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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교훈 예화모음 96편

by 【고동엽】 2023.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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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의 교훈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랍비들의 교훈 중에 여섯 가지 덕이 있다. 그들이 항상 생각하고 가르치기에 힘쓰는 덕목이다.
1.공부하는 것 : 안주하지 않고 항상 부족한 마음으로 계속 공부하라는 것
2.환자를 방문하는 것
3.손님을 대점하는 것
4.기도와 경건
5.율법(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치는 것
6.사람들의 장점을 생각하는 것 
 
 
인생 타율(打率)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한 유태인이 고명한 랍비(聖職者)를 찾아갔다. '매사가 소기의 절반도 되는 일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지혜 좀 내려주십시오' 했다. 한참 생각 끝에 랍비는 '뉴욕 타임스 연감(年鑑) 1970 년판 9 백 30 페이지를 찾아보라. 그 곳에 그 지혜가 적혀 있을 것이다' 했다.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연감을 구해 찾아보니 유명한 야구 선수들의 타율이 나열돼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자신의 고민을 타개해 줄 지혜가 되는지 알 수가 없어 다시 찾아가 물었다. 랍비는 사상 최강의 타자로 우러름을 받는 선수의 타율을 보라고 했다.
타이컵브......3 할 6 푼 7 리로 나와 있다. '바로 그것이다. 세계 최강의 타자도 3 타석 1 안타에 불과하다. 한데 일마다 소기의 절반 가까이 된다면 자네는 5 할대의 타자가 아닌가.' 랍비는 계속하였다. '만약 모든 야구 선수들의 타율이 10 할대라면 무슨 재미로 야구를 하고 또 야구 구경을 하겠는가? 인생도 야구와 같은 것이다. 모자람이 있어야 세상 사는 의욕과 재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우화(寓話)가 중국에도 있다. 과거에 일곱번째 거듭 떨어진 노서생(老書生)이 있었다. 자신보다 글이 짧고 노력도 덜하는 자들이 급제하는데, 자신만 거듭 낙방하는 것은 세상이 불공평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읽던 책들을 팽개치고 옥황상제를 찾아가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습니까' 하고 불평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상제는 운명의 신과 노력의 신을 불러놓고 노서생이 보는 앞에서 술시합을 시켰다. 노력의 신은 석 잔 만에 쓰러져 버리고, 운명의 신은 일곱 잔 만에 쓰러졌던 것이다. 상제는 서생에게 말했다.


'보았는가. 인생의 일이란 십중삼(十中三)을 노력이 지배하고, 십중칠(十中七)은 운명이 지배하는 법이다. 다만 십중삼을 다한 후에야 십중칠이 찾아오는 법임을 알아야 한다.'
서생은 감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팽개친 책들을 다시 수습했다.
인생이 타자(打者)라면, 운명은 투수다.
아무렇게나 휘둘러댄다고 운이 와서 맞아주지는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치는 사람도 3 할 7 푼대를 못 넘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올 프로 야구 페넌트 레이스가 막을 내렸다. 3 할대를 쳐낸 선수가 12 명이요, 최고 타율이 3 할 4 푼 8 리이다. 현재 일본 프로 야구 최고 타율과 3 할대 선수 수가 똑같다.
3 타수 2 안타가 그렇게 힘든 법이다. 보통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인생 타율이 아닐 수 없다. 

 

 

 
 
정의
 
워털루의 싸움에서 나폴레옹을 쳐부순 세계적인 명장 아더 웰링턴 장군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그는 여러 부하를 데리고 여우 사냥을 나갔다.
웰링턴은 여우 한 마리를 보고서 쫓아가느라고 말을 잽싸게 달렸다. 여우는 마침내 담을 높이 쌓은 농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말은 높아서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웰링턴은 말머리를 돌려서 농장문으로 달려갔다. 문을 통해 농장에 들어가 여우를 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농장 문은 잠겨져 있고 그 문을 지키는 소년이 거기 서 있었다. 사냥때문에 농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농부의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웰링턴은 큰 소리로 말했다.
"얘, 문을 빨리 열어라!"
"문을 열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놈아! 빨리 열어. 여우가 도망가버린다.!"
"아버지의 분부입니다. 문을 절대로 열 수 없습니다."
뜻밖에도 소년의 강경한 태도에 화가 난 웰링턴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 내 명령이다. 웰링턴 원수의 명령이다!"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절을 했다. 이것을 본 웰링턴은 자기가 이름을 댔으니, 지체없이 문을 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이었다.
"각하, 문을 열 수는 없습니다."
"내가 명령을 해도 안되느냐?"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각하와 같이 남의 농장을 사냥터로 삼는 사람이있기 때문에 담을 싼 것입니다. 그런데 각하와 같은 분이 농민의 어려움을 알아주지않으시고 무리한 짓을 하시렵니까?" 장군은 "음!"하고 한숨을 내쉬며 "그래. 네 말이 옳다. 여우는 놓쳤으나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말하며 돌아갔다. 
 

 

 
 
진정한 일치
 
어느 날 아씨시의 성자 프란체스코가 그의 제자 레오날드와 함께 길을
가게 되었읍니다. 레오날드는 본래 귀족의 아들이었으며, 자기의 특수
한 배경과 신분으로 말미암아 유달리 자존심이 강했던 자였읍니다. 그
의 그러한 특성때문에 프란체스코 종단에 속한 형제들은 공동체 생활
에서 자주 어려움을 경험하곤 했읍니다.

그날도 프란체스코와 함꼐 길을 가던 레오날드는 프란체스코가 탄 나
귀를 끌고 가고 있었는데,갑자기 그 마음에 불평이 생기기 시작했읍니
다.'이 사람이 영적인 스승이라고 하지만, 귀족의 아들인 내가 보잘것
없는 성장배경을 가진 이사람을 이렇게 나귀에 태우고 돌아다녀야 하
다니....' 마음속으로 이런 불평의 소리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나귀를 타고 가면서도 레오날드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던 프
란체스코는 곧바로 이 레오날드 형제의 마음속에 불평이 가득하다는
것을 성령의 능력으로 감지 할수 있었읍니다. "형제여..형제가 맞소.
형제가 나귀를 타고 가는 것이 합당하오. 내가 걷겠오."

프란체스코의 갑작스런 이 행동에 놀란 레오날드는 길에 끓어 엎드려
자기 마음속에 있었던 자존심과 시기를 자백했읍니다. 그후로 프란체
스코 종단은 레오날드로 인한 결정적인 분열의 위기를 넘어섰다고 합
니다. 이 이야기를 성령의 사역에 의한 사랑과 겸손만이 진정한 일치
를 이룰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읍니다. 
 

 

 

 
 
문화 산책
 
지루한 장마속에 가끔 겹쳐지는 더위가 참을 수 없을 정도다. 이 무더위가 이어질
때 사람들은 누구나 일상을 떠나는 거창한 행사(?) 하나를 치른다. 여름휴가. 다람
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한여름 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사람
들은 너나할 것없이 여름휴가를 떠난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떠오르는 가곡 한
곡이 있다. '황혼녘 잿빛구름에' 로 시작되는 '망각'이라는 곡인데 이곡은 향토의
홍사만씨가 쓴 작품이다
.작곡가도 아닌 홍씨가 언제 어떻게해서 쓴 작품인지 모
르지만 여름이면 어 김없이 떠오르는 특별한 곡이다. 아름다운 가사와 차분한
리듬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뿐 아니라 유연하고 도도하면서도 애잔한 기
품이 느껴 지는 것이 이 곡의 특징이다. 그렇다고 이 곡이 한여름에 떠오르는
이유가 그것에 있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 이 곡은 휴가의 진정한 의미와 맥
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은 재충전의 힘이 느껴진다. 망각을 하되 언
제나 재기를 생각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을
때 가끔 이곡을 흥얼거린다. 또 용기가 필요할 때 큰 소리로 이 가곡을 불러 보
기도 한다.
가곡으로서도 적당한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망각'을 부르다 지난
해 있 었던 서울 삼풍백화점 참사와 대구 가스폭발사고 등 대형참사를 생각해
본 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망각해 버리고 말았다.오 늘
도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어느 유가족의 한 을 너
무 쉽게 잊고 말았다. 사고가 났을 당시에 우리들은 어떠했는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 말 아야 한다고, 이 사고를 오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 목소
리로 외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도 역시 지난해와 같은 대형참사들이 이어 지고 있다.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처럼 전쟁의 폐허를 딛 고 굳게 일어서 내일을 기약하고자 하는 정신적 자세를 배우자. 슬플때 더 욱 슬픈 노래를 불러 그 슬픔을 잊듯이 망각을 하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한 교훈으로 삼는 슬기를 갖도록 하자. 

 

 
 
엉뚱한 것에 대한 화풀이
 
예루살렘에서 어떤 남자가 버스를 탔는데 육중한 한 미국인 부인이 강아지를 데리고 앉아 있었다. 강아지가 한 사람몫의 좌석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는 지쳐 있었으므로 부인에게 영어로 "미안하지만 이 자리를 비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런데 부인은 못들은 체 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미안하지만 이 개 대신에 저를 앉게 해 주십시오." 했다.
이번에는 부인이 옆으로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남자는 화가나서 강아지를 창밖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나쁜건 강아지가 아니라 그 여자쪽이 아니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성낼 때 엉뚱한 것에 성을 내고마는 때도 있음을 가르치고있다.
"요리는 남비 안에서 만들어지는데 사람들은 접시를 칭찬한다."는 말도 있다.
사람은 종종 실수로 다른 것을 칭찬하고 마는 일이 있다. 

 

 
 
교수형 당하는 자에게 주는 훈계
 
어떤 아일랜드인의 판사가 사형수를 향해 말했다.
"자네는 교수형이야. 두 번 다시 죄를 범하지 않도록. 이번 일로 자기 자신에 좋은 교훈으로 삼기를 바라네." 

 

 
 
군마와 나귀의 교훈
 
찬란한 말안장과 요란한 방울 소리를 내는 굴레를 쓰고 출전 준비를 마친 군마가우뢰같은 발굽소리를 내면서 뛰어왔다. 나귀는 등에 무거운 짐을 싣고 같은 길을 느릿느릿 내려가고 있었다. 군마는 의기양양하게 소리를 질렀다.
"길을 비켜! 그러지 않으면 진흙에다 짓밟아 버릴테야"
이 말을 들은 가엾은 나귀가 재빨리 길을 비켜 주자 군마는 뽐내며 그 앞을 지났다.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군마는 한 쪽 눈을 다쳐 군마로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군마는 곧 안장과 굴레가 벗겨지고 어느 농부에게 팔려 버리고 말았다. 하루는 나귀가 짐을 싣고 오는 군마를 보았다. 그러나 군마에게는 이미 나귀에게 큰 소리를 치던 그 기개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귀는 웃으며,
"아이고 당신이구료. 언젠가 당신이 이렇게 될 줄 알았소."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겸손함으로써 남에게 더욱 더 본보기가 되고 우러러 뵈게 되는 것이다

 

 
 
이가 주는 교훈
 
"지성(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무슨 일에나 성의를 다하면반드시 그 일을 이루리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지성을 다하면 하늘이 도와서라도 일이 성공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모든 일에 있어서 어느 정도 힘을 쓰다가도 끝까지 노력하지않고 그 일을 단념하는 것을 본다. 그렇게 끈기가 없는 사람에게 주는 다음과 같은교훈이 있다.
일본에 유명한 혁명가로 가쓰 가이슈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어떤 장사(장사)가 그를 찾아와서 천하의 대세(대세)를 이야기한 다음가쓰 가이슈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일대혁신운동을 일으킬 것인데 선생께서 꼭 우리의 수령이 되어주십시오."
했다.
이 때 가쓰 가이슈의 나이는 벌써 노년기에 들어섰기에 장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뭐 이젠 내가 새삼스럽게 그대들의 수령이 되고 말고 할 것이 없네. 자네들 스스로 분연히 일어나서 국가를 위해 분투하는 것이 좋을 줄 아네."
가쓰 가이슈가 이렇게 말하자 그 장사는 다시,
"그러나 우리는 아직 힘이 약해서 도저히 남의 앞장에 나설 수가 없습니다."하고말했다.
이 말을 들은 가쓰 가이슈는 약간 목청을 높여서 다음과 같이 그 장사를 꾸짖었다.
"이런 쓸개 빠진 친구가 있나! 그대들은 저 이를 생각해 보게. 이는 그렇게 작은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큰 사람을 움직이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하지 않는가.
어느 나라고 혁신(혁신)의 대업(대업)은 모두 그 나라 청년들의 힘으로 이룩된 것이네. 그대들은 모름지기 이에게서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하네." 가쓰 가이슈의 힘찬설교에 장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승복(승복)하여 자리를 물러섰다. 
 

 

 
 
하나님의 교훈
 
두 사람의 랍비가 논쟁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하나님이 전지 전능하시다고 하는데 아담이 잠자고 있을 때 하필 늑골 한개를 빼어 내서 그것으로 이브를 만드신 데 대해서이다.
"하나님이라면 약간 가볍게 입김을 불기만 해도 이브를 만드실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뭣하러 굳이 아담이 잠들고 있을 때 늑골을 몰래 훔쳐 만드셨을까?"
"이것은 아주 간단하네, 요컨대 하나님의 교훈은 훔친 물건치고 변변한 게 없다는것을 인간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이지." 
 
 
처단
 
요람이 누워 있는 갓 태어난 아이의 머리통을 쪼아, 어린아이를 죽게 한 닭이 아이를 죽였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증인이 불려 나가 그 사실을 증언했다. 불쌍하게도 닭은 유죄 판결을 받아 죽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미물인 닭이라 할지라도 살인자로서 유죄가 확정되지 않는 한 경솔히 처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교훈이다. 

 

 
 
한국영화 '쉬리'가 주는 교훈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시편 126 : 5-6)
개봉 초반 1주일 동안 <쉬리>에 모여든 관객이 작년 <타이타닉> 첫 주 관객 보다 많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놀란 사람을 강제규감독이었다. 그는 비교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며 반신반의했다. 이 영화에 들인 돈은 모두 31억원, 한국영화론 사상 최고액이라고 해도 <타이타닉> 제작비의 1%도 안 되는 규모다. 실제로 강 감독이 촬영현장에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제작비 쪼개쓰기였다. 영화 성격상 돈이 많이 들어갈수록 더 나은 영상을 만들 수 있지만, 마냥 욕심을 부리기엔 주머니 사정이 뻔했다. 미니어처를 이용한 빌딩 폭파 장면만 해도 성에 차지 않았는데 딱 한 번 밖에 찍지 못했다.
그래도 관객은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흥행 성적만 좋은 게 아니다. <쉬리>홍보사 <올댓시네마>설문조사에선 관람객 90%가 <주변에 권하겠다>고 답했다. PC통신이나 인터넷 영화사이트들엔 칭찬 일색인 독자평이 줄을 이었다. 디지틀조선 영화사이트 <시네마조선>엔 "쉬리 만세, 한국영화 만세"까지 외치는 글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강 감독을 비롯한 제작-출연진의 열성과 집념은 아무리 칭찬해도 과하지 않다. 하지만 <쉬리>의 진정한 성공은 그런 노력을 알아주고, 작은 단점들은 포용하면서 뜨겁게 반겨준 관객들 몫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러한 도전과 개척의 정신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이겨내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자리에 올라선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보아왔다. 자신의 가능성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아니하고, 그 조그마한 가능성을 극대화시켜서 미래를 향해 매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눈물과 수고가 기쁨의 단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염소들의 교훈
 
유럽의 종교 개혁자 중 루터와 쯔빙글리는 그들이 지도하는 운동에 관한 생각이 서로 반대인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이른 아침 쯔빙글리는 스위스의 산 위를 걷고 있다가 영혼을 흔드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두 마리의 염소가 좁은 산길을 가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위로 오르려 하고 다른 한 마리는 내려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길은 퍽 좁아서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 자리가 있을 뿐이었다. 결국 두 마리는 도중에서 만나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될 것이었다. 두 마리는 서러 바라보다가 꼿꼿이 서서 마치 한 판 싸움이라도 벌일 듯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래 쪽에서 올라가던 염소가 길 위에 눕자 다른 한마리가 그 등을 딛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제 길로 올라갔다.
쯔빙글리는 내려가는 것이 곧 올라갈 길이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낮추시어 인간이 그 등을 딛고 빛의 왕국에 오르게 하셨으며 후에 그가 칭송받을 것을 다 아셨던 것이다. 

 

 
 
동전 한잎의 교훈
 
청백리상을 받았던 어느 가난한 공무원을 취재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온갖 불의를 다 저지르던 사람들이 `정의사회 구현'이라고외치던 시절이
라 그들이 강조하는 `청백리'라는 단어조차 식상하던때였다. 처음엔 취재의 목
적이었으나 그 청백리의 따스한 가슴이내게 통하여 가깝게 지내는 동안 귀중한 교훈
을 하나 얻게 되었다.

주로 나환자와, 구두를 닦는 청소년들에게 봉급의 상당부분을 털어 넣었던 탓으
로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궁핍에 시달렸다. 청백리도 좋지만 가정부터 제대로 꾸려
야지 않겠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가 오히려 되물었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을 남에게 주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그 기쁨을 알겠습니까?
지하도를 지나갈때 계단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에게동전 한닢을 쥐어줘 보세요. 그
러면 알겁니다."
처자식을 굶기지는 않는다며 말하는 투가 너무나 담담한 음성이었다.

그후 나는 지하도를 내려가다가 불현듯 그의 말이 떠올라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동전 한닢을 어물쩍 내밀어 보았다. 행인들의 눈길이그렇고, 겨우 동전 한닢이
라는 염치도 그러하여 스스로 얼굴이 달아 올랐던 게 사실이다.

가난이란 게으름 탓만 아니라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돈이란가지고 있을
때 편리한 물건일 뿐이지 이상이나 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내가 동전 한닢을 내밀며 낯이 간지럽던 그 기분은 솔직히말해 내 행동
에 자신이 없고 턱없는 위선이었음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선이
든 아니든 횟수가 거듭되자 내게 은근히 젖어오던 그 기쁨,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즐거움이었다.

지폐가 아니면 아이들도 시답잖게 여기는 요즘 세상에 동전 한닢으로어디서 무엇 을 하여 그렇게 즐거울 수 있으랴.

등산이나 낚시의 즐거움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동전 한닢의 기쁨도 경험없는 이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청백리가 무슨 돈으로 외식이냐"는 이죽거림에 괴롭다 던 그의 곤혹스런 표정이 그래서 더 눈에 선하다. 
 

 

 
 
카네기의 교훈
 
성공의 비결이 있다면 누구나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비결을 알
고도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성공
의 비결을 아는 것보다 그것을어떻게 하면 잘 실천할 수 있는 사람
이 될까하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세계적인 부호
카아네기가 어느 날 영국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
았다.
"맨 주먹으로 거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합니까?"
카아네기는 이에 대하여 서슴치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첫째 자격이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
날 때부터 호화스럽게 자라는 자는 도저히 부호가 될 자격이 없다.
이와 반대로 나면서부터 가난에 몹시 쪼들려 죽느냐 사느냐의 지경
에 빠짐으로써 가정의 평화는 깨어지고 식구마다 뿔뿔이 흩어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가난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 원수같은 가난과 싸워 이길 결심을 해야 한다.

 

 
 
천리길도 일보부터
 
한 세균학 검사실에 300여 종류의 우유 견본 검사 의뢰가 왔다. 교
수가 조수에게일이 벅차겠다고 걱정했더니 "한번에 하나씩만 하면
힘이 안듭니다."했다.
이 평범한 말 가운데 인생의 중요한 교훈이 있는 것 같다. 산더미
같이 많은 과제와 일생의 과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하니까 심리
적으로 지쳐버리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상상보다 해 보면 쉽게
풀리는 일이 많다. 다만 꾸준히 끝까지 열심히하는 것이 문제다.
하루 한 시간씩 일생을 집중적으로 성서를 공부하면 대학자가 될
수 있다. 하루한 사람 전도하면 최대의 전도자가 된다. 소처럼 걸
어가 보라. 신앙은 인내다.
욥은 재산, 자녀, 건강, 그리고 아내와 위로를 잃고 친구의 공격
을 받고 회의와절망중에도 믿음의 보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하루
하루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정성껏 살자. 

 

 
 
좁은 다리의 교훈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할 줄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는 저녁식사에 손님을 초
대하기로 하고 아들에게 시내에 가서 고기를 사오라고 했다. 이들이 사는 집은 시내에서 좀 떨어졌고
마을 입구엔 좁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아들이 고기를 사가지고 집에 오다 좁은 다리 위에서 한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었고 둘은 결코 양보
하지 않은채 팽팽하게 맞섰다. 아들이 오지 않자 밖에 나갔다가 이 모습을 본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렇게 말했다.
[너는 어서 그 고기를 갖고 집으로 가라. 내가 이 녀석을 맡을 테니까] 
 

 

 
 
편법보다 실력, '미스터 초밥왕'의 교훈
 
우리나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왜? 실력있는 사람보다는 모함을 잘하는 사람이 최
종 승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왜 물러났는가? 모함 때문이다. 모함이 실력을
압도한 것이다. 중국과 일본을 호령했던 청해진 영웅 장보고가 왜 죽었는가? 일본의 침략,
중국의 공격이 아니라 신라 내부의 모함으로 죽었다. 모함이 실력을 이기면, 그 민족의 앞날
은 소망이 없는 것이다. 세상이 열리지 않고 폐쇄되었을 때에는 이런 구조가 통할 수 있었
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다. 즉, 전 세계가 모두 경쟁 상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는 숨길 것이 없는 투명사회가 되었다.

21세기에 살아남을 것은 '실력' 외에는 없다. 그런데
유독 동양 국가 가운데 실력있는 자가 인정받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그 이유는 무
엇인가? 일본에는 오랜 기간 내려온 '신켄 쇼부' (진검승부)라는 전통이 있다. 최종 승자를 정정당당해게 정면 승부를 벌여서 찾아내는 구조인 것이다. 준비하는 데에는 암투가 있어도, 실력 앞에서는 겸허해지는 것이 일본 문화의 강점이다. 실력자를 인정하기에 발전하는 것이다

 

 

 
 
원숭이에게서 배우는 교훈
 
원숭이에게서 배우는 교훈 아프리카의 쿤타리카라는 깊은 산에는 300여 종류의 원숭이들이 살고 있는데, 영국의 리즈 벌리 탐험대가 그곳에서 이상한 현상 세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첫째는 어느날 아침, 온 산이 떠나갈 듯이 원숭이들이 고함을 질러대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때는 듣고 볼 수 없는 일이기에 더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그들의 지도자격인 원숭이가 세상 을 떠났기에 슬퍼하는 표시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둘째는 사랑하는 부부 원숭이가 서로 얼굴을 쓰다듬어 주면서 도닥거려줌은 물론 눈물을 서로 닦아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조사해보니 작은 새끼가 죽었는데 그로인하여 오는 서로의 슬픔을 위로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원숭이 한 마리가 커다란 구렁이게게 칭칭 감겨서 죽어가고 있는데 수십 마리의 원 숭이가 돌을 던지면서 그 구렁이와 대항하여 싸우는데 원체 커다란 구렁이인지라 잡은 원숭 이를 다 집어 삼키자 모든 원숭이들이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서 슬프게 울고 있더라는 것입 니다. 그후 영국의 리즈벨리 탐험대는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어려움에 참여할 줄도 모르고 자기 만을 위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 아프리카의 쿤타리가 산 속으로 보내자는 말을 했 다고 합니다. 

 

 
 
시험의 교훈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시험을 받습니다. 입시경쟁이란 시험과 시련이라는 시험도 있습니다. 인생이란 다양한 시험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됩니다. 펜니라는 청년이 명문대학인 하버드 대학의 졸업반일 때였습니다. 대학의 직업 보도국을 통해 굴지의 백화점에서 2명의 학생을 추천 의뢰해 왔습니다. 가보니 백화점 사장이 그들에게 준 일자리는 겨우 엘리베이터 보이였죠. 펜니와 함께 갔던 학생은 그 일을 거부하고 돌아갑니다. 펜니는 그 일을 쾌히 수락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묵묵히 일하기를 6개월 여. 사장은 펜니를 불렀습니다.

"그래 펜니. 수고했네. 6개월간 일해보니까 어떤가?" "네, 사장님 일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3층 아이들의 완구점과 숙녀용품점은 1층으로 옮겨야 될 것으로 봤습니다." "흠, 그 이유는 뭔가?" "백화점에 출입하는 사람의 대다수가 여성과 아이들인데, 3층에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매장이 있으니 자연 엘리베이터의 가동이 늘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력이 많이 소요됩니다. 1층으로 옮기면 백화점이 복잡하지도 않고 전력소모도 덜 될 것입니다." 사장은 감탄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펜니를 경리사원으로 발령을 낼 생각이었는데, 펜니의 뛰어난 경영 능력이 엿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장은 즉각 펜니를 지배인으로 발탁했습니다. 이례적이고 엄청난 파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펜니는 백화점업계의 총아로 성공하여 미국 내 백대재벌의 거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옵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기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의 교훈
 
두 사람의 랍비가 논쟁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하나님이 전지 전능하시다고 하는데 아담이 잠자고 있을 때 하필 늑골 한개를 빼어 내서 그것으로 이브를 만드신
데 대해서이다.
"하나님이라면 약간 가볍게 입김을 불기만 해도 이브를 만드
실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뭣하러 굳이 아담이 잠들고 있을 때 늑골을 몰래 훔쳐 만드셨을까?"
"이것은 아주 간단하네, 요컨대 하나님의 교훈은 훔친 물건치
고 변변한 게 없다는 것을 인간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이지." 
 

 

 
 
거짓
 
알려진 거짓말 세 가지가 있다. 노인의 "빨리 죽어야지"와 처녀의 "시집가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상인의 "이거 본전입니다" 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렇게 공인된 거짓말 외에도 숱한 거짓들로 그늘져 있
다. 불량 공산품이나 가짜 상표는 차치하고 콩나물 한 근, 두부 한 모를 살 때
에도 이것 믿고 먹을 만한 것인가를 망설여야 되고, 무, 배추, 호박, 고추 등
의 농산물을 구입할 때에도 '무공해' 딱지가 붙은 것을 찾고, 붙어 있는 '무공
해' 딱지마저 가짜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참으로 불행스러운 모습이다.
며칠 전 전철에서 경험한 일이다. 60대 쯤의 한 남자가 좀 잠긴 음성으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저는 6.25 때에 폭발물 사고로 이 오른손을 잃었고 두
눈을 잃었습니다……어느 분은 제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거 보십시오.(눈을
까집으며) 저는 정말 눈이 없습니다……" 구걸을 하는 불구자가 자기는 진짜 불
구자인 것을 입증해 보이며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불구가 아니면서도
불구자인척 하며 구걸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었다)
우리 사회에는 거짓된게 너무 많다. 과대 광고, 불량 상품, 유해 식품 그리고
사리사욕을 공익으로 위장한 단체와 기업들…. 어디 그 뿐인가! 가짜 교사, 가
짜 약사와 의사, 가짜 승려 그리고 가짜 목사가 있는가 하면 애국을 자처하는
가짜 정치인 등 많기도 하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사회, 우리의 사회는 실상 위기에 놓여 있다. 누
가 나에게 정직해 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정직해져야 한다. 어쩌면 지
극히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거짓말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믿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소속을 바꾸는 것
나는 20년 전 쯤 거짓말을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꼭 어떤 이익을 위한 도모
가 아니라 그것쯤은 괜찮지 않은가하는 거짓말일지라도 삼가기로 한 것이다. "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8:44) 예수님의 말
씀이다. 예수께서는 마귀는 아예 거짓의 아비라고 정의하였다. 이 말씀에 부딪
친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마귀를 아비로 삼아 그 소
속을 바꾸어 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이것이 나의 결심의 동기가 되었
다.


처음 그런 결심을 했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교우의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시간이 오후 2시쯤이었다. 그는 매우 바쁘게 일하면서 나에게 통상적인 인사를
했다. "목사님 점심드셨습니까?" 그때 나는 점심 전이었다. 물론 그의 말은 질
문이라기 보다 지극히 통상적인 인사인 것을 모를리 없는 나였지만 나는 통상
적인 대답을 하지 않고 고지식하게 아직 점심 전이라고 말해 버렸다. 그때 당
황해 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거짓말을 않겠다는 결심 때문에
난처한 때도 많이 있었고, 손해를 보는듯 싶다는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그럴수
록 마음의 기쁨은 컸다.

 
그럼에도 새롭게 느껴지는 부족이 있다. 그것은 침묵 또는 몸짓으로 하는 거
짓말이다. "목사님의 기도 덕분입니다" 라는 말은 목회자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일 것이다.
K교회의 부목사로 있을 때인데, 한 젊은 직원이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20여
일 만에 출근했다. 내가 교회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에 교회의 청년들이 퇴원한
직원 곁에 둘러서 있었다. "어허 - 퇴원했구나", "목사님 기도 덕분이예요,
고맙습니다" 나는 그때 잠시 생각했다. '내가 기도했던가? 그래, 입원했다는 말
을 들었던 날 기도했었지' 그러나 그 한번의 기도는 그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
는 것일듯 싶었다. "아, 미안해, 내가 기도한 것은 한번 뿐인데…" 내 말을 들
은 청년들이 와르르 웃었다. 글쎄, 그 청년들은 얼마나 기도했고 그와 같은 인
사를 또 어떻게 대답했을까? 우리는 종종 침묵을 통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반가운 척, 아는 척 몸짓의 거짓말을 한다.


성경은 악한 것은 그 모양이라도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거짓은 우리가
버려야 할 죄악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한 사람이 되자
거짓은 인류가 맞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하와를 유혹한 마귀의 거짓이 인류를
고통과 죽음의 자리에 옮겨놓지 않았던가?
진실을 말하자. 거짓은 거짓을 낳고 불신은 불신을 낳는다. 그리고 그것은
불행이다. 창세기에서 소개되는 야곱은 그 거짓된 방법으로 얼마간 성공하는
듯 싶었지만 결국 그 대가를 철저하게 지불 당하고 있다. 사도행전 5장에 소개
된 부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으로 재산과 명예를 더불어 취하려 했지만,
결국 끔찍한 불행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좀 손해봐도 진실을 말하자. "모든 사람을 잠간동안 속일 수 있다. 소수의
사람들을 얼마동안 속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언제까지 속일 수는 없다
" 고 에이브라함 링컨은 말했다. 혹 때로는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숨기운 모든 것이 드러난다.
변변치 않은 것들이지만 내가 가진 재주 몇가지 때문에 나는 간혹 칭찬을 듣
는다. 그림을 잘 그린다든지 출판물의 편집솜씨가 깔끔하다든지 등이다. 그러
나 나의 간절한 소망 중 하나는 "저 사람은 진실한 목회자다" 하는 칭찬을 듣
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진실한 삶이 얼마나 힘든 세상인가? 그리
고 나는 이러한 칭찬이 "저 사람은 유능하다. 훌륭한 설교를 한다. 저 사람은
박사다. 저 사람은 힘이 있다. 부자다" 보다 훨씬 귀한 것으로 믿는다.
누구를 탓하고 세상을 핑계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심을 버리고 내가 먼저 진실
하자. 

 

 

 
 
놋 비문의 교훈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 있는 낡은 교회 마당에 두 손을 활짝 편 예수님의 대리석 조상이 있었읍니다.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폭탄이 그 마을 가까이에 떨어져서 그 조상은 그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읍니다. 전쟁이 끝나고 적군이 물러가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아끼던 그 조상의 조각들을 찾아서 다시 세우기로 했읍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나 베르니니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 조상은 마을 사람들의 삶의 일부였고 그들은 몹시도 아꼈읍니다. 다시 붙여 만든 상처투성이의 몸체는 여전히 아름다울 뿐이었읍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읍니다. 조상의 양 손을 발견할 수가 없었읍니다. “손이 없는 그리스도는 더 이상 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다” 누군가가 그렇게 한탄했읍니다. “상처투성이 손이라도 괜찮다. 하지만 손이 없어서야 어떻게 주님이라고 하겠는가? 결국 새로 조상을 세우는 도리밖에 없다.”그때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그 제안이 기꺼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졌읍니다. 조상의 받침대에 “나에겐 손이 없지만 당신들에게는 손이 있도다”라고 쓰여진 놋쇠판을 붙인 것이었읍니다. 수년 후 어떤 사람이 놋 비문을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짧은 시가 덧붙여져 있었읍니다. “내겐 손이 없으나 오늘 내 일을 행할 너희의 손이 있도다. 내겐 발이 없으나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할 너희의 발이 있도다. 내겐 입이 없으나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말해줄 수 있는 너희의 입이 있도다. 내겐 아무런 도움이 없으나 사람들을 하나님 편으로 이끌 수 있도록 돕는 너희의 도움이 있도다.”

 

 

 
 
면류관의 교훈
 
옛날 임금님의 즉위식이라 할 등극례(登極禮)는 대체로 궁문에서 베풀어 졌었다. 창덕
궁 같으면 인정문(仁政門)-, 경복궁 같으면 광화문-, 경희궁 같으면 숭정문(崇政門)의
정남향에 어좌와 옥새를 얹어 놓을 보안(寶案)을 차린다.
계단 위로 아악(雅樂)을 연주할 악대가 자리잡고 계단 아래로는 동서로 의장대가 도열
하며, 3 품 이상의 문무백관과 종친들이 품계별로 늘어선다.
면류관을 쓴 새 임금님이 연(輦)을 타고 나와 산선 등의 의장(儀仗) 아래 어좌에 앉으
면 왕대비가 보관하고 있던 옥새를 관계관이 들고나와 바친다. 옥새를 바치기 전에 왕
대비의 하교문(下敎文)이 낭독되기도 한다.


이렇게 등극하면 문무백관의 하례가 뒤따른다. 사회자랄 전의(典儀)가 `국궁사배(鞠躬
四拜)!'하면 문무백관은 그 자리에서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는 절을 네 번 한다. 이어
전의가 `홀삼고두(笏三叩頭)!'하면 백관은 꿇어앉아 허리를 굽히고 홀로 이마를 세 번
친다. 이어 전의가 `산호(山呼)!'하고 외치면 백관들은 두 손을 맞쥐어 들고 이마에
대면서 `천세(千歲)!'를 삼창한다. 세 번째 천세는 천천세(千千歲)로 강조해 외친다.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 때문에 만세(萬歲)를 부르지 못하고 천세(千歲)로 만족해야
했던 우리 임금님들이었다.


이 등극례(登極禮)에서 익혀두었으면 하는 오늘날의 교훈이 있다.
이 날 임금님이 쓰는 왕관이 네모반듯하고 구슬이 주렁주렁 달린 면류관이다. 면류관
의 평천판(平天板)에는 앞뒤쪽에 희고 붉고 푸른 열두 구슬이 꿰인 구슬줄 아홉 줄과,
양쪽에 귀가까이 와닿는 노란 솜방울(綿球)이 늘어뜨려져 있다. 중국의 천자는 열두
줄, 제후(諸侯)는 아홉 줄, 상대부(上大夫)는 일곱 줄, 하대부(下大夫)는 다섯 줄로
차등을 두고 있다. 이 면류관의 구술줄과 솜방울이 상징하는 바가 의미 심장하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보면 이렇다. 군주란 백성과 한 몸이어야 하기에 멀리 보이지
않는 것을 가깝게 보듯하고, 보이지 않는 백성의 마음을 내 마음 보듯 보아야 하며,
멀리 국경에 있는 사람도 궁중에 있는 사람처럼 보아야 하는데도, 항상 눈앞에 보여지
는 것만을 보는 폐단이 있다. 이 폐단을 경계하고자 면류관이 만들어진 것이요, 등극
날 면류관을 씌운 것이라 했다. 곧 눈앞에 구슬줄을 주렁주렁 늘여 시야를 가리고 귓
가에 솜방울을 늘여 귀를 가린 뜻은 이목을 가까이 쓰는 것을 경계하고, 보이지도 들
리지도 않는 멀리에까지 미치게 하려는 계관(戒冠)인 것이다. 오늘 취임하는 새 대통
령에게 이 마음의 면류관을 꼭 씌워주고 싶은 것이다. 

 

 
 
낙엽귀근 교훈을 새겨라!
 
성 구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에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 1:27)


떨어진 낙엽은 썩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땅을 기름지게 하여 옥토로 만들어 새로운 봄을 맞게 된다 만약에 떨어진 잎사귀들이 썩지 않으면 그것들은 모두 수거되어 불태워져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지게 되고, 결국은 몇 줌의 재로만 황량히 남는다 척박한 박토에서 아름다운 과실을 수확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난마처럼 뒤얽혀 있는 한국 사회 현상에도 낙엽귀근의 오묘한 이치가 반추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사회 주변에 잠시 눈을 돌려보면, 야심한 밤에 불빛만을 찾아 날아드는 불나방같은 일부 몰지각한 정상배들과 무책임한 관료들, 그리고 부도덕한 기업인들의 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결코 마르지 않고 결코 채워지지 않는 권력욕 추구라는 시대적 풍조와 긴밀히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동물들에게 배우는 교훈
 
성 구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삼상 18:1)


한 마을에 앞을 못 보는 송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넛마을에 살던 오리가 야생동물을 피해 이 마을로 이사왔습니다. 둘은 곧 친구가 되었습니다. 오리는 앞을 못 보는 송아지의 친절한 안내자가 됐습니다. 식사 때면 소리를 꽥꽥 지르며 송아지를 밥 먹는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송아지는 오리를 따라 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오리는 송아지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곁에 있다가 식사가 끝나면 다시 물이 있는 곳으로 송아지를 인도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눈먼 송아지를 괴롭히면 오리는 날개를 퍼덕이며 적들을 쫓아냈습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 도우며 즐겁게 살았습니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의 “불가사의의 세계”라는 TV프로에서 방영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람에게만 우정이 존재하는 줄 알았습니다. 사람에게만 사랑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창조해주신 동물에게서 참된 우정이 무엇인지 배웁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는 지키며 다스리며 함께 어울렸던 모양입니다. 손익을 따지지 않고 베푸는 우정, 그것을 송아지와 오리에게서 배웁니다. 우리의 만남이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정이 되길 기도합니다. 

 

 

 
 
거지로부터 얻은교훈
 
스페인에 알폰소 12세라 불리워지는 선한 왕이 있었다. 어느날 왕은 궁전의
시동들이 하나님께 식사 기도를 하지 않은 채 음식을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책망할 것을 결심하였다. 왕은 시동 모두를 향연에 초대하였다. 식 탁은 모든 산해진미로 가득차 있었으며 소년들은 매우 맛있게 음식을 먹었 다.

 그러나 그들 어느 누구도 식사 기도를 하지 않았다. 향연 중에 더럽고 누추한 옷을 입은 거지 하나가 들어 왔다. 그는 왕의 식탁앉아 맘껏 음 식을 먹고 마셨다. 처음에 시동들은 경악했으며 왕이 곧 그를 명할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알폰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식사를
끝낸 거지는 감사의 말 한 마디도 없이 나갔다. 그러자 소년들은 더이상 침묵을 지킬 수가 없었다. `얼마나 야비하고 천한 사람인가` 그들은 외쳤다.
그러나 왕은 그들을 조용히 하도록 명하며, 뚜렷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하 였다. `소년들이여, 너희들은 거지보다 더 뻔뻔스럽고 대담한 사람들이다.
매일 너희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주신 음식을 먹으면서 그에게 은총을 바라거나 감사를 표현하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세
 
찬란한 말안장과 요란한 방울 소리를 내는 굴레를 쓰고 출전 준비를 마친 군마가
우뢰같은 발굽소리를 내면서 뛰어왔다. 나귀는 등에 무거운 짐을 싣고 같은 길을 느
릿느릿 내려가고 있었다. 군마는 의기양양하게 소리를 질렀다.
`길을 비켜! 그러지 않으면 진흙에다 짓밟아 버릴테야`
이 말을 들은 가엾은 나귀가 재빨리 길을 비켜 주자 군마는 뽐내며 그 앞을 지났
다.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군마는 한 쪽 눈을 다쳐 군마로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군마는 곧 안장과 굴레가 벗겨지고 어느 농부에게 팔려 버리고 말았다. 하루는 나귀
가 짐을 싣고 오는 군마를 보았다. 그러나 군마에게는 이미 나귀에게 큰 소리를 치
던 그 기개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귀는 웃으며,
`아이고 당신이구료. 언젠가 당신이 이렇게 될 줄 알았소.`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겸손함으로써 남에게 더욱 더 본보기가 되고 우러러 뵈게 되는 것이다. 

 

 

 
 
누가 훌륭한 사람인가?
 
임금으로부터 거대한 자기의 석상을 세우라는 지시를 받은 석공이 있다. 그로
서는 일생 일대의 영광이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날부터 엄청난 고민에 사로잡힌
다. 오늘날 같은 대형 기중기가 없던 시절이다. 엄청난 크기의 입상을 세우려면
몇 개 부분으로 나누어 조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조립할 방도
가 없었기 때문이다.
밤낮없이 고민하던 석공의 발길이 어느 날 바닷가를 찾았다. 적당한 자살 장소
를 물색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무심한 어린이 몇이 자기 곁에서 모래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심코 그들을 바라보던 석공은 순간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감
동에 사로잡혀 한달음에 석상을 세울 현장에다 세운 다음 석공은 그것을 완전히
흙으로 덮어 버렸다.


이렇게 하여 마치 신라시대 왕릉과도 같이 둥글게 구릉을 이룬 곳 정상에서 또
다시 석상의 몸통 부분을 조각했고 그것을 파묻혀 있는 다리 윗 부분과 연결했
다. 그리곤 다시 전과 같은 요령으로 흙으로 파묻어 버렸다. 다음, 같은 방식으
로 석상의 두부를 조각하여 몸체 위에 조립한 그는 지금까지 덮어 두었던 흙을
모두 치워버렸다. 그렇게 하니 거기 우람한 임금의 석상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석공은 해변가 코흘리개 어린이들에게서 배워 마침내 이 거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햇병아리 첼리스트 피아티로르스키가 첫 연주회를 가졌다. 바로 그날 그는 흥
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세계 정상의 첼리스트인 카잘스가 청중석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더 잘하려고 하면 동티 나기 쉬운 법이 아니던가.
그날의 연주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연주회가 끝나자
카잘스가 열렬한 박수를 보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는 카잘스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입어 마침내 세계 정상의 첼리스트가 되었다.


뒷날 서로 흉허물없는 사이가 된 피아티고르스키가 카잘스에게 그 옛날 자기에
게 보내 준 까닭모를 박수의 이유를 물었다. 이에 카잘스는 그때 당신은 이렇게
첼로를 잡고 이렇게 활을 놀려 바로 이 음을 낸 적이 있소. 그런데 난 그때까지
바로 그 음을 내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오. 나는 당신의 연주를 통하여 그
음을 내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미친 듯이 박수를 쳤던 거요. 나는 누구
를 막론하고 나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내 스승으로 생각
한다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당신을 내 스승같이 생각하고 도왔던 것이오라고
말했다.
`너희는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라` (고전 14:31) 

 

 
 
말조심
 
한 선비가 두 마리 소로 밭을 갈고 있는 농부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라고 묻자, 농부는 곧장 밭 가장자리로 나와서, 귓전에다 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힘은 검은 소가 세고, 꾀 안부리고 일 잘하는 건 누런 소요`라고
일러 주었다. `
그런 말을 뭘 그리 비밀스레 하시오`라고 했더니, `말 못하는 짐승일
지라도 나쁜 말을 듣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듣은 선비는 바로
황희정승이였다.
그 후 황희정승은 평생 남을 헐뜯는 말은 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말조심2
 
한 농부의 아내가 그 동네 목사님을 헐뜯는 말을 퍼뜨렸다. 그래서 곧 온
마을에 그 소문이 퍼졌다.
얼마 후 그 여인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목사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늙은 목사님은 `당
신이 저의 한 가지 바램을 따라준다면 기꺼이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말했다. `
기꺼이 하겠습니다`하고 여인은 대답했다. `집에 가서 검은
암탉 한 마리를 잡아 그 깃털을 뽑고 그것을 바구니에 담아 가져오십시오`
30분 후에 그녀가 돌아왔다. 목사님이 말했다. `이제, 마울로 가서 각거리
모퉁이마다 이 깃털을 뿌리고 돌아오십시오.` 그녀는 그렇게 했다. `이제
마을로 가서 그 깃털을 모아 오십시오
. 그리고 한 개도 잃어버린 것이
없나 봅시다.` 그 여인은 놀라서 목사님을 쳐다보며 `그것은 불가능해요!
바람이 그것들을 들판 저너머 사방으로 날려 보냈을테니까요.` `그렇다면`
하고 그는 말했다.
`제가 당신을 용서는 하겠지만 당신이 말한 그 거짓된
말들이 일으킨 피해를 취소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 두십시오.` 
 

 

 
 
벤자카이의 탈무드
 
주후 70년경은 로마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된 비극의 해입니다.
그때 예루살렘성은 완전히 파괴되고,성전은 불태워지고,성안에 살고있
던 9만명이 참사를 당했읍니다.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떠
나야 했던 그런 비극이 일어났을때 예루살렘 시민들의 지주가 된 사람
이 벤 자카이라는 랍비였읍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어질때 벤 자카이는 로마군 사령관을 찾아가서`당신
이 말하는 것에 순종할테니 나와함꼐 랍비10명이 기거할수 있는 방 한
칸만 마련해주십시오` 라고 부탁을 했읍니다. 그래서 방한칸만 파괴하
지 말아달라는 제의는 받아들여졌읍니다.

그후 예루살렘의 모든 집들이 불태워지고 파괴되었지만,벤 자카이와
랍비 10명이 살고 있는 잡 한칸만은 남아 있었읍니다. 이 사실을 알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벤 자카이를 `민족의 배신자`라고 비난했읍니다.
그러나 벤 자카이는 아무 말 없이 동료 랍비 10사람과 함꼐 20년 동안
작업한것이 있었읍니다. 바로 `탈무드`입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대는 달라지고,사람은 죽고,태어나고,
새 사람이 나타나고,인류의 문명,물질의 세계,집이나 건물,이런것이
다 없어지고 파괴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는다는 생각입니
다.그래서 벤 자카이가,이스라엘 민족이 역사를 두고 터득해 왔던 하
나님을 경외하는 그 지혜를 모으고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겠다는 생각
으로 20년 동안 작업해서 만든것이 `탈무드`입니다. 이것을 오늘날까
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교훈집으로 남겨 주었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될때 이스라엘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확
신을 가지고 탈무드를 남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복된 백성이고,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길줄 아는 백
성이 복되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빈대보단 나아야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인천 부두에서 하역 노무자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가장 고통을 가
져다 준 것은 바로 빈대였다.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노무자 합숙소에서 단잠을 자야 하는데, 그
곳에 득실거리는 빈대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빈대를 피하기 위하여 하는 수 없이 노숙이라도 하고 나면 밤새내린 이
슬 때문에, 다음날은 몸을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빈대의 고통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 궁리하던 그는 마침내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를 개발했다.
즉 물이 담긴 네 개의 큰 대접 위에 네 다리를 담근 간이 침대 위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다.
이는 빈대들이 통상 침상의 다리로 기어올라와 공격을 한다는 것과, 그
녀석들은 전혀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특성을 예의 관찰한 결과로 얻어낸

묘책이다..
이렇게 하루 이틀 단잠을 자고 쾌재를 부르던 정주영은 또다시 굶주린
빈대들의 공격을 받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또 빈대가 침범해 올 수 있단 말인가 ?
유의해서 관찰해 보니, 빈대들은 자기가 자고 있는 그곳 천정으로 기어
올라가 거기서 공중낙하를 하는 것이 아닌가.
빈대공수특전단이다.
이 사건(?)을 경험한 다음부터 정주영은 엄청난 생의 교훈 하나를 지니
게 되었다..
즉 그가 0이제는 하는 수 없다.0라고 할 만큼 어려운 일에 직면할 때마
다, 0나는 빈대만큼이나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는가0고 자신에게 물으면서

오늘의 성공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스탠리 죤스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는 1964년에 스탠리 존스(E.Stanly
Jones)박사와 하루를 지낼 수 있었던 일이다.
그는 인도에서 한평생을 복음전파에 몸 바쳐온 선교사로 현대 선교 역사의 성
자로 불리우는 목사님이시다.
그때 나는 당돌하게도 예의에 벗어난 무리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목사님, 존스 박사님께서는 한평생을 주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선교사업에 이
바지하셨는데, 사도 바울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듯이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음
성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나의 질문을 받자 그분은 정색하여 나이가 많아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흰머리
몇 갈래만 남은 노구의 몸을 바로잡고 앉으며 하늘을 쳐다본 후 정중하게, 그것
도 겸손하게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청년이여, 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형상을 느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그리고 부족하나마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나에게는 믿음도 적고 배운 것도 적으나 예수님을 사랑하
는 마음 하나만은 변할 길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우리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도 있고 듣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못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아폴로 13호의 교훈
 
미국의 영광과 부의 상징이었고 인간 과학의 총화였으며 고장 확률도가 백만분의
1이라는 만능의 기계는 전 인류가 주시하는 가운데 고장을 일으켰다. 그때 미국의
대통령과 상하 양원을 위시하여 온 국민이 우주선의 무사 귀환을 위해서 기도를 드
렸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여기 인간의 한계와 겸허가 있으며 과학과 신앙의 조화
도 엿볼 수 있다.
예수가 들어가면 반드시 미신이 추방되고 현존하는 세계의 자연과학 분야의 박사
의 3분의 2가 크리스챤이다.
예수는 진리이다. 예수는 빛이다. 괄호안의 숫자가 무한한 플러스라도 괄호 밖의
숫자가 마이너스면 그 전체가 마이너스가 된다. 하나님의 기초에 세우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바벨탑이다. 

 

 
 
알라모를 기억하자
 
19세기 초엽까지, 광활한 오늘의 텍사스 땅은 멕시코의 영토였다.
그러나 이 땅에 이주해 온 미국의 개척민들은 어느 누구의 겸제(겸제)도
받지 않고 자기네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원했다.
멕시코 정부로서는 심히 껄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하여 그들은 미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국내적으로 혼란한 상태
에 빠지자 미국계 주민들은 자기들 또한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하겠다고 나
섰고, 1835년에는 샘 휴스턴(Sam Houston, 1793-1863) 장군을 텍사스 독립
군 총사령관으로 세우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렇게 되자 멕시코 정부는 산타 아나(Santa Anna)장군에게 이 사태를
진압하도록 전권을 위임했다...
이때 산 안토니오(San Antonio) 지방에 있는 알라모(Alamo) 성당 안에는
미처 200명도 못 되는 독립 의용군들이 모여 있었는데, 산타 아나 장군은
우선 이들부터 괴멸시키겠다는 결심으로 진격해 왔다.
병법에는 중과 부적(중과부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200대 4.000의 싸움은 처음부터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라모의 용사들은 20배가 넘는 적을 맞아, 무려 12일 동안이나
버티다가 한 사람 예외없이 전사하고 말았다.


이 장렬한 전투소식을 들은 휴스턴 장군은 부하장병들을 향하여 `알라모
를 기억하라`(Remember the Alamo)는 피맺힌 절규를 발했고, 지면 알라모
전사들같이 전멸한다는 생각으로 새롭게 정신무장을 갖춘, 텍사스 독립군
은 마침내 산 저신토(San Jacinnto) 전투에서 깨끗이 승리함으로써, 대망
의 텍사스 독립을 성취했다...


종종 미국의 거리에선 자동차 뒤 범퍼에, `알라모를 기억하라`는 스티커
를 붙이고 다니는 자동차를 발견할 수 있다.
치욕적인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고, 무섭게 현재를 독려하는 이들 미국인
의 정신이, 바로 위대한 국가 건설의 동력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열가지의 장점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영국의 전래동화 가운데에는
<두 얼굴을 가진 관리인>이란 것이 있다.
이 관리인은 두 얼굴의 사나이였는데, 그가 상전을 보는 얼굴은 언제나 친절하
고 하인을 보는 얼굴은 사납고 근엄한 얼굴이라는 것이 그 요점이다. 미국의 각
교회의 교파를 표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래와 같다.
1) 감리교인에게서는 진실한 생활 태도를 배우라.

2) 침례교인에게서는 신앙간
증을 들으라.

) 루터교인에게서는 충성된 교인임을 배우고
4) 성공회교인에게서 는 교인의 긍지를 배우라.
5) 퀘거교인에게서는 청결한 믿음을 배우고
 6) 유대교 인에게서는 종교의 고결함을 배우라.
 7) 장로교인에게서는 기도의 생활을 배우고,
8) 구세군에게서는 봉사의 생활을 배우라.
9) 천주교인에게서는 교인의 보편 성을 배우고
10 그리고 흑인들에게서는 그 열성을 배우라.

이상의 열 가지를 다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역사의 세 교훈
 
역사학자 찰스 베어드는 역사의 연구 결과 세가지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첫째,개인이나 국가가 권세욕에 날뛰게 되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둘째,하나님의 공의의 맷돌은 천천히 도는 것 같지만 모든 악
을 빠짐없이 분쇄한다는 것이다.

세째,벌이 꽃에서 꿀을 강탈하지만 그 강탈 때문에 열매를 맺
게 되는 것처럼 개인의 삶과 역사의 진행에 상실이 있지
만 그 상실 후에 열매가 맺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당장 전개되는 현상에 교만해지거나 혹은 의문을 품고 절망할 때가 있다.그러나 거기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가 있으
니 겸손히 그 뜻을 물으며 살아야 한다.그러면 오랜 시간이 지 난 후에 하나님께서 왜 그일을 그렇게 진행하셨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네 사정
 
우리네 사정을 한번 생각해 보자.
임진왜란의 치욕, 병자호란의 수치, 일제 36년의 피눈물나는 역사, 6.25
사변의 지긋지긋한 참변을 겪어 오면서도 이것 하나만은 절대로 잊을

없다는 민족의 뭉뚱그려진 절규가 없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덜 된 인간들은 과거의 자랑스러웠던 사건을 악착스레 기억하면서 허풍
을 떨며 산다.
그리고 지난날의 수치스러운 기억들은 깨끗이 잊어버림으로써 끝없이 계
속되는 과오와 실수의 삶을 살게 마련이다.
이런 인간이 어찌 만인의 멸시와 천대를 면할 수 있겠는가..
바람직한 사람은 부끄럽고 치욕적인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건전한 삶을 위하여 진하디 진한 땀을 부단히 쏟
아 붓는다........ 

 

 
 
배재학당의 교훈
 
20:28; 살전 4:9
기독교 선교를 근본 목적으로 설립된 미국 감리회 선교부 경영의 배재학당은 신학문 교육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이 배재학당의 교훈은`욕위대자당위인역`(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마땅
히 다른사람의 부림을 받아야한다)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20:28의 말씀인 `인자가 온 것은 섬

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의 정신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기독교적인 교육이념이 진하게 배어있다. 

 

 
 
6.25와 트루먼 대통령
 
1950년 6월 25일은 한민족에게 비극의 날이었다. 꿈에도 잊지 못할 6.25 민족
상쟁의 시작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남한의 군인들은 휴일을 맞아 영 밖으로 외출을 했기 때
문에 무방비 상태였다. 잘 훈련받은 인민군이 하늘에는 비행기, 땅에는 탱크를
앞세우고 순식간에 남한으로 쳐내려왔다.

문자 그대로 물밀듯 쳐내려왔다. 남한
의 정부와 국민은 졸지에 당한 변고라 속수무책이었고 정부는 수원으로, 수원에
서 또 대전으로, 대전에서 대구로, 급기야는 부산으로 국민들을 피난시켜야만 했
다. 그야말로 남한이 공산당의 천하가 되는 것 같았다.


그때 한국으로부터 구원병을 요청하는 전문이 미국의 투르먼 대통령에게 당도
했다. 투르먼 대통령은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침실에서 왔다갔다 하면
서 어떻게 처리를 해야되는지 고심을 했다.
그는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의 결
정 하나에 따라서 미국의 청년들이 수없이 피를 흘려야 할 것이요, 그에 따라 한
반도의 정세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결정을 내렸다. 남한이 공산치하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
이 될 수 없다. 한국 동란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다.
6.25동란 때 미국군대가 손쉽게 참전한 것이 아니다. 어느 한 정치가가 밤새껏
기도하는 가운데 내려진 결정에 딸라 참전한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그 덕을 입고 있는 것이다. 

 

 

 
 
치부/카네기의 교훈
 
성공의 비결이 있다면 누구나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비결을 알고도 그대로 실
천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성공의 비결을 아는 것보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잘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까하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세계적인 부호 카아네기가 어느 날 영국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
았다.
`맨 주먹으로 거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합니까?`
카아네기는 이에 대하여 서슴치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첫째 자격이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호
화스럽게 자라는 자는 도저히 부호가 될 자격이 없다.

 이와 반대로 나면서부터 가난
에 몹시 쪼들려 죽느냐 사느냐의 지경에 빠짐으로써 가정의 평화는 깨어지고 식구
마다 뿔뿔이 흩어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가난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 원수같은 가난과 싸워 이길 결심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심을 관철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야 비로소 전력
을 다해 노력하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카아네기는 어렸을 때의 자기 집일을 회상하는 것이었다.
카아네기의 집은 어렸을 때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그래서 어린 카아네기는 고생
하는 양친을 보고,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힘껏 일해 우리 집에서 영원히 가난을 쫓아버리
겠다.`고 결심을 했으며, 그 뒤 그대로 실천한 것이었다. 

 

 
 
좁은 다리의 교훈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할 줄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는 저녁식사에 손님을 초대하기로 하고 아들에게 시내에
가서 고기를 사오라고 했다.
이들이 사는 집은 시내에서 좀 떨어졌고 마을 입구엔 좁은 다리가 놓
여 있었다.

아들이 고기를 사가지고 집에 오다 좁은 다리 위에서 한 사람과 맞닥
뜨리게 되었고 둘은 결코 양보하지 않은채 팽팽하게 맞섰다.
아들이 오지 않자 밖에 나갔다가 이 모습을 본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렇게 말했다.

[너는 어서 그 고기를 갖고 집으로 가라. 내가 이 녀석을 맡을 테니
까]

더운 여름철, 조금만 양보하면 시원하게 지낼텐데 그렇지 못해 더 짜 증나는 일은 없는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립보서2:3) 
 

 

 
 
좋은 교훈은 용기를 얻는
 
1984년도 대통령배 남여 실업팀 배구대회가 있었는데 그때 여자 4강에서 한일 합섬과 현대와 겨루게 되었는데 저력있는 현대가
먼저 2셋트를 한일합섬에게 내어주고 3셋트마저 9대4로 뒤지고 있었다.


이것은 누가 보나 현대는 진 경기였다.그때 현대의 정감독이 마지막 작전타임을 불렀다.

그때 감독은 당황한 표정없이 선수들에게 안정감을 주면서 <지금부터 착실히 한점 한점 따 올라 가면 된다고 하였다. 그후부터 경기는 결국 이겼다. 

 

 
 
잠자리를 잡다가 얻은 교훈
 
얼마전 6살 먹은 딸아이가 잠자리를 잡아달라고 해서 잠자리채와
채집통을 들고 아파트촌을 여기저기 쫓아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파트 바로 앞에 작은 공터가 있는데 그곳에는
잡초와 잡목이 우거져 있어서 잠자리떼가 몰려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는 잠자리들이 안보여서 그 쪽으로 가봤는데, 그 공터
주위에 울타리를 쳐놓아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눈앞에
잠자리 떼가 뻔히 보이는데 잠자리채가 짧아서 한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한두마리가 울타리 가장자리로 날아오곤
했는데 그러면 잠자리채를 뻗어 잡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저의 운동신경이 별로 신통치 않아서인지 딸아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결국 잠자리를 한마리도 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꾸만 잠자리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양무리인 우리들에게 주님 곁에 꼭 붙어있으시라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헤매고 있다는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저는 마치 잠자리를 낚아채기 위해 울타리 옆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사탄과도 같았고, 잠자리들은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마음껏
노닐고 있는 양무리 같았습니다.



잠자리들이 그 울타리 속에
머물러 있는 한 그들은 절대로 잡힐 염려가 없이 자유롭게 놀 수
있지만, 일단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가는 당장 제가 휘드르는 잠자리채
속에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울타리 가장자리로 오는 녀석들은
제가 조금만 잽싸게 움직이면 다 잡힌다는 것을 잘 모르는 철부지
와도 같이 위험한 상태에 있는거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태도도 이처럼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잠자리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갇혀서 꼼짝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곁에서 주님의 보호 아래
자유로운 것입니다. 주님 곁에만 붙어있으면 사탄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목자 예수님께 어떻게 감히 사탄이 접근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박살이 나고 말지요. 또 예수님께서는 일단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들을 울타리 밖으로 내버리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유혹으로 인하여 가장자리에서 기웃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다고 다 사탄에게 포획되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위험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울타리 가장자리에서 놀다가는
자기가 밖으로 나갔는지 아닌지도 잘 분간 못하게 되고, 또
어느 순간 사탄의 손아귀에 잡히게 될런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탄이 유혹하고 위협해도 우리 주님 옆에 꼭 붙어있는 한
이빨 빠진 사자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꼐 안전한 곳에서
복락을 누리며 거하는 것입니다. 세상것에 눈돌리고 신경쓰지
말라는 목사님들의 당부가 바로 이것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잠자리는 한마리도 잡지 못해서 딸아이의 원성은 들었지만
귀한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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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대한 부모의 교훈
 
<최효섭 목사의 책중에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교훈 10가지가 있습니다.
1.아이를 너무 빨리 자라도록 하지 말라.
그렇잖아도 요즘 아이들은 듣고, 보는 것이 너무 많아 성장과속이다.
아이가 어른답다면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2.아이를 얕보지 말라.
아이들의 세계는 부모의 관찰보다 훨씬 깊고, 많이 알고 있다.
아이들을 얕보게 될 때 아이들은 냉소적이기 쉽다.
3.감정을 퍼붓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의 감정을 처리하는 휴지통이 아니다.
아이와의 대화는 언제나 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4.아이에게 이기려 하지 말라.
가정은 전쟁터가 아니다.
교육의 성공은 부모의 요청이 승리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교육은 이기거나 지는 싸움이 아니다.강요보다 이해를 돋우어라.
5.칭찬을 아끼지 말라. 이보다 나은 보약은 없다.
칭찬은 안심을 주고 격려가 되고 마음을 열게 한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칭찬,과장된 칭찬은 역효과를 낸다.
6.아이를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생명이다.
아이를 나에게 맡겨 주심을 감사하고,잘 키워 하나님께 돌리는
사명감으로 교육해야 한다.
7.부모는 아이들의 교재이다. 훈계보다는 모범을 보이도록 하라.
8.아이의 현재만 보지 말고 그 가능성과 미래를 보라.
9.아이를 통털어 보지 말라. 한 명 한 명의 인권을 존중히 여기라.
어느 아이들도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고, 특징이 있고, 소질이 있다.
모든 아이를 보편화시키지 말고 개개인의 차이점을 발달시켜 주는 것이
교육이다.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다.
10.엡6:4을 기억하라. 0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0 
 
 
 
작은 충고에서의 교훈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웃집을 방문하고 다른 문으로 나오는데 그 이웃집 노인이 `
머리를 숙이시오` 해, 그 때는 이미 프랭클린은 이마를 문지방에 부딪쳤다. 그 이웃
은 `젊은이 자네가 세상을 살아갈 때 머리를 자주 숙이면 숙일수록 그 만큼 부딪칠
일이 없을 걸세`라고 충고 해 줬다. 그것을 프랭클린은 평생의 교훈으로 삼았다.

 

 
 
숯의 교훈
 
존 웨슬리의 어머니인 수재너 웨슬리는 위대한 믿음의 어머니이자 지혜롭고 훌륭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부주의하고 고집 센 딸을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하여 딸에게 다 탄 숯 한아름을 안고 오라고 시켰다. “이 숯들은 뜨겁지 않단다. 델 염려가 없으니 안고 오렴” 물론 딸은 단번에 거절했다
“그렇지만 손과 옷이 더러워지잖아요?” 딸의 반문에 수재너 웨슬리가 대답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늘 주의해야 한단다. 사람의 행동에는 화상까지 입히지는 않지만 손과 가슴을 더럽게 하는 행위도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 정도는 그다지 큰 잘못이 아닐 거야”하며 마음의 줄을 느슨하게 풀어놓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부주의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을 후회와 실패로 몰아가는 것은 거의 대부분 크고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실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잘못과 마찬가지로 마음과 생각을 더럽히는 작은 행위들에 대해서도 예민하고 단호해야 한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광고 문구처럼 걸출한 신앙 역시 주의 깊은 성찰로부터 시작됨을 늘 명심하자. 

 

 
 
전쟁과 평화
 
지난 3000년동안 지구상에는 3300여차례의 전쟁이 있었다. 미국과 옛 소련의 군비경쟁이 한창이었을 때 양국이 가진 핵탄두는 지구를 41번이나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날마다 3만5000여명이 식량이 없어서 굶어죽어가고 있는데 증오심과 세력 확장을 위해 전세계가 쓰는 돈은 연간 5500억달러에 이른다.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전쟁을 통하여 그 얼마나 많은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되고 있는가? 부모를 잃은 고아들,자녀를 잃은 부모의 한맺힘,신체 일부분을 잃은 장애인들의 고통,심각한 전쟁의 후유증을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이라크와 미국,북한과 미국의 대치가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제는 우리 모두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교훈을 다시금 되새겨보면 좋겠다. 
 

 

 
 
버릴 것은 깨끗이 버려야
 
어느 목사님께서 예배당 뒤뜰에 있는 느티나무의 나뭇잎이 겨울이 왔는데도 다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시고는 ‘아쉬워서 못 떨어지는가 보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런데 과수원을 경작하는 권사님께서 나무 밑을 지나시면서 대뜸 “거름기가 없구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즉,겨울이 왔는데도 떨어져야 할 나뭇잎이 남아있는 것은 나무가 잎을 떨어뜨릴 힘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고,그런 나무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가지가 얼어죽든지,봄이 되어도 실한 새 싹이 올라오지 못한다. 사실 필자도 느티나무 분재와 은행 분재에 말라버린 이파리가 그냥 붙어 있기에 지금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며칠 전 날씨가 포근할 때 가벼운 빗자루로 살살 문지르듯 모두 떼어주었다.

이 이야기는 ‘버려야 깨끗한 새 옷을 입을 수 있다’ 는 자연의 교훈이다. 버릴 것은 깨끗이 버리는 것이 봄의 새 역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사막 여행의 교훈
 
동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밤에 말을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던 세 사람이 이상한 나그네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나그네는 그들에게 얼마가지 않아 마른 시내 하나를 건너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당신 들이 그곳에 도착하거든 말에서 내려 시내에서 자갈들을 주워 자루와 호주머니에 채우도록 하시오. 그리고 나서 계속 여행

하다가 해가 뜰 때 당신들이 주운 자갈들을 살펴보시오. 당신들은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애석해 할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처럼, 세 사람은 마른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많은 자갈들 중에 몇개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 날해가 뜰 무렵 그들은 주워 온 자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갈들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매랄드 및 기타 여러 가지 보석들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막에서 만났던 나그네의 말을 떠올린 그들은 그제야 그 나그네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이 보석으로 변해있어 기뻤습니다. 그러나 더 많이 주워오지 않은 것이 애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당신이 성경에서 캐낸 진리들이 영적 보석들로 바뀌어 당신의 금고를 채워갈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더욱 부요해질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 때는 쉽게.... 

 

 
 
들쥐의 교훈
 
로버트 로젠달 이라는 하버드 대학의 동물학자 한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동물학자이기 때문에 들쥐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자기 집에서 200마리의 들쥐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어 3개월 간 세계 여행겸 여름 휴가를 떠나면서 아무 생각 없이 200마리의 들쥐 중 50마리만 골라서 그 들쥐들의 머리에흰 페인트를 조금씩 칠해 주고는 떠났습니다.
그후에 그 집에 남아서 들쥐를 키우던 사육사들은 왜 주인이 떠나면서 200마리중 50마리만 골라 머리에 흰 페인트 칠을 했는지 몹시 궁급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표시해 놓은 이 50마리는 품종이 좋은것이거나, 머리가 좀 뛰어나고 영리한 것이거나 하여튼 좀 다른 것이겠지'하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3개월 동안 키웠던 것입니다.
3개월 후 주인이 돌아와 보니 들쥐들이 달라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똑같은 들쥐들이었는데 머리에 흰 페인트가칠해진 50마리의 들쥐가 다른 들쥐들보다 더 발육이 잘되어 있었고 훈련도 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원인을 살펴보니 그것은 다름아닌 사육사들의 태도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육사들은, 머리에 페인트 칠이 된 50마리의 들쥐들은 다른 들쥐들보다 좀더 영리하거나 특별하리라고 자기들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었고 그런 마음의 판단이 이 50마리를 사육할 때 다른것들보다 좀더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사육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물들도 그렇습니다. 긍정적으로 대해 줄때 성장과 발육이 더 빠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자세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인간 관계는 항상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남들은 저버릴지라도 예수님은 남들
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의 장점을 찾아서 하나의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워 내시는 분이십니다. 

 
 
 
추남’ 소크라테스의 여유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얼굴이 못생겼다.
어느 극작가는 ‘구름’이라는 글에서 보기 싫은 그의 얼굴을 풍자하기도 했다.이 글
이 연극으로 꾸며져 공연중일 때였다.소크라테스는 이 자리에 직접 참석,관중을 향해 절을 하며 “내 실물을 보고 연극을 즐기라” 해서 웃긴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멋에 산다.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을 모방하는 데만신경쓴다.
자신만의 매력이 있고 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음을 알 때 우리에게는 삶의 보람이 생긴다.흉내만 내다가는 만족감을 잃는다.
뱁새는 뱁새대로 매력이 있고 황새는 역시 황새로 사는 게 바람직하다.‘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은 우리에게 분에 넘치는 흉내를 금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남이 한다고 무조건 나도 하겠다는 식의 모방보다는 ‘자기식’을 독창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따라서 철학자 코도르세의 “네 자신의 생활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함이 없이 즐기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곰이 가르쳐준 ‘동반자 의리’
 
이솝우화 중에 ‘곰과 두 여행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주 절친한 두 친구가 함께 산길을 가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곰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이때 약삭빠른 한 친구
는 쏜살같이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다.그러나 다른 한 친구는 숨을 곳을 찾지 못해 엉겁결에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그
러자 곰은 땅에 엎드린 친구에게 다가가서 코로 냄새를 맡아보곤 그냥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가버렸다.

곰이 사라지고 난 후 나무위로 올라갔던 친구가 내려와서 묻기를 “그 곰이 뭐라고 속삭이더냐” 했더니 그 친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그래,곰이 이렇게 말하더라.어려운 지경에서 저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저런 친구일랑 상대하지 말라고 하더
라”고 했다는 우스운 얘기다.짐승인 곰이 무슨 말을 했을까만 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바로 동반자 의식
에 대한 것이다.

자신만 아는 생활에서 탈피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파트너십이 필요한 때다.

 

 
 
범 잡아 먹는 담비
 
호랑이와 담비의 이야기가 있다.
옛날 호랑이가 산짐승들을 모아놓고 “나는 백수의 왕이다.
너희들은 무조건 나를 존경하고 따라야 한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가장 조그마한 담비가 토를 달고 나섰다.“존경할 만한 자를 존경하는 것은 당
연하지만 무조건 힘만 세다고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치사한 졸종”이라고 말했다.

이때 호랑이는 담비의 바른 말에 반성은커녕 오히려 오기를 부려 그 힘센 앞발로 담비를 쳐버렸다.그러나 담비는 잽싸
게 호랑이의 머리에 기어올라 오줌을 갈겼다.호랑이는 눈을 뜨지 못하고 괴로움을 당했다.비록 담비의 체구는 매우 작지
만 지혜에서는 호랑이보다 나았다.그래서 우리 속담에 “범 잡아먹는 담비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많은 것을 갖게 되면 오만하고 방자해지기 쉽다.그리고 가지지 못한 사람의 인격을 무
시하고 공격하려 한다.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한다.이런 사람들은 회개할 영을 가지고 있다.
옛말에 “군자는 하루 세번 자기의 잘못을 반성한다”고 했다.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주변을 정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
다. 
 
 
파리 비웃던 부나비는
 
이솝 우화에 파리와 부나비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배가 고픈 파리가 맛있고 향기로운 꿀단지를 발견했다.처음에 꿀단지
의 변두리를 돌면서 조심스레 꿀을 먹던 파리는 나중에는 아예 꿀단지 속으로 들어가서 먹다가 날개까지 젖고 말았다.
그러자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파리를 보고 부나비가 말했다.“야,이 어리석은 놈아,네가 돼지처럼 먹기를 좋아
하니까 그렇게 빠져서 죽지 않니?” 이에 파리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그러나 밤이 되자 둘의 상황은 바뀌어졌다.
부나비는 촛불을 보자 그 주변을 빙빙 돌면서 불빛의 아름다움에 취해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간 것이다.그러다 결국 부나
비는 불에 타 죽고 말았다.그때 파리가 하는 말.“나보고 바보라고 하더니 저는 훨씬 더 바보구먼!”

성경은 탐욕을 좇아 사는 인생,쾌락을 좇아 사는 인생을 향해 이렇게 경고한다.“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
로 나아가느니라”(잠언 5:3∼5) 
 
 
에머슨 부자와 송아지
 
유명한 시인 에머슨의 집에서 있었던 실화다.에머슨이 그의 아들과 함께 송아지를 외양간에 집어넣으려고 아들은 앞에
서 끌고 에머슨은 뒤에서 밀었다고 한다.그런데 부자가 힘을 다했지만 송아지는 네 발을 딱 버티고는 좀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때 아일랜드 출신 부인이 이 광경을 보고 달려왔다.땀을 닦고 있는 에머슨 부자 앞에서 송아지 입에 손가락을 넣고 다
른 손으로는 송아지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다정스럽게 대해 송아지가 스스로 외양간으로 들어가게 하더라는 얘기다.그녀
는 에머슨처럼 멋진 시를 쓸 줄 몰랐지만 송아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만 해도 그렇다.자녀를 강제로 끌고가는 식의 가정교육은 부작용이 많다.자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서
나름대로 흥미를 갖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의 모든 대인관계에서도 그렇다.상대방의 약점을 보기보다 장점을 찾아 기분좋게 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게 필요하다.미국의 심리학자 오버스트리트 교수는 ‘사람의 행위를 지배하는 힘’이라는 책에서 상대의
욕구를 먼저 알아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망신 부르는 3가지 함정
 
요 며칠전 뉴스에 유명한 여배우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돼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됐다.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탈무드’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가지 기준이 나온다.
그 첫째는 키이소오(돈주머니),둘째는 코오소오(술잔),셋째는 카아소오(노여움)이다.

먼저 그 사람의 인격을 측정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돈’을 줘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그가 그 돈을 어
떻게 쓰고 처리하는가를 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그만큼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돈 못지 않게 사람을 흔드는 게 있는데 그것이 ‘술’이다.사람들이 술에 좌우되어 숱한 일들이 생기고 사고를
저지른다.술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많다.그래서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그후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나
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노여움’이다.분노가 어떤 경우에 쓰느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짜증이 심할 때 느긋한 마음가
짐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孝’자의 유래
 
시골 어떤 지역에는 닷새만에 장이 선다.장이 서게 되면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서 장에 팔러 나간다.
늦은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이제나 저제나 아들을 기다린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어 동구 밖까지 나가본
다.멀리서 한 사람씩 보이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좀 더 자세히,좀 더 멀리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간다.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이라고 한다.

이제 아들은 시장에 가서 나무를 팔아 그 돈으로 어머니께 드릴 반찬과 몇 가지 일용품을 사들고 오다가 자기를 기다리
고 있는 어머니를 만난다.아들은 어머니에게 공손하게 말한다.“어머니! 다리 아프실텐데 어찌 여기까지 나오셨습니
까? 제가 업어드릴 테니까 이 지게 위에 타십시오”
그래서 노인을 지게 위에 태우고 오는 아들의 모습이 한자의 효도 ‘孝’자이다.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요,평화의 보금자
리요,행복의 보금자리이다.우리의 가정이 모두 친(親)과 효(孝)가 있는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명연주는 명관객이 만든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에 백아라는 거문고의 고수와 백아의 연주를 즐겨듣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서로를 가슴 깊
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였다. 백아가 험산 준령을 가슴에 그리며 거문고를 켜면 종자기는 “고산을 그리는 곡이군. 태산
을 보는 것 같으이”라며 칭찬했고 백아가 흐르는 물을 연상하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양자강 둑에 서서 멀리 지나가는 배
의 닻을 보는 듯 하이”라며 기뻐하고 칭찬했다.

백아가 종자기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내 연주를 들어주는 자네에게 감사하네. 어쩌면 자네는 내 마음을 그리도 잘 알아
주는가”라고 말하자 종자기는 “아닐세. 자네의 연주야말로 진정 내 마음을 감동시키기 때문일세”라고 대답했다.

그들이야말로 죽마지우였고 연주와 감상의 명수들이었다. 상대를 높이고 칭찬하고 인정하는 훈훈한 사회가 그립다.상대
를 헐뜯고 깎아내리고 상처를 내야 직성이 풀리고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믿는 현대인들에게 백아와 종자기의 고
사가 주는 바 교훈이 크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개자추‘가 불에 탄 까닭
 
옛날 중국 진나라에 계자추라는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청렴한 사람으로서 세속적인 정치에 환멸을 느껴 벼슬을 마다하고 산중으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갈수록 어수선해지자 사람들은 계자추를 필요로 했다.
많은 사람이 그가 있다는 산을 헤매며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고심하던 사람들은 산에 불을 지르면 그가 살려고 나오지 않을까 싶어 산에 불을 놓았다.하지만 그는 나오지 않았고 끝내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날 사람들은 불이 원수처럼 되었다고 하여 부엌에 불을 넣지 않고전날에 만든 찬밥을 먹는 날로 정했다.이것이 바로 한식(寒食)의 유래다.

많은 사람이 지조에 대해 말할 때 곧잘 계자추를 들곤 한다.
우리는 지금 부부간에 불변하는 정조,친구간의 우정,교우간 신앙의 지조 등이 아쉬운 시대를 살고 있다.

프랑스의 문학가 로맹 롤랑은 인생을 가리켜 ‘엄숙하다’고 표현했다.
최선의 가치를 가장 큰 보람으로 삼는데 있다고
한 것이다.우리도 저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지조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
 
승자와 패자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승자는 실수하면 “내가 실수했어”라고 인정하지만 패자는 “내 잘못이 아니야”
라고 오리발을 내민다.승자는 “알아보자” 하지만 패자는 “아무도 몰라”라고 한다.승자는 문제를 뚫고 나가지만 패자는
문제를 피해간다.승자는 책임을 지지만 패자는 약속만 한다.

승자는 “잘 하지만 더 잘 해보자”라하고 패자는 “그래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야 낫지”라고 한다.승자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서 배우려고 하지만 패자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헐뜯으려 한다.승자는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야”라고 하지
만 패자는 “우리는 늘 그렇게 해왔어”라고 한다.

승자는 지혜를 구하나 패자는 권모술수를 사용한다.승자는 좋은 인격을 길러가지만 패자는 나쁜 습관을 길러간다.결국
작은 일에 늘 승리하는 자가 큰 승리를 경험한다.“잘하였다. 너는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
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원칙의 ‘인사’
 
진나라 기해가 나이 많아 수상자리에서 물러날 때 진왕 도공이 그에게 후임 수상을 천거하도록 했다.그때 기해는 평소
자신의 정적이었던 해호를 추천했다.왕은 깜짝 놀라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어찌 그를 후임 수상으로 추천하는
가”라고 물었다.

그 말에 기해는 “왕께서 신에게 물은 것은 이 나라의 수상될 재목이 누구냐는 것이요,신의 원수되는 이가 누구냐를 물은
것이 아니므로 신은 왕께서 물으신 뜻에 합당한 자를 추천한 것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그 말에 왕이 다시 물었다.“그렇
다면 해호 이외의 적임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기해는 “그 다음은 오가 적임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다시 한번 놀랐다.이유는 오는 기해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기해의 아들 오는 당대 최고의 재상감이었다.왕은 기해
의 공평무사에 탄복하고 기해의 조언과 충언을 훗날에도 수용했다고 한다.

세상사의 성패여부는 ‘인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공평 공정 무사의 원칙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우리 사회는 한
결 밝아지게 될 것이다. 

 

 
 
톨스토이의 후회
 
톨스토이의 우화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톨스토이가 여행중 한 주막에 들러 하룻밤을 자고서 다음날 아침 집
을 나오려 할 때 일어난 일이다.병중에 있던 주막집 어린 딸이 톨스토이의 빨간 가방을 달라고 자기 어머니에게 조르며 울고 있었다.
이것을 본 톨스토이는 여행중이고 가방 안에 짐이 있었기에 아이에게 줄 수 없어서 집에 돌아와 짐을 비우고 가방을 주리라 생각하고 주막집을 나왔다.며칠후 다시 그 가방을 들고 주막집을 찾아갔더니 그 아이는 죽어 공동묘
지에 묻힌 뒤였다.톨스토이는 그 아이의 무덤을 찾아가 가져온 가방을 무덤 앞에 놓고 비석을 세워주었다.그리고 그 비
석에 ‘사랑은 연기하지 말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톨스토이의 아픈 마음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비문이다.사랑의 지각생
톨스토이의 아픔이 다시 없기 위하여 후회없는 아가페 사랑의 실천자로서 살아야 하겠다.
 
 
톨스토이 ‘인생론’
 
톨스토이의 ‘인생론’은 삶을 운명에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제정 러시아의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중년에 접어들면서 번민과 죄의 절망에 깊이 빠졌다.그래서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 몸부림 쳤으나 해답을 얻지 못했다.주위 사람들을 찾아 의논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다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귀족들이 멸시하는 투박스럽고 빈궁한 농노들을 찾아갔다.그들은 가진 것 없
지만 소탈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에 찬 삶을 누리고 있음을 본 것이다.톨스토이는 마침내 그 이유를 알아냈
다.어려운 운명을 뚫고 나가는 그들의 힘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에서 왔던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운명에 붙들려 꼼짝 못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허다하다.연초엔 더욱 그러하고 어수선할 때일수록 그렇
다.어떤 위기에서도 바른 인생관으로 운명을 개척해가는 위대한 힘이 필요하다.

 

 
 
선한 일은 보답을 받는다
 
아라비아 박바드의 어느 왕에게 왕자가 있었다.여덟살쯤 됐을 때 왕자는 강에 나갔다가 그만 물에 떠내려가서 행방불
명이 됐다.왕은 군대까지 동원해서 찾았으나 헛수고였다.왕은 왕자의 시체라도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후한 상을 주겠
노라는 광고까지 했다.며칠 후 멀리 떨어진 강의 바위에서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왕자를 찾아냈다.

왕은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그리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물었다.그러자 왕자는 바위에 걸려 목숨을 구
했으며 매일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물에 떠내려오는 봉지가 있었고 그 속에는 빵이 들어있었다고 대답했다.왕은 수
소문해서 그 빵을 내려보낸 사람을 찾아냈다.그 사람은 평민인 모하메트 벤하산이었다.

왕은 벤하산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떤 연유로 그런 선한 일을 했는가” 그러자 벤하산은 “속담에 ‘양식을 물 위에 던지
라,그리하면 몇 날 후엔 찾으리라’는 말이 있기에 한번 시험해본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우리는 금년에 얼마나 선한 일
을 많이 했을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자
 
하루는 당나귀가 등에 짐을 잔뜩 싣고서 개울을 건너다 그만 발을 헛디뎌 개울물에 빠지고 말았다.본시 당나귀는 물과는 거리가 먼 짐승이다.
게다가 물에 빠졌으니 등에 있던 짐이 물에 흠뻑 젖어 굉장히 무거웠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줄 몰라 허둥대고만 있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개구리가 빈정대며 이렇게 말했다.

“저런! 덩치 값도 못하는 녀석이구먼.우리는 매일 물 속에 살아도 이렇게 침착한데 겨우 물에 한 번 빠졌다고 저렇게 호들갑을 떠나” 개구리는 늘 물 속에서만 사니까 당나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나귀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이다.

오해(5)가 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세 번(5-3)을 고쳐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해(2)가 되는 것이다.이해를 두 번 하면
(2+2) 나도 모르게 사랑(4)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도록 노력하자.

 

 
 
톨스토이 소설 ‘바보 이반’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중에 ‘바보 이반’이 있다.이 소설의 줄거리는 매우 소박하면서도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생
활의 거울과도 같다.

옛날 부유한 농부가 살았는데 그에겐 아들 셋이 있었다.그들의 이름은 세미욘,타라스 그리고 이반이었다.그 외에 마
리니야라는 청각장애인 딸이 하나 있었다.세미욘은 군인으로 성공을 했고 타라스도 돈을 벌어 출세를 했는데 이반은
장애인인 누이와 함께 집에 남아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이후 세미욘은 귀족의 딸과 결혼을 했고 타라스 역시 그 부유함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그러나 이반은 형들처럼 돈
도 명예도 없이 누이동생을 데리고 순박하게 살았다.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이반을 바보라고 불렀다.그래서 톨스토이
는 그 소설의 제목을 ‘바보 이반’이라 붙인 것이다.

이 소설은 오늘의 세태를 그대로 말해준다.모두가 다 지배하고 주장하려고 한다.또 남을 짓밟고 돈에만 눈이 어둡
다.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이반식’의 삶.비록 바보 같지만 남을 배려하는 그 마음이 그리워진다

 

 
 
사람은 사람대로 맛과 멋을 지닌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북으로 160㎞쯤 떨어진 산자락에 ‘엘불리’라는 식당이 있다.엘불리는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미
식가들이 군침을 삼키는 식당으로 명성이 나있다.4월부터 6개월 동안만 영업을 하는가 하면 규모는 50명 정도의 음식
준비만 가능할 만큼 작다.

엘불리의 명성은 규모나 위치 때문이 아니라 주방장인 페란 아드리아의 조리솜씨 때문이라고 한다.미식가들은 그가 만
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2개월 전부터 예약을 하고 기다린다.페란 아드리아야말로 맛 하나로 엘불리를 세계의 명소로
만든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대로,공동체는 공동체로서의 맛과 멋을 지닌다.맛잃은 소금은 버림받고 사람들에게 짓밟힘을 당한다는 것
이 예수의 가르침이다.제 아무리 크고 화려한 식당도 음식맛이 떨어지면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지금 우리에겐 맛과
멋을 만드는 제2,제3의 페란 아드리아가 필요하다.서툰 요리사들이 요리를 망치기 전,그래서 식당이 문을 닫기 전에 주
방장부터 바뀌어야 한다. 
 
 
훌륭한 재능을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
 
한 소년이 산에서 독수리 알 하나를 주워왔다.소년은 이 알을 암탉 둥지에 넣어놓았다.암탉은 독수리 알을 품어 부화
시켰다.새끼 독수리는 병아리들과 함께 어울렸다.독수리는 날카로운 발톱과 강력한 날개를 사용할 줄을 몰랐다.한
번은 들쥐떼가 닭장을 습격했다.닭들은 몸집이 큰 독수리가 들쥐들을 쫓아줄 것으로 기대했다.그러나 독수리는 몸을
벌벌 떨며 도망을 다녔다.그때부터 독수리는 닭들로부터 ‘모이만 축내는 겁쟁이’로 따돌림을 당했다.그때 독수리 한
마리가 멋지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닭장의 독수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정말 멋진 새로구나.나도 저런 당당한 독수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인디언의 민화다.세상에는 자신의 재능을 과소평가해 닭장에 갇혀 사는 사람이 많다.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가
졌어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실패에 맞서 싸우는 다섯 가지 방법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소개된 ‘실패에 맞서 싸우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실패’라는 단어 대신 ‘시행착오’라는 말을 사용하라.
희망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쉽게 재기한다.
둘째,‘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버려라.실패를 딛고 재도전할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셋째,자신을 실패자로 비하하지 말라.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은 하되 비하는 말아야 한다.
넷째,항상 실패를 맞을 준비를 하라.인생은 깊은 수렁도 있고 넓은 초원도 있다.
다섯째,실패가 예견되면 빨리 단념하라.사람들은 가끔 차선책에 대한 미련으로 최선책을 놓치는 우를 범한다.

화살은 과녁에 명중하는 것보다 빗나갈 확률이 훨씬 높다.
큰 교훈을 안겨주는 고상한 실패가 저속한 성공보다 나은 경 우도 있다.
세상은 실패를 ‘시행착오’로 여기고 다시 일어서는 적극적인 사람들에 
 
 
양질의 옥도 갈지 않으면 명품이 될 수 없다
 
한 가난하고 불행한 소년이 있었다.그는 일찍 아버지를 잃었다.
남은 가족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포도주
의 통을 수리하는 장애인 삼촌뿐이었다.
소년은 극심한 영양실조로 폐결핵을 얻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그러
나 소년은 ‘성실성’과 ‘열정’을 소유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담임인 루이 제르맹은 이 소년의 천재적인 문학성을 발견하
고 끊임없이 격려해 주었다.그는 ‘가난’과 ‘질병’을 문학을 향한 열정으로 극복했다.
삶의 아픈 상처를 작품으로 승화시
켜 많은 명작을 남겼고 44세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사람의 이름은 프랑스 최고의 작가인 알베르 카뮈다.

ㅊ.바람이 심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땅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
노련한 어부는 풍랑이 일 때 실력을 발휘한다.
장수가 명예를 얻는 곳은 전쟁터다.인간은 시련을 통해 연단된다.
그리고 그 고난 뒤에는 하나님의 선물이 준비돼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옛날 어느 마을에 사랑이 풍성한 한 부자가 있었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목수를 불러 집을 좀 지어달라고 부탁했
다.“우리 부부가 3개월쯤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최상의 건축재료와 초일류 목수들을 총동원해 멋진 집을 지어주세
요.건축비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이 여행을 떠나자 목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싸구려 건축자재와 형편없는 인부들을 동원해 날림으로 집을 지었다.
구멍이 나고 금이 간 곳은 페인트칠로 감쪽같이 속였다
.부자가 돌아왔을 때 목수는 열쇠를 주며 말했다.
“정말 열심히 집을 지었어요” 그러자 부자가 목수에게 그 열쇠를 다시 주면서 말했다.“이 집은 내가 당신 가족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때 목수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기교를 부리는 사람들은 결국 낭패를 당한다.선
을 베풀면 선한 것을 받고 악을 행하면 악한 것을 받는다.
 

 

 
 
마라톤과 인생의 유사점 다섯 가지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이다.시드니올림픽에서 아베라가 에티오피아에 영광의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마라톤과 인생의 유사점 다섯 가지.

①처음에 너무 빨리 달리는 사람은 절대로 1등을 할 수 없다.
힘을 비축해가며 꾸준히 달리는 사람에게 영광의 면류관이주어진다.
②레이스 도중 반드시 고난의 언덕을 만난다.이 언덕을 넘지 못하면 선두권에서 영영 멀어진다.사람은 인생의언덕을 잘 극복해야 한다.
③때로는 음료수를 마시며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인생도 재충전과 여유가 필요하다.
④선두 그룹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면 나중에 만회하기가 힘들다
인생도 적당한 긴장이 요구된다.
⑤고된 훈련을 쌓은 선수가 완주한다.인생도 훈련과 준비가 필요하다.

마라톤 경기에서 메인 스타디움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선수는 누구인가.
중간에 레이스를 포기한 선수들이다.그들은 자동차를 타고 가장 먼저 운동장에 들어온다.
하나님의 품에 가장 먼저 안기는 사람도 인생의 실패자들이다.이것이 실패의 축복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때로는 인생의 길잡이가 된다
 
한 청년이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그는 번개에 대해 심한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청년은 손전등을 들고 마을을 찾아
나섰다.그러나 폭우와 강풍으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그때 갑자기 번개가 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손전등
을 깨뜨리고 말았다.청년은 칠흑같은 어둠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 순간 다시 번쩍 하고 번개가 쳤다.그러자 자신
의 눈 앞에 길이 환하게 드러났다.청년은 정신을 수습하고 번개가 칠 때마다 조금씩 방향을 잡아나갔다.이제 번개는 공
포의 대상이 아니라 좋은 길잡이였다.청년은 번갯불을 이용해 무사히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들이 때로는 인생의 좋은 길잡이가 된다.인생의 번개로 생각했
던 고통 모함 배신 가난 질병 억울함 등이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가르쳐준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10가지 생활수칙
 
벤자민 프랭클린의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10가지 생활수칙을 소개한다.

첫째, 절제를 실천한다.몸이 나른해질 정도로 과식하지 않는다.
음식과 사물에 대한 욕심은 건강과 지혜를 빼앗아간다.
둘째,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다.사소한 일에 얽매이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셋째, 불필요한 대화를 줄인다.잡담은 사람의 인격을 무너뜨린다
넷째,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다.한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다섯째,극단적인 말과 행동을 피한다.
극단적인 것들은 송곳과 같아서 남에게 상처를 준다.
여섯째,주위를 항상 청결하게 한다.몸,옷,집,사무실 등을 깨끗하게 하면 마음도 맑아진다.
일곱째, 돈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다.돈은 선한 일을 위해서만 사용하라
여덟째, 자신이 본받을 만한 인물을 설정하고 이를 본받으려고 노력하라.
아홉째, 한번 결심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열째, 정욕에 빠지지 말라. 
 
 
선한 삶이 최고의 교훈
 
한 어머니가 개구쟁이 소년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다.“선생님,제 아들이 사탕을 너무 좋아해요.사탕을 먹지 않도록 충고를 좀 해주세요.
아마 선생님 말씀에는 순종할 것입니다” 간디는 어머니와 소년의 얼굴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보름 후에 아들을 데리고 다시 찾아오세요.그때 말씀드리지요” 보름 후,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다.
간디는소년의 눈을 사랑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얘야,사탕을 먹지 말아라.건강에 좋지 않단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간디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후 물었다.“선생님,왜 보름 전에 이 말쑴을 해주지 않았습니까” 간디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때는 저도 사탕을 먹고 있었답니다”

남의 잘못을 고쳐준다는 것은 참 어렵다.나부터 삶의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어떤 좋은 충고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선한 삶이 최고의 교훈이다. 
 
 
록펠러 어머니의 교훈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금세기 갑부 16인’에는 미국의 석유 왕으로서 알려진 록펠러(839-1937)가 1위이다. 록펠러는 33세 때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10년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53세 때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억만 장자가 록펠로 혼자 뿐이었으며 일주일 수입이 1백만 달러나 되었다. 그가 그렇게 이 세상에서 경제권을 가지고 있었던 데에는
어릴 때부터 유대인 어머니로부터 다음의 10가지 교훈을 철저하게 가르침 받았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친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 공급하지만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 듣고 따르는 것이 축복된 길이기 때문이다.
3.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해야 하며
... 가능한 주일 예배 만큼은 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기
... 때문이다.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이 말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 것이므로 먼저 구별한 후 나머지를 가지고 필요하면 사용해야 함을 표현한
... 말이다.
5.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 맡기며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알게 모르게 계속적으로 짓는 죄를
... 가능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8.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는
... 시간이 필요하다.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리고 도와준 일에 대해 절대로 나팔을 불면
... 안된다.
10.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예배 드리고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화과 나무의 교훈
 
본문: 마가복음 11:12∼14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2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도중에 잎사귀가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 시장기를 느끼고 계시던 참이었습니다. 아직 무화과 열매의 철은 아니지만 혹시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보니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실망하신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14절)
아직 무화과나무의 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없음을 보고 무화과를 저주하신 기사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사랑을 늘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그렇게 사랑이 없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른 들으면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무화과나무의 생리를 잘 모르는 소견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보통 무화과나무 열매의 수확기는 6∼7월쯤입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 무화과는 이르게는 3∼4월쯤에,늦게는 8∼9월쯤에 열매를 맺을 때도 있습니다. 무화과는 먼저 잎사귀를 냅니다.그리고 잎이 있으면 열매가 있어야 원칙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길가의 무화과는 잎은 무성한데 맺혀야 할 열매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무화과나무의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요?


첫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20절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 일행은 그 다음날 무화과나무 앞을 지나가시다가 그 나무가 뿌리에서부터 말라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한마디의 말씀에 나무도 순종하는 이분이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그분은 바로 나무를 만드시고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권위 앞에서 귀신들도 두려워 떨며 쫓겨나갔고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껍데기만 있는 유대종교에 대해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종교는 무화과나무처럼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습니다. 석상과 외형은 화려한데 삶의 변화가 없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죽이는 생명없는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바로 이런 이스라엘 종교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 모두는 맺어야 할 열매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목적은 땔감이나 재목이 아니라 열매에 있습니다. 맺어야 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는 존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당신은 어떤 열매를 맺으셨습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으셨습니까? 아니면 전도의 열매를 맺으셨습니까? 
 
 
도산 선생의 교훈
 
도산 안 창호 선생은 미국에서 애국 독립 운동을 벌이시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다.
"여러분은 거짓말을 하지 마시오. 특별히 서양인과 교제시에는 Yes와 No를 분명히 하고, 한 번 약속한 것은 피해를 불구하고 신용을 지키십시오."
그러면서 또 이렇게 교훈하였다.
"첫째, 한국인의 상점에서는 안심하고 물건을 살 수 있다.
둘째, 한국인의 노동자는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다.
셋째, 한국인과의 언약이라면 믿을 수 있다."
이상의 세 가지에 신용을 얻으면 우리도 돈 벌 수 있고, 남에게 대접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명예를 재류 국민에게 인상 줄 수 있다고 확언하셨다.

 

 
 
솔트레이크 숏트랙이 주는 교훈"
 
김동성이 숏트랙 금메달을 도둑 맞았다고 아우성이다. 어떤 형제가 물었다. 열받을 때 어떻게 합니까? 나의 대답은 "힘을 기른다." 도산 안창호의 무실역행의 사상이 이것이다. 한탄하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힘을 기르라. 억울할 때, 억울함이 준비하고, 무장하고, 위로부터의 능력을 받는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승리한다.
1. 안정적인 리더십의 중요성 : 나는 금메달에 환호하는 것보다 숏트랙 감독인 전명규 감독을 주목하고 싶다. 한국의 숏트랙이 왜 강한가? 좋은 감독이 오랜 기간동안 팀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전감독은 14년째 숏트랙을 이끌었다고 한다. 어느 분야든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을 선발하여 장기간 믿고 맡겨야 한다. 일전에 차범근 감독이 몇게임 졌다고 쫓겨나는 것을 보았다. 이런 포플리즘(populism)으로는 결코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삼일교회의 팀제도의 강점은 조직의 안정성에 있다.

2. 작전과 분석의 승리 : 전감독의 탁월함은 사전 작전이 치밀하다는 점이다. 중국팀을 면밀하게 분석한 후 중국의 양양S가 막판 체력이 약하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마지막 순간에 주민진이 교대하지 않고, 그냥 한바퀴를 더 돌아 추월에 성공한 것이다. "숏트랙 계주의 정형"을 깬 파격적인 작전이었다. 원래 길닦는 사람은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나, 항상 의표를 찌르는 통쾌함이 있다. 머리를 쓰라. 머리는 하나님이 쓰라고 주신 것이다. '생각의 게으름은 범죄이다.' 새벽은 기도하는 시간이자, 생각하는 시간이다. 생각이 생산성을 높이곤 한다.

3. 몸을 던지는 연습 : 작전과 분석만으로 승리를 이끌수 없다. 한순간을 위해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매사의 승리는 복합적인 것이다. 분석과 훈련이 열매를 가져온다. 미래가 바뀌기를 원하는가? 지금의 나의 행동이 변화되어야 한다. 미래의 승리를 원하면서, 오늘 새벽기도도 하지 않는 모습은 도박심리일 뿐이다.

4. 페어 플레이 : 김동성이 금메달을 도둑맞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이번 올림픽은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이 테러 이후에 너무 애국심을 강조하다가 또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너무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고, 자기의 결정이 곧 정의라는 생각 때문이다. 공정이 없는 곳에는 성장이 없다. 나는 이런 모습의 미국을 보면서 미국의 약화를 보게 된다. 이번 올림픽의 구호는 "마음의 빛을 밝히라"(light the fire within)이다. 공정을 잃어버린 구호는 어두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농부와 개들
 
농부가 추위가 심한 겨울 동안 눈 때문에 집안에 갇히게 되어, 먹을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돌아다닌 수도 없고, 몹시 음식에 궁해서 자기가 키우던 양을 먹기 시작했다. 심한 날씨가 계속되었으므로 농부는 다음에는 그 염소를 먹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날씨는 전혀 변동이 없으므로 농사에 쓰는 황소에 손을 댔다.그것을 보고 개들이 서로 말했다.
"자 우리들은 빨리 도망치자. 왜냐하면 보다시피 주인은 밭일하는 황소까지 인정 사정 없으니 우리들을 내버려둘 리가 어디 있겠니?"

* When our neighbor's house is on fire, it is time to look to our own.
이웃 집에 불이 붙었을 때에는 자기 자신의 집에 조심해야 할 때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명기 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입니다. 또한 신명기의 핵심입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말하는 민족사상이고 지표입니다.
‘셰마(Shema)’란 ‘들으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셰마(들으라)’로부터 문장이 시작됩니다. 명령형입니다. 듣고 순종하라는 절대명령입니다. 어떤 상황과도 타협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 이것을 외우게 합니다. 이것을 외우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피를 여호와의 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교육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젖 먹이는 생모가 그에게 민족의 교육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노예신분에서도 하나님의 교육,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민족의 특수성을 가르칩니다.
이스라엘을 여행하다가 ‘통곡의 벽’ 앞에 와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대인 노인들이 그의 어린 손자들을 통곡의 벽 앞에 세우고 기도하게 하고 토라를 외우게 하는 장면입니다. 2500년이나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도 이 교육을 했던 것입니다. 무엇이 우선이고 절대화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우리의 자녀에게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제2,제3이라고 가르쳐야 할까요?
우리 교회는 경제적으로 가장 어렵된 1998년 IMF 경제위기 때 지었습니다. 그 해 11월과 12월은 극도로 힘들었습니다. 은행이 퇴출되고 돈 유통이 안될 때였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과연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을까? 근심과 걱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평소에 약간의 안면이 있던 어느 분이 서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를 하였습니다.
“목사님 혹시 돈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필요하시다면 1억원을 드리겠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1억원이 문제가 아니라 1원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그때부터 몇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그분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분이 앞으로 내게 어떻게 하시는 것과는 상관없이 평생동안 은혜를 잊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하여 섬기고 존경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절대화입니다.


셰마의 교육 방법이 신명기 6장6∼9절입니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이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입니다. 심지어는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교육법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자녀에게 더욱 철저한 신앙교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축구의 교훈
 
축구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는다. 축구경기는 영원한 공세도 없고 영원한 수세도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교훈이다. 상대방 골문을 향해 공격을 하면 그 다음 수비를 해야 하는 것이 축구다. 이처럼 변화가 있어 밤을 지새며 축구를 즐기는지 모른다. 우리의 삶 속에는 항상 공세적인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세에 몰려 걱정도 많은 것이다. 이제 소홀히 했던 각자의 일들을 차분하게 챙겨볼 때다. 내일은 하지(夏至)다. 여름의 더위가 시작되고 장마가 시작된다는 절기다. 전 국민이 축제에 몰입되어 있을 때 재해가 발생할 수 있다. 축구의 선진국으로 자처하며 다른 나라를 깔보고 교만을 떨던 우승후보들이 자멸하고 떠났다.

 성경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에 앞잡이니라”는 말이 월드컵에서 돋보인다.또 훌리건에 신물이 난 여러 나라에 한국의 성숙한 응원문화를 전수하는 기회가 되었다.그리고 일본이 친절하지만 접근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한국은 친절하며 껴안아주는 정의 문화를 보여주었다.월드컵으로 들뜬 기분에서 제자리로 돌아갈 때다. 공격이 끝나면 빨리 제자리로 돌아와 공격에 대비할 때 후회의 골을 먹지 않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사막 여행의 교훈
 
동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밤에 말을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던 세 사람이 이상한 나그네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나그네는 그들에게 얼마가지 않아 마른 시내 하나를 건너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당신 들이 그곳에 도착하거든 말에서 내려 시내에서 자갈들을 주워 자루와 호주머니에 채우도록 하시오.그리고 나서 계속 여행하다가 해가 뜰 때 당신들이 주운 자갈들을 살펴보시오. 당신들은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애석해 할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처럼, 세 사람은 마른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많은 자갈들 중에 몇 개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 날해가 뜰 무렵 그들은 주워 온 자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갈들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매랄드 및 기타 여러 가지 보석들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막에서 만났던 나그네의 말을 떠올린 그들은 그제야 그 나그네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이 보석으로 변해있어 기뻤습니다. 그러나 더 많이 주워오지 않은 것이 애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당신이 성경에서 캐낸 진리들이 영적 보석들로 바뀌어 당신의 금고를 채워갈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더욱 부요해질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 때는 쉽게.... 

 
 
 
기러기의 교훈
 
기러기는 갈매기처럼 날개의 힘이 강하게 두루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평범한 새들처럼 보이며 철따라 이동할 때만 눈길을 끈다. 그들은 서로 날개 끝을 맞대고 난다. 바로 그것이 그들 힘의 비결이다. 이러기는 떼를 지어 함께 날음으로써 단독 비행거리의 71%를 더 날 수가 있다. 앞장선 기러기가 공기를 뚫고 날아오르며 그때 생기는 부력이 뒤따르는 두 마리 기러기에게 힘을 미친다. 그리고 그들의 날개 짓 역시 뒤따르는 기러기들에게 힘이 된다.

기러기는 교대로 선두에 나서며 지치면 끝으로 처져 숨을 돌린다. 그러다 병이 들어 무리하게 떨어지더라도 결코 버림받지 않는다. 무리 중에 기운 센 기러기 한 마리가 휴식처를 안내하며 다시 날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서로에 대해 이러한 교훈을 배울수는 없을까????
최소한 날아가는 것을 방해만 하지 않아도 좋을텐데..

 

 
 
베빌이 준 교훈
 
미국의 엘리버마 주의 한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기념비가 서 있다고 합니다. “목화(木花)를 갉아먹어 우리에게 번영을 준 베빌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본래 엘리버마 주는 목화를 재배하여 주된 수입을 올리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목화가 탐스럽게 익어 수확을 거둘 무렵에 목화가 모두 시들어 버린 것입니다. 후에 알아본 결과 ‘베빌’이라는 벌레가 목화를 모두 먹어치우는 바람에 목화농사가 망쳐진 것이었습니다. 모든 농부들은 깊은 절망과 실의에 빠져있었습니다. 그 때 땅콩에 관한 일가견을 갖고 있던 카버 박사라는 사람이 목화를 모두 뽑아내고 땅콩을 심도록 권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카버 박사의 제의를 받아들여 땅콩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긴 했지만 ‘하나님이 주신 땅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땅콩농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목화재배 때 보다 훨씬 많은 이윤을 얻게 되었고, 목화 산업이 시들해져 다른 지역에서 목화농사 하던 농부들이 시름을 앓고 있을 때도 그들은 활기 있게 땅콩농사를 지으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엘리버마의 땅콩은 이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베빌’이 그들의 목화를 갉아먹고 있을 때 그들은 위기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고 기회를 찾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그들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입니다. 엘리버마 농민들에게 있어 ‘베빌’이라는 벌레는 감사의 대상이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삶의 모든 분야에 ‘베빌’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께 기회입니다. 불행한 오늘을 축복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어둠은 영원토록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엘리버마 농부들의 삶의 지혜를 이제는 배워야 할 때입니다. 

 
 
 
훈계에 담긴 하나님의 손길
 
훈계는 축복을 가져오는 전조이다. 그러나 올바르게 받을 때만 그 축복을 향유할 수 있다. 훈계를 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우리 책임이고 할 일이다. 소화시키지 못하는 음식이 결코 몸에 유익하지 않은 것처럼 훈계도 바르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성격이 황폐케 된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 “왜”라고 불만 가득해서 반문한다면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일순간에 허물어뜨리게 된다.


이는 하나님을 변덕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자신의 잘못까지도 하나님께 전가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시키는 목적은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려 함이 아니라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때에 따라 가지도 치시고, 약도 뿌리시며 우리를 돌보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훈계에는 목적이 있다. 문제는 우리의 반응이다.


 훈계가 우리를 부드럽게도 하고 절제케도 하며 강건하게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완악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게도 만든다. 이것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한다면 이것은 조금 높은 경지에 속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큰 영광 받으시고 우리를 복으로 이끄시게 하려면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찬송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가을이 주는 교훈
 
요한복음 15:1∼8

찌는 듯한 무더위는 어디로 사라지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벌써 가을도 중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봄은 씨를 뿌려 싹이 나는 때요,여름은 자라는 때라면 가을은 각종 초목의 열매가 무르익어 거두는 때입니다.
가을의 특색을 생각하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가을의 특색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봄의 자랑은 꽃이요,여름의 특색은 녹음이요,가을의 즐거움은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매 없는 가을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가을에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무척 슬픈 일입니다. 농부들의 유일한 희망은 가을철의 열매에 있으며 사람마다 이 열매로 인해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5장 2절에 보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거해 버리시고”라고 말씀하셨고 마가복음 11장 12절 이하에는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 시장하셔서 무화과 나무를 찾아서 열매를 구했으나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으므로 섭섭하셔서 다시는 열매를 그 나무로부터 따먹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제자들이 다시 그길을 지나치다보니 그 나무가 뿌리에서부터 말라버렸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것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선민다운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교훈하신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가을의 특색은 모든 것의 진상을 그대로 확실히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봄에는 모두가 같아 보이고 모두가 아름다워 보이나 가을에는 모든 것이 그 진상을 밝히 드러내게 됩니다. 좋은 곡식인지 가라지인지,좋은 열매인지 나쁜 열매인지,인간에게 유익한 채소인지 해로운 풀인지 제각기 종류와 품질을 밝히 나타내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판에 나가보면 좋은 곡식은 알이 많이 들어있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쭉정이나 가라지는 우뚝 서서 고개를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농부들은 이 가라지를 뽑아버립니다. 그러니 가을이야말로 천지의 대의와 우주의 섭리가 그 권위를 나타내는 때이기에 대지 안에 사는 모든 만물은 그 원상과 본질을 감출 수도,바꿀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17절 이하에 보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데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불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셋째, 가을의 특색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밭이나 논에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심었는지는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벼를 심은 데서는 벼를 거두고 콩을 심은 데서는 콩을 거둡니다. 좋은 씨를 심었는지 좋지 못한 씨를 심었는지는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결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는 심지도 않고 부지런히 가꾸지도 않은 채 가을에 낫을 들고 거두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남의 곡식에 손을 대는 강도와도 같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이른 아침에 들에 나가 곡식을 뿌리는 농부가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천국 잔치에 참여하려면 부지런히,열심히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야 합니다.


또한 많이 심었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었으면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을 때 정성들여 심었는지 아무렇게나 심었는지,또 심은 후에 부지런히 정성껏 가꾸었는지 전혀 돌보지 않았는지는 가을에 이르러 완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가을을 맞이하면서 인생에도 결실의 계절이 있음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썩은 사과 교훈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 로버트가 거칠고 무례한 소년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정원에서 빨간 사과 여섯 개를 따다가 쟁반 위에 얹어놓고 로버트 앞에 내밀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사과는 아 직 익은게 아니니까 다 익을 때까지 며칠 그대로 간직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사과를 보관해두면서 완전히 썩어버린 하나를 그 여섯 개의 사과들 과 함께 두었다. 이것을 본 아들은 "썩은 사과가 다른 사과를 모두 썩게 할 텐데…" 하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싱싱한 사과가 썩은 사과 를 싱싱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니?"라고 했다.


 그로부터 8일이 지난 뒤 사과 를 꺼내왔는데 과연 모두 썩어버렸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아들을 타일렀다. "얘야,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 면 너도 결국 나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여러 번 말하지 않았더냐? 이 좋은 사 과 6개가 한 개의 썩은 사과를 싱싱하게 만들지 못할 뿐더러 싱싱한 6개 모두 썩어버린 것을 보면 나쁜 친구와 사귈 때 네가 장차 어떻게 될지 이제는 깨닫 겠느냐!" 유대인들에게 누룩은 죄악과 부패를 상징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의 누룩이란 저들의 형식적이고 현실주의적인 교훈을 말하는 것이다. 

 
 
 
프랭클린의 13진법
 
피뢰침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저명한 정치가와 문필가였다. 그는 자신이 읽은 수천 권의 책을 간략하게 간추려 황금률 13가지를 만들었다.

1. 절제- 배부르게 먹지 말라.
2. 침묵- 정말필요하지 않은 말은 하지 말라.
3. 규율-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옳은 법이다.
4. 결단 - 결심한 일은 반드시 실행하라.
5. 절약- 이익이 없는 일에는 절대로 돈을 쓰지 말라.
6. 근면- 언제나 유익한 일을 하라.
7. 성실- 깨끗한 것만 생각하고 속임수로 남을 해치지 말라.
8. 정의- 타인의 이익을 빼앗지 말라.
9. 중용- 극단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10. 청결- 주변에 불결한 흔적을 남기지 말라.
11. 평정- 사소한 일에 평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
12. 순결- 건강과 출산을 위해서만 사랑을 나눠라.
13. 겸손-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

그는 이와 같은 인생 교훈을 완성하긴 했지만 그 덕목들을 고르게 갖춘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13가지 덕목들을 일정한 기간을 정해두고 한 가지씩 순서대로 완성해 가기로 했다. 먼저 그는 ‘절제’의 미덕으로부터 완성한 다음 ‘침묵’의 미덕으로 옮겨 가며 그날그날의 훈련 성취도를 수첩에 기록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그 주간이 넘어가기 전에 보충해갔다. 바로 그것이 17세 가출 청소년이 미국 헌법 제정위원과 펜실베니아 총독, 펜실베니아 대학 설립자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도 시도해보라. 
 
 
값진 죽음
 
미국의 어느 지방에 철도가 있었는데, 철도 연변으로 어느 소년이 통학을 하게 되었다. 이 소년이 철도를 지나던 때면 어김없이기차가 지나곤 했다.
 하루는 소년이 철도 연변으로 걸어서 학교에 가고 있는데 지난 밤에 내린 폭우로 철도가 끊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간을 보니 기차가 지나갈 시 간 이었다.
소년을 기차를 멈추게 할 방법을 생각했으나 방 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급해진 소년은 자기의 셔츠를 벗었 다.
 그리고 가방에서 작은 칼을 꺼내서 자기의 넓적다리의 동 맥을 푹 찔러 흰 셔츠를 붉게 물들이고 달려오는 기차쪽으로 흔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스톱! 스톱!`기관사가 붉은 깃발 을보고 기차를 세우기 시작했다.


기차가 소년 앞에 멎었고 기 관사가 내려다 보니 철도가 끊어져 있었다.

소년은 주일학교 때부터 들은 밀알의 교훈을 실천한것이었다. 
 
 
모차르트의 교훈
 
35년이란 짧은 생을 살며 600여 곡의 작품을 남긴 위대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91)는 그에게 음악을 배우려 찾아오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날도 모차르트에게 음악을 배우려 한 청년이 찾아왔다. 모차르트는 늘 하던 대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그 청년이 대답했다. “예,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쳤고, 바이올린도 10년을 배웠지요.” 그의 대답을 들은 모차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로 받아들이겠으니 원래 수업료의 두 배를 내라고 말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청년 하나가 찾아와서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다. 이번에도 역시 모차르트는 동일하게 물었다. “당신은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그 질문에 청년은 아주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저는 전에 음악을 배운 적은 없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혹시 모차르트가 음악을 모르는 자기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뜻밖에도 “좋습니다. 제자로 받아들이겠으니 수업료를 반만 내십시오.” 하면서 의외의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미리 와서 새로운 청년과 대화를 나누는 모차르트를 유심히 바라보던 청년이 모차르트에게 항의하듯 되물었다. “모차르트님! 음악을 전혀 모르는 저 사람에게는 수업료를 반만 내라고 하시고, 10년이나 음악을 공부한 저에게는 수업료를 두 배로 내라고 하시니 그건 부당한 처사가 아닙니까!”

그러자 모차르트는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여보게! 음악을 배운 사람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나는 먼저 잘못된 음악습관이나 태도를 고쳐주네. 그런데 그러한 일은 아주 힘이 들더라구.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나쁜 버릇이나 태도를 바로 고쳐주는 일은 그냥 음악을 가르치는 것보다 배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야. 그러나 음악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그런 나쁜 습관이 없기 때문에 바로 음악을 가르칠 수 있지. 그리고 저 청년에게는 배우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이 있지 않은가!” 
 
 
 
친구
 
어떤 사람 집에 친구가 찾아오더니 달포가 넘도록 공밥을 먹고 좀체 가려 하지
았다.
참다 못한 주인이 친구와 함께 대문 앞을 거닐고 있노라니까 닭보다 커 보이는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나무에 내려 앉았다.
그러자 주인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서둘러 말했다.


`여보게 여기서 잠깐 기다리게. 내 이제 도끼를 가지고 와서 저 나무를 찍어 넘어
뜨리고 새를 잡겠네. 그러면 오늘 저녁 자네에게 대접할 찬거리는 될 걸세.`
친구가



`하지만 나무를 찍는 동안 새가 날아가 버리지 않겠나?`
하고 물었더니 주인은 고개를 크게 젓고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걸세. 저 새는 원래 멍청한 놈이라서 나무가 자빠져도 꼼짝도 안하
고 늘어붙어 있을 것이니 두고 보게.`
 
 
믿은 후에 깨달은 교훈
 
믿은 후에 깨달은 교훈
 
주님께서는 나에게 놀이방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그분이 묻지 않기를 바랐다. 거기에는 나를 위해 간직하고 싶은 어떠한 모임과 교제, 활동 그리고 즐거움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내가 대학 친구 몇 명과 만나기 위해 나가려고 할 때 주님께서는 눈짓으로 나를 멈추게 하고는 물으셨다. “오늘 저녁에 외출하려고 하느냐?” “네.” “그렇다면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 “저… .” 나는 꽤 당황하며 대답했다. “저는 주님께서 정말로 가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일 저녁에 함께 나가기로 하죠. 내일 저녁에는 기도 모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다른 약속이 있어서… .” “유감스럽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집에 왔을 때, 우리는 동반자가 되어 모든 일을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와 함께 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네가 알았으면 좋겠구나.” “글쎄요.” 나는 문으로 살짝 빠져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내일은 주님과 함께 간다니까요.”
그 날 저녁 나는 아주 비참한 시간을 보냈다.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분이 기뻐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한 장소에 가고 그분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면서 나의 교제에서 그분을 고의로 빼 버릴 때, 나는 주님께 어떠한 친구일까?
그 날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주님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들어갔다. “주님, 저는 교훈을 한 가지 깨달았습니다. 주님 없이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없어요. 우리는 모든 일을 함께 해야겠어요.” 그때에 주님과 나는 내 집의 놀이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주님께서는 그 방을 변화시키셨다. 그분께서는 새로운 친구로서, 새로운 만족으로서, 계속되는 기쁨을 가지시고 내 삶속으로 들어오셨다.(K.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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