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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벌코프- 종말론

by 【고동엽】 2009.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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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벌콥의 종말론

 

 뻘콥은 개인적이건 민족적이건,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 있었던 곳이면 어디서나 인간의 기원과 본질, 그 목적지에 대한 물음이 철학과 종교를 통해 항상 있어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모호하고 불확실한 차원의 것이고, 오직 기독교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마지막에 될 일들에 대한 정확한 신적 기원의 교리를 가진다는 것을 잘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종말론이 성도의 영화나, 그리스도의 통치의 완성을 다루는 중에, 또 객관적, 주관적 구원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를 소개하고 있는 정도로 축소되어서는 않되고, 종말론이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완전한 형태로 지시되는 것인 만큼, 기독교의 원리가 가장 순결한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이 실재가 축소되지 않고 제대로 다루어져야함을 뻘콥은 지적하면서, 종말론을 이야기 할 때에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되는 것으로서, 현세대의 종말을 확정지으며, 또한 미래의 영원한 영광을 예고할 그런 사실과 사건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뻘콥은 종말론을 다룸에 있어서 두 부분으로 나눌수있는데, 먼저 일반적 종말론은 보통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세상의 종말에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전체적 부활, 최후의 심판, 왕국의 완성, 그리고 경건한 자와 악한 자의 최종적인 상태등을 다루고, 둘째로 개인적 종말론은 육체의 죽음,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중간기 상태를 다룬다고 말하고 있다.

 

1부 개인적 종말론

1. 육체적 죽음

1) 육체적 죽음의 본질

 

뻘콥은 죽음을 육체적 죽음, 영적 죽음, 영원한 죽음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는 육체적 죽음은 마10:28, 눅12:4을 근거로 혼과는 구별되는 몸의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육체란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혼(프쉬케)은 분명 사람의 영(프뉴마) 즉 자연적인 생명의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영적 요소를 말하기 때문이며, 벧전 3:14에서도 육체의 죽음이 혼(프쉬케), 즉 동물적 생명이나, 삶의 끝 혹은 상실이라고 묘사되고 있음을 예로 들고 있다.(마2:20, 막3:4, 눅6:9, 14:26, 요12:25, 13:37, 38, 행15:26,20:24, 전12:7, 창2:7, 요19:30,행7:59, 빌1:23). 또한 이것은 존재와 비존재로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른 존재의 양태로서만 대립하는 것임을 잘 지적하고 있다.

 

2) 죄와 죽음의 관계

 

펠라기우스주의자와 소시니주의자들은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치며, 현대 과학도 유기물은 그 속에 부패와 해체의 씨앗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음은 유기체의 법칙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성경은 육신의 죽음을 영적인 죽음의 결과로 제시하고 있으며, 죄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이라는 점을 뻘콥은 지적하고 있다. 죽음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시90:7,11)이고, 심판(롬1:32)애며, 정죄(롬5:16)이고, 저주(갈3:13)라는 것이다.

 

3) 신자들의 죽음의 의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죽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속에서 영적인 진보와 하나님 나라에 최고의 유익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들의 죽음은 영혼의 성화를 완성하는 것이며, 완전한 생활의 시작이며, 천국의 문이며, 예수 안에서 잠드는 것이며,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거하게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롬8:11, 살전4:16,17).

 

2. 영혼의 불멸성

 

1) 불멸성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상이한 의미들

 

뻘콥은 불멸성이라는 말이 인간에게 해당될 때에는 하나님의 속성인 절대적인 의미에서 불명성을(딤전6:15,16)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적 혹은 무궁한 생존으로서의 불멸성을 말하는 것임을 지적하며, 이러한 불멸성은 인간의 영혼을 포함한 모든 영들에게도 해당됨을 말하고 있다. 또한 불멸성이라는 용어가 신학용얼 사용 될 때에는 부패와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인간의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고, 특히 종말론적인 용법에서는 죽음과 무관하며, 죽음의 제물이 될 가능성도 없는 인간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2)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일반계시의 증거

 

진화론, 유물론은 인간의 내세적삶을 의심하며 부인했지만 역사적으로 불멸성에 대한 강하게 존재해 왔고, 형이상학적으로도 단일한 영혼은 해체되거나 분리되지 않음을 추론하였다. 또한 목적론적으로도 인간의 능력이 생전에 결코 충분히 개발될수없음을 보고 미래적 생존을 하나님이 준비하셨음을 말하고 있으며, 도덕적으로도 정의가 최고의 지배자가 되고 현재의 부당함이 시정되는 미래의 한 상태가 있어야함을 말하고 있다.

 

3) 영혼의 불멸성에대한 일반 계시와 특별계시의 증거

 

(1) 뻘콥은 일반계시 차원에서 진화론과 유물론등이 강하게 반대해 왔지만, 형이상학적으로, 목적론적으로, 도덕적으로 항상 강하게 존재해왔음을 말하고 있다.

 

(2)구약에서의 불멸성의 교리

구약에서는 창조주와 구속주, 그리고 그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실 언약의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하나님의 형상을 따른 창조(전3:11), 스올의 교리(시16:10,49:14,15), 죽은 자를 불러내거나 혹은 신접한 자에 대한 빈번한 경고, 죽은 자의 부활 교리, 죽은 후 하나님과 교제하며 누릴 신자들의 복에 대한 구절들에서 증거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시16:9-11, 73:24,25).

 

(3) 신약의 불멸성의 교리, 의인의 영혼이나 악인의 영혼이 모두 계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서(마10:28, 마11:21-24), 부활(눅20:35,36),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자들의 복된 삶(롬2:7,10)등에서 증거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4)인격의 불멸성에 대한 반대와 그에 대한 현대의 대안들

유물론과 생리학적 심리학이 정신이나 영혼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단순한 두뇌 활동의 산물 혹은 기능일 뿐이라고 말하며, 기관이 사라지면 그 기능도 멈춘다는 것을 근거로 인격의 불멸성을 반대하지만, 뻘콥은 이러한 사고는 두뇌의 기능을 필연적으로 생산적인 기능 이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며, 이 기능은 수용적, 혹은 전달적 기능일 수도 있음을 가지고 비판하고 있다.

 

3.중간상태

 

1) 중간상태에관한 성경의 견해

 

뻘콥은 성경을 근거로 신자의 영혼은 몸과 분리되면 그리스도 앞으로 가며(고후5:8, 빌1:23, 눅 23:43, 고후 12:3,4, 고후5:1, 히12:23), 악인들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인 지옥에(눅 16장) 머물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2) 역사적으로 본 중간상태의 교리

 

초기에는 예수님이 곧 재판장으로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중간상태는 그리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았으나, 즉시 재림하시지 않는 다는 것이 분명해 진 이후로 중간상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뻘콥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알렉산드리아학파에서 중간상태에 관한 교리가 영혼의 점진적 정화의 교리로 바뀌어 갔고, 결국 카톨릭의 연옥교리를 마련하였다고 파악하고 있다. 연옥교리와 장소의 개념을 수반하는 중간상태를 주장하는 카톨릭의 견해에 반대하여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어떤 사람들로부터 잘못된 견해들은 계속해서 나타났음을 말하고 있다.

 

3)스올-하데스에 관한 해석의 제시

 

뻘콥은 스올이나 하데스와 같은 용어들이 항상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즉 스올이 종종 종종 죽음의 상태나 몸과 영혼의 분리 상태를 지칭하는 추상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는 것이다(마16:18,계1:18, 삼상2:6, 행2:27,31, 계6:8,20:28). 또한 지하세계, 죽음의 상태, 무덤, 지옥 등의 어떤 경우도 동일한 단어로 나타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시49:14, 55:15, 잠15:11, 15:24 눅16:23).

 

4) 죽음뒤의 영혼의 거처에 관한 로마교회의 교리

 

뻘콥은 먼저 연옥(Purgatory)을 말하고 있는데, 연옥은 완전히 깨끗함을 받지 못한 자, 즉 여전히 소죄(小罪)를 짓고 있어서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최상의 복락과 즐거움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결의 과정을 겪는 준비의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로마카톨릭은 땅위에 있는 신자들의 기도나 선행, 특히 미사의 제사에 의해 연옥에 있을 기간이 경감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교황은 연옥에 대해 사면권, 고통감소권, 고통을 끝내게 할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사4:4, 미7:8, 슥9:11, 말3:2,3, 마12:32, 고전3:13-15, 15:29).

 

그다음 선조림보(The Limbus Patrum)이다. 선조림보는 구약시대 성도들의 영혼이 죽은 후부터 주의 부활하시기까지 머물러 기다리는 장소로 보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이곳에 내려가셨다고 로마카톨릭은 말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로마카톨릭은 유아림보(The Limbus Infantum)를 말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방인의 자녀든 그리스도인의 자녀든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모든 어린이들의 영이 거하는 장소로서, 천국에서는 제외도지만 실제적인 고통을 겪지 않으며, 자연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충만한 자연적 행복을 누린다고 로마카톨릭은 말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5) 죽은 후 영혼의 의식적 존재상태

 

뻘콥은 크게 3가지로 말하고 있다. 먼저 영혼수면설(Psychopannychy)이다. 이것은 죽으면 영혼은 영적인 개체의 존재로 살아 있게 되지만, 무의식적 휴식의 상태로 존재한다(행7:60, 고전15:51, 살전4:13, 시6:5, 30:9, 115:17, 146:4, 전9:10, 사38:18,19, 마7:22, 23, 25:37-39,44, 요5:29, 고후 5:10, 계20:12)는 주장을 펴는데, 아라비아의 작은 종파와 중세시대, 영국의 어빙파, 미국의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해서 옹호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멸절설을 말하고 있다. 멸절설이란 인간이 불멸하도록 창조되었지만, 죄 속에서 계속된 영혼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역에 의해 그 불멸성의 선물을 박탈당하여 궁극적으로 멸망하거나 혹 영원히 의식을 박탈당하여 비존재와 같이 된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조건적 불멸설은 불멸성이 자연적인 영혼의 은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영혼은 궁극적으로 존재할수없게되거나, 모든 의식을 상실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요10:27,28, 17:3, 롬2:7, 6:22,23, 갈6:8, 마7:13,10:28, 요3:16, 롬6:23,8:13, 살후1:9). 이러한 모든 주장은 성경과 다른 주장임을 분명히 뻘콥은 말하고 있다.

 

6. 중간상태는 재시험의 기간이 아님

 

중간상태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서 기대할 수 있을 법한 것들에 관한 일반적인 사색과,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사역을(벧전3:19, 4:6, 요3:18,36, 막16:15,16, 롬10:9,12, 엡4:18, 벧후2:3,4, 요일4:3) 가급적 포괄적으로 만들려는 욕구에 기초하여 제2시험설(second probation)이 주장되고 있다고 뻘콥은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중간상태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 혹은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 구원은 현세에서와 동일한 방식, 곧 구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주어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뻘콥은 성경은 사후 불신자의 상태를 확정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중간상태의 행위가 아니라 육신을 입었을 때 행한 일들에 근거하여 심판이 행해짐을 말하는 것을(눅16:9-11, 전11:3, 요8:21,24, 벧후2:4,9, 유7-13, 마7:22, 23,10:32,33, 25:34-46, 눅12:47,48, 고후5:9,10, 갈6:7,8, 살후1:8, 히9:27)근거로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제2부 일반적 종말론

 

일반적 종말론에 대해서 뻘콥은 보통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세상의 종말에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전체적 부활, 최후의 심판, 왕국의 완성, 그리고 경건한 자와 악한 자의 최종적인 상태등을 다루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 그리스도의 재림

 

공생애 사역이 끝나갈 무렵 예수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실 것에 대해서 여러번 말씀하셨고,(마24:30, 25:19,31, 26:64, 요14:3), 천사들과(행1:11) 사도들(행3:20, 살전4:15,16, 살후1:7,10, 딛2:13, 히9:28)을 통해서 예언을 하셨음을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재림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 재림(파루시아)이전의 대사건들

 

뻘콥은 재림이전의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서 5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첫째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게될것이라는 것과(마24:14, 막13:10, 롬11:25, 마8:11, 13:31,32, 눅2:32, 행15:14, 롬9:24-26, 엡2:11-20) 둘째로, 참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것(슥12:10,13:1, 고후3:15,16, 롬11:25-29), 셋째로, 큰 대배교와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는 것(마24:9-12, 21-24, 막13:9-22, 눅21:22-24, 살후2:3,딤전4:1, 딤후3:1-5), 넷째로 적그리스도의 나타나심, 다섯째로 전쟁과 전쟁의 소문, 기근과 지진, 거지선지자의 미혹, 거짓그리스도 해와달과 별들을 포함하여 무서운 징조(마24:29,30, 막13:24,25, 눅21:25,26)를 말하고 있다.

 

2) 파루시아, 즉 재림 그 자체

 

이 재림에 있어서 그 시간은 중보자로서 받으신 계시속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마24:36) 잉을 말하며, 재림의 방식은 인격적이고(행1:11,3:20,21, 마24:44, 고전15:22, 빌3:20, 골3:4, 살전2:19, 3:13, 4:15-17, 딤후4:8, 딛2:13, 히9:28), 육체적, 가시적 강림이며(막13:26, 눅21:27, 행1:11, 골3:4, 딛2:13, 히9:28, 계1:7), 갑작스럽고(마24:37-44, 25:1-12, 막13:33-37, 살전5:2,3, 계3;3, 16:15), 영광스럽고 승리에 찬강림(히9:28, 마24:30, 살후1:7, 살전4:16, 3:13, 살후1:10, 고전15:25, 계19:11-16)이 될것임을 말하고 있다.

 

3) 재림의 목적

 

뻘콥은 재림의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미래의 시대를 여시고 만물에게 영원한 상태를 부여하시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마13:49,50, 16:27, 24:3, 25:14-46, 눅9:26, 19:15, 요5:25-29, 고전4:5, 15:23, 빌3:20,21, 살전4:13-17, 살후1:7,10, 2:7,8, 딤후4:1-8, 벧후3:10-13, 유14,15, 계20:11-15, 22:12)

 

2. 천년왕국에 관한 견해들.

 

1) 전쳔년설(Premilleialism)

 

역사적으로 과거에는 이레네우스의 견해 즉 창조시의 6일간과 상응하여 현세대의 기간을 6천년으로 보고, 또 일곱째 날과 상응하여 천년간 지속될 천년 왕국적 복의 기간을 주장하며, 천년의 마지막 때에 마지막 심판이 있을것이며 새로운 창조계가 나타나 거기서 구속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임재속에 영원히 살게될 것이라는 이레네우스의 견해가 지배적이었음을 뻘콥은 말하고 있다.

 

2) 현재의 전천년설

 

뻘콥은 현재의 전천년설을 다룸에 있어서 그들의 역사관, 종말관 등을 세세히 다루고 있다.

 

(1) 그들의 역사관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과정속에서 몇 개의 언약에 기초하여 혹은 일곱 개의 다른 세대의 원리에 따라서 인간세계를 다루어 가신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시내산시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 ...).

 

(2) 또 그들의 종말론의 특색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중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뻘콥은 말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은 칠년의 간격을 사이에 둔 독립된 두 개의 사건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사건은 파루시아로써 모든 의로운 죽은자들은 일으키심을 받고,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형된 성도들을 그리스도께서 공중에서 만나는 것이고, 대환란과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칠년 기간 마지막에 나타나심 즉 주님의 지상강림으로 나누고 있다. 이 강림은 성도들과 함께 하기 위한 것으로, 남아있는 민족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며(마25:32이하), 염소와 양이 분리되고 대환난으로 죽임당한 성도들이 일어날 것이며 적그리스도가 멸망하고 사탄은 천년동안 갇히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적이고 가시적이며 지역적이고 물질적인 유대인의 왕국이 천년왕국이 이 시작되며, 이 왕국에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세상은 매우 빨리 회개할 것인데 어떤 사람은 복음에 의해 회개할것이라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적 강림이나 성도들의 복음 보고 생기는 부러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로 위대하고 끔찍한 심판과 같은 전혀 다른 수단에 의해 회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천년왕국 후 사탄은 잠시 놓여나고 곡과 마곡의 무리가 거룩한 성을 대적하여 모일 것이지만,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리는 불에 삼키우고 사탄은 짐승과 거짓선지자들이 던지움을 받은 무저갱에 떨어지고, 잠시후 죽은 악인들이 부활하여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고(계20:11-15). 그 다음에 새하늘과 새땅이 있게될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3) 끝으로 뻘콥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적통치만을 기다리거나, 계시록 20장의 천년을 다소 길거나?게 지속되는 불확정적인 기간으로 간주하거나, 그리스도와 다천년동안 다스리는 장소에 대한 문제등을 다루는 전천년설의 변형된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3) 전천년설에 대한 반대

 

뻘콥은 분명하게 .이 이론이 이스라엘과 하나님 나라의 미래에 관한 예언적 설명의 문자적 해석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성경은 문자적인 의미로만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것과, 성경에는 재림연기설(요한과 예수님이 유대인의 신정이 가까움을 선포했지만,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믿지 않았으므로, 그 왕국의 건설을 재림시까지 연기하셨다는 주장)이 전혀 없다는 것, 또 성경은 부활과 마지막 심판, 세계의 종말에 대해 동시적인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마13:37-43, 47-50, 24:29-31, 25:31-46, 요5:25-29, 고전 15:22-26, 빌3:20,21, 살전 4:15,16, 계20:11-15)을 근거로 비판하고 있다.

 

또 계시록 계20:1-6에 근거하여 1절에 있는 쇠사슬과 2절에 있는 결박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며, 종종 천년을 길고도 불명확한 시간으로 이해하고, 4절의 영혼들을 부활한 성도로 바꾸어 해석하는 것들은 잘못된 것으로, 이 구절들은 언급되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순교한 성도들과 짐승을 경배하지 않은자들)이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게 살아서 다스렸다고만 말하고있는 것이며, 또 이 구절들 속에는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이 땅위에서 다스렸다는 의미는 결코 없으며, 계4:4, 6:9과 연결해서, 이것은 오히려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이라고 바른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4) 후천년설

 

뻘콥은 후천년설이 16세기와 17세기동안에 화란 개혁파신학자들인 코케이우스, 알팅, 두사람의 비트랑가, 다우트레인, 비치우스 호른백, 코엘만, 부라켈등에 의해서 주장되었고, 이들 대부분은 천년왕국이 세상의 종말 곧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복음이 엄청난 효력을 발휘하게되어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한 풍성한 보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고, 이 황금 시대에는 유대인들도 미증유의 방법으로 이 복에 동참하게될 것으로 생각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또 이들은 전천년설의 두가지 핵심적 개념, 즉 그리스도께서 천년동안 이땅을 다스리시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다는 것과, 그가 오시면 성도들이 부활하여 그와 함게 천년 왕국에서 다스리게된다는 사상을 거부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 날에는 천년왕국은 진보에의해 점차적으로 생겨나게 될 것이며 세계개혁의 정책을 받아들임으로서 이 새로운 세대에 스스로 참여해야만 한다는 주장까지 나타나고 있다.

 

5) 후천년설에대한 반대

 

뻘콥은 후천년설이 주장하는 세계의 회개에 대한 기대로 성경은 지금세대에서든지 오는 세대에서든지 우리를 인도하지는 않고 있으며, 오히려 종말 바로 직전 시대는 대배교와 환난과 박해의 시대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식어지고,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자들은 심한 고난에 빠질 것이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고백을 피로써 인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증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마24:6-14, 21, 22, 눅18:8, 21:25-28, 살후2:3-12, 딤후3:1-6, 계13장). 또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는 세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을 말하고 있음을 들어 후천년설을 반대하고 있다(마24:29-31, 35-44, 히12:26,27, 벧후3:10-13). 그리고 후천년설에는 자연적인 지보와 교육, 사회개혁, 그리고 법률들의 분야에 있어서의 인간의 노력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기독교적 정신 전 영역으로 스며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3. 죽은자의 부활

 

1) 역사적으로 본 부활교리

 

뻘콥은 부활교리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먼저 성경에 나와있는대로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마22:23, 행23:8), 또 후메네오와 빌레도와 같이 부활을 순전히 영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그것은 이미 지나간 역사상의 사실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딤후2:18)과 영지주의 자인 켈수스(Celsus)를 반대한 오리겐조차도 무덤에 묻혀있는 바로 그 육체가 부활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또 두명의 그레고리, 크리소스톰, 다마스커스의 요한등으로 대표되는 동방교회는 영적인 관점을 취하는 경향을 나타내었으며, 천년왕국 주장자들은 천년왕국 통치의 초기에는 의인의 부활이, 그 말기에는 악한자의 부활이 있을 것으로 오해했으며, 중세에는 환상적이고 거의 무가치한 사색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일찍부터 사도신경을 통해서 이미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분명하게 표현하였으며, 이러한 바른 신앙은 모든 위대한 교회의 신앙고백들로 이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2)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거

 

구약은 부활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이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를 두고있는 것(출3:6, 마22:29-32, 히11:10, 13-16, 19, 시49:15, 73:24, 25, 잠23:14, 욥19:25-27, 사26:19, 단12:2, 겔37:1-14)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고, 이것이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극치를 이루고 있음을(마22:23-33, 요5:25-29, 6:39, 40,44,54, 11:24, 25, 14:3, 17:24, 고전15장, 살전4:13-16, 고후5:1-10, 계20:4-6, 20:13)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4. 부활의 성격

 

뻘콥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일으키셨다고만 말하는 것을(마22:29, 고후1:9) 증거로 부활이 삼위하나님의 사역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활이 보다 구체적으로 성자의 사역이라고 일컬어지며(요5:21,25,28,29, 6:38-40, 44, 54, 살전4:16), 또한 성령님의 사역으로도 지칭됨을(롬8:11)말하고 있다.

두 번째로 부활이 육체적 부활임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고전15:20,23, 골1:18, 계1:5)증거하고 있다(롬8:11, 23, 고전6:13-20, 고전15특히35-49).

 

세 번째로 뻘콥은 부활을 반대하고, 멸절설과 조건적 멸절설, 악인들이 부활하지 않고 없어진다는 주장을 하는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들에 반대하여 성경을 근거로 악한자의 부활을 변호하고 있다(단12:2, 요5:28,29, 행24:15, 계20:13-15).

네 번째로 의인에게 있어서 부활의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고 주권적 공의의 사역으로서 악인의 부활은 죽음이라는 최고의 형벌이 됨을 밝히고 있다(요5:28,29).

 

5. 부활의 시기

 

뻘콥은 부활의 시기에 관하여 전천년주의자는 성도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사이에는 천년의 간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성경은 성경은 죽은자의 부활은 재림, 주의 날의 계시, 그리고 이 세상의 종말과 동시에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다음에 바로 전체적인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살후1:7-10).

 

그리고 뻘콥은 전천년주의자들의 잘못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로 성경은 죽은자의 부활을 언급하면서 반복적으로 이것을 죽은자로 부터의 부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천녀주의자들이 이것을 죽은자 가운데서라고 번역함으로써 아직도 많은 죽은 자들이 무덤에 남아있음을 암시하도록 하였다.

 

둘째로 전천년주의자들은 더좋은 부활(히11:35)이나 생명의 부활(요5:29), 의인들의 부활(눅14:14),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살전4:16)과 같은 어떤 특정한 구절에 호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지 천년의 간격을 두고 서로 분리된 두 번의 부활이 잇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증거가 아니다.

 

셋째로 전천년주의자들은 고전15:22-24을 통해 그리스도의부활, 신자들의 부활, 악한자의 부활을 추론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에는 즉각적이 아니라는 개념이 바탕이된 해석이다.

 

넷째로 전천년주의자들은 계20:4-6에 근거하여 5,절이 첫 번째 부활을 언급하고있기 때문에 두 번째 부활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4-6절은 땅위가 아닌 하늘의 장면이다. 즉 지금 일으키심을 받은 인격이나 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왕노릇하는 영혼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게 살아서 왕노릇하는 이것을 첫 번째부활이라고 부르고있는 것이다.

 

6. 최후의 심판

 

1) 역사적으로 본 최후의 심판의 교리

 

뻘콥은 초대교회의 최후의 심판의 교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연결되어 육신에 있을 때 행한 일에 따라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며, 중세에는 죽은 자의 부활뒤에는 바로 전체적인 심판이 있을 것이며 이것이 사람들에게는 시간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에게도 이러한 견해가 대체적으로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칸트, 쉘링, 폰 하르트만 등은 미래의 심판의 사상을 부인했으며,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이 심판을 현존하는 내재적 과정이라고 간주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2) 최후의 심판의 성격

 

뻘콥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최후의 심판은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섭리와 동일한바 영적이고, 비가시적이며 무한한 과정으로(신9:5, 시9:16, 37:28, 59:13, 잠11:5, 14:11, 사32:16,17, 애5:7) 간주될 수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성경을 근거(마25:31-46, 요5:27,29, 행25:24, 롬2:5-11, 히9:27, 10:27, 벧후3:7, 계20:11-15)로 마지막 심판의 분명성을 말하고 있다.

 

7. 심판에대한 잘못된 견해들

 

뻘콥은 심판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순전히 형이상학적인 심판으로 슐라이에르마허와 다른 독일학자들의 견해인데, 심판을 세상과 교회의 최종적 분리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다.

 

2) 순전히 내재적인 심판으로 세계의 역사는 세계의 심판이다라는 쉘링의 금언이 진리의 일면을 담고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순전히 내재적이어서 세계의 도덕적질서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3) 심판을 단일한 사건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견해로 전천년주의자들의 개념이다. 이들은 첫째로 파루시아 즉 주님의 강림시에 부활하여 살아있는 성도들이 받는 심판, 둘째 대환난 직후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주의날)때 있을 심판, 셋째 계20:11-15에 묘사된바 크고 희보좌 앞에서 받는 악한 죽은 자들의 심판등을 말하고 있다.

 

4) 최후의 심판을 불필요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즉 이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잠들면 구원을 받고 죄가운데서 죽으면 멸망을 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 심판과 그 조력자들

 

뻘콥은 하나님의 모든 외부적 사역(opra ad extra)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심판 또한 당연히 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보고있으며, 구체적으로 성경은 이 최후의 심판을 특별히 그리스도께 돌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요5:27, 행10:42, 17:31, 빌2:10, 딤후4:1). 이러한 심판의 권한은 마28:18, 요5:27, 빌2:9,10에 근거해서 볼 때 속죄적 죽음에 대한 보상으로서, 또 그의 높아지심의 한 부분으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영예가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께 주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조력자에 관해서는 마13:41, 42, 24:31, 25:31과 같은 구절에서 추론할 수 있는 바는 이 큰 역사에서 천사들이 그를 도울 것이라는 사실과 시149:5-9, 고전6:2,3, 계20:4을 근거로 성도들은 분명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심판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9. 심판을 받게될 무리들

 

뻘콥은 심판을 받게될 무리들은 타락한 천사들(마8:29, 고전6:3, 벧후2:4, 유6)과 모든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전12:14, 시50:4-6, 마12:36,37, 25:32, 롬14:10, 고후5:10, 계20:12). 그러면서 신자들의 죄가 비록 용서받은 죄로서이기는 하겠지만도 하나님 앞에서 역시 드러나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마12:36, 롬2:16, 고전4:5, 마13:30, 40-43, 49, 25:14-23, 34-40, 46).

 

10. 심판의 시기

 

뻘콥은 심판은 예수그리스도의 강림(파루시아)에 수반된 사건일 것이며, 죽은자의 부활직후에 있게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천지의 갱신직전이 될지, 동시적일지, 혹은 그 직후에 일것인지는 성경적 기초위에서 확정하기란 어려우며, 또한 심판날이 정확히 24시간의 하루라고 추론할 필요는 없음을 말하고 있다.

 

11. 심판의 표준

 

뻘콥은 심판의 표준은 분명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임을 밝히고 있다. 즉 이방인들은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자연의 법에 따라서, 옛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의 계시에 의해서만, 그리고 자연의 빛과 구약의계시 말고도 복음의 빛을 누린 사람들은 그들이 받았던보다 큰 빛에 의해 심판을 받게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지만 천국의 복락과 지옥의 형벌에 있어서는 육체에 있었을 때 행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마11:22,24, 눅12:47, 48, 단12:3, 고후9:6).

 

12. 심판의 다양한 부분들

 

뻘콥은 심판때 하나님께서는 사건의 상태, 즉 마음의 생각과 은밀한 의도를 포함한 사람의 과거생활 전부를 심리하실 것인데, 책을 열어펴는 것이 바로 이것을 상징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책의 비유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관한 언급이라는 것이다(계20:12). 또한 각 사람에 대한 판결은 모두에게 알려져서 하나님의의와 은혜가 찬란하게 빛날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 판결로 인해서 의인은 영원한 복을, 악인에게는 영원한 불행을 초래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13. 최후의 상태

 

1) 악인의 최후의 상태

 

재림론자(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으로 대표되는 멸절론자들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현대 자유주의신학에서는 지옥이라는 말은 대개, 사실상 지상에있는 것이지만, 뻘코은 성경에 근거하여 마18:9의 불의 게헨나, 13:42의 풀무불, 불못(계20:14,25), 옥(벧전3:19), 무저갱(눅8:31), 어두운 구덩이(벧후2:4)등이 장소를 가리키는 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 악인은 이곳에 거하게 될것임을 말한다. 결국 악인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은총이 젼혀 없고, 죄가 완전히 지배하는데서 생기는 생활의 끝없는 혼란, 육신과 영혼의 극심한 고통과 고난, 양심의 가책, 고뇌, 절망, 비찬, 이를 갊등의 주관적 형벌들(마8:12, 13:50, 막9:43, 44, 47, 48, 눅16:23,28, 계14:10, 21:8)을 받게 될것임을 말하고 있다(마11:22,24, 눅12:47,48, 계14:11, 20:10, 마18:8, 살후1:9, 계14:11, 20:10)

 

2) 의인의 최후의 상태

 

신자들의 영원한 상태가 오기 전에 현재의 세상이 사라지고 새로운 창조가 있게될 것인데(마19:28, 행3:21, 히12:27, 베후3:12,13, 계21:1), 시102:26, 27, 히12:26-28에 근거하여 이것은 지금 있는 창조물의 갱신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의인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곳에서 거처하게 될것이며, 영생, 즉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하게될것임을(마25:46, 롬2:7, 계21:3), 말하면서 이것은 영적인 것 뿐만아니라 몸에 상응하는 어떤 것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뻘콥은 천국의 기쁨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것인데(단12:3, 고후9:6), 우리의 선한 행위는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받는 은혜의상급의 척도가 됨과,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의 즐거움은 완전하고 충만할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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