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전론자의 의로운 투쟁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하는 동안 일본은 어떠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았다. 1943년 당시 76세가 된 아사미센사쿠는 기독교의 속죄 의미와 그리스도인으로서 전쟁에 반대해야 할 이유 등을 설교했다는 이유로 영화 15.6도까지 내려가는 북해도 지하 콘크리트 감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는 경찰의 지독한 취조에도 아랑곳 않고 완강하게 자기의 신앙을 지켜 나갔다. 또한 신앙에 비추어 전쟁이 잘못임을 진술하고 반전이야말로 진정으로 일본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아사미는 전쟁끝 무렵인 1945년 3월 상고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일본 국민 대다수가 전쟁 체계에 순응하여 교인들까지도 침묵하고 있을 때 신앙에 기초하여 전쟁과 일본의 진로에 대해서 변함 없는 비판을 계속한 소수 그리스도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아사미센사쿠였다.
2. 큰 전쟁막은 한줄의 글
남미의 아르헨티니와 칠레는 양국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국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을 세웠다. 그런데 이 동상으로 인해 오히려 두 나라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았다. 왜냐하면 그 동상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칠레의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 동상이 칠레에 등을 돌리고 계신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실 동상 전면은 아르헨티나를 향했고 뒷면은 칠레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 일은 칠레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분노케 했다.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거칠어갔다. 양국간의 감정이 나쁜 방향으로 치닫고 있을 때 이를 명쾌하게 극복하는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칠레의 한 기자가 신문에 쓴 재치있는 기사였다.“예수님의 얼굴이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서계시는 이유는 아르헨티나가 칠레보다 더 예수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칠레인의 고조된 감정을 가라앉힐 만큼 큰 감동을 주었다. 한 사람의 긍정적이고 평화적인 마음이 두 나라의 엄청난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성경은 언제나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권면한다.
/김의환 목사
3. 전쟁이라는 것은
전쟁이라는 것은 참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것이다. 마치 도박과 같기도 하고 게임 같기도 하다. 한 번 이기면 한 번 더 이기려고 한다. 아니, 이기는 재미에 자꾸 싸우려 한다. 패하면 이번에야말로 이겨서 명예를 되찾아 보자고 자꾸 덤빈다.
- 나채훈의 《정관정요(貞觀政要)》 중에서 -
* 그러므로 전쟁은 그 끝이 없습니다. 파괴와 인명 피해, 응징과 복수만이 거듭됩니다. 전쟁의 피해자는 해당 국가의 국민들 뿐만이 아닙니다. 당대의 세계인 모두와 그 자손들이 피해자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4. 전쟁의 비극
인류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일 중 하나인 2차 세계 대전은 1936년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삼국 동맹 체결로 한층 가속화되었습니다. 이 삼국 동맹의 결과로 평화로운 지구 곳곳은 온통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터로 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정의로운 연합군의 승리로 삼국 동맹의 주역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먼저 유태인을 600만이나 학살한 히틀러는 연합군이 한참 독일로 전진해 오던 1945년 그의 지휘 벙커에서 애인 엠마 브라운과 함께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극악한 파시스트인 이탈리아의 뭇솔리니는 1945년 연합군에 패전후 국경 밖으로 도망하려다 암살됐었습니다. 일본의 동조 천황은 전쟁기에 국민들로부터 거의 신으로 떠받들어지던 이미지를 모두 상실한 채 1989년 한 인간으로 돌아와 병에 걸려 죽었다. 전쟁의 악령에 사로잡혔던 세 사람은 결국 그 악령의 조종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마쳤던 것입니다
5. 맥아더의 연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났을 때입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 장군이 동경 땅에 발을 디디었습니다. 이때 동경 시민들이 구름같이 모여서 이 적국(敵國)의 장군을 뜨겁게 환영했다고 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그 환영 군중을 향하여 유명한 열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의 마지막 내용이 인상적이 였습니다. "온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 문제입니다. 경제 문제는 군대 문제입니다. 군대 문제는 정치 문제입니다. 정치 문제는 정치가의 양심 문제입니다. 양심 문제는 도덕 문제입니다. 도덕 문제는 종교 문제입니다. 종교 문제는 신학적 문제입니다" 하고 연설을 맺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전쟁도 아닙니다. 경제도 좋고 정치도 좋고 제도도 좋지만 양심의 문제, 도덕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현대인에게 결정적인 문제가 경제 문제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요, 정치적인 수완의 문제도 아니요, 오로지 진실의 문제요 양심의 문제임을 우리는 확실하게 보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6. 전쟁
1955년 6월 25일 밤, 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프랑스의 한 조그마한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외딴 집이 한 채 있었다. 그 집의 식구들은 저녁식사를 위해 식탁에 모여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심하게 비행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잠시후 얼굴을 검게 위장하고 기관총을 든 미군 두 사람이 들어서서는 물었다. "아군이냐 적군이냐?" 그 가족들은 너무도 놀라 말을 잇지 못하였으나, 다섯살난 막내아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친구잖아요." 미군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지자 아버지가 물었다. "어디서 왔소?" 미군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천국에서 왔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연합군 작전입니까?" "그렇습니다."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위해 미리 낙하산 부대가 투입된 것이다. 그 미군 두 사람은 착륙당시 부상을 입어서 그 외딴집에 잠시 머무르며 치료를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창문으로 내다보니 독일병사 세 사람이 그 외딴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보기에 둘은 심하게 부상을 입었고 무기는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했다. 그 집 식구들은 독일병사들에게도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기울여 그들을 보살펴 주었다. 결국 그 외딴집에는 독일병사와 미군병사가 한 집에 머무르게 되었고, 그들은 놀랍게도 서로 악수를 청했다. 밖에서는 적일지언정 그 외딴집에서 만큼은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 우리집에는 더 이상의 적은 없군요."
7. 손자병법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손자는 생각합니다. 평화로운 가운데서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으면 그것이 최상책이요, 싸움을 통해서 상대방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차선책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전쟁을 통해 이긴다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8. 살과의 전쟁
살이 많아 걱정하던 한 부인이 어느날 의사를 찾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살을 빼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께서는 그저 식이요법이 최고입니다. 현미밥 한 그릇에 멀건 야채죽 한 그릇만 드십시오. 그리고 과일 한 개씩만 먹도록 하십시오.”
그 말을 듣자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또 물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걸 식전에 먹습니까,식후에 먹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다이어트니, 콜레스테롤이니, 몸매 관리니 하면서 살빼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한쪽에서는 또 다른 먹는 문제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들의 전쟁 말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허탄한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9. 곰팡이와의 싸움
사람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먹기 시작하여 일평생 끈질기게 먹는 작업을 하다가 밥 숫가락을 놓으면 그 순간이 죽는 순간이 됩니다.
먹이는 태양 에너지와 땅이 만나서 만들어지는데, 사람이 먹는 것은 식품이고 짐승이 먹으면 사료입니다. 사람이나 동물만 먹고 사는게 아니고 식물이나 자연도 먹으면 살고 안 먹으면 죽습니다.
가장 식욕이 왕성한 피조물은 당연 사람입니다. 사람은 못 먹는 것이 없습니다. 자! 그런데 사람보다 더 대단한 식욕을 자랑하면서 인류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사람과 먹이다툼을 하고 있는 강력한 도전자가 있으니 곰팡이입니다.
인간들은 인간들끼리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곰팡이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음식이 상했다는 것은 곰팡이가 먼저 음식을 먹어버렸다는 뜻입니다. 곰팡이에게 음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얼리기도 하고 뜨겁게 가열하기도 하고 소금에 절이기도 하고 바짝 말리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곰팡이의 몫이 되고 맙니다. 만약 곰팡이가 없다면 음식이 상하지 않으니 영원토록 보관이 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먹을 것 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은 없어질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왜 대단한 사람들인가 하면, 그 곰팡이를 이용하여 김치를 담그고, 막걸리를 만들고, 젓을 담아 먹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곰팡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은 분명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서 나올 것입니다.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은 더 많은 곡식을 생산해내는 게 아니고, 곰팡이를 극복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최용우
10. 두 마리의 늑대
한 체로키 인디언이 노인이 손자에게 삶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늘 싸움이 일어난단다.” 그는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끔찍한 싸움이어서 마치 두 마리 늑대가 싸우는 것과도 같단다. 하나는 악마 같은 놈인데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분개 자기연민 죄의식 열등감 거짓 허영 잘난 체하고 자신의 거짓자아를 나타낸단다. 다른 놈은 선한 놈이지. 이놈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선의 고요함 겸손함 동정심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를 나타낸단다. 이같은 싸움이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도 일어난단다.”
손자는 잠시 동안 그 말을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체로키 노인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긴단다.”
우리 안에는 여러가지 마음이 있지만 어떤 마음을 붙들고 사느냐에 따라 내 삶의 모습과 결과가 달라집니다. 선한 마음을 붙들고 키워나갑시다.
/최병남 목사(대전중앙교회)
11. 호랑이와 사자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호랑이는 동양에서 백수의 왕으로 통하는 동물이고 사자는 서양에서 맹수의 왕으로 통하는 동물입니다. 정답은 "호랑이와 사자는 싸우지 않는다." 입니다. 호랑이와 사자는 서로 맞붙어 싸우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호랑이가 지긋이 눈을 감고 엎드려 있으면 사자가 멀찍이 돌아가고 사자가 나무 위에서 낮잠을 자면 호랑이가 멀찍이 피해간다고 합니다. 왕끼리 싸우는 것은 체통에 맞지 않는 일이어서일까요? 두 동물은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기 때문에 싸우면 둘 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서로 싸우는 상반(相反)보다 서로 공생하는 상화(相和)를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호랑이와 사자를 교배시킨 '타이건'이 태어났다던가요?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물고 늘어져 인정사정 안 봐주는 인간들보다 훨씬 지혜롭네요.
/최용우
12. 붕어들의 싸움
깊은 산 오솔길 옆 조그마한 연못에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붕어들은 서로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저 녀석만 없다면 내가 이 연못을 독차지할 수 있을 텐데..."
어느 날 붕어들은 심한 싸움을 벌였다. 며칠 후 상처를 입은 붕어 한 마리가 하얀 배를 물위에 드러냈다. 싸움에서이긴 붕어는 너무 통쾌했다. "이제 내 세상이다. 이 연못의 주인은 바로 나다" 그런데 그날부터 연못은 죽은 붕어가 내뿜는 독으로 오염돼 갔다. 죽은 붕어의 몸이 썩으면서 연못의 물도 썩어갔다. 썩은 물을 먹은 붕어도 결국은 죽고 말았다. 이제 그 연못에는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게 되었다. 어느 노래 가사에 담긴 심오한 스토리다. 남을 해치면 자신이 해를 입는다. 타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 보라. 타인을 향한 손가락은 하나지만 나를 향한 손가락은 셋이다.
13. 권투선수와 탐색전
권투 선수가 권투시합을 할 때 대체적으로 1회전을 탐색전으로 합니다. 상대방이 나보다 쎈지 약한지, 기술이 좋은지 나쁜지, 약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지 경기 전에도 정보를 수집하지만, 실제로 맞닥뜨려보는 1회전에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보다 약하다는 생각이 들면 경기가 쉽게 풀리고,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면 경기가 잘 안풀리지요.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직장도, 학교도, 가정도, 교회도 모두 영적인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입니다. 하지만 잠깐이면 알 수 있어요. 상대방이 내가 싸우기에 만만한 상대인지, 아니면 버거운 상대인지.
버겁다는 느낌이 들면 눌리지 말고 조용한 곳으로 찾아가 잠깐동안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하세요. 그러면 확 달라집니다. 직장 상사나 가족중의 누군가 사납다는 느낌이 들면 맞서지 말고 얼른 조용한 곳을 찾으세요. 매일 정기적으로 영적인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있는 사람은 싸움에서 지지 않습니다.
/최용우
14. 누가 세상을 정복했는가?
나라가 맞붙어 싸우고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 큰 전쟁이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세상을 정복한 승리에 관해 들어 본 사람이 있는가? 어떤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 세상을 정복했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보였을 때 피정복자였다. 겉으로는 알렉산더가 세상을 정복한 것 같지만, 실제로 그의 내면적 영혼에서는 세상이 그를 정복했다. 세상이 그를 압도하고 그의 목에 탐욕과 야심의 사슬을 매었다. 그는 뭐든지 했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또 다른 세상을 이길 수 없었으므로 가련한 노예처럼 세상의 마차 바퀴에 끌려 다니며 울부짖고 한탄했다.
진정으로 세상을 정복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의 존재에 우리는 두려워하며, 그의 말에 설복될 것이다. 마땅히 그에게 존귀를 돌리며 그의 말에 순종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 역시 힘든 싸움임에 틀림없다. 이는 군복을 입고 일정 기간 군역을 마치면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라고 어리석게 상상하는 신참내기의 승리가 아니다. 이는 평생에 걸친 전쟁이다. 승리를 거두려면 강인한 심장과 엄청난 힘이 필요한 싸움이다. 그러나 세상을 정복하신 주님이 우리 편이신데,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하겠는가? 주님이 생명의 힘이시니, 우리가 누구를 무서워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 전쟁에서 넉넉히 이긴다.
- 「믿는 자의 삶에 나타난 믿음의 승리」/ 찰스 스펄전
15. 진정한 군인
제임스 케네디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인들은 광이 나도록 군화를 닦고 가슴에 화려한 훈장을 달고 깃을 빳빳이 세운 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다가 상관을 만나면 깍듯이 경례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군인은 전쟁터에 나가서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그는 군인도, 장교도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오늘날 십자가의 군병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으로 완전한 신사이고, 외모도 깔끔한 숙녀이며, 예의바르고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의 복음 전파를 위해 피흘려 싸우기까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진정한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직접 전쟁터에 나가 피흘려 싸우고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대신 나가 싸우고 있는 복음의 용사들인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십자가의 용사요 그리스도의 군병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영적 전쟁의 격전지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은 영적 전쟁의 격전지를 반드시 거쳐야 수행할 수 있음을 우리는 언제라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16.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의 6일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단지 250만에 불과했지만 아랍은 1억이 넘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것은 무모한 싸움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었던 모세 다얀 장군에 방송을 통해 짤막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2534년 만에 되찾은 조국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 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최 단기간 내에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전 장병이 최신식 무기로 무장해 있기 때문입니다."
서방 첩보원들은 이스라엘이 정말 위력적인 최첨단 무기를 개발했는 줄 알았습니다.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군인들을 전쟁터로 내 보내고 국방장관은 자신은 방송국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을 읽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그리고 전쟁은 6일만에 끝났습니다.
/박봉수 목사님 설교중
17.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
일전에 방송에서 이순신 장군에 관한 특집 프로를 방영한 적이 있다. 일본 수군에게 연전연승한 이순신 장군의 승리의 비밀을 파헤친 프로였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불과 열두 척의 군선으로 333척의 왜선단을 물리친 장면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거둔 극적인 승리였을 뿐이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우세한 전력을 유지하며 흩어져 있는 적을 기습하는 전략을 통해 승리했다.
해군사관학교 임원빈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우연이 아니라 과학이다.” 승리할 만한 위치에서 승리할 조건을 두루 갖추었을 때 이기는 것이 전쟁이다. 약할 때 전쟁하면 백전백패하고 만다. 강한 전력과 유리한 조건을 유지해야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신앙생활은 전쟁이다. 신앙생활은 마귀와의 끊임없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약한 모습으로 나아가 천신만고 끝에 승리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철저히 무장하고, 강한 모습으로 마귀와 대적하여 확실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성경은 열세의 전력으로 마귀와 싸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항상 우세한 전력으로 마귀를 제압하라고 명령한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마 12:29).
- 「영적 강자의 조건」/ 전병욱
18. 전쟁
예일대학에 역사와 문명을 가르치는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 이라고 하는 교수님이 쓴 "On the Origin of War"라고 하는 '전쟁의 기원' 이라고 하는 그 책에서 그는 깊은 역사 연구 속에서 전쟁의 동기, 전쟁이 왜 있어졌느냐 하는 것을 총괄적으로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두렵기 때문에 너무 두렵기 때문에 그 부작용으로 발작을 해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힘이 넉넉하면 힘의 여유가 있으면 요사이 말로 초강대적 여유가 있으면은 전쟁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큰 힘이 평화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죠. 이런 것을 심리적 전쟁동기론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이익을 추구하는 겁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자기와 혹은 자국에 이익을 추구하면서 그 때문에 생기는 전쟁, 이것은 실리적 전쟁동기론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명예를 추구하는 명분적 전쟁 동기론이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2차대전 때, 독일 사람들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죽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사람이 최고랍니다. 영국사람들은 앵글로 색슨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승리자의 명예, 승리자의 영광, 개인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이런 것을 자랑하면서 소위 명분적 전쟁동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올시다.
19. 전쟁과 평화
지난 3000년동안 지구상에는 3300여차례의 전쟁이 있었다. 미국과 옛 소련의 군비경쟁이 한창이었을 때 양국이 가진 핵탄두는 지구를 41번이나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날마다 3만5000여명이 식량이 없어서 굶어죽어가고 있는데 증오심과 세력 확장을 위해 전세계가 쓰는 돈은 연간 5500억달러에 이른다.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전쟁을 통하여 그 얼마나 많은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되고 있는가? 부모를 잃은 고아들,자녀를 잃은 부모의 한맺힘,신체 일부분을 잃은 장애인들의 고통,심각한 전쟁의 후유증을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이라크와 미국, 북한과 미국의 대치가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제는 우리 모두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교훈을 다시금 되새겨보면 좋겠다.
/이영무 목사(영신교회)
20. 전쟁 중의 성탄절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성탄절을 맞아 영국과 독일 병사들은 서로 합의한 바도 없이, 성탄 저녁에 쌍방의 병사가 싸움을 중단하고 며칠 동안을 서로 친구같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유명한 작가인 처킨스와 타카리 두 사람은 싸운 일 때문에 오랫동안 서로 대화를 끊고 지냈다. 성탄 맞을 즈음에 타카리는 이런 일이 예수 정신이 아닌 줄 알고서 처킨스에게 가서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였다.
그 때 처킨스의 말이 자신도 똑같이 생각되어 그 대에게 가서 고백하고자 했다고 대답했다. 그 후에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성탄의 정신은 합심하지 못한 여러 가정의 부부나, 혹은 자녀들을 화합하게 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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