사고가 해석되어, 그 해석받은대로 사고해야 한다.
신학적 사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함의된 내용들을 중심사상에 의해 조명받아 사고하여 풍성한 내용을 밝히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들은 지금까지 교회의 사고가 발굴해내지 못한 깊은 진리들을 담고 있다. 교리사의 과정에서 밝혀지듯, 모든 진리가 다 동시에 자명하게 이해된 것이 아니고 시대를 따라 이루어 졌다. 아직도 종말론, 교회시대의 이스라엘의 자리 등 분명하게 개진되지 못하였다. 성경에 함의된 내용들을 발굴해내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밝혀 신앙의 길을 확실히 밝히는 것이 신학의 작업이다.
16. 교의신학
신학 곧 교의신학은 교회가 믿는 내용과 가르침과 관계한다. 믿음의 내용 곧 교의를 가르치기 위해 진리를 정립하는 신앙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교회는 믿음을 가르칠 뿐아니라 선포한다. 바르고 합당한 선포가 이루어지게 하기위하여 바른 신학적 정립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교의 신학은 설교에 필수적이고, 그 준비작업에 해당된다.
교의신학은 본래 신학과 일치되었고 성경신학과 역사신학은 다 보조 학문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난 슐라이어마허 이후 교의신학 외에 역사신학과 성경신학과 실천신학도 다 독립된 자리를 갖게 되었다.
1. 교의신학은 성경계시를 그 전체적인 조망에서 이해하고, 통일적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계시의 전 내용을 통일하고 조직한다. 성경계시의 중심인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전체 계시를 이해한다.
2. 교의신학은 전체적 이해에서 교의들의 근거와 유래를 밝힌다. 교리가 실제로 계시에 근거하고 계시의 진리를 바로 표현하였는지를 살피고 정립한다.
3. 교의신학은 교의들을 변호하고 설명한다. 이것은 신조학은 주어진 교리들을 그냥 진술하고 설명하지만, 교의신학은 교리 발생의 근거와 정당성을 살피면서 교리를 설명하고 정립한다.
4. 교의신학은 계시 이해를 깊이하고 확대하므로 교의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한다.
5. 교의신학은 교회의 근본교리에 들지 못하는 구원진리들을 믿음의 내용으로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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