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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위선 예화모음

by 【고동엽】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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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을 바라보는 이중잣대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이사야 21:25)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폴라 존스의 제소를 법원이 기각한 것 때문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언론보도로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 언론은 지도자에게 엄격한 도덕성과 정직성을 요구한다. 반면 일반인들은 성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며 남녀관계 등 프라이버시는 철저히 보호된다. 영국도 이 점에서는 미국과 유사하다.
이같은 미국과 영국의 이중적 가치기준에 대해 유럽대륙 국가들은 아주 냉소적이다. 유럽 국가의 언론은 이를 '앵글로 색슨의 위선', '하수구의 언론'이란 말로 혹평한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이 이중생활을 하면서 딸까지 두었지만 프랑스 권위자들은 이를 시비하지 않는다. 독일에서도 차기 총리로 유력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니더작센주 총리는 네 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그것의 그의 정치생활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정치인의 여자관계는 입에 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한국은 어떤가? 간통죄가 있을 정도로 겉으로는 성에 대해 엄격한 척 하지만 실상은 일본처럼 지도자의 여자 문제에 아주 관대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위선이 아닐까.

유럽이나 영국, 미국은 개별인간의 사생활과 프라이버시는 철저하리만치 보호되고 존중한다. 미국과 영국은 지도자에게 엄격한 도덕성과 정직성이라는 가면을 요구한다. 혹자들은 가면을 쓰지 않는 유럽 대륙 국가를 더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어떻게 평가하실 것인가?


많은 기독교 국가들이 비성서적 기준으로 지도자를 세우고 판단하는데에서 돌이키며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컫는 사람들이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 땅을 고치실 것이다.

 

 

 
 
 

 

 

페르소나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한복음 4: 18)
영화 '풀 몬티'(The Full Monty)얘기다. '풀 몬티'는 한 때 잘 나가던 영국 철강도시 셰필드의 경기
가 침체하면서 해고당한 철강노동자 여섯 명이 궁여지책으로 스트립쇼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끝무렵엔 팬티까지도 홀딱 벗어던진 그들의 모습이 공개된다. 이쯤되면 '남자 벗기기'로 볼거리
를 제공하는 천박한 영화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렇치 않다. 구경거리로 한 몫하기엔 이 남자들의 얼
굴이나 몸매가 너무도 보잘 것 없다.


영화의 흡인력은 여기서 나온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실직자'로 전락한 사람들의 얘기라는 점
이다. 중년남자들의 '스트립쇼'는 도대체 뭔가? 감독은 여기서 재미와 주제가 결합된 마침표를 찍어
보이는 역량을 과시했다. '스트립쇼'는 곧 희망과 야망, 기회를 박탈당한 그들이 다시 존재를 확립하
기 위해 벌이는 노력의 몸부림인 것이다.



여기서 '옷'을 벗는다는 것은 물리적 '나체'의 상황을 넘어
선다. 그것은 자신들을 주눅들게 하는 '위선'을 벗어버리는 행위이며, '발가벗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자부심을 되찾는 일종의 제의다. 이것이 '몽땅 벗는다'는 뜻의 영국 속어 '풀몬티'에 담긴 뜻이
다.

사람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person인데, 이것의 라틴어 어원은 persona이다. persona의 본 뜻은 가
면이다. 이 영화에서 '옷'을 벗는다는 것은 가면을 휙 벗어던지는 행위로서의 스트립쇼를 보고 있는
데, 이는 가면속에 있는 참 존재를 향한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가 보여주듯이 우리는 새로
운 가능성과 긍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십자가 위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모든 가식과 죄악을 못
박으신 예수님이 오히려 참 부활을 하신 것처럼 말이다.

 

 

 
 
 

 

 

성공적인 위선
 
영국의 `처치 오브 잉글랜드'(성공회)소속의 한 신부가 자기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사망함으로써 자기 가족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부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신부는 영국에서의 복음 전파하던 시절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자신의 세상적인 물건들을 가지고 배를 탔습니다. 복음전파에 관계된 것들은 하나도 휴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가 탄 배에는 전과자가 한 사람 타고 있었습니다. 이 전과자는 자기고향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이 전과자는 자기와 같은 전과자가 있어서는 고향이 수치스러워진다고 생각하여 고향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이 전과자는 자신이 전과자라는 것을 비밀리에 숨기면서 그 신부와 친숙해졌습니다.

 
그러나 여행하는 도중에 신부가 아프게 되어 전과자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신부는 병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이 신부는 죽으면서 자신의 모든 소지품, 설교와 편지와 기타 증명서 등 모든 물건을 그 미지의 간호사에게 남기게 되었습니다.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한 그 전과자는 배안에서 사망한 신부의 이름을 가장하여 자신이 그 신부라면서 그 신부가 갖고 있던 서신과 증명서 등을 주교에게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가짜 신부 전과자는 설교를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전과자 신부는 진짜 신부가 사망하면서 남겨놓은 많은 설교 가운데 하나를 사용하여 설교했습니다. 그 설교로 인하여 전과자는 어떤 교회의 청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그는 여러해 동안 만족스럽게 사제의 직을 수행했습니다.
그 불행한 신분 사칭자가 자신의 비밀을 임종의 자리에서까지 밝히지 않았다면 그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았을 것입니다.

 

 

 
 
 

 

 

위선의 상징
 
런던의 한 유명한 화가가 제복을 차려입은 모습의 수사를 그린 그림 하나를 전시했습니다. 이 그림은 먼 곳에서 보면 마치 수사가 기도 드리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 수사는 양손을 깍지 낀 채로 꼭 잡고 가슴에 수평으로 얹어놓고 있었습니다.
두 눈은 복음서의 세리의 눈처럼 유순하게 내리깔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선한 수사는 아주 겸허하게 경배에 열중하면서 경건하게 명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림을 좀더 가까이 가서 보면 위선이 드러납니다. 그 사람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책은 사실 책이 아니라 레몬을 쥐어짜서 꾸들꾸들하게 된 펀치사발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생생한 위선입니까?

 

 

 
 
 

 

 

자네는 도둑이야
 
한 훌륭한 전도사가 자신의 예술적인 설교를 평가받기 위해 클레멘스를 초청했다.
그는 최고의 설교를 준비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클레멘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의아하게 여긴 그가 이유를 묻자 클레멘스가 대답했다.


"자네는 도둑이야. 난 지난 밤에 자네가 설교한 말이 낱낱이 담겨있는 책을 읽었네.
자네는 도둑에 지나지 않아." 충격을 받은 전도사는 그럴리 없다며 그 책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러자 클레멘스는 큰 사전 하나를 그에게 불쑥 내밀며 말했다.


"자네가 말한 모든 낱말이 이 책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진정 모르겠는가?"

 

 

 
 
 

 

 

위선의 우리 사회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엡 4:25)

최근에 불우한 이웃을 우리 사회에서 말로만 후원한다는 가짜 약속이 판을 치고 있다라는 뉴스 기사가 보도되고 있다. 요란하게 매스컴을 통해 딱한 사연이 소개된 이후 불우이웃이나 단체에 대해 후원을 약속하고, 잔뜩 홍보 효과만 얻은 후 얌체처럼 정작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들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한 이중의 배신감을 안겨 줌으로써 그나마 실낱 같던 삶의 의지를 꺾어버리고 있다 고아원 등 사회복지 시설에도 일회성 후원자나 홍보에만 눈이 어두운 기업체 지역유지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일부 중소기업체들은 공익 자선단체들을 순회하며 홍보에만 열을 올린 뒤 꽁무니를 빼기 일쑤라고들 한다.


 이에 대해 한국복지재단 국내 결연팀장은 벤처기업이나 보험사가 홈페이지의 상품 판매 사이트에 수익금을 불우이웃에게 전달한다고 홍보한 뒤 입을 씻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관공서도 부서장이 바뀌면 후견인이 약속을 저버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사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바로 엊그제 한국의 경제, 사회, 정치의 투명성의 부실이 결국 우리나라의 경제 몰락의 주원인이 아니었는가? 이러한 사회의 현상은 일시적인 거짓과 위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에게 크나큰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결국 총체적인 대내외적인 우리 사회의 신뢰도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데에 큰 충격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자슥들아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5-26)

언젠가 상가(喪家)에 들러 문상을 한 적이 있다 연로하신 그 집의 가장이 숙환으로 별세하였는데 그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해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자식 중 누구도 우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어떤 자녀들은 문상 온 자기 친구들과 맥주잔을 기 울이면서 담소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어느 친척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자슥들아! 느그 애비가 죽었단 말이다. 아무리 슬프지 않아도 울어라 좀 울어.


 이 불효막심한 자슥들아, 문상 오신 분들 보기 남사스럽다, 남사스러워" 이에 당황한 자녀들이 하나씩 아버지의 영정 앞으로 와 "아이고, 아이고' 하며 우는 시늉을 하였다.

 

 

 
 
 

 

 

영적인 배우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 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8.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젓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11년 동안이나 숨기고 살았 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11년간 매일 아침 읽지도 못하는 신문을 펼쳐 들고 읽는 시늉을 했다고 합니다. 남의 눈에 그럴 듯해 보이고자 했던 그
사람의 눈속임은 과연 자신에게 어떤 만족감을 줄 수 있었을까요 ? 그런데 슬프게도 매사추세츠 주에 산다는 그 사람의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겉치레 경건주의”, “겉치레 말”, “겉치레 선행”, “겉치레 기도”, “ 겉치레 웃음” 이러한 것들이 당신의 신앙 생활에는 없는지요 ? 우리는 “영적인 배우” 상태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비록 사람은 모를 지 몰 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희로 사람을 보고 외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진실함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위선을 경계하라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쓴 명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란 책에 보면 어느 곳에 마음이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의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흠모한 나머지 저 사람이 혹시 천사가 사람이 되어서 내려오지 아니하였는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밤마다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살인, 방화, 강간, 도둑, 소녀유괴 등 끔찍한 범죄 사건이 밤마다 일어니서 모든 사람이 범인이 잡히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느날 칼경이 단장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그 단장을 보니까 바로 지킬 박사의 친구인 앤더슨이란 변호사가 지킬 박사에게 준 것임 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킬 박사를 찾으려 했으나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어서 그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까 바로 지킬 박사의 옷을 입고 자살해 죽은 하이드란 사람이 누워 있 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하이드란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지킬 박사였습니다. 이 끔찍한 범인 하이드란 사람은 바로 선량한 사람으로 이름난 지킬 박사로서 이상한 약을 먹고 마음도 얼굴도 흉악해져서 밤마다 이런 끔찍스런 일을 범하다가 결국은 자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위선을 경계하자
 
마태복음 23 : 23~28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요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5)

 로버트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계속 나옵니다. 어느 동네에 마음씨 착하고 선행을 많이 베푸는 지킬박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천사처럼 여기며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는 거의 매일 밤 살인과 절도 유괴 등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범인의 단서가 잡혔습니다. 칼 경이라는 유명인사가 지팡이에 맞아 살해되었는데, 범행에 사용된 지팡이가 발견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는 앤더슨이란 변호사가 지킬 박사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경찰이 지킬 박사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지킬 박사의 옷을 입은 하이드가 자살한 것을 보게 됩니다. 천사 같던 지킬 박사와 끔찍한 연쇄 사건의 범인인 하이드는 같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 소설이 보여 주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두 가지 성품의 '끼'가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선함'과 '악함'의 양면이 두드러지게 표출될 때, 인간은 '위선자'가 되고 '이중 인격자'로 전락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나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서 위선의 뿌리를 발견합니다. 주님을 판 대가로 은 30냥을 받고서도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입니까?" 하며 가증스런 태도를 보이던 유다에게서도 위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선을 싫어하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 하며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런데 타락한 오늘의 세태는 가증스런 위선이 더욱 판을 치고 있습니다. 웃음을 띤 얼굴 뒤로 온갖 추악함이 깃들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오직 선한 양심을 가지고 생활함으로써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면의 삶을 돌아보고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 결단해야 합니다.

 

 

 
 
 

 

 

마음속을 살펴보라
 
회개는 위선자들에게 필요하다. 위선은 성결을 위장하는 것이며, 위선자 또는 무대 연기자는 도덕가보다 한 술 더 떠 종교의 의상으로 몸치장을 하고 있다.
 그는 경건의 형식은 자처하지만 능력은 부인한다(딤후 3:5). 위선자는 아름다운 외관을 가진 집 같지만 모든 방안은 어둡다. 그는 아름답게 금박을 입힌 썩은 기둥이며, 그는 신앙고백의 가면 밑에 자기의 전염병의 상처를 감춘다. 위선자는 얼굴을 화장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거룩을 꾸미는 화장을 한다.


그는 겉으로 선하기 때문에 정말로 악할 수 있다. 위선자는 그의 눈을 하늘나라에 못박아놓고 있는 것 같으나 그의 마음은 불순한 육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그의 양심에 역행하여 비밀한 죄 가운데 살아간다.


그는 말씀을 듣지만 오로지 귀뿐이다. 그는 교회 헌신에 열심이며 그 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그를 칭찬하지만 그러나 그는 가정과 골방 기도를 등한시한다. 위선자는 겸손을 가장하지만 이것은 세상에서 출세하기 위하여서다.


믿음을 자처하지만 그는 믿음을 방패로 삼기보다 오히려 가면으로 삼아 이용한다. 그는 겨드랑이에 성경책을 끼고 다니지만 자기 마음속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말씀의 촛대를 가지고 당신의 마음속을 조사해서 혹시 거기서 아무 회개거리도 찾아낼 수 없을지 살펴보라

 

 

 
 
 

 

 

위선적 그리스도인
 
토머스 왓슨은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생명을 잃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의 보상을 잃을 수는 없다. 그는 자기의 머리를 잃을 수는 있을지언정 면류관을 잃을 수는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생명은 잃지만 보상은 잃지 않고,머리는 잃지만 면류관은 잃지 않는 경우는 한없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이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핍박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참성도를 구별해내는 방법입니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위선자들은 감람산까지는 그리스도를 따라가겠지만 갈보리산까지는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숨을 내놓는 체하면서 내놓지는 않고,희생하는 체하면서 희생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하나님도 이런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는 체하시면서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면류관의 상을 얻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룩이라는 이름의 위선 신앙
 
스펄전 목사는 위선적 신앙을 빗대어 ‘비 없는 구름과 같고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이 바짝 말라버린 개울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 ‘그것은 마치 연극 배우가 왕의 복장으로 분장하여 무대 위를 늠름히 거닐다가 연극이 끝난 후에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가난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여 설교하였다.

위선자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선을 행하는 사람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명예를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외양은 마치 미려한 양장본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은 형편없는 책들처럼, 내적인 면을 소홀히 하고 외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쏟는 사람이다. “하루살이는 걸러서 먹고 낙타는 삼킨다”는 중동의 속담처럼, 위선자의 특성은 큰일을 등한히 하고 사소한 일에 구애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 위선자의 특징은, 남에 대해서는 신랄할 만큼 비판적이고 자신에 대해서는 지나치리 만큼 관대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금욕적 생활과 경건한 외모로 신앙의 빛 좋은 허울을 쓰고 있어도 결코 속일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음속에서 발아하는 위선의 싹을 애초부터 뽑아버리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위선적인 신앙이야말로 복음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거짓된 삶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위선을 경계하자
 
로버트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계속 나옵니다. 어느 동네에 마음씨 착하고 선행을 많이 베푸는 지킬박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천사처럼 여기며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는 거의 매일 밤 살인과 절도 유괴 등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범인의 단서가 잡혔습니다. 칼 경이라는 유명인사가 지팡이에 맞아 살해되었는데, 범행에 사용된 지팡이가 발견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는 앤더슨이란 변호사가 지킬 박사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경찰이 지킬 박사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지킬 박사의 옷을 입은 하이드가 자살한 것을 보게 됩니다. 천사 같던 지킬 박사와 끔찍한 연쇄 사건의 범인인 하이드는 같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 소설이 보여 주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두 가지 성품의 '끼'가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선함'과 '악함'의 양면이 두드러지게 표출될 때, 인간은 '위선자'가 되고 '이중 인격자'로 전락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나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서 위선의 뿌리를 발견합니다. 주님을 판 대가로 은 30냥을 받고서도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입니까?" 하며 가증스런 태도를 보이던 유다에게서도 위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선을 싫어하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 하며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오늘의 세태는 가증스런 위선이 더욱 판을 치고 있습니다. 웃음을 띤 얼굴 뒤로 온갖 추악함이 깃들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오직 선한 양심을 가지고 생활함으로써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면의 삶을 돌아보고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 결단해야 합니다

 

 

 
 
 

 

 

마음속을 살펴보라
 
회개는 위선자들에게 필요하다. 위선은 성결을 위장하는 것이며, 위선자 또는 무대 연기자는 도덕가보다 한 술 더 떠 종교의 의상으로 몸치장을 하고 있다. 그는 경건의 형식은 자처하지만 능력은 부인한다(딤후 3:5). 위선자는 아름다운 외관을 가진 집 같지만 모든 방안은 어둡다. 그는 아름답게 금박을 입힌 썩은 기둥이며, 그는 신앙고백의 가면 밑에 자기의 전염병의 상처를 감춘다.

위선자는 얼굴을 화장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거룩을 꾸미는 화장을 한다. 그는 겉으로 선하기 때문에 정말로 악할 수 있다. 위선자는 그의 눈을 하늘나라에 못박아놓고 있는 것 같으나 그의 마음은 불순한 육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그의 양심에 역행하여 비밀한 죄 가운데 살아간다. 그는 말씀을 듣지만 오로지 귀뿐이다.

그는 교회 헌신에 열심이며 그 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그를 칭찬하지만 그러나 그는 가정과 골방 기도를 등한시한다. 위선자는 겸손을 가장하지만 이것은 세상에서 출세하기 위하여서다. 믿음을 자처하지만 그는 믿음을 방패로 삼기보다 오히려 가면으로 삼아 이용한다.

그는 겨드랑이에 성경책을 끼고 다니지만 자기 마음속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말씀의 촛대를 가지고 당신의 마음속을 조사해서 혹시 거기서 아무 회개거리도 찾아낼 수 없을지 살펴보라.

 

 

 
 
 

 

 

이단의 위선
 
고후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사람들은 자기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쉽게 해치우는 이들에게 존경과 경외의 감정을 지니게 마련입니다. 샘 패치(Sam Patch)라는 사람이 1829년, 높이 48미터나 되는 나이아가라폭포에 뛰어들었다가 살아나왔을 때, 당시의 미국인들은 미친 듯이 열광했고 그로 인하여 '샘 패치 흉내내기'가 열병처럼 전미국을 휩쓴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이런 심리를 간파한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고행이나 금욕적인 행위를 강요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야만 그 종교를 신봉하는 일반 신도들에게 그들이 신성하고 거룩해 보이고 또 권위가 있겠기 때문입니다.

고로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건전한 인간관계를 파괴하거나 또는 비인격적인 인간 활동을 권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비록 천사의 모습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위선자요 가짜 크리스천이라고 정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머니 속의 금 십자가
 
어느 때 친구가 전에 없이 커다란 금 십자가를 가슴에 단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붙들고 한 마디 했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어느 사람이 쓴 논문을 보았더니 가슴에 단 십자가가 크면 클수록 위선도가 높다 그러더구만” 그랬더니 그는 당장 떼서 주머니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마디 더했습니다. “주머니에 떼서 넣는 사람은 더 위선자라고 그러더구만.”

 

 

 
 
 

 

 

천국의 문
 
세계적인 부흥사 무디(D.L.Moody)는 하루에 1명씩 개인 전도를 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우고 노력한 분입니다. 하루는 교회에 대해 대단히 나쁜 감정을 갖고 있던 한 불신자를 만났습니다. 무디 선생이 그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교회에 나올 것을 요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는 교회에 나가고 싶어요. 그러나 저는 많은 위선자들이 말과 행실이 틀리면서 교회 생활을 하고 있기에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군요. 저는 그 위선자들이 골도 보기 싫거든요." 그러자 무디 선생은 하나님이 주시는 순간적인 지혜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도 보기 싫은 위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 가운데도 유다라는 위선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것은 당신도 알고 있으시지요? 그리고 그 위선자들은 아무리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니까요, 그들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도 교회를 부정하고 나가지 않는다면 분명히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지옥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당신이 그렇게 싫어한 위선자들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교회에 나온다면 잠시 위선자들과 만나겠지만 교회 출석을 거부한다면 영원히 그들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교회 생활을 잘해서 천국에 가게 된다면 거기에는 위선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 되겠습니까? 당신이 진정 위선자들을 중오하고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부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래서 위선자들과 영원히 헤어지는 기쁨을 맛보십시요." 무디의 지혜로운 대답에 감동을 받은 이 사람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착실한 교인이 되었습니다. 비록 교회 안에도 많은 문제와 거짓과 부정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교회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인 것입니다.

 

 

 
 
 

 

 

위선적인 삶
 
나다니엘 호오돈이라는 작가가 쓴 주홍글씨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의 여주인공의 이름은 미모의 여인 헤스터 프린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강요로 돈이 많고 나이도 많은 의사 칠링워드와 결혼하여 남편의 권유로 먼저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와 보스턴의 한 작은 마을에 정착합니다.

곧 뒤따라오겠다던 남편이 세월이 꽤 흘러도 오지 않자 헤스터는 남편이 죽은 줄로 생각하고 마을의 목사인 아서 딤스데일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맙니다. 그리고 딸 펄을 낳습니다.남편이 없는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조그만 마을에 금새 퍼지고,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고 판단한 동네 주민들이 헤스터를 감금하고 엄격한 재판을 합니다.하지만 헤스터는 끝내 불륜의 상대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재판은 헤스터에게 딸을 안고 3시간 동안 교수대 위에서 만인의 구경거리가 된 뒤 주홍색의 'A'자를 가슴에 달고 다니라고 판결을 내립니다. 'A'는 '간통'을 의미하는 영어'Adultery'의 머리글자로, 나는 간통한 여자라는 것을 온 동네방네에 알리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간음죄로 몰린 헤스터는 판결대로 'A'자를 달고 당당히 그 마을에서 살아갑니다.

그로부터 7년 뒤, 헤스터가 교수대에 섰던 바로 그 자리에 선 딤스데일 목사는 마을 축제를 시작하는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설교를 마친 딤스데일 목사는 갑자기 헤스터와 그녀의 딸을 부르며 바로 자신이 그 상대라고 외치곤 양심의 가책 속에 살아온 자신의 죄를 고백한 뒤 숨을 거둡니다.

이 소설은 청교도적인 신앙이 가치를 이루는 당시 미국 사회의 허상을 꼬집는 소설이었습니다. 실상은 간음하는 여인보다 더 위선적인 죄악의 삶을 살면서도 남의 죄를 쉽게 정죄하는 당시의 사람들의 이중성을 꼬집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와 우리의 삶을 보면 정죄는 잘 하고 파해치는 잘 합니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우리 자신의 위선과 죄악들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쯧쯧쯧쯧
 
남의 종교 이야기하기가 거시기 하지만, 오늘 어떤 신문에 난 글을 읽고 느낀 것이 있어서 한마디 합니다. 원래 스님들 옷은 똥걸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옷이 낡으면 걸레로 만들어 쓰다가 걸레로도 쓸 수 없을 만큼 닳아지면 똥걸레로 쓰다가 똥걸레로도 쓸 수 없게 되면 그걸 덕지덕지 기워서 스님들의 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일부러 최고급 소재의 천을 가위로 잘라 누더기 옷을 만들어 입는데, 그 누더기 패션 옷 한 벌에 몇 백만원짜리도 있다고 합니다. 참, 어이가 없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하품이나 하자.


성경에서는 이런 모습을 가리켜 '바리새인의 위선'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도 이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모습 솔직히 많죠?

 

 

 
 
 

 

 

외식, 위선에 관한 성경 말씀
 
0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1-5)

0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16)
0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5)
0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 7, 8))
0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23: 24- 26)
0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8)
0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마23:29)

0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막7:6)
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막12:40)
0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눅12: 56)
0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11:14)
0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갈2:13)
0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2)

 

 

 
 
 

 

 

외식, 위선에 관한 금언
 
0 외식이란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걸어가는 악이다.(죤 밀턴)
0 밖에서는 성도, 집에서는 악마
0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마음에 없는 일을 하고서도 스스로 그렇게 한 것처럼 보이려는 사람이 많다.
0 외식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의 인격이나 인품이 아닌 것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사실 그대로 자신을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안전하며, 즐겁다(리챠드 세실)
0 위선은 그리스도의 제복을 입고 악마의 고역을 하는 것이다.(매튜 헨리)
0 악인이 성자처럼 외식할 때, 더 나쁜 사람이 된다.(베이컨)
0 외식하는 자 뒤에 숨는 자는 외식하는 자보다 더 형편없는 자이다.(윌리엄 비더울프)
0 어느 누구도 즐거워하는 데에는 위선적이지 않다.(사무엘 죤슨)
0 외식은 악이 선에게 표하는 존경이다.(로슈푸코)

 

 

 
 
 

 

 

위선자
 
“궤휼로 그 감정을 감출지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잠 26:26)

스펄전 목사는 위선적 신앙을 빗대어 ‘비 없는 구름과 같고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이 바짝 말라버린 개울과도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연극 배우가 왕의 복장으로 분장하여 무대 위를 늠름히 거닐다가 연극이 끝난 후에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가난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여 설교하였습니다.

위선자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명예를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외양은 마치 미려한 양장본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은 형편없는 책들처럼, 내적인 면을 소홀히 하고 외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쏟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듣기 좋은 말로 상대방을 속여서 안심시켜 놓은 다음, 기회를 엿보아 보복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악한 감정과 위선은 결국 드러나고 맙니다. 이들은 완벽하게 감정을 감추고 아무도 모르게 보복했다고 자축하더라도, 그 악의 썩은 냄새는 결코 감추어지지 못하고 만인 앞에 드러나고 마는 것입니다.

 

 

 
 
 

 

 

행복한 위선자
 
얼굴이 험악하게 생기고 성격이 비뚤어진 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사나이는 아름답고 순결한 아가씨에게 청혼을 했지만 “당신처럼 험악하게 생긴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없습니다”라며 거절했습니다. 이 사나이는 인자하게 생긴 모습의 가면을 쓰고 청혼을 했고 드디어 그 아가씨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사나이와 결혼하고 행복해 하는 아내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남편의 과거와 가면을 폭로했습니다. 여인은 당장 남편의 가면을 벗겼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험악한 얼굴이 아닌,인자한 모습으로 변한 얼굴 모습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고 사느냐에 따라 그 모습도 그렇게 따라 변합니다. 사람은 마음 먹은 대로 살게 마련입니다. 사랑과 행복을 먹은 마음은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합니다. 겉의 푸름만 갖고 사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속의 푸름으로 아름다운 승리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갑시다.

 

 

 
 
 

 

 

척'하지 말아라
 
바쁜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일을 여유 있게 처리할 능력을 당신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피곤한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힘을 당신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가시관을 씌우므로 당신의 모든 어리석음을 담당시키셨고,
당신의 머리에 성령을 부으시므로 모든 지혜와 총명을 이미 넘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픈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채찍에 맞게 하시므로 당신이 이미 나음을 입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가난을 짊어지우셨으므로 당신은 이미 부유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힘든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므로 당신에게 이미 권능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에게 산을 옮길 만한 겨자씨 만한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당신의 연약함을 실제로 담당시키셨고, 성령을 통해 이미 당신을 강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슬픈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의 슬픔을 그리스도에게 실제로 담당시키셨고, 성령을 통해 희락이 넘쳐 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성령을 통해 당신의 마음 속에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넘치는 평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고, 성령 안에서 믿음을 통한 의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혼자인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항상 당신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고아와 과부처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당신과 함께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당신과 같은 역경을 거쳤고,
결국 모진 세파를 거치면서도 그들의 꿈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 꿈을 이루신 성령이 당신 안에서 지금도 당신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기름부음이 없는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 안에 기름부음이 이미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만 바라보고 현실만 고백하지 맙시다. 성경이 말하는 바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율법을 어겨도 좋다
 
이스라엘의 유명한 랍비 학교에 힐렐이라는 이름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을 했습니다.

힐렐이 낮에 일을 하면 일당으로 2만원을 받았는데, 그 중에 1만원은 아내에게 생활비로 주고 나머지 1만원으로 랍비 학교의 수업료로 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일감이 없어서 2만원을 벌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빈손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돈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교실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한 참 고민을 하다가 문득 교실의 천장에 햇볕이 들어오는 채광창이 있음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지붕으로 올라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채광창 앞에 납작 붙어서 교실 안을 훔쳐보면서 밤새도록 공부를 하다가 너무 피곤하여 그만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 날 밤에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교실에 들어선 율법 선생님이 왜 이렇게 어둡느냐며 천장을 보니 채광창에 누군가가 엎드려 있었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지붕위로 올라가 보았더니, 곤하게 잠들어 있는 힐렐 학생의 등에 눈이 1m나 쌓여 있었습니다. 인기척을 느끼고 힐렐이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힐렐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힐렐이 몸을 움직이면 그것은 안식일에 무거운 것을 옮길 수 없다는 율법을 어기게 되고, 등 위의 눈을 쓸어 내리면 그것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힐렐의 몸이 점점 식어갔습니다. 학생들은 율법 선생님의 얼굴만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얼마 후 율법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안식일 율법을 어겨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얼른 힐렐을 난로가로 데려다가 언 몸을 녹여주고 기름을 발라 주었습니다.

 

 

 
 
 

 

 

위선자2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농부가 바위 틈새로 삐쭉나와 있는 호랑이 꼬리를 발견했다. 그는 집으로 줄행랑을 치고 싶었으나 결국 그 꼬리를 움켜쥐고 말았다. 일단 호랑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겠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부터 바위틈을 사이에 두고 호랑이와 농부사이엔 필사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이런 상태가 얼마간 계속 되었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는 중이 있었다. 농부로서는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농부는 중을 향하여 소리쳤다.
[스님, 저기 있는 저 낫으로 이 호랑이를 찍어죽여 주십시오 제가 이 꼬리를 붙들고 있는 한 스님 에게는 절대로 위험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중은 근엄하고 온화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농부여, 불교의 계율에는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이 있소이다 당신의 처지가 딱하기 는 하나 내 어찌 평생을 지켜온 불살생의 계율을 범할 수 있으리오]하고는 아미타불을 연발한뒤 자기 길을 갈려고 했다.
희망이 사라져 버린 농부는 이제 지칠대로 지쳐 하는 수 없이 쥐고 있던 꼬리를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농부는 중을 향하여
[스님 저는 지금 너무 지쳐서 이 꼬리를 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호랑이는 저나 스님중 하나를 잡아먹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보시다시피 뼈와 가죽만 남은 저보다는 살이 퉁퉁한 스님을 잡아 먹을 것이 분명합니다.스님이 정말 계율 때문에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면 제 가 잠깐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스님께서 이 호랑이 꼬리를 잠시 동안만 함께 잡아주십시오]
이에 한참을 생각하던 중은


[그래 계율에 호랑이 꼬리를 잡지 말라는 것은 없으니 내 잠시 함께 잡아주지]하면서 크나큰 자비를 베푸는 양 한껏 뻐기며 호랑이 꼬리를 잡았다. 농부는 중이 호랑이 꼬리를 확실하게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잽싸게 꼬리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이에 당황한 중은 순간적으로 소리쳤다.
[여보게 제방 부탁이니 저기 저 낫으로 이 호랑이를 찍어 죽여 주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농부는 빙그래 웃으면서


[스님 저희 집안도 사실은 대대로 불교를 믿어온 집안인데 이제와서 불살생의 계율을 어길 수 없아 온지라 혹 이곳에 살생을 에사로 여기는 망나니가 지나가거든 그때 부탁을 해 보시지요]하고는 농부는 휘파람을 불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동남아 일대에 전해져 오는 것으로 계율에 얽매여 사는 소승적인 종교인들의 위선을 풍자한 이야기다.

 

 

 
 
 

 

 

일본인들의 와리깡 정신
 
일본인 들에게는 우리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훈훈한 교제가 드물다.서로를 집으로 초청해서 함께 음식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을 우리 한국 사람들은 매우 즐기는 편이다.
 거기에서 서로 교제하고 자신의 사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서 서로간의 벽을 허문다.

그런데 일본인들에게는 그런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들은 와리깡 정신이 아주 찌들어 있는 사람들이다.
와리깡은 바로 [주기도 싫고 받기도 싫다]라는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주기도 싫고, 아무 이유없이 받기도 싫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상당히 합리적인 생각으로 보인다. 그러나 얼마나 삭막한지 모른다.


한번은 KBS방송국 일본 특파원이 자신에게 기사를 가끔 제공해는 어느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그와 교제하고 싶은 마음에 하루는 그를 점심에 초대했다. 그들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아주 재미있게 식사를 했다고 한다. 물론 초대한 특파원이 굳이 나누어 내겠다는 것을 혼다서 음식값을 다 부담했다.



그가 초대했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기자는 흐믓한 마음으로 그 사람과 헤어지면서 자꾸만 자신이 먹은 것은 자기가 내야한다고 말하는 그 사람에게 우리의 상식대로 웃으면서 [ 어휴, 그렇게 서운하면 다음에 언제 점심 사시면 되잖아요]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곡 다음에 사달라는 말이 아니라 그를 편하게 해 주고자 하는 배려임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데 몇일 후에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점심을 함께 먹자는 것이었다.



 그 기자는 얼마나 마음으로 기뻤는지 몰랐다. 그와 교제가 그렇게 조금씩 이루어 지고 있음을 기뻐하며 기꺼히 그의 초대에 응했다.
그 사람은 지난번 먹었던 그 식당에서 만날 것을 제의했고 그곳에서 둘은 만났다. 그리고 지난번에 시켰던 음식을 주문하자고 그 사람이 제안해 좋다고 했다. 식사가 끝난뒤 그 사람은 지난번에는 내가 폐를 끼쳤으니 갚고 싶다며 계산을 했다.
그리고 둘은 헤여졌는데 비로소 기자는 자기가 당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왜 그 사람이 지난번 메뉴와 똑같은 것으로 시켰는지, 왜 똑같은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번 자기가 낸 돈에서 한푼도 에누리 없이 계산을 기막히게 맟춘 것이었다.
그 기자는 씁쓸한 감정으로 돌아서면서 이제 저 사람과는 끝이구나하는 마음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의 동료로부터 나중에 이런말을 전해 들었다고한다.
그날 점심 식사후에 그 사람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유 없이 남에게 밥한끼 얻어먹고 혼났다. 그것을 갚고 나니까 속이 후련하다]했다고 한다.
그 뒤로 그 기자는 일본인에 대한 환싱이 깨어지고 오히려 그들에대해서 절망감을 느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와리깡 정신을 자랑하면서 왜 아시아 많은 국가들에게는 그렇게 엄청난 폐를 끼치고도 갚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바로 일본인의 모습인 것이다.


 

 

 
 
 

 

 

입으로 믿는 믿음
 
미국 남부의 어떤 지방에서 부흥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설교자는 밤 집회에서 마귀에 대하여 설교하겠노라고 광고를 하였다. 그러자 그 동네의 꼬마 아이들이 그 늙은 설교자를 놀려 주려고 작당하였다. 한 아이가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신으로 변장하였다.

그는 빨간색의 옷을 입고 여러 갈래의 꼬리를 달고 손에는 큰 갈퀴를 들고서 예배가 시작하기 전에 예배당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계단문 뒤에 숨어 있었다. 예배가 시작하여 찬송과 기도와 헌금의 순서가 끝났을 때 설교자는 마귀에 대한 그의 설교를 시작했다. 설교자의 설교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에 갑자기 계단문이 활짝 열리면서 귀신으로 변장한 소년이 마루로 뛰어내려와 손에 큰 갈퀴를 들고 설교자를 향하여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이때 사람들은 두려워서 밖으로 재빨리 도망갔다. 그때 설교자는 무릎을 꿇고
“오. 마귀 선생님.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입으로만 말했지 마음은 당신과 함께 있답니다. 마음은 당신을 향해 있읍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빌었다.


이것은 입으로만 큰소리를 지르고 행동이 없는 사람의 일면을 보여 준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많은 크리스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혀 고난과 핍박을 당하지 않는 상태에서 안일하게 믿고 있는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어려움보다도 편안함을. 실천하기보다는 말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위선적인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남의 더러움만 보는 것
 
폴란드의 피아노 연주가이며 작곡가로 정치가로 유명한 파데레프스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보스톤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는데 열 두, 세 살 되어 보이는 구두닦이 소년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꾸벅하고는 구두를 닦게 해 달라고 했다.

누추한 작업복을 입고 손에는 솔을 들고 있는 소년의 얼굴에는 구두약이 묻어 더러워져 있었지만 귀여웠다.
그래서 파데레프스키는 “내 구두는 지금 당장 닦지 않아도 좋은데 네 얼굴은 좀 닦아야 하겠다. 네가 얼굴을 닦고 오면 이 은전을 주겠노라"고 하고는. 주머니에서 은전을 꺼내 보였다. 그랬더니 이 소년은“네.”하고 대답하고는, 즉시 세면소로 가서 얼굴을 깨끗이 닦고 돌아왔다.


파데레프스키는 웃으면서 소년을 한 번 안아 주고서는 약속대로 은전을 손에 쥐어 주었다. 소년은 돈을 받았다가 잠시 후 다시 돌려 주면서 하는 말이“이번에는 제가 이 은전을 드릴 터이니 아저씨. 머리 좀 깎고 오세요.”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파데레프스키의 모자 속에는 긴 머리털이 단정치 못하게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에 긴 머리털을 예술가의 자랑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 보기에는 흉하게 여겨지고 있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어린 아이에게 망신을 당한 것이다. 사람들마다 다른 사람의 결점은 쉽게 보면서도 자신의 결점은 보지 못하는 것이 결점이다.

 

 

 
 
 

 

 

은밀한 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밖으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이
일반적인 욕망인 것 같다. 어느 회사 사장 비서가 이웃돕기 성금을 가지고
서울 시내 모 일간신문사를 찾아 갔다.



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한 그 비서는
"이 성금을 내신 우리 사장님 사진을 신문에 실어 주십시오." 하며 부탁하
자 신문사에서는 신문에 얼굴을 낼 수 있는 성금의 한도액을 말해주며 어렵
다고 하여 "그러면 그 성금을 돌려 주십시오."하며 되찾아 갔다.



아무리 명
예가 귀중하고 본능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기탁한 불우 이웃돕기 성금을 다
시 찾아갔다는 이 사실은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나팔을 불지 말라.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
고 하셨다. 자기의 공유호 침소봉대하여 들어내기를 원하는 오늘의 현실에
서 진실로 은밀한 손과 같이 살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말로만 위로하는
 
주인의 말을 돌보는 머슴이 언제나 말의 먹이는 몰래 훔쳐 팔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머슴은 종일 빗으로 말의 털을 빗겨주고 문질러 주고 하였다.
참다 못한 말은 머슴 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진심으로 내가 예뻐지는 것을 원한다면 나의 양식을 훔쳐가지 않는 것으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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