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 신앙표준을 세우다
총 1163회 진행된 웨스트민스터 총회, 탁월한 신앙문서 채택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와 아펜셀러의 선교 이후 지금까지 130년 동안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부흥과 성장을 이끌었다. 몇 몇 성장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보수 신학의 유입과 정착이다. 지난 날 민주화 과정에서 민중신학의 일부 기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한국 교회를 통합하고 대변할 수 있는 신학에 보수적인 침례교와 성결교, 독립교회가 포함되지만 선교 이후 2014년 4월 현재 개혁주의 전통과 장로교 중심의 보수교회가 부흥과 성장을 주도하였다.
전자는 주로 17세기 네덜란드 돌트 총회에서 채택된 통칭 칼빈주의 5대 교리에 기초하였다. 그 후 개혁교회는 인간의 자율적 구원을 강조한 아르미니우스의 논쟁에 휘말리며 분열하였고, 19세기 후반에는 독일의 튀빙겐 스쿨 중심의 성서(문서)비평학, 이후 출현한 사회복음주의와 오순절주의, 자유주의의 도전으로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이에 맞서 성경의 영감과 계시를 믿고 강조한 신학자들, 대표적으로 헤르만 바빙크, 찰스 핫지, B. B. 워필드, 아브라함 카이퍼, 조직신학자 벌카우어, 철학자 도여베르트, 20세기 초중반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한 그레이샴 메이천, 코넬리어스 반틸, 오스왈드 알리스, 존 머리를 통해 계승되었다.
후자는 16세기 절대 왕정기에 왕실의 박해로 망명해서 개혁자 존 칼빈의 제네바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신학을 섭렵한 하나님의 나팔수 스코틀랜드 개혁자 존 낙스가 있다. 낙스는 칼빈의 제네바 개혁원리, 특별히 신앙고백서를 이상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조국 스코틀랜드에 정착시켰고, 이후 그의 계승자들은 1581년 크랙의 신앙고백서, 1592년 황금 법령을 태동시켰다. 이 시기에 앤드류 멜빌은 칼빈의 제네바 전통, 하나님의 주권과 대속교리, 특별히 제2치리서를 통해 장로교 제도를 정착시켰다.
멜빌 이후 스코틀랜드 교회는 기라성 같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을 배출하며 지속적으로 장로교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17세기는 절대 왕권의 압박 속에 교회의 통치권, 즉 감독제와 장로제를 둘러싸고 쌍방 간의 극한 대립으로 나라가 매우 혼란하던 때에 언약도(Covenanters)들이 크게 활약하였다. 그 정점에 1638년 2월의 ‘국가언약운동’(the movement of National Covenant)이 자리한다. 당시 언약도들은 국왕, 즉 세속 권세의 교회 간섭을 배제하고 철저히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통치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장로제, 그리스도의 왕권을 옹호하였다.
스코틀랜드 교회와 달리 영국교회는 1534년 헨리 8세의 수장령 선포와 함께 가톨릭과 단절, 성공회를 태동시켰다. 그의 사후 영국 성공회는 아들 에드워드 6세와 함께 개혁교회로, 이 후 이복누이 메리의 가톨릭으로, 엘리자베스의 성공회로, 그리고 다시 제임스 1세(VI)와 아들 찰스 I, II세, 제임스 II(VII)세의 감독교회로, 그리고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오랜지의 윌리암 III세가 영국 국왕이 되어 장로교가 정착(the settlement of Presbyterianism)되었다. 하지만 윌리암의 사후 앤 여왕의 타협 법령 반포로 영국교회의 장로교 꿈이 무산된 채, 갈등과 반목 속에 성공회로 회귀하였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1640~1651년 사이에 발생한 시민혁명이다. 당시 영국 의회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도움을 받아 혼란 속에 영국교회를 새롭게 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영국 의회는 대표단을 스코틀랜드 총회에 파견하여 도움을 요청하였고, 당시 스코틀랜드 총회는 영국과의 정치적, 종교적 통합을 목적으로 의회의 요청을 수락하였다. 이렇게 하여 1643년 ‘엄숙 동맹과 계약’(the Solemn League and Covenant)이 태동하였다.
1643년 7월 1일부터 1649년 2월까지 영국 의회의 요청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회집된 총회는 총 1163회 진행됐다. 이 기간 동안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4권의 표준문서,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서, 예배모범과 정치편람(권징조례)을 작성하였다. 당시 영국 의회의 요청으로 부름 받은 지역 총대는 총 151명(평신도 30명, 목회자 121명), 스코틀랜드 교회 파송 8명(목회자 5명 평신도 3명)의 위원이었다. 총회는 3분과별로 예루살렘과 여리고, 사마리아로 각각 지정된 홀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제시된 주제를 따라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
당시 총회는 신앙생활 전반을 논의했다. 그 중에 최대 논제는 교리, 예배 규범과 권징, 교회 정치(제도)로, 신앙고백서에는 칼빈의 개혁신학을 계승하여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 절대 주권과 영광을 확립했다. 예배 규범과 권징은 유아 세례 문제와 출교를, 교회 정치는 칼빈과 낙스의 장로교 정치 원리를 채택하였다.
총회에서 개혁신학과 예배 규범 및 권징, 교회정치원리가 채택되는 과정에서 스코틀랜드의 언약도들, 알렉산더 핸더슨과 로버트 베일리, 특별히 사무엘 루터포드와 조지 길레스피, 그밖에 데이비드 딕슨과 로브트 보이드가 활약하였다. 고찰한대로 17세기 혁명기에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작성한 문서들은 유럽의 개혁교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의 전통을 계승한 탁월한 신앙문서로 2014년 4월 현재 한국의 장로교회를 포함한 전 세계 개혁교회와 장로교회가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기고:서요한 교수(총신대)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85191
출처 : 영적 분별력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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