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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예화모음 13편

by 【고동엽】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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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주제별 예화모음)

 

▣ 배은망덕

 

마음이 착한 늙은 부부의 집에 젊은 식모가 새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 젊은 식모는 행실이 좋지 못해 이웃에 사는 젊은이와 눈이 맞았다. 몇 달이 지나자 그녀의 몸에 아이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을 안 노부부는 식모를 나무라지도 않고, 다행히 어린애가 없어 애태우던 터라 친절히 식모를 위로하면서, ‘조금도 걱정말아. 어린애를 나면 우리가 양자로 삼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이윽고 달이 차서 식모는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노부부는 출산 비용을 전부 부담했고, 출생한 아이를 양자로 삼는 수속을 밟았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자 식모는 또 다시 몸이 무거워졌다. 이때도 친절한 노부부.

“어린애가 하나뿐이면 쓸쓸해 할 꺼야. 동생이 있는 편이 좋아.”

하고서, 두 번째 아이도 양자를 삼았다.

식모에겐 같은 일이 세 번 있었다. 어디까지나 마음 좋은 노부부는 이때도 그다지 화내지 않고 출생한 아이를 또 다시 양자로 삼았다. 그런데 이러한 대은(大恩)을 받은 젊은 식모는 산후의 몸이 회복되자마자, 노부부의 집에서 나가겠다고 말한다. 깜짝 놀란 노부부가,

“대관절 어떤 불만이 있어서 나간다는 거지?”

하고 물으니까, 그 식모는 태연히,

“이렇게 아이 많은 집에서 식모살이 할 수는 없어요”

 

 

 
 
 

 

 

▣ 배반자의 최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겐 자부로의 작품 「사육」은 한 명의 흑인 병사를 짐승처럼 사육하는 일에 종사하는 소년이 체험한 비극을 소재로 하고 있다.

2차 대전 때 소년은 도시에서 떨어진 산 마을의 공동 창고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이 살고 있는 마을에 커다란 비행기가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곧 수색에 나섰고, 저녁 무렵 비행복을 입은 흑인 병사 한 명을 끌고 왔다. 마을 사람들은 멧돼지 덫으로 쓰이는 쇠사슬로 흑인 병사의 양쪽 발목을 묶고 지하 창고에 가두고는 짐승처럼 사육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멧돼지 덫에 묶여진 흑인 병사의 살갗이 벗겨져 염증이 생긴 것을 보고 덫을 풀어 주었다. 소년의 도움으로 흑인 병사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청에서 흑인 병사를 끌고 오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낌새를 알아차린 흑인 병사는 지레 겁을 먹고 당황하여 자기에게 자유를 주고 먹을 것을 주었던 소년을 인질로 잡아서 난동을 벌이는 반역을 하였다. 결국 흑인 병사는 소년의 아버지 손에 죽고 말았다.

모든 인류가 죄의 족쇄에 채워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없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환경에 지레 겁먹고 당황하여 예수님을 배반한다면, 그것은 곧 반역이다. 그 반역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이다.

- 말씀의 징검다리 / 정장복·주승중

 

 

 
 
 

 

 

▣ 배신에 대한 철학

 

몇 년 전에 개봉한 <친구>라는 영화는 같이 죽고 같이 살자고 맹세했던 친구들이 뒤틀린 성장과정을 겪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릴 적 물놀이를 하며 뛰놀던 친구가 원수가 되고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모습을 표현해내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인간관계는 믿음의 관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믿음의 관계가 아니다. 그렇게 친했던 친구도 배신을 하고, 그렇게 믿었던 직원이 돈을 떼먹고, 심지어 자식이 부모를 배반하고 고발하거나, 심하면 부모까지 죽이는 경우가 있다. 무서운 일이다. 이런 일은 우리가 인간관계를 믿음의 관계로 잘못 오인한 데서 오는데, 믿음의 대상으로 사귀지 말고 사랑의 대상으로 대해야 될 것이다.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면 그 믿음을 받을만한 그릇이 안 되는 이들에게는 부작용이 초래된다. '배신', '배은망덕', '그럴 수가', '있을 수 없는 일' 등의 단어가 당사자의 가슴에 한으로 맺힌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풀면 풀리는데 그 사랑은 죽기까지 용서하는 사랑이어야 한다. 자신이 죽으면서 끝까지 배신자를 포옹하는 사랑, 그 사랑을 실행하는 사람은 세상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의 사람이 될 것이다.

- 소 천 -

 

당신의 사랑의 그릇 크기는 얼마입니까? 그 동안 인간관계를 믿음의 관계로 알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실패하셨다면 이제는 사랑의 대상으로 알고 오히려 원수도 포옹하여 이 사회를 따듯이 합시다. 배신보다 믿음이 낫고, 믿음보다 사랑이 낫습니다.

 

 

 
 
 

 

 

▣ 배은 망덕 (호도나무)

 

오랜 세월 동안 가지를 뻗고 키가 자라 제법 큰 호도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서 빨리 열매를 많이 맺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불행하게도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도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고, 몇 년 후 드디어 소원대로 큰 호도 알을 주렁주렁 맺게 되었습니다. 호도나무는 속으로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드디어 열매가 무르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오더니 돌멩이를 집어 호도나무를 향하여 마구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호도가 와르르 떨어져 내렸습니다. 어느 날은 꼬마들이 긴 장대를 가지고 왔고, 또 어떤 때는 어른들이 몰려와 나무가 상하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고 돌멩이를 던져댔습니다. 몇 날 며칠을 이렇게 지낸 호도나무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가지도 여기저기 부러져 나갔습니다. 돌에 맞은 자리가 몹시도 아팠습니다. 나무는 자기의 찢긴 상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아! 나는 사람들에게 열매를 주려고 오랜 세월을 애쓰며 기다렸는데, 사람들은 정말 은혜를 모르는구나.

 

 

 
 
 

 

 

▣ 가롯유다의 예수님 배신 동기

 

가롯유다는 예수님이 불러서 제자삼아 회계를 맡기고 몹시 사랑하사 최후의 만찬 때 상석의 제삼인물로서 우편에는 요한을, 좌편에 그를 앉게 하고 유대관습에 특별 빈객에게 하는 떡을 찍어주기도 했으나 악마가 그 속에 들어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어(요 13:2) 예수를 은30에 팔고 예수가 처형되자 돈을 되돌려 주고 자살했다.

예수를 배역한 동기는 ;

1) 돈이라고 했지만 복합적 동기가 지적되기도 한다.

2) 그만이 유대 출신이어서 갈릴리 사람들에 대한 지역감정

3) 평소에 돈을 훔친 죄책의 전가적 투사행위

4) 일년분 봉급 액수만큼 비싼 향유를 예수께 부어버리는 한 여인의 낭비를 묵인한데 대한 사회주의자적 분노

5) 정치혁명적 메시야 대권발동을 촉발케 하려고

6) 그는 반로마 열광적 애국당원으로 극우파 암살당원이었다.(William Barclay) 그 이름은 단도소지자란 뜻과 통한다. 정치혁명의 메시야 기대가 어긋나서 보복적으로 배신해 버렸다는 해석도 있다. 예수신앙은 애국이나 사회구원이나 인도주의 그 어느 것보다 높은 것이다.

 

 

 
 
 

 

 

▣ 사슴과 포도덩굴

 

이솝우화에 나온 얘기다. 아기 사슴이 사냥군에게 쫓기게 되었다.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아직 너무 어린 아기 사슴은 더 이상 사냥꾼을 피할 힘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혼자 멀리 가지 말라는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사슴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그곳에 무성하게 우거진 포도덩굴이 있었다. 제법 가지도 넓고, 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포도덩굴이었으므로 그 속에 숨으면 사냥꾼의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았다. 사슴이 그 포도덩굴에 몸을 숨기자 잠시후 사냥꾼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사냥꾼이 지나가자 숨어 있던 사슴은 "휴우, 살았다"하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사슴은 이제 안심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포도덩굴이 참 무성하구나!" 사슴은 씩 웃더니 자기를 숨겨 주었던 포도덩굴의 잎사귀를 마구 따먹기 시작했다. 포도나무 잎사귀들은 아파서 괴로워했지만 사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잎사귀들을 배불리 따먹었다. 그때 방금 지나갔던 사냥꾼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참 이상하군 분명히 이쪽으로 갔는데..." 주위를 살피던 사냥꾼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포도덩굴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사각사각'하고 잎사귀 먹는 소리까지 들렸다. "옳지, 그 사슴이 저기에 숨어 있구나." 사냥꾼은 살그머니 다가와 사슴을 잡았다. 그때서야 사슴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생명의 은인을 저버려서 신이 나를 벌 주시는구나!" 화장실 갈 적 마음과 나온 뒤의 마음이 다르듯이 자신이 아쉬울 때는 손을 내밀다가 그 순간이 지나면 은혜를 잊는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 가룟 유다나 예수님께 고침 받은 아홉 명의 문둥병 환자처럼 은혜를 잊은 자(눅17:12-19)가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보자. 말세에는 사람들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딤후3:1-4)

 

 

 
 
 

 

 

▣ 배은망덕한 아들

 

내 아들 존 피터가 네살 되던 해 어느 날, 나는 그 아이와 함께 맥도널드에 갔다. 아들은 버거, 콜라, 튀김 등 미국 대표 음식을 먹었고, 그 동안 나는 드레싱을 곁들인 따분한 내 샐러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자제심을 잃고 아이에게 튀김 몇 조각만 달라고 했다. 아이는 "싫어요!"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모든 음식들이 일차적으로 어디에서 나온 건지 아이는 몰랐을 리 없다. 얼마나 배은망덕하고 얼마나 뻔뻔스럽고 이기적인가!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때로는 우리 모두가 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한 보답으로 아주 작은 것을 요구하시는데, 우리의 대답은 "싫어!"이다. 내 아들의 경우는 그때 아직 네 살이 채 안되었을 때였으므로 더 성장하고 성숙할 여지가 있었다. 이제 당신에게 도전을 던진다. 하나님께 바치는 영역에 있어서 당신의 마음을 검토해보라.

- 평신도여! 목회자와 꼬인 문제 이렇게 풀어라 / 댄 레이런드

 

 

 
 
 

 

 

▣ 교회의 적

 

백합은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꽃이지만 썩으면 극심한 악취를 내는 꽃이다. 이러한 반대적 현상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돌아선 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독일의 사회주의자 '칼 막스'(K. Marx)가 한 때 신학생이었다는 사실은 기독교 변절자가 오히려 기독교에 미치는 악영향이 어떠한 것인가를 대변해 주는 가장 훌륭한 예이다.

교회에 가장 크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기독교인들이라고 말하면서도 기독교인처럼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라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이다.

 

 

 
 
 

 

 

▣ 이완용

 

세상 살면서 이기고 또 이긴 사람이 있다. 조선왕조 말기 우리네 대부분이 깊은 역사의 잠을 자고 있을 때 유달리 일찍 세상을 향하여 눈을 뜬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 벌써 영어를 배웠던 사람으로써 미국이 우리와 가까이 지낼 때 친미파의 주동인물이 되었고, 세상이 변하여 러시아의 발언권이 강해지자 어느새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친러파의 중심인물이 되더니, 노일 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자 이번엔 유창한 일어를 앞세워 친일파의 거두가 되고 이어서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사람이다.

그후 우리나라가 일본의 손으로 넘어갈 때였다. 그는 서슴없이 일본인이 되어 그 나라 귀족으로 둔갑했고 마침내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았다. 어찌 이기고 또 이기기만 계속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바로 이 완용(1858-1926)이라는 사람의 얘기다 그런데 신가한 것은 우리들 어느 누구도 그를 생의 승리자라고 말하지 않고 매국노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삶의 방향 설정이 잘못된 것이요 생을 통틀어 결산할 때 결단코 승리의 팡파르를 울릴 수 없는 일생을 살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 배신감에 아파하는 사람들의 특징

1. 배신감의 뿌리 :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 차례 배신의 아픔을 느낀다. 사실 배신보다 더 찢어지는 아픔은 없다. 그런데 배신은 누구에게 당하는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믿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 믿는 사람이 없다면, 배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랜 기간 애정 쏟고, 헌신을 쏟아 부은 사람에게는 배신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지금 명단을 작성해 보라. 가장 사랑하는 사람 10명, 가장 믿고 있는 사람 10명! 바로 그들이 배신 후보자들의 명단이다.

2. 배신감을 이기는 길 : 너무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의지하고, 믿고 따를 분은 오직 하나님이고, 나머지는 모두 상대적이란 자세로 살면, 배신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사람은 변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존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는 모든 시도는 다 배신감의 고통을 품고 있는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3. 새로운 진 개편 : 사는 것이 이별이다. 이별 연습은 자주 하는 것이 좋다. 이별 연습은 너무 사람에게 매달리지 않게 만드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오랜 기간 진별로 정이 들었을 것이다. 이제 금주를 마지막으로 진이 바뀐다. 그러나 팀은 그대로 유지된다.(물론 몇주 있다가 팀도 섞이겠지만...) 항상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인생을 살자.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주의 백성들이다. 오직 주만 바라볼지라.

/전병욱 목사

 

 

 
 
 

 

 

▣ 시41편<친구가 나를 배신할 때>

 

인생의 도상에서 경험하는 가장 뼈아픈 고난은 배신의 사건이라 할만하다. 믿었던 친구가 나를 궁지에 빠트릴때 우리는 인생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픈 절망에 빠진다. 오죽하면 단테는 유명한 신곡에서 배신자들을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있도록 그려넣고 있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믿음이라면 이세상에서 가장 추한것이 배신이다.

배신은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가치인 믿음을 부정하는 까닭이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질 일인데 친구격인 신하 아히도벨의 반역은 다윗으로 절망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이같은 절망의 상황속에서 절망하기보다 기도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기도는 자신의 억울함을 탄원하는 기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먼저 자신의 용서와 치유를 구하는 기도이었다.

본문의 시편은 메시아적 예언이 내포된 기도이기도하다. 아히도벨의 반역사건은 바로 가롯유다 반역의 그림자가 된다. "내 떡을 먹던 내친구가 발꿈치를 들고 "나를 배신했다고 말한 고백은 바로 예수님의 생애에서 유다의 배신으로 성취된 예언이기도 하였다. 아마도 예수님이 친히 배신을 경험하신 이유는 우리가 걸어갈 인생의 길에서 우리 모두가 이런 배신을 보편적으로 경험할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믿었던 친구가 나를 배신할때 우리는 무엇보다 놀라지 말아야 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까닭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하기로 결심해야 한다. 먼저 내 상처받은 마음을 정확히 읽고 계신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오직 완벽하게 내 좌절을 이해하시는 그분에게 내 상한 마음을 열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친구의 배신을 응답하는 과정에서의 내 허물을 또한 주께 아뢰도록 하자. 우리의 기도는 절망을 넘어선 승리를 선포하게 될 것이다.

 

* 기도: 주여, 내 친구가 나를 배신할때 먼저 놀라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고 억울해 하기보다 기도하게 하소서. 이웃의 부당함을 아뢰게 하시되 또한 우리 자신의 허물을 고하게 하소서. 아멘

/이동원 목사

 

 

 
 
 

 

 

▣ 두 종류의 배신

 

고난주간을 당하며 떠오르는 두 얼굴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가룟유다입니다. 둘 다 예수님의 촉망받는 제자였고 둘 다 십자가 사건 앞에서 실패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멋지게 회복되어 교회사의 으뜸 인물이 되었고 한 사람은 만고청사에 길이 빛나는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유다는 엄청나게 나쁜 사람이고 베드로는 훨씬 덜 나쁜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서 유다보다는 오히려 베드로가 훨씬 더 비겁하고 치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까짓 계집종 앞에서 한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다니...

그런데 왜 유다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게 됐을까요? 그는 처음부터 주님을 한 번도 신뢰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자신이 바라는 메시야상을 기대했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가자 실망한 나머지 은 삼십에 그분을 팔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자신이 행한 일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깨닫고 후회하지만 메시야를 잘못(?) 선택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목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한 번도 주님앞에 도움의 손길을 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생각과 계산을 떠나지 못했고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에 못잖은 실수의 사람 베드로는 어떤가요? 주를 부인한 괴로움에 통곡하며 울던 베드로는 주님이 내미는 회복의 손길을 덥석 붙잡습니다. 그는 자신이 연약하여 넘어질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용서받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최홍준

 

 

 
 
 

 

 

▣ 배반에 관한 성경 말씀

 

0 여호람 때에 에돔이 유다의 손에서 배반하여 자기 위에 왕을 세운 고로(왕하8:20)

0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자기의 주를 배반하고(대하13:6)

0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우므로(대하21:8)

0 그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의 언약을 배반하였도다(시편55:20)

0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시78: 17)

0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시78: 57)

0 나는 비루한 것을 내 눈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시101: 3)

0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잠15:10)

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1:20)

0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이 크게 배신하였도다(사24:16)

0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다니엘 11:32)

0 사마리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아이는 부숴뜨리우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리우리라(호세아 13:16)

0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스바냐 1:6)

0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누가복음 8:13)

0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사도행전 21:21)

0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 5:8)

0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라(딤전5:11)

0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디모데후서 3:4)

0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1:14)

0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히브리서 12:25)

0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 3:8)

 

 

 
 
 

 

 

▣ 배반, 배신에 대한 금언

 

0 배은망덕한 사람보다 더 나쁜 것은 세상에 없다(로마 격언)

0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배도한 자의 말로(末路)는 죽음이다. 두려울진저 회개하라(이성봉)

/한태완 목사 360 주제별 예화모음(메일: jesuskorea@naver,com)

 

 
 
 

 

 

 

 

인간관계에서 때로 “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쉽게 배신감을 느끼고, 배신감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고통이 분노가 되어 폭발하면 복수를 하게 됩니다.
복수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여인들이 배신 당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배신한 남자의 연적을 죽이려 한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배신한 남자를 죽이려 한다고 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다른 남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연놈을 죽이려 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내연녀에게 배신당하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여 40분 만에 엉뚱한 4명을 살해한 엽기살인 사건입니다. 내연녀가 "헤어지자"고 말한 뒤 계속 피하자 '배신'을 견디지 못하고 내연녀와 그녀의 새 남자친구를 함께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내연녀가 사는 다세대 주택에 찾아와 초인종을 눌렀지만 새로 이사 온 김씨가 "이전 집주인이 어디 사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자 "거짓말을 한다"며 주부 김씨를 칼로 살해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내연녀의 새 남자친구 집을 찾아갔으나 그는 없고 그의 부인과 두 딸이 있자 그들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습니다.

 

 

 
 
 

 

 



[배신, 21세기를 사는 지혜/김용철 외]라는 책이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배신이 창궐하다고 합니다. 널리고 널려 있는 게 배신이고 수시로 겪는 것이 배신감이라고 합니다. 배신을 터부시하면서 배신자에게 혜택을 줌으로 '배신'을 권하는 사회를 장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신이 인간의 본성적 기질이고, 치열한 생존 경쟁 사회에서 성공과 출세를 위해 배신은 필연적인 필수품이라고 해도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남을 속이는 배신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배신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배신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그 이익이 배신자이냐, 다른 집단이냐, 공공의 이익이냐에 따라 판단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대신 더 큰 집단에 대한 신뢰를 지키려는 노력으로써의 배신은 배신이 아니라 지식인의 책무라는 데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입니다.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가 속한 집단이 심각한 악을 저지른다면 용기 있게 고발해야 하고 사회는 그런 사람을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소한 이익을 위한 배신자가 대접받고 배신을 위대한 것인 양 포장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단테는 '신곡(神曲)'에서 배신자를 지옥 맨 밑바닥에 두었습니다. 제 1구역은 림보 성현들, 제 2구역은 애욕의 죄를 지은 자들, 제 3구역은 탐욕을 부린 자들, 제 4구역은 낭비하거나 인색한 자들, 제 5구역은 화를 잘 내거나 태만한 자들, 제 6구역은 이교도들, 제 7구역은 폭력을 휘두른 자들, 제 8구역은 사기꾼, 제 9구역은 배신자들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배신자로 자기의 스승인 예수를 판 가룟 유다와 로마황제 줄리어스 시저를 암살한 그의 친구이던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넣어 놓았습니다. 이들이 하고 있는 모습은 그 한복판에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악마대왕이 버티고 서 있는데 얼굴마다 밑에는 박쥐모양처럼 생긴 날개가 둘씩 돋아 있어 이걸 퍼덕이기만 하면 순식간에 바람이 일어나 모두를 얼어붙게 합니다. 여섯 개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세 개의 턱에서는 피섞인 침과 눈물이 흘러 떨어집니다. 입마다 죄인 한명씩을 물고 이빨로 마치 삼 찢는 기계처럼 물어 찢고 있습니다. 정면의 사나이는 더 무참하게 발톱으로 찢겨 등가죽이 벗겨지고 등뼈가 훤히 들어나 있는데 이는 가룟 유다입니다. 그 머리는 악마대왕의 입안에 있고, 발만을 내놓고 있습니다. 단테는 남에게 피해를 줄수록, 특히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줄수록 지옥의 밑바닥에 처넣었는데 이 풍자를 통해 인간이 짓는 죄 중에 가장 나쁜 죄가 '배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단테는 배신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악 중에서 가장 밉고, 더럽고, 비열한 최대의 죄악으로 본 것입니다. 성경에는 배신자들을 좋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삼손을 배신한 들릴라(삿16:18-20), 우리아를 배신한 다윗(삼하11:14-15), 아브넬을 배신한 요압(삼하3:27), 이스보셋을 배반한 레갑과 바아나(삼하4:5-6), 암논을 배신한 압살롬(삼하13:28), 아마사를 배신한 요압(삼하 20:10), 아비멜렉을 배신한 세겜 사람들(삿9:23), 르호보암을 배신한 여로보암(대하13:6),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마26:14-16) 등 그 누구 하나 정당한 배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에게 해를 끼치며 배신하는 행위를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위장하여 정당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조나 충성이 현실적으로 가져다주는 이익이 적다고 해도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가치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폴리갑이 화형을 당하기 전 로마의 권위자가 그에게 물었답니다. "어떠냐? 이제라도 네가 섬기는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번만 부인하는 것이. 그러면 너는 살아 나갈 수 있다." 천천히 그 로마인을 바라보던 폴리갑이 고개를 흔들었답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강인하게 말했답니다. "아니오. 나를 저 불 속에 던지시오. 어떻게 내가 그 분을 부인할 수 있겠소. 오늘까지 그 분은 나를 한 번도 외면한 적이 없는데!" 성경은 말세가 되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 목사/섬기는 언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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