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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예화모음 17편

by 【고동엽】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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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6).

올해도 어김없이 신문지상에 고속도로 진, 출입 안내도가 실리고, 가장 덜 막히는 귀성, 귀경 시간을 예측하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일명 '민족 대이동'의 서막이 올랐다.

이 귀성 전쟁은 고향에 가기 위해 몇달 전부터 밤샘하며 표를 사는 나라, 평소 2~3시간이면 가던 곳을 10시간 넘게 가야 하는 교통체증에 해마다 시달리면서도 무엇에 홀린 듯 모두들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나라에서는 흔히 겪는 일이다.

프랑스 태생의 이다도시 씨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고향에 가는 일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아무리 어렵고 위험해도 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연어들처럼." 고향은 그 이름만으로도 언제나 따뜻한 울타리이다.

 

 

 
 
 

 

 

가장 행복한 명절을 만들어 보자
 
기윤실, 행복한 명절을 위한 실천사항 20가지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현대사회에서 명절은 흩어진 가족이 다시 모여 따뜻한 정을 나누며, 가족의 의미와 정체성을 일깨우는 가정을 회복시키는 즐거운 날이다.

하지만 이 명절은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살아온 가족들의 오랜만의 만남이어서, 자칫하면 갈등의 자리가 될 수도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건강가정운동본부(위원장 이의용)는 먹는 문화와 놀이문화를 개선하고, 빈부, 세대, 정치관, 종교관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예방함으로 행복한 명절로 삼자며 실천사항 20가지를 제안했다.

'가장 행복한 명절 만들기 캠페인'

▲ 먹는 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자.
1. 음식의 종류와 양을 적당히 하자.
2. 음식 장만하는 시간을 줄여 가족간 대화의 시간을 갖자
3. 음식은 각 가정에서 나누어 만들어오자.
4. 남성들도 음식 마련을 돕자.
5. 과식을 하지 말자.
6. 설거지는 남성들이 맡아 해보자.

▲ 대화와 놀이를 회복시키자.
7. 텔레비전과 컴퓨터는 가급적 켜지 말자.
8. 화투놀이는 하지 말자.
9.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윷놀이, 볼링, 노래방 놀이를 하자.
10. 가족간에 칭찬과 격려와 위로의 말을 많이 나누자. (감사해요, 미안해요, 멋져요 등)
11.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말을 많이 듣자.

▲ 빈부의 차이, 세대의 차이, 정치관의 차이, 종교관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예방하자.
12.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실직한 가족을 격려하고 자존심을 지켜주자.
13. 세뱃돈은 한데 모아 공동으로 나눠주자.
14. 부모님과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하자. 부부간에, 형제간에도 세배를 하자.
15. 연로하신 어른들을 정성껏 섬기자.
16. 아들과 며느리에게 처가와 친정도 방문하도록 배려하자.
17. 정치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자.
18. 신앙의 양심은 지키되, 다른 종교 의식이나 제례문화를 존중하고, 다른 부분은 사랑과 지혜로 넉넉히 수용하자.
19. 종교 논쟁을 하지 말자.
20.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가족에게 전화로 인사를 하자. 

 

 

 
 
 

 

 

명절 문화를 제안한다
 
우리 민족의 큰 명절 설날이 다가온다. 그러나 설날이 되어도 여전히 교회 생활로 바쁜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다. 교회나 각 기관에서 마련한 윷놀이, 부흥회 그리고 또 다른 특별 행사에 참여하느라 설날은 그저 교회 생활을 돕는 공휴일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동안 주일마다 예배를 우선해서 살다보니 주변에서 치루는 각종 경조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을 보살피기보다 교회에서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 산 결과이다. 가족과 주변 이웃들 그리고 친인척들에게 시쳇말로 ‘교회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평소 챙겨주지 못했던 가족, 친척, 이웃들을 섬기는 명절로 지내는 것이 어떨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드리는 설날의 의미를 살려보는 것이다.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크리스천에게는 설날을 만남과 섬김, 비크리스천에게는 전도의 기회로 만들어 보자.
그동안 우물 안 크리스천이란 말을 들어왔다면 교회 중심의 명절이 아닌 가족과 이웃, 친인척 중심의 명절로 지내보자. 설날만큼은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사람들을 챙기며 섬겨 보자. 설날에 가족과 친척, 이웃을 섬길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세배 때 축복 기도해 주기

우선 새해 첫 날에 세배하는 것을 잊지 말자. 이때 친척과 주변 이웃 등 찾아갈 사람들의 목록을 정리해 두고 미리 계획을 세워 짧은 명절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어른들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뵙고 세배 드리고, 찾아온 사람에게는 세뱃돈 대신 축복 기도로 복을 빌어 주자. 야곱이 노년에 손자들에게 축복 기도해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제사 문제는 정면 돌파하기

제사 문제로 고민하는 크리스천들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크리스천들은 제사 문제에 등을 돌리고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자연스레 서로 왕래가 끊어지고 관계가 악화되기 십상이다. 이젠 피하지 말자. 불과 500년밖에 되지 않은 제사의 역사가 우리의 전통이 아님을 상기시키자(본지 2002년 10월 1일자 51p, www.durano.com/sl/htm/ 20020901/sp_20020901_51.asp 참조). 그리고 가족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예배로 이끌자. 물론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절은 하지 말되 관계성을 고려해 그 자리에서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명절 기간 동안 다른 친척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이런 일에 소홀하던 크리스천들이 나선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게다가 명절만 되면 여자의 몫이라던 주방 일에 남자가 나선다면 “역시”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카드로 이웃·친척 초대하기

그동안 명절만 되면 가장 피곤한 것 중 하나가 손님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요즘은 개인 휴대 통신이 발달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모든 사람들을 비슷한 시간에 맞춰서 맞아들이기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이젠 초청 명단을 구성하고 카드에 적어 초대해 보자. 설날이면 어느 집에 가더라도 먹을 수 있는 같은 음식이라도 일단 초청장을 받고 가는 곳이라면 분위기부터 다르다.
하루에 몰아서 손님을 맞는다면 다른 날에는 손쉽게 방문 계획을 잡을 수도 있다. 이때 집의 넓고 좁음과 부유하고 궁색함을 넘어 잘 정돈하고 단장한 뒤 음식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줘 크리스천 가족 분위기의 남다름을 느끼게 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초청 카드를 직접 만든다면 더 좋은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명절이 지나가도록 왕래가 없는 친척이나 이웃이 있다면 신년 축하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보내자. 전자 메일·카드에 익숙한 시대에 오히려 더 좋은 반응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려운 이웃에게 설음식 나누기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명절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 특히 명절만 되면 그들의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더 많이 전해지곤 한다.
사회 복지 시설이나 양로원, 쪽방, 쉼터 등을 찾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같은 동네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 보자. 각 읍·면·동사무소에 가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선물을 준비하거나 돈으로 전달할 수도 있지만 떡국이나 만두국, 식혜, 수정과, 잡채, 전 등 전통 설날 음식을 손수 만들어 정성을 담아 나누는 것도 좋다.

가족과 함께 연날리기

불과 10여 년 전 만하더라도 새해가 되면 연을 만들어 날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날리기는 그 해의 재앙이나 못된 액을 연에 실어서 날려보내는 행위로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 행한 풍속이다.
이를 활용해 새해에 자신과 가족의 기도 제목을 적어 연에 날려보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자녀들에게 우리 고유의 전통 놀이를 가르칠 수 있고, 그동안 부족했던 가족 간의 관계 다지기에도 보탬이 된다.
또 한해를 어떻게 살 것인지 이야기하고 1년 동안 기도할 가족과 개인의 기도 제목을 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공휴일만 되면 북새통을 이루는 놀이공원을 찾기보다 새해 첫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의미도 찾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이외에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그동안 크리스천들이 하지 못했던 친척과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더 좋은 제안들이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명절 마지막 날 저녁에는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지난해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새해 계획을 나누며 덕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보다 뜻깊은 명절이 되겠다. 
 

 

 

 
 
 

 

 

명절 ‘남편 10계명’
 
 ‘추석명절 남편이 지켜야 할 10계명’


1. 장보기 등 집안 일에 솔선수범한다. 설거지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뒷정리라도 같이 해준다.

2. 아내가 일할 때는 절대로 고스톱을 치거나 술 마시며 놀지 않는다. 꼭 놀고 싶다면 아내를 끼워준다.

3. 고향친구 만나기, 어른들 인사하기 등 집 밖에 나가야 할 때는 반드시 아내를 동반한다.

4. 수고한다는 말을 틈만 나면 한다.

5. 어른들이나 동서 등에게 아내한테 잘해주라고 애교성 발언을 한다.

6. 아내를 방으로 불러 10분이라도 쉬게 해준다.

7. 명절 가족모임이 모두 끝나면 서둘러 일어난다.

8. 명절 뒤 일주일 동안은 가능한 가사에서 해방시킨다.

9. 아내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10.처가를 챙긴다. 

 

 

 

 
 
 

 

 

명절 스트레스 없이 사는 행복한 주부들
 
추석이 있는 9월, 주부라면 '윽~ 또 지긋지긋한 명절이군!' 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명절 증후군이 생겨났을 정도로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노동에 주부들의 스트레스는 늘어만 간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평등한 명절문화를 실천하는 것은 진정 그림의 떡일까? '여성조선'에서 명절 스트레스 없이 사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Part 1 이 가족, 칭찬합시다!

명절 스트레스 '제로'를 실현하는 평등 부부
한상수·강현정 씨 가족

주부의 고충을 해소하는 이론과 실전으로 중무장한 남편 한상수 씨(38)와 시부모님 모시는 결혼 생활 10년 동안 명절 스트레스 모르고 살았다는 강현정 씨(35) 부부. 3대가 한집에 살면서도 아내의 1인 다역 스트레스, 고부갈등, 명절 후유증이 없는 비결을 들어본다.

경기도 일산에서 3대, 5식구가 함께 사는 한상수 씨 네. 설날은 본가에서 보내고, 추석은 경남 진해에 있는 처가에서 보낸다. 결혼 첫해부터 10년간 변함없다. 서두르지 않으면 20시간 이상을 지루하게 달려야 하는 거리이니 명절 이틀 전쯤 처가로 가서 3∼4일을 지내고 온다. 남편이 제안했고, 시부모가 묵인했고, 아랫동서도 지지한다.
“처가가 멀어 아내는 1년에 겨우 한 번 집에 내려갑니다. 제수씨는 친정이 가까워 수시로 들를 수 있거든요. 게다가 아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있으니 제수씨가 추석에 좀더 수고해도 불공평한 건 아닙니다. 다행히 잘 따라주고 있어 고맙지만요. 부모님요? 언짢은 내색은 안 하지만…, 동의하지 않아도 세대가 다르니까 받아들이는 거죠.”


장남이 명절에 집을 비우니 오히려 주변에서 말이 많다. 장인·장모는 반가운 한편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래도 단호하게 밀어붙인다. 이러저러한 상황에 밀리면 1년에 한 번 하던 게 3년에 한 번이 되고, 그 다음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러니 아내 강현정 씨는 명절 스트레스가 없다. 친정에서도 앞치마 두르고 물에 손 담그기는 매한가지지만, 중압감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추석을 보내고 나면 설날에도 힘든 줄 모른다. 오히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아랫동서보다 부침개 한 장이라도 더 부치고, 그릇 한 개라도 더 씻는다. 어른들 생신이나 다른 집안일에도 마찬가지다.


남편도 돕는다. 며느리 둘이 주방에서 재료를 다듬으면, 남편과 시어머니가 거실에서 전을 부치는 게 이 집안 명절 풍경이다. 두세 시쯤이면 일이 뚝딱 끝난다. 명절을 치르고 나면 남편은 아내의 수고를 위로해준다. '봉투'가 곁들여지기도 한다. 친구들 만나 영화보고 외식하며 스트레스 해소하라는 배려이다. 

 

 

 
 
 

 

 

아내의 일방적인 희생보다 가족의 조화가 필요
 
강현정 씨는 시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무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동트기 직전까지 작업하고 잠자리에 든 날은 굳이 아침 일찍 일어나려 수선 피우지 않는 거다. 엄마가 늦잠을 자면 아이는 혼자 일어나 준비하고 엄마를 깨우지 않으려 살금살금 집을 나선다. 어른들 생각도 마찬가지다. 거동에 불편이 없고 건강하니까 '자기 남편 자기가 챙기기' 주의다. 국 하나 끓이기만 하면 되는데, 아침밥 생각도 없는 며느리가 단지 시부모 아침상 봐주려 잠 설치며 기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내는 자기 것 다 포기하고 가정에 헌신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그건 잘하고 있는 거죠. 일방적인 희생은 본인도 힘들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대가를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상대도 힘들게 만듭니다. 함께 사는 가족인데, 하루 이틀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잖습니까.”
가사는 온가족이 분담한다. 요리나 다림질처럼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일은 강현정 씨의 몫이다. 대신 한상수 씨는 청소나 이불빨래처럼 힘쓰는 일이나 설거지와 같은 단순노동에 동참한다. 쓰레기 분리수거나 빨래는 시어머니가 담당한다. 지훈이? 보고 배운 대로 따라 한다. 청소도 거들고 설거지도 거들고, 시간 나는 대로 힘닿는 만큼 한다.


“아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식구들이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내 집이니까 내가 치우는 거죠. 집안일을 어떻게 회사 업무처럼 담당 정해 두고, 완수 못하면 벌당 주고 하겠어요.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해주고, 각자의 몫을 상대에게 미루지 않을 뿐이죠.”
부부만 사는 단출한 집이야 남편이 앞치마 두르고 고무장갑 낄 수도 있지만, 시어른들 모시고 사는 집에서 가사분담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작이 힘들뿐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익숙해지면 모두가 인정하는 관행이 된다는 게 한상수 씨 생각이다. 

 

 

 
 
 

 

 

대화 없으면 남편은 아내 고충 모른다
 
여자들이 명절에 힘든 건 일의 분량 때문이 아니라는 게 강현정 씨 생각이다. 허리가 휘도록 나물 다듬고 전 부치는데, 나 몰라라 하는 남편이 미운 거다. 고충을 호소하는 아내에게 '남들 다 하는데, 왜 당신만 수선이냐'고 윽박지르는 남편이 야속한 거다.
“직장도 그렇잖아요. 일 자체 때문에 고달프기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크지요. 가정사도 마찬가지예요.”
이들 부부는 이 땅의 모든 남편과 아내에게 끊임없는 대화를 제안한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입장을 잘 모른다. '말 안 한다고 모르나'싶은 아내는 꾹꾹 참다가 한번에 죄다 폭발시킨다.


한 번 얘기해서 모른다고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명절에도 음식 만들기에 남편을 동참시켜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설거지라도 맡게 해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아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봐 주거나 잔심부름이라도 해야 하고, 남편이 그것조차 꺼린다면 일이 모두 끝난 후 영화를 보거나 외식을 한다는 약속이라도 받아두라는 거다.


동서간에 담합해 일의 양을 줄이는 것도 좋다. 명절에는 음식이 풍성해야 하고, 차례 끝나면 식구들 싸서 보낼 음식량도 감안해야 한다는 게 어른들 생각이다. 하지만 명절 후에 남은 떡이며 부침개를 냉동실 자리가 부족하게 밀어 넣은 후 두고두고 해결해야 하는 사정은 집집마다 비슷하다. 이래저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에 '여성신문'에서 명절에 친정과 시댁을 번갈아 가거나 동서들이 순서대로 한 번씩 친정에 가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한상수 씨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건 아내가 주장하기에는 힘든 영역이다. 남편들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직장에서는 진보적이지만, 가정에서는 여전히 여성에게 불리한 전통을 고집하는 남편이 많습니다.



그건 남자들이 이기적이거나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다만 아내의 고충을 잘 모르고, 관행에 쉽게 물들어 가는 것뿐이죠.”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 쌓은 행복은 토대가 탄탄하지 않다. 대화로 서로의 생각을 알려주고 책을 통해 입장 바꿔 생각하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 '스위트 홈'을 일군 한상수 씨 가족의 행복 비결이다.

 

 

 
 
 

 

 

사다리 타기로 조 짜서 온 가족이 함께 일해요
 
시댁은 전통적인 시골집인지라 모든 일은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가 도맡아 했습니다. 여자들은 송편 빚고, 가래떡 썰고, TV보며 웃고 떠드는 남자들을 위한 간식거리도 마련해야 했죠. 결혼 1년 후 전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여자들만 이렇게 죽어라 일해야 하냐”며 시아버지께 따졌습니다. 남자들도 같이 일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죠


.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 꼭 맞았습니다. 요즘은 형님 내외, 도련님, 아가씨뿐만 아니라 시아버지까지, 모든 가족이 일을 분담합니다. 특히 사다리 타기 게임을 이용하면 효율적이에요.
조 짜서 설거지하고, 야채 다듬고, 전 부치기 등을 합니다. 또 좀 한가해지면 가까운 온천에도 갑니다.
서로 등 밀어주고, 이런저런 얘기하다보면 고부간, 시누이간 갈등은 소리 없이 사라진답니다. 

 

 

 
 
 

 

 

우리 집'명절 평등지수'는 몇 점일까?
 
이번 추석에는 우리 가족의 평등지수를 한번 산출해보자. 불합리한 남녀 차별요소가 있다면 찾아 고쳐보는 것은 어떨까? 점검표 합계가 25점 이상이면 평등가족, 1∼24점이면 개선여지가 있는 불평등가족, 0점 이하면 위험 수준의 불평등가족이다.

1. 명절 중 한번은 며느리를 친정으로 먼저 보낸다.(10점)
2. 전 부치기, 송편 빚기 등 명절 음식 만들기에 남녀가 함께 한다.(5점)
3. 설거지를 함께 한다.(3점)
4. 명절 시장을 함께 본다.(1점)
5. 명절 상차림을 함께 한다.(1점)
6. 명절은 아들·딸 집을 번갈아가면서 지낸다.(10점)
7. 명절은 항상 집안의 장남 집에서 보낸다.(-3점)
8. 명절에 윷놀이나 고궁나들이 등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공동놀이가 있다.(5점)
9. 명절에 항상 남성 중심의 화투놀이와 술판이 벌어진다.(-3점)
10. 제사를 지낼 때 남녀가 함께 절한다.(3점)
11. 명절 선물은 시댁과 친정에 동일하게 한다.(3점)
12. 용돈이나 세뱃돈은 딸이나 손녀보다 아들·손자에게 더 많이 준다.(-3점)
13. 명절에 생리하는 여성은 부정타서 음식을 만들면 안 된다.(-3점)
14. 제사 음식 중 여자가 만지면 안 되는 것이 있다.(-3점)
15. 명절에 여자가 전화나 방문을 하면 재수가 없다(-3점)
16. 명절에 여성에 대한 금기사항이 따로 없다.(5점) 

 

 

 
 
 

 

 

추석명절과 감사신앙
 
히11:11-13
각 나라와 민족마다 고유의 명절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3대 절기를 매년 지켜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도 정월의 설날과 오월의 단오절, 그리고 팔월의 한가위 추석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10월 1일은 금년의 추석명절입니다.
추석명절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감사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이든 일년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땀흘려 지은 농산물을 가을에 수확하고는 각기 나름대로 축제의 명절을 갖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 해에 거둔 햇곡식으로 조상께 제사를 드리는 추석명절이 있는데 이 제사의 방법도 일종의 감사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석 명절의 기원은 삼국시기 유리왕 때에 여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길쌈놀이를 하다가, 이날만 되면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고 햇과일을 서로 나눠 먹는 날로 지낸 것이 추석명절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추석명절을 맞아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1. 본향을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인생을 외국인과 나그네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외국인이란 낯선 사람이라는 뜻이며, 본국 사람들에게 좀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 경멸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언어, 풍속, 생활양식이 달라서 이방시되고 끝까지 이질적으로 취급되고 멸시받는 사람을 통틀어 본문에서는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또한 나그네라는 말은 임시로 거주하는 자를 말합니다.
자기는 자기대로 고향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든지 간에 얼마동안 한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고로 이 현재라는 것은 항상 임시적이므로 엄격한 뜻에서 우리는 모두 나그네입니다.

먼 외국 땅에서 조상들이 멀리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면서 고달픈 나그네의 서러운 정을 달래 온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 속에 깊이 스며든 향수심과 타향의 한, 그것도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8월 한가위가 되면 모두들 고향을 찾아 떠나갑니다.
객지 생활에 쫓기고, 고달픈 생활 때문에 잊어진 고향생각이 8월 한가위가 되면 더욱 살아나고 고향을 향한 마음으로 들뜨기 시작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추석명절은 고향을 찾아 돌아가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향! 그 얼마나 정다운 곳입니까?
그리운 고향산천,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정답던 옛친구들, 생각만 해도 아름답고 좋은 곳입니다.

거기에는 고독을 달래주는 인정이 넘칩니다.
마음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다운 친구와 친척이 있습니다.
넘어질 때 붙들어주는 이웃과 슬픔을 당할 때, 위로해 주는 따뜻한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고향은 힘찬 용기와 희망의 원천인 것처럼 우리가 돌아갈 저 본향지는 고달픈 나그네길의 한 모퉁이에서 방황하는 인생에겐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추석명절에 고향을 찾는 기쁨과 감사함이 있듯이, 우리는 영원한 본향을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의 고향, 즉 우리가 태어나서 부모님의 슬하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육신의 고향이 있듯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우리에게는 영적인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시는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면서 자기 육신이 태어난 고향보다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그들을 위해서 눈물도, 고통도, 애통함도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과 우리를 위해 본향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로운 땅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기쁨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동물 중에 귀소본능(歸巢本能)을 가진 동물이 많이 있습니다.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그런 동물을 보니까, 한갓 미물이라도 우러러보게 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언젠가 강원도 양양에 있는 남대천 연어 양식장에 갔다가 우연찮게 연어의 행태를 구경한 적이 있었습니다.
연어는 제가 태어난 곳에서 넓은 바다로 나가 3년 동안 지내다가 큰 물고기로 자란 연어는 새끼를 낳으러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단순히 바다에서 왔다, 갔다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강으로, 강에서 개천으로, 개천에서 자신이 태어난 연못으로 돌아옵니다.
수많은 연어가 세찬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고 푹포를 뛰어 올라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떨어지는 물보다 더 빨리 올라간다는 얘기입니다.
수많은 연어들이 몇 십 번이고 그렇게 뛰어오릅니다.
그런데 못된 사람들이 폭포 밑에서 올라가려고 모여드는 물고기들을 낚아챕니다.
그래도 연어는 일심으로 고향을 찾아갑니다.
자기가 태어난 곳에 가서 알을 낳고 죽습니다.
절대본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향! 우리는 돌아갈 고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떠나온 고향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입니다.
떠나온 고향을 생각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돌아갈 곳은 그 고향이 아닙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대로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조상들은 다 고향을 떠나 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고, 이삭도 그렇고, 요셉과 모세와 룻과 에스더, 다니엘…등등 다 고향을 떠나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돌아갈 참 고향이 있음을 말씀하는 것이요, 약속의 땅이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이라고 하는 이 현실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외국인과 나그네의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기고 계시기 때문에, 이 타향 생활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참 고향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일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한가위 명절을 수 십 번이나 지냈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고향만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성도님에게도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연어와 같이 우리가 태어난 영원한 하늘 나라를 본향을 주신 것을, 성경 히브리서 11잘 14절에 "이 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고 말씀해 주셨으니, 위로와 소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약속을 땅에서 받지 못하고, 하늘에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현실이요, 과정입니다.
어차피 다 가질 것도 못되고, 다 할 수도 없고, 또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참 고향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약속해주신 참 고향, 우리에게는 갈 수 있는 고향보다, 더 나은 본향을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추석명절을 감사의 명절로 지킵시다.

추석하면 풍성한 햇과일과 햇곡식을 가지고 음식을 나누어 먹게 되는데, 좋은 오곡백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명절이 되야 합니다.
곡식을 잘 자라 열매맺도록 햇빛과 비를 내려 잘 길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먹어야 합니다.
성경에 "감사하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그 자손이 땅에서 강성하고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넘치게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명절만 돌아오면 걱정부터 앞서고, 재정적인 문제, 과중한 일, 시댁 식구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추석명절을 기하여 부모와 형제, 그리고 불우한 이웃과 친척을 생각하는 절기로 지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효도관은 부모님의 생존시에 효성을 다하는데 있습니다.
부모 형제를 주심을 감사하고, 이웃과 친척이 있음을 감사하면서 공경과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절기로 발전시키기를 바랍니다.
이번 추석명절을 기하여, 온 가족이 한 곳에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성이 담긴 음식상을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상에 둘러앉아 가족들과 예배드리십시오.
그런 후에 부모님께 공경을 예의를 표한 다음, 여기서 예의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봉투이상이 없는데, 배추 잎사귀보다 더 좋은 하얀 종이로 된 것으로 표하십시오.
또한 가족끼리 정다움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형제끼리 우애도 증진시키십시오.
그렇다고 오고가는 현찰속에 뭐가 싹튼다는 고스톱만 치지 마시고,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놀이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과 친척을 찾아 뵙는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이취에 대기근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다 못해, 한 부자가 20명 가량의 어린이를 불러놓고, 여기에 빵을 놓아 둘 터이니 한 개씩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매우 굶주렸기 때문에 서로 큰 것을 가지려 싸우고 야단 났습니다.
힘쎈 아이부터 하나씩 차지하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한 아이가 이 싸움에 끼지 않고, 자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모두가 다 돌아가고 조용해지자, 빵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제일 작은 빵 하나를 집어내어 기쁜 얼굴로 주인을 찾아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다음날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늘도 그들과 다투지 않고, 어제와 같은 작은 빵을 가지고 역시 감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아이는 이 빵을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며 맛있게 먹으려 하는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빵 속에 빛나는 50센트 은화가 6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너무도 놀라워 아이에게 "아무래도 네가 잘못 가져 왔는 모양이다. 이런 돈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니, 곧 가지고 가서 할아버지에게 돌려 드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주인에게 그 은화를 돌려드리려 갔을 때, 주인 할아버지는 착하고 감사할 줄 아는 아이야! 이 돈은 틀림없이 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감사할 줄 아는 착한 네게 상으로 주기 위해 일부러 빵 속에 넣고 굽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제부터는 내 손자가 되어 나와 함께 살자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추석명절에는 제일 작은 것을 택하여 감사해 보십시오.
손해보는 것 같고,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그 작은 것에 감사함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추석명절에 돌아갈 수 있는 고향과 더 좋은 본향을 주심에 감사하고, 부모와 가족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이웃을 주신 것 또한 감사하고, 풍성한 곡식과 과일을 주신 하나님께 이번 추석 명절에 감사하는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중한 것
 
미국의 "월리엄 헐스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신문사 편집인으로 있으면서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했고, 돈이 모이는 데로 취미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골동품 수집가였습니다. 귀중한 세계적인 미술품과 골동품을 수집하고 그것을 즐기며 사는 것을 마치 생의 목적처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진귀한 미술품이 있다고만 하면 세계 어디라도 좇아가서 그것을 사들이곤 했습니다. 이미도 많은 귀중한 것들은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유럽에 왕가에서 사용했던 도자기하나가 있다는 것을 정보에서 알게되었습니다. 잡지에서 그 그림을 보는 동안 그는 마음이 뛰었습니다. 아주 그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저것을 내가 꼭 사들여야겠다."

그리고 그것을 사기 위해 유럽을 여러 번 여행을 했고 추적을 해보았지마는 종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가지고 있는 건지, 이 귀중한 물건이 어디가 숨어있나, 그렇게 안타까워하고 심지어는 실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잡지를 보는데 잡지에 그 골동품에 대한 이야기가 났는데 "그 골동품이 미국인에게 팔렸다" 라고 써 있습니다.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굴까? 하고 이름을 자세히 보았더니 자기 이름이었습니다.

벌써 그 소장품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지마는 그것을 가져다 두기만 했지 살펴보질 않았던 것입니다. 그 소중한 골동품을 이미 자기가 가지고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다니면서 찾아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것입니다.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것,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는 바로 그 어리석음을 지칭하는 교훈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 때만 은혜가 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믿음, 가장 소중한 건강, 자기가 지금 처하고있는 이 현실의 귀중한 의미를 내가 깨닫지 못한다면 은혜도 은혜 될 수 없고 복도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최고로 행복한 명절을 만드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추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돈들여 차린 음식을 받으시기 보다는 전국에서 모인 모든 형제들의 입술로 드
려진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번 추석 명절에 온 형제들이 모아 드리는
예배를 반드시 영광스럽게 받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된 예배를 드리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되고 주님 제자된 우리는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면 이루워지는 축복의 은혜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번 추석 명절에는 전국에 흩어져 생활하다 돌아 온 형제들의 입술을 연합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모든 형제들이 목소리를 모아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들
으므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2) 성령님이 함께해 주시기를 미리 기도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명절을 보낼 때 명절 분위기를 깨는 것 중에 하나가 술
입니다. 전국에서 모인 형제들이 맨 정신일 때는 형님먼저 ,아우 먼저하면서 사랑을 주고
받고 잘하다가도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쌓인 말들이 조금씩 풀리는지 감정 상하는 말을 하
게되고 나중에는 감정 썩인 말들도 나오고 할 말 안할말 구분을 못해 결국 감정 상해 집으
로 돌아오게 되지요.

그럼으로 끝날까지 형제들과 연합해 즐거운 명절이 보내고 오려면 헌 술을 준비하기보다
먼저 새 술을 준비해야 합니다.

*. 명절 전에 마게트를 가보면 양주 판매대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으며 계산대에서도
대부분 사람들이 한병씩은 계산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 즐거운 명절을 만들고 축복된 명절을 만들려면 새 술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새 술은 성령님이십니다. 명절전에 교회 마게트를 찾아 새벽에와서 성령의 술을 준비해
두시기 바랍니다.

혹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집을 찾아 온 형제가 있을 찌라도 성령님은 먼저가셔서 사랑의
성령의 새 술을 부어 놓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 한번이라도 명절이 돌아올 때 이번 명절에 온 형제들이 연합해서 즐겁고 행복한
가정이 되라고 기도로 준비해 보셨나요.
이번 명절부터라도 명절도 기로 준비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명절을 통해 형제들이 더
욱 사랑으로 연대해 질 것입니다.

3. 명절날 성령님 인도따라 모든 형제들이 연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린 성도에게 주신 축
복은 ?

1) 보배로운 기름이 온 가정에 넘치게 됩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
고"(시 133:2)
보배로운 기름은 최고의 영광이며 최상의 물질입니다.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영광을
의미합니다. 왕을 삼을 때 그 인정의 표로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명절에 하나님께 영
광 돌리는 가정은 분명 하나님께서 그 가정의 모든 식구들을 최고의 영광의 자리로 올려 주
십니다. 할렐루야 ! 믿으시면 아멘 !

2) 온 가문에 영생의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
이로다 (시 133:3)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며 상급은 우리 예수님께 영생을 허락받는 것입니다. 왜냐
면 우리 온 집안 형제들이 천국에서 만나 더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는데 이보다 더 기쁨이
어디있겠습니까 ?

*. 천국에 가면 이 세상일들을 모두 잊어 버려야지 만약 이 세상일을 생각한다면 정말 슬
플 겁니다. 난 천국에 왔는데 내 남편은 지옥에 가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니 ! 지겹게 속 썩인 남편은 그런다고치고 여러분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지옥에서 아
우성치는 모습을 보고있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매일같이 나하고 바꿔주세요라며 주님께 하소
연하겠지요. 

 

 

 
 
 

 

 

베데스다 못가의 명절(요5:1-9)
 
우리나라 고유 전통과 풍속 가운데 오래도록 지켜오고 있는 민속 명절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으뜸되는 고유명절은 설, 한식, 단오, 추석이 있습니다. 설은 새해를 맞는 큰 명절입니다. 웃어른들을 찾아가 세배를 드리고 그 분들의 덕담을 듣습니다.
서로 헤어져서 살던 형제들이 고향으로 모이는 귀성행렬의 차량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고향에 도착해서 귀한 명절을 지내기 위해 여러 가지 맛난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분주함이 우리를 기다리게 합니다. 이렇게 모두가 기뻐하는 명절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았는지 한번 주위를 돌아보시는 여유를 가져보는 명절이 베데스다 못가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안의 며느리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여유도 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의 명절을 생각해 보면

I. 복음을 전하여 주는 명절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시작은 유대인의 명절이 시작되는 것을 알려주면서 시작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명절이 되면 모든 일을 뒤로한채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찾아가신 곳은 명절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기쁨의 자리가 아닌 신음의 자리였습니다. 즐거워 마시면서 떠드는 흥겨운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쁨의 날에 참여하지 못한채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그 시대의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셨습니다.
그곳은 베데스다라고 하는 아주 신비한 전설을 담고있는 작은 연못이었습니다.
연못주위에는 쉬기에는 좋은 행각이 다섯채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곳은 사람들이 여유를 가지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곳은 사람들이 쉬는 공간이 아니라 고통으로 짓눌려 사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기쁘고 즐거운 시간에도 슬픔에 차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마음을 나눔으로 기쁨이 두배가 되는 기적을 우리가 실천해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많은 소경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지체장애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중풍병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어느사이 이곳은 병든 자들이 누워있는 침실이 되었습니다.
어느사이 이곳은 질병으로 신음하는 그야말로 고통의 절규가 끊이지 않는 절망과 한숨의 대표적인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곳은 명절을 맞아 잔치를 즐기는 때임에도 그들은 여전히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명절을 맞이한 바로 그곳으로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내려가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생각하기도 싫어합니다.
그곳에 나와 같은 피를 나눈 형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한번 가본적도 없습니다.
그곳에 나의 병든 부모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가기를 싫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에 가면 살이 썩어 들어가는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곳에 가면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지옥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곳에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그곳이 베데스다 연못의 명절로서 우리 주님이 필요한 자리였습니다.
바로 그곳이 우리 주님이 꼭 가셔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그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우리들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우리들의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그 연못으로 내려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번 명절에 고향으로 내려가 만나야 할 사람들의 모습을 미리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나야할 그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이번에 만나게 될 여러분의 친척들 가운데 육신의 질병 때문에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바로 그들의 곁으로 우리가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자리는 바로 그들의 곁입니다. 그들에게 더욱 더 사랑을 나누시는 명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찾아가는 고향의 이웃들 중에 육신의 장애로 여러분을 마중 나오지 못하고 누워 있어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러분이 찾아가 위로해 주십시오.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담대함으로 증거 하십시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우리들의 질병을 친히 담당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 그것이 살길이다. 바로 우리가 주어야 할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바로 우리가 해 주어야 할 말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주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이 베데스다 연못으로 내려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 작은 마음을 실천함으로 그들이 우리들의 구세주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명절이 될 수 있다면 참으로 이것이 기쁨중의 기쁨이 될것입니다.
우리들의 담대함으로 증거한 이 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질병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이것이 참 명절의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증거한 이 말씀을 통해서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는 명절이 된다면 이것이 참 명절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II.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는 명절입니다.
연못에만 시선을 쏟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끊임없는 대박의 환상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신앙을 가져도 말씀을 믿지 못하고 신비한 체험을 기다리고 믿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괴로움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번 명절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도 분명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의 헛된 것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세상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물질에 시선을 고정한채 정신없이 달려온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옆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쳐다 볼 수 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시선은 온통 세상의 물질에 초점이 모아져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 연못가의 사람들 곁으로 예수님이 다가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연못에만 고정되어 있습니다. 세상만 바라보고, 연못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바라보게 하는 명절이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도 눈을 돌려 지금까지 누구를 바라보고 왔는지를 생각 할 수 있는 명절이 되어야 합니다. 분주하게 살면서 세상만 바라보고 살아왔는지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 이제부터는 예수를 바라보는 명절이 되어야 합니다.
히12: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예수를 바라보아 온 가족이 구원 받는 명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III. 미신을 타파하는 명절입니다.
이 작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직도 허황된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연못의 물속에 천사가 내려와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곳에 병든 몸을 맨 처음에 담그는 사람은 깨끗이 낳음을 입는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전설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전설 때문에, 그 허황된 잘못된 믿음 때문에 그들은 이곳에서 진을 치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못으로 시선을 고정한채 다른 것은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민속놀이, 민간의 풍습을 재고해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 민속놀이 대부분에 미신적 요소가 스며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북이나 장고, 단소나 꽹과리 등등 사용하는 악기가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에도 국악 찬양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농악을 잘 보십시오. 무엇을 하는 행사입니까 ? 가정에, 그 지역에 귀신 쫓는 행사인 것입니다. 병마, 악신을 쫓고 복을 구하는 행사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집을 짓는데 무엇을 하는지 집을 사고, 판다 하면 무엇을 보는지 보십시오. 묘를 쓸 때에 시간을 맞추어 기다립니다. 이사를 하는데 손이 있다 없다 따집니다. 이게 다 뭡니까 ? 이것이 다 귀신을 믿고 섬기는 행위요 우상숭배라는 말입니다. 잘못된 것은 과감히 개혁하고 버려야 합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요 새롭게 하는 것이요 진리 가운데로 내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세상의 지탄을 받고 너 같은 놈 때문에 예수 안 믿겠다. 하면 되겠습니까?
이번 설날 고향 친지들에게 가서 외식과 가식에 빠지지 말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고 돌아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정에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귀신 섬기는 제사는 안 됩니다. 우상숭배는 저주 받을 일입니다. 미신적 행사, 악습은 버립시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버릴 것, 타파할 것은 단호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선교 한답시고 좋은 것이 좋지 하는 태도는 버리시기 바랍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단호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3, 4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할렐루야 !
우상숭배는 3,4대까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데스다의 명절은 이러한 우상을 타파하기 위하여 주께서 찾아가신 명절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잘못된 사고, 환경을 개혁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라를 살리는 일이요 민족을 복 받게 하는 일입니다. 주님 부탁하신대로 기독교가 세상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음식에 소금이 2%만 들어가도 음식이 썩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25%나 된다는데 사회가 왜 이다지도 썩어 있습니까 ? 한 마디로 자기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명절을 맞이하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들로서 보다 더 소외된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우상을 타파하고 주님만을 바라 볼 수 있는 귀한 성도님들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분명한 목표의식 사명의식
 
19세기 말엽 미국에는 제임스라는 성을 가진 두 가문의 형제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전혀 다른 가문의 출신들이었으나 19세기의 미국 사회에서 유명했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답니다. 한 가문의 제임스 형제의 이름은 제시와 프랭크였습니다.
종종 그들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보듯이 그들은 금고털이, 열차털이 강도로 유명한 총잡이였습니다.
이들 형제가 처음부터 사회의 반항아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남북전쟁에 대한 환멸과 남군의 패배로 인한 사회적 소산이었습니다.
또 다른 제임스 형제의 이름은 윌리암과 헨리였습니다. 시대적 상황은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버드 대학의 철학 교수로, 또 소설가로 미국인의 가슴속에 지금도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 지성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명의식입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사명의식이 있냐 없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으나 아버지의 유훈만은 잊지 않고 자랐습니다
. “아버지가 죽더라도 내가 못다한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너희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그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유훈대로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일처럼 여기며 임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잠 20:7)"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잠 14:32)"

 

 

 
 
 

 

 

고향은 생명의 씨앗입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 한 수 읊겠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 암데나 정들면 못 살리 없으려마는 /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 가장 그리운가’. 노천명의 고향도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 ‘언제든 가리 / 마지막엔 돌아가리 / 목화 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 조밥이 맛 잇는 내 고향으로 / 언제든 가리 /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 메밀꽃이 하얗게 피는 곳 / 꿈이면 보는 낮 익은 동리’
여러분 고향은 생명의 씨앗입니다.

 

 

 
 
 

 

 

예의를 지키는 명절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예의가 있기 때문. 예의 범절을 저버린 사람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예의 범절은 인간의 질서. 이 질서를 이탈하고 행복하게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 자식간에도 예의가 있다.
우리는 이 예의를 지켜야 함.
 가족중 손윗 사람과 손아랫 사람이 있다.
 우리는 가정에서 먼저 부모를 공경하는 가운데 예의를 지켜야 함. 인간 사회 속에도 예의 범절이 있다.
선생과 제자,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 동료와 동료, 이웃과 이웃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사회가 행복하고 질서있는 사회가 됨.

명절이 다가 오고 있다. 설날이 되면 뿔뿔이 흩어졌던 부모 형제들이 한 자리에 만납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엔 반드시 (예의)를 지켜야 함. 그것이 질서를 세우는 일이요, 신앙인다운 자세요, 덕을 끼치는 모습이다. 

 

 

 
 
 

 

 

명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절기를 주셨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 바로에게서 해방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요 칠칠절 헉은 오순절 맥추의 초실절로 기념하는 절기며 수장절 혹은 장막절은 그들이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생활한 것을 기념하면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대망을 가지고 산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시대에 패괴함을 보시며 너희가 명절일과 여호와의 절일에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게 되었습니다. 추석에 대한 글들을 참고해 보았습니다

" 한국의 대표적 명절 가운데 하나.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가위·중추절이라고도 한다. 정확한 유래는 전하지 않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 나라 안 6부(六部)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가르고 두 왕녀(王女)를 각각 우두머리로 삼아 음력 7월 16일 (기망:旣望)부터 한 달 동안 베를 짜게 하고, 마지막 8월 15일에 승부의 판정이 나면, 진 편에서 이긴 편에 음식을 대접하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밤새도록 노래와 춤을 즐겼는데 이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산둥〔山東〕지방에 사는 신라인들이 신라가 발해와 싸워 이긴 8월 15일을 명절로 삼아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고 가무를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도 중추절이나 월석(月夕)·추중(秋中)이라 하여 명절로 삼는데(한메파스칼) 중국에서도 문화의 중심지가 북쪽에 기울어있던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중추는 명절이 아니었다.
 당 나라 때 지어진 중국 최초의 세시기라할 [형초세시기]에 보면 8월 보름날 전야에 아이들에게 눈 밝히 주머니를 달아준다는 행사 이외의 명절행사는 적혀 있지 않다. [여씨춘추]나 [예기] 월령에도 없다.


당나라 때 백과사전이라 할[초학기]나 [예문유취] [북당서초]에 상사-단오-칠석-중양 등은 있어도 중추는 없었다. 송나라 초기인 서기 1000년 전후에 편찬된 [태평어람]에도 없다. 송나라 중반기에 편찬된 [동경몽화록]에야 비로소 나오는데 [중추날 밤에는 대문을 장식하고 술자리를 마련하고 달맞이를 하는데 풍악소리가 밤새도록 끊이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 때인 서기 838년에 일본 스님 원인이 중국에 가다 표류해 장보고가 경영하는 절간 적산원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일기를 써 남겼다.
그 해 8월 15일자 일기를 옮기면 이렇다. [사원에서는 떡과 과일을 차리고 8월 보름을 쇠었다.


이 명절은 아무나 쇠는 것은 아니고 유독 신라만이 쇠는 이유는 신라와 발해가 싸웠을 때 전승을 기념하는데서 비롯됐다고 노승들이 말했다 여러 가지 음식과 풍악 가무로 밤을 지새우는데 사흘을 계속하다 멎었다.
이 적산 원에서는 고국을 그리며 이 명절을 즐긴다]고 했다. [신당서] 신라 전에 보면 신라와 발해가 싸운 적은 성덕 왕 32년(서기732)으로 당나라를 침입해온 발해와 말갈을 신라로 하여금 치게 했다는 것이 유일하다.


우리나라 명절이 중국 세시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상식인데 추석만은 우리가 인근 나라에 영향을 미친 주체적인 명절임을 자부하고자 문헌들을 뒤져본 것이다.(이규태 추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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