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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제별 예화모음)
▣ 나는 누구인가?
어느 날 새끼 호랑이가 엄마와 풀밭에서 재롱을 떨며 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끼 호랑이가 그 어미 호랑이에게 물었습니다."나 호랑이 맞아? 달리기도 못하고 토끼 한 마리도 못 잡고 사냥도 못하는 내가 호랑이 맞아?" 어미는 대답합니다."그럼 내가 낳은 새끼니까 너는 틀림없는 호랑이다" 또 물어 봅니다."강아지 만도 못한데 나 호랑이 맞아? 난 아무 것도 못하는데 내가 호랑이 맞아?"자꾸 물어보니까 화가 난 어미 호랑이가 "야 이 개새끼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졸지에 개새끼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아무 것도 못해도 호랑이는 호랑이요, 사람은 사람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주병, 왕자병 등에 걸려있고 자기의 현재 가지고 있는 물질, 지위, 재능, 직분이 마치 영원히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목사이자, 교사이지만 이것은 잠시 나에게 맡겨진 직분일 뿐이지 결코 나를 뜻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건강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실제 나는 불치의 병에 걸려 심히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자기 자신과 인간이 무엇 때문에 왜 존재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물질이나, 고등동물 정도로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잘못 해석하여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였고 인류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나를 똑바로 알고, 인간을 바로 알려면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우주속의 지구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고 지구속의 나는 한 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보시에 나는 한 점이요, 티끌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안 후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사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심에 놀라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8:4)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어떻게 보시는 가 성경 스바냐서 3장 17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가 누구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임을 잊지맙시다.
▣ 귀중한 나
그토록 귀중한 너만이 그에게든 아니면 다른 그에게든 사랑받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재잘거렸던 영특한 지혜를 이제는 너 자신을 위해 쓰렴.
네가 귀중해지면 누구든 네게로 돌아온다. 그가 아니라면 더 귀중한 무엇이 돌아온단다.
- 공지영의《상처없는 영혼》중에서 -
* 자신을 사랑하는 것!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울 듯 싶은 이 일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네가 귀중해지면 누구든 네게로 돌아온다"는 말이 마음을 울립니다. 쉽지 않은, 그렇지만 꼭 해야 할 이 일을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해냈으면 좋겠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내 안에 보석 있다
보석은 어디에 갖다 놓아도 보석입니다. 오물이 묻어 있어도 보석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물 정도야 잠깐 닦아내면 보석은 그 영롱한 빛을 금방 다시 보여줍니다. 6.25 전쟁을 겪은 어느 분은 전쟁으로 집과 땅과 곳간에 가득 채워놓은 벼 가마니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답니다. 빈털터리가 된 그분에게 남아있는 것은 그분이 가지고 있는 기술밖에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 기술로 열심히 일을 해서 재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집과 땅과 곳간에 가득 채워놓은 벼 가마니보다도 백배 더 가치 있는 보물은 내 안에 있는 '실력'입니다. 몸에 지닌 것이 진정한 내 것입니다. 옛 어른들은 집안에 보석이나 금붙이를 많이 감추어 두었습니다. 궁할 때 금이나 보석은 금방 돈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곤경에 처할 때 실력은 나를 살리는 보석이나 금붙이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자신만의 '탁월한' 실력을 쌓으세요. 그냥 먹고 살 정도 가지고는 안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실력자가 되세요. 그것이 내 안에 있어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최고의 보석입니다.
ⓒ최용우
▣ 나는 무엇인가요?
좀 무거운 질문인가요?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냥 '생각' 한번 해보자는 것이지요. 우리는 젊었을 때,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을 보고 '나야 나.. 저때는 참 예뻤구나' 하고 말합니다. 아기 때와 지금의 모습이 너무 다른데 그런데도 그 모습이 '나' 라고 하네요.
그러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 막 꿈틀대기 시작하던 모습도 '나'인가요? 기독교인들은 태아도 '생명'이라고 보기에 '낙태'를 반대합니다. 그러면, 그 이전 아빠의 몸 속에 '정자'의 형태로 존재했을 때도 '나'일까요? 아이고.... 그냥 넘어갑시다.
그럼 반대로, 내가 죽으면 아무리 나를 사랑했던 가족들이라도 나를 3일 후면 땅 속에 묻어버리거나 불에 태워서 나무아래 뿌려버릴 것입니다.
자, 나무 밑이나 무덤에 묻혀있는 게 '나'입니까? 나의 세포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땅 속에서 몇 년 안에 흙 속으로 스며들어가 무덤가의 풀 한 포기로 흡수되어 풀잎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한 송이 민들레꽃이나 할미꽃으로 피어나거나 아니면, 나무에 흡수되어 낙엽이 되거나 나무에 열리는 열매가 되기도 하겠지요? 그럼 그 꽃이나 낙엽이나 열매가 '나'입니까? 아이고.... 그냥 넘어갑시다.
'나'는 무엇인가요? 나는 그저 물질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육체는 '나'를 담고 있는 그릇에 불과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육체에 담겨 있는 '영혼'이 진짜 '나'라는 사실입니다.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 말은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은 '육체' 보다는 '영혼'에 있어야 합니다. 영혼! ⓒ최용우
▣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얼마 전에 나온 `한국직업사전'에 의하면 현재 국내 직업 수는 11,537개라고 합니다. 10년 전에 비해 1천여 직업이 늘어났고 점점 세분화되며 기발한 직업이 생겨나고 있다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흉내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무턱대고 다른 사람과 같게 되려는 노력을 하다가 자기를 잃어버리고 좌절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각기 특성 있게, 독특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11,537가지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내가 하는 그 일이 내가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우리의 삶의 행복은 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과 환희에 넘칠 것이며, 남을 모방한다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는 괴로움과 절망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행복할 권리와 자격이 있기에 하나님은 당신에게 달란트를 주셨고, 일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재능과 직업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 기도: 각자에게 적합한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기억하며, 주신 은사와 능력으로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 하나뿐인 나
내 옷장에는 별로 입지 않은 스웨터가 하나 걸려 있다. 소매도 너무 짧고 어깨도 너무 좁다. 단추도 몇 개 떨어져 나갔고, 실밥도 닳아 해어졌다. 합리적으로 생각하자면 나는 그 스웨터를 치우고 공간을 넓혀야 한다. 그것이 논리의 말이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나는 그럴 수 없다. 스웨터에 얽힌 독특한 사연이 나로 하여금 스웨터를 버리지 못하게 한다. 남다른 사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스웨터가 할머니의 애틋한 모정이 표현된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스웨터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실가닥 하나하나 정성스레 고른 것이다. 실밥 하나하나 사랑으로 택한 것이다. 스웨터로서의 용도는 모두 잃었지만 가치는 전혀 잃지 않았다. 그것이 가치있는 것은 기능 때문이 아니라 지으신 분 때문이다. 시편 기자도 그와 똑같은 마음으로 이렇게 고백했을 것이다.
"주는...어머니의 태에서 나를 베를 짜듯이 지으셨습니다."
이 표현을 생각해 보라. 당신은 베를 짜듯이 지어진 존재이다. 당신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대량 생산품도 아니다. 조립 라인에서 짜 맞추어진 제품도 아니다. 당신은 최고의 장인(匠人)이신 하나님에 의해 세심하게 설계되어 특별한 은사를 받아 사랑으로 이 땅에 보냄받은 존재이다. 2인자가 설 곳이 없는 사회에서 그것은 기쁜 소식이다. 봉급액수나 다리의 각선미로 인간의 순위를 매기는 사회에서...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을 향한 예수님의 설계야말로 기쁨의 진정한 이유이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맥스 루카도)
▣ 나를 상징하는 딱 한 단어는?
개나리는 희망, 과꽃은 추억, 국화는 명복, 금낭화는 수줍음, 금잔화는 겸손, 나팔꽃은 허무한사랑, 상사화는 순결, 도라지꽃은 성실, 동백꽃은 신중, 라일락은 첫사랑, 루드베키아는 영원한 행복, 맨드라미는 열정, 모란은 부귀, 목련은 우아, 무궁화는 일편단심, 물망초는 나를 잊지마세요, 백일홍은 꿈, 백합은 순결, 사르비아는 정열, 상사화는 이별, 수련은 신비, 아카시아는 우정, 안개꽃은 약속, 옥잠화는 추억, 장미는 사랑, 접시꽃은 풍요, 채송화는 순진, 코스모스는 순정, 포인세티아는 축복, 프리지아는 순결, 해바라기는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
꽃마다 그 꽃이 상징하는 꽃말이 있답니다.
그래서 꽃말에 맞게 장례식장엔 국화, 어머니날엔 카네이션, 성탄절엔 포인세티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장미, 부활절엔 백합꽃을 사용합니다.
우리 집 마당에 요즘엔 채송화가 가득 피어 있습니다. 꽃말을 생각하며 쪼그려 앉아 채송화를 들려다 보았습니다. 과연 채송화는 그 모습이 참 순진하네요. 어쩜 그렇게 꽃에 딱 어울리게 꽃말을 잘 만들었네요.
에... 그런데, 그럼 나는? 나를 상징하는 말은 과연 무엇일까?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나를 상징하는 단어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최용우
▣ 자신을 안다는 것
누군가 헬라 철학의 대가 탈레스에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을 아는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가장 쉬운 일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더니 “남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더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잘난 척하지 마십시오. 별것 아닙니다. 남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무책임합니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디언 슈익스라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주일은 걸어다녀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좀 더 진실하게 나를 드러낸다면 다 같이 보잘것없는 인간이요, 부족한 죄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는 없으나 이런 깨달음이 너무 늦게야 찾아오는 것이 인생의 아쉬움입니다.
/임준택 목사(대림교회)
▣ 거울 속의 나
옛날, 어떤 왕이 매일 여러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눈부신 의복을 입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뽐냈습니다. 백성은 어떻게 살든지 왕은 자기만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시종이 왕이 매일 들여다보던 거울을 치워버렸습니다. 다음날 왕이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거울을 찾았으나 거울은 보이지 않고, 거울이 있던 자리의 창문을 통하여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지치고 굶주린 모습이었습니다.
창백한 여인과 굶주린 아이를 보았고, 먹을 것을 찾으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과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자기의 화려한 의복을 벗어버리고 평민들이 입는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고 백성들 가운데로 나아가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관심을 쏟고 있는 동안은 그 무엇도 볼 수 없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언제까지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도 자신만을 보느라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만 보고 있을 때는 예수님도 이웃도 결코 볼 수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전도 예화 다이제스트 / 배창돈 엮음
▣ 건널목
우리들은 모두 우리 자신의 써클안에서 분주합니다. 우리들에게는 만나 보아야 할 우리 자신의 사람들이 있고, 돌보아야 할 우리 자신의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따금 길 건너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는 참으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헨리 나우웬의 ‘영혼의 양식’ 중에서-나의 테두리 안에서 바쁜 일상을 보냅니다.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생각으로 판단하며 나의 계획에 따라 시간을 나누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가끔은 나의 테두리 안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앞을 향해 쉼 없이 걸어가는 중에도 말입니다.내 안의 가득 차 있는 자기사랑과 욕심은 나를 쉼 없이 달리게 하지만 또 그만큼 나를 지치게 합니다. 이젠 내 삶의 테두리, 그 너머의 삶을 바라보려 합니다. 내게로만 향하던 관심을 누군가에게로 향하게 하려 합니다. 오늘 나는 건널목에 서 있습니다. 바라보는 것을 넘어 이젠 건너편 누군가에게 다가가 내게 있는 것들을 나누며 살고자 합니다. 내게 있는 가장 소중한 예수님의 이름, 그리고 바쁜 일상에 묻혀있던 구원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 자기 관리
본문: 삼상 2:35
존 맥스웰의 '자기 경영의 법칙'에 보면 "누가 지붕을 고쳤는가?"라는 질문 안에 예수님을 섬기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예수님을 예수님 때문에 믿는 사람이다. 둘째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 때문에 믿는 사람이다. 지붕을 고치는 사람은 첫 번째 종류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일사각오로 예수님을 위해 헌신과 충성을 한다. 이런 사람이 충실한 제사장,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라"고 하셨다. 사무엘을 가리킨다. 충실한 제사장의 판단 기준 및 척도는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이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제사장이 충실한 제사장, 충실한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자기 뜻을 내려놓아야 한다. 가인, 홉니와 비느하스, 사울 왕은 자기 뜻을 내려놓지 않음으로 실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은 자기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기의 뜻을 세우지 않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라고 하였다.그래서 바울 사도는 두 가지를 하였다.
첫째는 날마다 죽었다(고전15:31). 날마다 옛사람이 죽었다. 내가 죽어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내가 죽어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케 된다.
둘째는 날마다 자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시켰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무엇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관리이다.
* 기도: 주님!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날마다 나 자신을 부인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관 목사 의산교회 시무
▣ 나를 키우는 10가지
본문 : 요 8:54, 갈 1:24
● 요 8: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 갈 1: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안양 성문고 이규철 교사는 삶을 리모델링하기 위해선 10가지 ‘ㄲ’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1. ‘꿈’을 소유하자 입니다. ‘이룰 수 없어’하고 포기하지 말고 꿈을 마음속에 그린다면 그 꿈의 크기만큼 성장하고 성취할 것입니다.
2. ‘끼’를 발휘하자 입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이 있듯이, 자신도 잘 찾아보면 장점이 있습니다. 그냥 스쳐지나가지 말고 잘 살펴보면 당신에게도 최고의 끼가 있을 것입니다.
3. ‘깡’을 키우자 입니다. 악착스럽게 버티는 억지, 오기로 버티어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4. ‘꾼’이 되라 입니다. 무언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1세기는 전문가의 시대로 일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함께 요구하기 때문이죠.
5. ‘꼴’을 곧추 세우십시오. 다윗은 꼴이 된 인물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꼴은 보십니다. 외모도 지저분하게 관리하면 안 되겠지만 믿음의 선배들은 마음 둘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꼴이 분명했습니다.
6. 이런 원칙들을 잘 활용하려면 ‘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일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꾀는 저절로 생기지 않아서 배움의 꾀를 통해 익혀나가야 합니다.
7. ‘꿀’과 8. ‘끈’ 은 앞의 덕목들을 도와주는 윤활유입니다. 꿀이 있어 인생은 행복하고 이웃과의 끈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합니다.
9. ‘끝’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야 합니다. 앞의 덕목들을 이뤄 성공하면서도 다른 이를 존중하고 기쁨을 간직하여 ‘끝’마저 좋다면
10. 하나님에게 ‘꿋(Good)!’이라고 칭찬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ㄲ’들을 잘 활용하여 나에겐 기쁨이 되고 하나님껜 영광이 되는 업그레이드 된 삶을 살아나갑시다.
* 기도: 주님,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 묵상: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보고 사용할 방법들을 적으십시오.
/김장환 목사
▣ 나를 알게 하신 하나님
그 당시 저는 무척 힘들고 지쳐서 세상에 살아있는 것조차도 싫었습니다. 남편과 이혼한 후 자포자기 상태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나이트클럽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있었지요.
그러한 내게 돌아오는 것은 허탈, 허무, 고독, 외로움, 고통 뿐…
어느 것 하나 좋은 게 없었습니다. 어머니도 오빠들도 내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나는 지지리도 복도 없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남들은 다 남편 사랑 받고 아이들도 잘 자라는데 나는 왜…?” 하면서 저는 늘 신세한탄을 했습니다. 자연히 아이들에게도 항상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998년,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카드 빚, 가정에 대한 소홀함 등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딱 10년 전,
집안의 반대에 맞서면서도 시작한 결혼이었는데 말입니다. 10년 동안 남편에 대한 사랑보다는 실망이 컸고, 남편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보였습니다. 제 마음은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 있어 늘 남편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잔소리했습니다. 4남 1녀 중 막내딸로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서인지 저에게 있어서 ‘주는 것’은 익숙지가 않았습니다. 남편이 나를 대접해주기를 바랐지요. 남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습니다.
“엄마, 엄마…!” 남편과 헤어지던 날, 뒤에서 엄마를 애타게 부르던 작은 아이의 목소리를
모르는 척 외면했습니다. 제가 집을 나온 이후로 남편은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둔 채 3개월간 방치해 두었습니다. 남편과도 연락이 되지 않아 그 동네의 어린이집을 모두 수소문한 끝에 작은 아이를 찾아 데려왔지만, 아이는 이미 엄마와 아빠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인해 심각한 폐쇄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문을 닫으면 기절을 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잠시도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증상에는 부모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 밖에는 약이 없다고 했습니다. 2000년 7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든 상속들과 나의 모든 세상적인 삶들을 바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갓패밀리>와의 만남을 통해, 남편에게도 문제가 있었지만 나에게 문제가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상대방의 단점을 들추어내고 상대방의 잘못만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다 잘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더 많이 변화된 것은 저의 마음입니다. 지금 저는 그 사람이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다시 잘 살아보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이 다시 모여서 함께 하나님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시간들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나의 변화로 인하여 가정이 바뀌고 그로 인해 교회가 변화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장6절 말씀)
* 부부간에 갈등 겪고 계신 분이 있나요? 상대방의 잘못은 이미 잘 알고 계시니 이제 나에게는 혹, 문제가 없는지 한번 살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네요.
(김수진)
▣ 소중한 사람과 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말은 평화주의자이며 영성가이고 시인이셨던 故 함석헌 선생께서 남기신 시 중에서 내가 지금까지 애송하는 시의 제목이다. 지금까지도 마음 깊은 곳에 잔잔히 와닿는 다음의 한 시구는 나의 인생과 인간관계의 지표가 되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살아다오’ 말해줄/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사람이 한 세상을 얼마나 가치있게 살았는가’라는 인생의 진정한 성공 여부는 내가 과연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나간 나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과연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일들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하고 슬프게 하며 분노하게 하였는가.
또한 나를 가슴 설레게 하고 감격하게 만든 일들은 어떤 것들이었는가. 무엇이 나에게 인생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는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하였는가.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배경이나 학식이나 재물, 외모, 건강이 아니다. 단 한 가지, 그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과 그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자신도 죽어가는 상황에서조차 서로 구명대를 사양할 그런 사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비전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현실 불가능한 일일까.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가게 될 때 ‘저 사람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감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나는 떠올릴 수 있을까? 과연 지금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며 그런 만남을 갖고 있는가? 내가 죽은 후에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며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게 될까? 나는 이런 물음들이 우리 각자가 자신에게 진지하게 꼭 물어봐야 할 매우 가치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순간들은 우리 마음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물음은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의 이유 자체를 묻는 질문이 된다.
/오제은(가족치유연구소 대표·천안대 교수)
▣ 자신을 아는 지혜
희랍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젊었을 때의 일이다. 그의 제자 카이흔이 하루는 신에게 “신이시여!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신이 사제를 통하여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라는 대답을 들려 주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소크라테스는 상당히 놀랐다. 자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신은 자기를 세상에서 제일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이유를 알아 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튿날부터 아데미에 있는 모든 학자와 정치가와 예술가를 방문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일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지혜 있는 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제서야 신이 왜 자신에게 가장 지혜가 있다고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이유는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 있는 척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 첫걸음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때 훌륭한 성도가 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자는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이다. 철학자 탈레스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 하나님을 웃겨라 / 양은식
▧ 묵상
●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있어서 버려야 할 어리석은 행동은 무엇입니까?
● 내가 나의 친구와 이웃들에게 전도할 때 그들에게 말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 기도
주님, 구원의 은혜가 저에게서 멈추지 않고 저를 통해 흘러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필요한 사람들의 심령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 민감함을 허락하시고, 그들에게 진리와 사랑을 지혜롭게 전하는 입술이 되게 하소서.
/생명의 삶
▣ 자아발견
어느 정신요양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의사가 한 환자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때 환자는 옷장을 뒤지고, 서랍을 뒤지고 침대 밑까지 뒤지면서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을 그렇게 찾고 있소?" 의사가 물었더니 환자가 낙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선생님, 잃어버린 나를 찾고 있습니다...!" 의사는 이 말을 듣고 오히려 자기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곽선희 목사 설교예화
▣ 먼 북소리
마흔이 되려 한다는 것, 그것도 내가 긴 여행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먼 북소리》중에서 -
* 아득한 의식의 저 편에서 멀리 북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이제 일어나라고... 다시 시작하라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 어서 길을 떠나라고...
나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나를 찾아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당신 자신을 주시오
일본의 위대한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訶川要産)는 사생아로 태어나 아사 직전에 두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구출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1909년 크리스마스 전야에 그는 신가와 빈민굴 한 평짜리 오두막으로 이사하여 빈대와 벼룩이 우글거리는 그곳에서 고독하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돈이 모자랄 때는 굴뚝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자기 밥으로 죽을 쑤어 함께 먹었습니다. 불량배들에게 맞아 앞니 4개가 부러지는 핍박을 이기고 주일학교를 세웠으며 그가 휴지를 주워 쓴 소설 ‘사선을 넘어서’가 베스트 셀러가 되자 그 인세를 모두 빈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1927년 일본 노조를 최초로 설립하였고 1929년에는 일제 군부에 항거, 투옥되었다가 종전 후 실명상태에서 다시 빈민굴로 돌아와 사랑의 봉사를 계속했습니다. “당신 자신을 주시오.” 이것이 그의 신조입니다.
/이철제 목사(서울 성서교회)
▣ 긍정적인 자아상 확립
어떤 아이는 자신을 늘 부모님에게 짐만 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엄마가 “너는 실수로 태어난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그날 엄마들에게는 농담이였지만 아이에게는 치명적입니다.
“그래, 맞아. 나는 엄마에게 짐만 될 뿐이야”라고 말하면서 자기 같은 것은 살 필요가 없다고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맞벌이하는 한 부부가 뒤늦게 아이가 아픈 것을 발견하게 되자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당신은 도대체 뭘 했느냐?”면서 부부가 서로를 공박하며 싸웁니다.
사실 이 같은 말다툼은 자신이 부주의한 결과 아이에게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한데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 때문에 생겨날 때가 많지요. 따라서 부모는 자식들 앞에서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부정적인 자아상은 대부분 어렸을 때 부모와의 관계에서 유래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부모의 애정과 끊임없는 관심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긍정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부모의 폭언 때문에 일생을 열등감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삶에서 결국은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본인에게는 물론 하나님의 가슴에 아픔을 안겨드리는 부모의 잘못임을 우리 모두가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 나, 자신, 자아에 관한 성경 말씀
0 (시편 119:125)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0 (마태복음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0 (마가복음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0 (누가복음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0 (로마서 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0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0 (고린도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0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0 (에베소서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 나, 자신, 자아에 관한 금언
0 자기 자신 외에 모델로 삼을 만한 다른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올리버 스미스)
0 자신을 선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때로 죄를 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악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일생동안 허물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파스칼)
0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테렌스)
0 그대 자신은 맨 마지막에 사랑하라(세익스피어)
0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는 생존할 가치를 일은 자이다.(박창환)
0 만일 내 마음이 내 자신만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생각지 않는 삶을 살 바에는 나는 내 자신의 가슴을 찢어버리겠다.(알렉산더 포프)
0 너 자신을 알라(소크라테스)
/한태완 목사 360 주제별 예화모음(메일: jesuskorea@naver,com)
<출처: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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