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확신 - 헤르만 바빙크
사람들은 모두 확신이 진리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진리는 항상 확신을 유발시키거나, 확신이 진리의 입증은 아니다.카톨릭적 경건은 그 최선의 형식에서조차도 본질상 개신교의 그것과는 아주 상이하다. 카톨릭적 경건은 항상 자유롭지 못하고, 얽매어 있고, 형식적이고 율법적이다.
신령한 생활이 거짓된 확신과 고통스런 불확실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 (p.45)
종교개혁에 있어서의 확신
종교개혁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강력한 운동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필요성을 깊이 느끼는 데서 일어났다.
마르틴 루터는 구원의 확신을 헛되이 선행에서 찾았었다. 그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서, 죄인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데서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한번도 유혹이나 갈등을 겪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항상 모든 의심을 초월한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 모두 두려운 염려와 깊은 낙담의 시기를 통과하였다. 루터의 위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종 마귀와 격렬히 싸웠고, 이성과 격렬히 싸웠다. 그는 빈번히 그의 개혁하는 일에 대한 정당성과 축복에 관해 의심하였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있는 소망에 대해 기술하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손하나 동시에 힘있는 어투를 살펴 보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교회의 산 지체요, 그런 지체로 영원히 존재할 자인 것을 확고히 확신케 된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개인적으로 죄사함 받고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하나님에 의해서 허락 받았다는 어린애다운 신뢰 가운데서 살아간다.
이 신앙 고백에서 그리스도인은 한 목소리를 부여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에 참여한다. 하나님의 영이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자신의 영으로 증거 한다. 그는 믿은 고로 확신의 고백을 할 수 있다......
정통신앙과 경건주의에 있어서의 확신앞에서 제시된 이 유쾌한 진술은 도르트 신조 작성시에 반영되어 나타났다.그러나, 점차 그것은 약해졌고 불확실과 두려움이 신앙의 진술에 침투해 들어왔다. 16세기의 신앙( 종교개혁의 신앙)은 17세기의 정통 신앙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신념은 고백치 않고, 다만 그들의 신앙고백서만을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정통 신앙은 합리주의에의 길을 예비하였다.
종교는 이성(p.48) 의 문제가 되었으며, 영원한 것들에 관한 진리는 이제 역사적 증거와 이성적 논증을 의존하게 되었고, 신앙의 확신은 이성적 통찰과 구별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 신실한 소집단 내에서는 그것이 다른 반작용을 불러 일으켰다. 즉, 그들은 단지 합리적인 지식에 만족하지 못하고서 구원의 본질을 경험에서 찾았다. 이 운동이 점차 경건주의로 발전해 갔다.....
이런 자기의 반응에서 믿는 자는 역시
헌신적인 작가의 묵상적인 작품의 인도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생의 가장 깊숙하게 숨겨진 감정들을 분석하고, 난해하나 종종 혼돈을 일으키는 일련의 긴 표현들로써 생명을 묘사함으로 영혼의 생명을 그 맨 시초부터 추적하였다.
그 이전이나 이후라도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의 삶을 이처럼 심오하고 진지하게 연구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들은 당시의 냉랭한 정통 신앙을 논박하면서, 아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렇다면 신앙( 믿음)은
맨 처음부터 자연히 확실치 않았다.....
확신이란 신앙 자체로는 주어지지도 않았고 ,
또한 그것으로부터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확신은 가끔 외부로부터 기계적으로 특별한
계시들에 의해 더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종종 어떤 성경 말씀이 마음에
갑자기 들어옴으로써 일어났다.
또한 믿는 자가 홀연히 영광스런 빛에 압도되어 야곱처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셨고,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다.
오직 비로소 그때 믿는 자는 신앙의 최고 단계에 이르렀던 것이며, 견고하고 확실한 신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쁨과 감사의 생활로 나아간 적이
한번도 없다 할지라도,
자처하기를 더 좋아했다. (p.5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약속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사41:14참조).
그들의 영혼에 아무런 빛도 비추지 않고 행복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둘러싼 모든 것도 어둡고 침울해 보였다.
그들은 이 땅에서의 생활을 고통과 슬픔의 생활이라고 말했다.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고 다만 눈물과 광야와 메섹의 골짜기였다.
가정과 사회, 과학과 예술, 국가와 교회는 아주 못쓰게 되어 다시는 회복 할 수 없는 불신과 혁명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은 여생 동안을 죄의 몸이 사라질 때까지 또는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렸다.
17세기에 아주 최고로 경건한 신앙은 네덜란드 전체 개혁교회에서 이런 차원으로 발전했었다.
아주 두려워하고 고립된 그런 삶은 참되고 완전한 기독교 신앙일 수가 없었다.
그런 현실 도피주의는 세상을 이기는 길이 아니었다.
하나는 루터교 내의 모라비안 형제단과
다른 하나는 개혁교회 내의 감리교도들이었다.
모라비안들은 전도를 통해 영혼들을 지고의 행복으로 이끌고 싶어했는데, 율법으로가 아닌 복음으로, 시내 산의 (p.52)천둥 소리가 아닌 골고다의 사랑스런 목소리로,
모세의 엄숙한 모습이 아닌 예수님의
친절한 모습으로 그렇게 하고 싶어했다.
진젠돌프는 소위 경건주의자들의 「속죄의
투쟁과 돌파」와는 아무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들은 불쌍한 그리스도인들이라 하였다. 진젠돌프는 탄식하고 슬퍼하는 신앙 대신에 노래하고 기뻐하는 기독교를 원했다.
그분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생명의 갱신과 분여이다.
허물과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게 된다
그때부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회상하므로서, 부요한 예배를 드림으로써, 열정적인 찬송의 보화로써 견실히 성장하여 복을 누리며, 감사하며, 아무런 짐도 지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감리교는 다른 길을 택했다 .
왜냐하면 감리교도들은 모라비안 형제들이 느꼈던 것보다 죄의 허물을 더욱 깊이 느꼈기 때문에,
그들은 그 거짓 안전에 대해서 영혼에 경고를 하는 것이 필요했다.
영혼은 지옥으로 내려가는 자기 인식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천국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감리교는 구원의 모든 경험을 일순간으로 요약하였다.
잃어버린 영혼으로서 죄인의 지라에 앉아 있었던 자는 바로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 찾으신 자가 되었다.
그는 용서를 받고 천국을 소유하게 되자 일어섰다.
(p.53) 그러므로 신앙(믿음)은 직접적이고 충만한 확신이었다.
왜냐하면 신앙은 심각한 재난으로부터 갑자기 일어났고, 그 총체적 확신을 신앙에 선행하는 인간의 상태와 비교하는 데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감리교도는 중생한 날과 시간을 안다 죤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오후 9시35분에 회심하였다.
자신의 신앙의 실재를 시험하기 위해
내적으로 더 이상 자신을 계속 살필 필요가 없었다.
회개한 자에게는 이제 다른 사람을 회개시켜 가능한 한 많은 영혼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승리하도록 하는 것보다 더 큰 소명은 없었다.
이 운동은 기독교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 운동들은 자기 반성을 통해 그리스도인을 각성시켰고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그들을 세상과 싸우도록 환기시켰다.
이 두 운동의 주도하에 국내외 선교가 크게 자극을 받았다.
새롭고 활기찬 생기를 불러 일으켰다 .
또한 사도신경 제1항에도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도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전능자시오 천지를 지으신 분이라는 사실에도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예술과 과학, 문학과 정치, 가정과 사회라는 지상적인 것들이 그 의미와 의의에 있어서 충분히 인식되지 않아, 그것들이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하여 개혁되거나 새롭게 되지도 못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였다.
감상적인 것과 불건전한 감정주의가 그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었고, 그 다음으론 열광적이고 무분별한 활동이 또한 그들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됨됨이와 능력 사이에 조화가 없었다.
지상적 소명을 신실히 이행하는 것,
개안된 안목, 폭넓은 관점, 호방한 마음이 그어는 것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요성이 균형있게 인식되지 못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 생활과 불화 하는 것으로도 인식되었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가루 반죽에 넣어 전체를 부풀게 하는 누룩처럼 되지 못했다.
더 큰 불확실
불확실은 상이한 요소들이 신앙 생활에 혼합됨으로 일어났다.
그 불확실은 일정한 방향을 잡지 못하게 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지식 안에서 꾸준히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상이한 방향-정통과 경건주의자, 모라비안과 감리교도, 합리주의자와 신비주의자-안에서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임마누엘 칸트이래 철학적 관념은 계속 수용을 폭넓게 증가시켜 왔다.
존재하는 속박된 인간은 불가견적 영원한 것들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결코 얻을 수가 없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의 각 책을 믿을 수도 없고 신뢰할 수도 없다고 선포함으로써 이 입장을 천명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이제 어떠한 확실한 것을 찾을 수도 없게 되었다. 우리의 안과 밖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확실한 모든 것이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이어야 한다.
이 영역을 우리가 벗어나게 되면 사람의 비굴성을 요구하는 권위에 동조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죽는 내일을 위해 먹고 마시자」하거나, 또는 「종교란 각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적어도 각자는 자기 방식대로 구원을 찾자」라고 하였다.
이런 차원에서 어느 누구도 진리에 이른 자는 없었다.
p.69
모든 고백적인 교의들을 경험에 기초하여 세우려 하는 자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그들이 바로 루터교도들이다.
부활과 승천은 뒷전으로 한 예수님의 윤리적 위대성을 확립한다고 믿는다.
p.82
오늘날 많은 사람이 중도적 입장, 곧 주관적 확신과 종교의 위로는 이용하는 한편 그 객관적 진리와 가치성은 포기하는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 (p.83)이것이 종교를 사적인 문제, 심리학적인 요구로 전락시킨다.
p.84.
확신의 제 차원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진리에 대한 확신만으로는 충분하지가 못하다.
그는 또한 구원의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는 그의 신앙이 그가 의지하는 대상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해서 확신하는 경우라면,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 안에서 안식하고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밀접히 서로 관련된다.
곧,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은 저절로 곧 알게 된다.
그것은 합리적 논증이나 자기 반성이나
또는 논리적 추론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서 이 확신에 이르게 된다.
p.86. 종종 이것은 마치 죄인이 에스더처럼 그의 죄 많음을 인정하고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면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묘사된다.
피난처 되신 하나님께로 피하는 신뢰는
불확실한 실험도, 의심의 여지가 있을 추론도 아니다.
그리고 만약 후자가 왜소하고 약해지면,
우리는 전자 또한 빈한하고 불완전케 된다고 자신 있게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은 논리적 사유나 또는 신앙 자체를 끊임없이 검토하는 것과,
그 본질에 관해 반성하는 것을 통해서 신앙 자체에 관한 확신을 얻을 수 없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우리의 확신을 확립하는데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확신은 즉시 곧 신앙 그 자체로부터 일어난다.
p.87. 신자도 그가 그의 신앙 「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신앙을 「통해서」구원을 기대한다면 구원을 확신할 수가 있다 .....
위기에 처한 확신
가끔 기독교회는 정녕 이 부요하고 값없는 복음을 선포하려 하지 않고 그 복음을 사람의 견해와 절충하려고 하였다.
은혜는 오용되었고 체의 기회로 사용되었으며, 사람들은 은혜가 넘쳤던 곳에서 더욱 범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령한 생활을 하는 사제들이나 수도원장들만이 신자들의 믿을 권리와 자유를 최종 결과,
즉 일련의 선행의 열매 도는 진정한 내적 경험들로 판단하여 허락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 -과 분리되어 있었고, 이것이 신앙 성장에 관한 검토와 반성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신앙의 의미를 발견 (p.88)할 수 있었던 것을 요동하는 경험의 파도에서 헛되이 찾았기 때문에, 신앙은 확신을 상실하고 말았다.
바로 그 본질과 실재에 의해서 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여호와께서 주신 약속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점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다.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이 우리 영혼에 생명을 줄 수 있고, 우리의 소망을 세우는 데 필요한 확고한 터전을 마련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신앙 사이에서
주제넘게 나서는 인간적인 모든 것들이 제거될 때,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곧바로 붙들게 될 때, 그때에는 신앙이 확실하고 견고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신앙은 이미 주관적 가변적 기초 위에 근거하지 않고 객관적 영속적 기초 위에 근거하게 된다.
기초의 견고성은 난파된 삶에서 구출되어
신앙 안에서 두 발로 굳게 그 위에 서는 사람에게 직접 전달된다.
성례의 확증
이 약속들은 두 가지 형식,
곧 듣는 형식과 가시적 형식,
말씀 선포와 성례로써 우리에게 제공된다 .
성례는 말씀의 징표와 인호이므로 말씀에 종속된다. 말씀과 무관한 성례는 아무 가치도 없으며 그 존재도 끝나고 만다.
그러므로 성례는 이미 말씀에 포함되지도 않고 신앙(믿음 )의 방법에 의해 말씀을 통해서 제시되지도 않는 은혜를 뜻할 수도 없다.
신앙을 통하여 그러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성례로부터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으며, 그 성례를 실행함으로써 그는 공연히 더욱 더 허탈감을 느끼게 될 뿐이다. (p.89)
왜냐하면 성례는 말씀이 없는 곳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다만 이곳 말씀이 있는 곳만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성례는 말씀과 결부되어 있어서 말씀을 확증하는 징표와 인화가 되기 때문에 본래부터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다.
성례는 두 가지 방편으로 이 확증하고 강화하는 능력을 나타낸다.
첫째로, 성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그 자손들을 향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한 약속들을 믿는 자에게 인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온갖 축복,
곧 죄 용서와 영생을 주신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시작된 선한 일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성취하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례의
확증을 통해서 신자들은 그 신앙이 강화된다.
p.94
종교적 삶에는 그 자체의 내용과 독자적 가치를 분명히 담고 있다. 그 삶은 결국 그 심장부에서 모든 기독교적 사상과 행동이 나오며, 그 심장부에 의해서 그것들이 삶의 열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하여 그는 그의 수고를 위해서 힘을 얻게 되며,
싸움에 대비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귐의 그 신비한 삶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비록 기도의 골방이 그가 기거하고 행동하는 집 전체는 아니라 해도, 그 골방은 내실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온 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다.
성경에 묘사된 대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말하는 대로 ,
그리스도인은 이런 확신에 서서 행한다 .
하나님과 화목된 까닭에,
그는 고통 때문에 마음이 좁아질 수 없고
옹색해 질 수도 없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분의 십자가에서 하늘과 땅이 화목된다.
그분을 머리로 하여 만물이 통일될 것이다(엡1:10 ).
(p.95) 만물의 역사는 새로운
인류인 교회의 구속을 향해서, 유기적인 의미에서 세상의 g방을 향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서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전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세에서조차도 만물은 원리상 교회에 속한다.
그는 발아래서 자라나는 꽃들을 사랑하며,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에 감탄한다.
그가 예술을 경멸하지 않는 것은 예술이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값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제 학문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이것들이 또한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을 위해서 힘써 일하는 거도 아니며, 그가 삯을 받기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비록 미래가 어떻게 될른지 모른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터득한 바는 그는 힘써 이행한다.
그는 계산하지 않고 선행을 행하며,
그가 선행을 행했다는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 열매를 맺는다. 그는 은밀히 향기를 발하는 꽃과 같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모든 선행으로 완전히 무장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그의 생시에도 그리스도께서 함께 해 주시지만,
마지막 그의 사후에도 유익이 있다.
신앙의 온전한 내적 확신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항상 다음과 같은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내가 충분히 행해야 하고 그 밖의 것도 내가 행해야 하는가? 로마교는 일부러 인간의 영혼을 쉼이 없는 소위 건전한 긴장에다 가두어 둔다.
신령한 생활이 거짓된 확신과 고통스런 불확실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 (p.45)
카톨릭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우리 영으로 증거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종교개혁에 있어서의 확신
종교개혁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강력한 운동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필요성을 깊이 느끼는 데서 일어났다.
마르틴 루터는 구원의 확신을 헛되이 선행에서 찾았었다. 그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서, 죄인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데서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가 이 보화를 발견하고서 영웅적인 담대함으로 당시 전 기독교를 향해 분연히 일어섰다. 그의 믿음은 확고히 닻을 내리게 되었고 그의 소망도 확실하게 되어, 그는 그것들을 가지고 모든 반대자들 앞에 홀로 당당히 섰다.
하나님께서 그의 편이 되셨으니, 누가 그를 대적할 수 있었겠는가?
확신은 루터의 신앙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개혁자들의 신앙에서도 특징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한번도 유혹이나 갈등을 겪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항상 모든 의심을 초월한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 모두 두려운 염려와 깊은 낙담의 시기를 통과하였다. 루터의 위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종 마귀와 격렬히 싸웠고, 이성과 격렬히 싸웠다. 그는 빈번히 그의 개혁하는 일에 대한 정당성과 축복에 관해 의심하였다.
멜랑히톤도 종종 영적으로 침체되었다.
칼빈은 확실히 자신의 경험을 들어 믿는 자가 많은 의심과 걱정을 품을 수 있다고 증거 한다.......(p.47)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있는 소망에 대해 기술하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손하나 동시에 힘있는 어투를 살펴 보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교회의 산 지체요, 그런 지체로 영원히 존재할 자인 것을 확고히 확신케 된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개인적으로 죄사함 받고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하나님에 의해서 허락 받았다는 어린애다운 신뢰 가운데서 살아간다.
이 신앙 고백에서 그리스도인은 한 목소리를 부여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에 참여한다. 하나님의 영이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자신의 영으로 증거 한다. 그는 믿은 고로 확신의 고백을 할 수 있다......
정통신앙과 경건주의에 있어서의 확신앞에서 제시된 이 유쾌한 진술은 도르트 신조 작성시에 반영되어 나타났다.그러나, 점차 그것은 약해졌고 불확실과 두려움이 신앙의 진술에 침투해 들어왔다. 16세기의 신앙( 종교개혁의 신앙)은 17세기의 정통 신앙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신념은 고백치 않고, 다만 그들의 신앙고백서만을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정통 신앙은 합리주의에의 길을 예비하였다.
종교는 이성(p.48) 의 문제가 되었으며, 영원한 것들에 관한 진리는 이제 역사적 증거와 이성적 논증을 의존하게 되었고, 신앙의 확신은 이성적 통찰과 구별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 신실한 소집단 내에서는 그것이 다른 반작용을 불러 일으켰다. 즉, 그들은 단지 합리적인 지식에 만족하지 못하고서 구원의 본질을 경험에서 찾았다. 이 운동이 점차 경건주의로 발전해 갔다.....
따라서 믿는 자는 내향적이 되어
그 자신의 신앙 실재에 관하여
그 스스로 확신하도록 자극을 받았다.이런 자기의 반응에서 믿는 자는 역시
헌신적인 작가의 묵상적인 작품의 인도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생의 가장 깊숙하게 숨겨진 감정들을 분석하고, 난해하나 종종 혼돈을 일으키는 일련의 긴 표현들로써 생명을 묘사함으로 영혼의 생명을 그 맨 시초부터 추적하였다.
그 이전이나 이후라도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의 삶을 이처럼 심오하고 진지하게 연구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들은 당시의 냉랭한 정통 신앙을 논박하면서, 아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실제적인 신앙은 경험이라고 하였다......
(p.50)그렇다면 신앙( 믿음)은
맨 처음부터 자연히 확실치 않았다.....
확신은 여러 해를 걸쳐 많은 경험을 한 후에만 얻어졌다.
확신이란 신앙 자체로는 주어지지도 않았고 ,
또한 그것으로부터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확신은 가끔 외부로부터 기계적으로 특별한
계시들에 의해 더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종종 어떤 성경 말씀이 마음에
갑자기 들어옴으로써 일어났다.
또한 믿는 자가 홀연히 영광스런 빛에 압도되어 야곱처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주 예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직접 자신을 보여
주셨고,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다.
또는 믿는 자가 혹시 바울처럼 삼층천에 이끌리면 왕 되신 그리스도께서 내실로 그를 인도 하실지도 모른다.
오직 비로소 그때 믿는 자는 신앙의 최고 단계에 이르렀던 것이며, 견고하고 확실한 신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설령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의 것이 되었다는 구속으로 인해서 혹 기뻐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기쁨과 감사의 생활로 나아간 적이
한번도 없다 할지라도,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불행에 여념이 없는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염된 아담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인들로
자처하기를 더 좋아했다. (p.51)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렁이 같은 야곱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약속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사41:14참조).
그들의 영혼에 아무런 빛도 비추지 않고 행복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둘러싼 모든 것도 어둡고 침울해 보였다.
그들은 이 땅에서의 생활을 고통과 슬픔의 생활이라고 말했다.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고 다만 눈물과 광야와 메섹의 골짜기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완전히 물러나와 마음을 같이 하는 소수의 무리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오히려 더 좋아했다.
가정과 사회, 과학과 예술, 국가와 교회는 아주 못쓰게 되어 다시는 회복 할 수 없는 불신과 혁명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들의 영적 생활은 오직 소그룹의 토론을 통해서 그리고 옛 사람의 글을 읽음으로써 자라나게 되었다.
그들은 여생 동안을 죄의 몸이 사라질 때까지 또는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렸다.
경건주의에 대한 반발
17세기에 아주 최고로 경건한 신앙은 네덜란드 전체 개혁교회에서 이런 차원으로 발전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오래 지속될 수가 없었다.
아주 두려워하고 고립된 그런 삶은 참되고 완전한 기독교 신앙일 수가 없었다.
그런 현실 도피주의는 세상을 이기는 길이 아니었다.
그 결과, 널리 퍼진 어떤 열망으로 인해서 다른 어떤 것보다 나은 신앙 운동들이 일어났다.
다양한 운동들이 일어나서 확신에 이르는 더 나은 길을 지적하려고 하였다.
그 운동이 두 개의 큰 노선으로 집약될 수 있다.
하나는 루터교 내의 모라비안 형제단과
다른 하나는 개혁교회 내의 감리교도들이었다.
모라비안들은 전도를 통해 영혼들을 지고의 행복으로 이끌고 싶어했는데, 율법으로가 아닌 복음으로, 시내 산의 (p.52)천둥 소리가 아닌 골고다의 사랑스런 목소리로,
모세의 엄숙한 모습이 아닌 예수님의
친절한 모습으로 그렇게 하고 싶어했다.
진젠돌프는 소위 경건주의자들의 「속죄의
투쟁과 돌파」와는 아무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들은 불쌍한 그리스도인들이라 하였다. 진젠돌프는 탄식하고 슬퍼하는 신앙 대신에 노래하고 기뻐하는 기독교를 원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했던 모든 것은 사랑을 묘사하는 생생함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에 충분히 새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명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며,
그분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생명의 갱신과 분여이다.
예수님의 상처에서 안식하는 십자가의 복음에 깊은 감명을 받은 자들은 그분과 결혼 언약의 관계에 들어가며,
허물과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게 된다
그때부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회상하므로서, 부요한 예배를 드림으로써, 열정적인 찬송의 보화로써 견실히 성장하여 복을 누리며, 감사하며, 아무런 짐도 지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감리교는 다른 길을 택했다 .
왜냐하면 감리교도들은 모라비안 형제들이 느꼈던 것보다 죄의 허물을 더욱 깊이 느꼈기 때문에,
그들은 그 거짓 안전에 대해서 영혼에 경고를 하는 것이 필요했다.
신앙(믿음)은 정열적인 설교, 지옥과 죽음을 무섭게 묘사하는 것,감정적이고 감동적인 노래들로써 불러 일으켜진 깊은 죄감을 통해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 곧이어 은혜가 전파되었고, 구원의 초청이 있었다.
영혼은 지옥으로 내려가는 자기 인식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천국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감리교는 구원의 모든 경험을 일순간으로 요약하였다.
가장 처절한 불행과 가장 고귀한 행복이 나란히 놓여 있다.
잃어버린 영혼으로서 죄인의 지라에 앉아 있었던 자는 바로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 찾으신 자가 되었다.
그는 죄 때문에 당연히 지옥으로 가서 않았고,
그는 용서를 받고 천국을 소유하게 되자 일어섰다.
(p.53) 그러므로 신앙(믿음)은 직접적이고 충만한 확신이었다.
왜냐하면 신앙은 심각한 재난으로부터 갑자기 일어났고, 그 총체적 확신을 신앙에 선행하는 인간의 상태와 비교하는 데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신앙은 각성의 찬란한 빛 아래서 잉태되었다.
감리교도는 중생한 날과 시간을 안다 죤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오후 9시35분에 회심하였다.
이런 경로를 통해 신앙의 확신에 이른 자는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의 조건을 다시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신앙의 실재를 시험하기 위해
내적으로 더 이상 자신을 계속 살필 필요가 없었다.
사람은 자신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과 이제 행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롭다 함은 단번에 그리고 항상 이루어진 채로 있었으나 거룩함은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세상은 똑같은 식으로 구원받아야 할 잃어버린 영혼으로 가득 차 있다.
회개한 자에게는 이제 다른 사람을 회개시켜 가능한 한 많은 영혼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승리하도록 하는 것보다 더 큰 소명은 없었다.
이 운동은 기독교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 운동들은 자기 반성을 통해 그리스도인을 각성시켰고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그들을 세상과 싸우도록 환기시켰다.
이 두 운동의 주도하에 국내외 선교가 크게 자극을 받았다.
그 회중들은 또한 주일학교와 른 많은 협회를 조직하는 일에 주도권을 잡았다.
이 두 운동의 결과 성경과 소책자의 분배, 복음 전도, 자선 사업, 그리고 다른 많은 기독교 활동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담당하게 되었다.
기독교 제반의 것을 무기력한 상태에서 흔들어 일깨웠고,
새롭고 활기찬 생기를 불러 일으켰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두 운동이 그리스도인의 비젼의 편협함을 초래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또한 사도신경 제1항에도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도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전능자시오 천지를 지으신 분이라는 사실에도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예술과 과학, 문학과 정치, 가정과 사회라는 지상적인 것들이 그 의미와 의의에 있어서 충분히 인식되지 않아, 그것들이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하여 개혁되거나 새롭게 되지도 못했다.
예수님의 상처에서 쉼을 얻는 것이나, 또는 회심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회개시키려 전도하러 나가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였다.
감상적인 것과 불건전한 감정주의가 그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었고, 그 다음으론 열광적이고 무분별한 활동이 또한 그들의 특징이었다.
사려깊음은 가끔 감정과 의지를 위해서 억제되었고,
그리고 사람의 됨됨이와 능력 사이에 조화가 없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자유-세상을 다스리는 권세, 모든 빛들의 아버지께서 주신 온갖 좋은 은사를 감사히 누리는 것,
지상적 소명을 신실히 이행하는 것,
개안된 안목, 폭넓은 관점, 호방한 마음이 그어는 것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요성이 균형있게 인식되지 못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 생활과 불화 하는 것으로도 인식되었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가루 반죽에 넣어 전체를 부풀게 하는 누룩처럼 되지 못했다.
더 큰 불확실
불확실은 상이한 요소들이 신앙 생활에 혼합됨으로 일어났다.
그 불확실은 일정한 방향을 잡지 못하게 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지식 안에서 꾸준히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상이한 방향-정통과 경건주의자, 모라비안과 감리교도, 합리주의자와 신비주의자-안에서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앙적 관점에서 일어나는 이런 차이보다는 훨씬 더 영적인 삶에 손상을 입힌 것은 인간의 인식 능력에 근거하는 철학의 예리한 판단이었고, 그리고 진리의 원천이 성경에 대한 역사적 탐구(역사 비판학)의 충격이었다.
임마누엘 칸트이래 철학적 관념은 계속 수용을 폭넓게 증가시켜 왔다.
즉, 유한하고 제한된 감각 인식에 의해
존재하는 속박된 인간은 불가견적 영원한 것들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결코 얻을 수가 없다.
역사 비판주의는 신앙고배서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의 각 책을 믿을 수도 없고 신뢰할 수도 없다고 선포함으로써 이 입장을 천명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이제 어떠한 확실한 것을 찾을 수도 없게 되었다. 우리의 안과 밖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확실한 모든 것이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이어야 한다.
이 영역을 우리가 벗어나게 되면 사람의 비굴성을 요구하는 권위에 동조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각 사람은 불가견적 사실에 대하여 자기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가지며, 이 사람의 견해는 저 사람의 견해만큼 타당성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죽는 내일을 위해 먹고 마시자」하거나, 또는 「종교란 각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적어도 각자는 자기 방식대로 구원을 찾자」라고 하였다.
이런 차원에서 어느 누구도 진리에 이른 자는 없었다.
p.69
모든 고백적인 교의들을 경험에 기초하여 세우려 하는 자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그들이 바로 루터교도들이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경험에서 성경의 종교적, 윤리적 진리나 또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교리를 추론한다.
그들은 계속 이 경험만이 그리스도의 내적 삶, 곧 그 분의 이적이나 초자연적 출생이나
부활과 승천은 뒷전으로 한 예수님의 윤리적 위대성을 확립한다고 믿는다.
하르낙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신성이 본래의 복음에는 없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p.82
오늘날 많은 사람이 중도적 입장, 곧 주관적 확신과 종교의 위로는 이용하는 한편 그 객관적 진리와 가치성은 포기하는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 (p.83)이것이 종교를 사적인 문제, 심리학적인 요구로 전락시킨다.
p.84.
확신의 제 차원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진리에 대한 확신만으로는 충분하지가 못하다.
그는 또한 구원의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는 그의 신앙이 그가 의지하는 대상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해서 확신하는 경우라면,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 안에서 안식하고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확신은 쉽게 구별은 되나 분리될 수는 없다.
그것들은 밀접히 서로 관련된다.
곧,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p.85) 이런 측면에서 신앙은 지식과 같은 것이다.
지식의 특성이란 그 대상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자체에 대한 확신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면,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은 저절로 곧 알게 된다.
진정한 참 지식은 그 자체에 관한 의심을 배제한다.
그것은 합리적 논증이나 자기 반성이나
또는 논리적 추론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서 이 확신에 이르게 된다.
곧 지식이 알려진 대상에 비추는 빛은 곧 자체에 반사되어 어두움을 모두 몰아낸다. 이것 또한 신앙을 참되게 한다. 실로 칭송을 받을 만한 신앙이란 그 자체의 확신도 불러일으킨다 .
p.86. 종종 이것은 마치 죄인이 에스더처럼 그의 죄 많음을 인정하고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면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묘사된다.
피난처 되신 하나님께로 피하는 신뢰는
불확실한 실험도, 의심의 여지가 있을 추론도 아니다.
그것은 은혜와 죄사함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는 어느 누구도 내쫓지 않으실 하나님의 약속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보증된 신뢰도 더욱 강렬해진다.
그리고 만약 후자가 왜소하고 약해지면,
우리는 전자 또한 빈한하고 불완전케 된다고 자신 있게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은 논리적 사유나 또는 신앙 자체를 끊임없이 검토하는 것과,
그 본질에 관해 반성하는 것을 통해서 신앙 자체에 관한 확신을 얻을 수 없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우리의 확신을 확립하는데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확신은 즉시 곧 신앙 그 자체로부터 일어난다.
확신은 신앙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곧 그것은 신앙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그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p.87. 신자도 그가 그의 신앙 「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신앙을 「통해서」구원을 기대한다면 구원을 확신할 수가 있다 .....
위기에 처한 확신
가끔 기독교회는 정녕 이 부요하고 값없는 복음을 선포하려 하지 않고 그 복음을 사람의 견해와 절충하려고 하였다.
이미 바울 시대에 많은 사람이 두려워했던 바는,
은혜는 오용되었고 체의 기회로 사용되었으며, 사람들은 은혜가 넘쳤던 곳에서 더욱 범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각양 각색으로 복음은 종종 율법으로 퇴색되었고, 하나님의 은사는 명령으로 변했으며, 그분의 약속들은 조건들이 되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선행에 필수적인 것들이 되었다.
신령한 생활을 하는 사제들이나 수도원장들만이 신자들의 믿을 권리와 자유를 최종 결과,
즉 일련의 선행의 열매 도는 진정한 내적 경험들로 판단하여 허락하였다.
신앙은 긴 행동 목록표에 의해서 그 대상 -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 -과 분리되어 있었고, 이것이 신앙 성장에 관한 검토와 반성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역할을 하였다.
신앙은 그 자체 내에서만 헛되이 추구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신앙의 의미를 발견 (p.88)할 수 있었던 것을 요동하는 경험의 파도에서 헛되이 찾았기 때문에, 신앙은 확신을 상실하고 말았다.
바로 그 본질과 실재에 의해서 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여호와께서 주신 약속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점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다.
어떤 다른 근거가 신앙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그 근거가 인간적이어서 변하기 쉽고 신빙성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이 우리 영혼에 생명을 줄 수 있고, 우리의 소망을 세우는 데 필요한 확고한 터전을 마련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신앙 사이에서
주제넘게 나서는 인간적인 모든 것들이 제거될 때,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곧바로 붙들게 될 때, 그때에는 신앙이 확실하고 견고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신앙은 이미 주관적 가변적 기초 위에 근거하지 않고 객관적 영속적 기초 위에 근거하게 된다.
기초의 견고성은 난파된 삶에서 구출되어
신앙 안에서 두 발로 굳게 그 위에 서는 사람에게 직접 전달된다.
신앙의 나무가 하나님의 약속의 터전에서 뿌리를 내릴 때 그것은 자연히 확신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나무가 이 터전에서 굳고 견고하게 뿌리내릴수록 그것은 더욱 강하고 높이 자라날 것이며, 그 열매들이 풍성케 될 것이다.
성례의 확증
이 약속들은 두 가지 형식,
곧 듣는 형식과 가시적 형식,
말씀 선포와 성례로써 우리에게 제공된다 .
성례는 말씀의 징표와 인호이므로 말씀에 종속된다. 말씀과 무관한 성례는 아무 가치도 없으며 그 존재도 끝나고 만다.
그러므로 성례는 이미 말씀에 포함되지도 않고 신앙(믿음 )의 방법에 의해 말씀을 통해서 제시되지도 않는 은혜를 뜻할 수도 없다.
성례 역시 그러한 말씀을 믿는 신앙을 전제한다.
신앙을 통하여 그러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성례로부터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으며, 그 성례를 실행함으로써 그는 공연히 더욱 더 허탈감을 느끼게 될 뿐이다. (p.89)
성례는 오로지 믿는 자만을 위해서 제정되었다.
왜냐하면 성례는 말씀이 없는 곳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다만 이곳 말씀이 있는 곳만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성례는 말씀과 결부되어 있어서 말씀을 확증하는 징표와 인화가 되기 때문에 본래부터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다.
성례는 두 가지 방편으로 이 확증하고 강화하는 능력을 나타낸다.
첫째로, 성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그 자손들을 향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한 약속들을 믿는 자에게 인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온갖 축복,
곧 죄 용서와 영생을 주신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시작된 선한 일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성취하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례의
확증을 통해서 신자들은 그 신앙이 강화된다.
p.94
종교적 삶에는 그 자체의 내용과 독자적 가치를 분명히 담고 있다. 그 삶은 결국 그 심장부에서 모든 기독교적 사상과 행동이 나오며, 그 심장부에 의해서 그것들이 삶의 열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하여 그는 그의 수고를 위해서 힘을 얻게 되며,
싸움에 대비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귐의 그 신비한 삶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비록 기도의 골방이 그가 기거하고 행동하는 집 전체는 아니라 해도, 그 골방은 내실인 것이다.
신령한(영적 )생활은 가족과 사회 생활, 사업과 정치, 예술과 과학을 배제하지 않는다.
신령한 생활이 이것들과 정면 대립하여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령한 생활은 삶 전체를 하나님께 대한 섬김으로 보증하기 때문에 우리의 지상적 소명을 충실히 완수하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
확실히 하나님의 나라는 온 세상보다 더욱 값진 진주 같으나,
그것은 또한 온 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다.
믿음은 구원의 길 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세상을 정복하는 것을 포함한다.
성경에 묘사된 대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말하는 대로 ,
그리스도인은 이런 확신에 서서 행한다 .
하나님과 화목된 까닭에,
그는 고통 때문에 마음이 좁아질 수 없고
옹색해 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어 누구든지 그들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앟고 영생을 얻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아들은 세상을 정죄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분의 십자가에서 하늘과 땅이 화목된다.
그분을 머리로 하여 만물이 통일될 것이다(엡1:10 ).
(p.95) 만물의 역사는 새로운
인류인 교회의 구속을 향해서, 유기적인 의미에서 세상의 g방을 향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서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전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세에서조차도 만물은 원리상 교회에 속한다.
왜냐하면 만물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전의 한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며 또한 이 사실을 믿는 성도는 땅을 다스리는 왕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며, 동시에 온전하고 참된 의미에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발아래서 자라나는 꽃들을 사랑하며,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에 감탄한다.
그가 예술을 경멸하지 않는 것은 예술이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값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제 학문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이것들이 또한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선한 것이라 믿으며 그것을 감사함으로 취하면 정죄 받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믿는다.
그는 성공을 위해서 힘써 일하는 거도 아니며, 그가 삯을 받기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비록 미래가 어떻게 될른지 모른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터득한 바는 그는 힘써 이행한다.
그는 계산하지 않고 선행을 행하며,
그가 선행을 행했다는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 열매를 맺는다. 그는 은밀히 향기를 발하는 꽃과 같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모든 선행으로 완전히 무장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그의 생시에도 그리스도께서 함께 해 주시지만,
마지막 그의 사후에도 유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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