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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Άλλα σε προετοιμασία

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시 20:1-9

by 【고동엽】 2023. 1. 26.

2011.6.12 주일 설교(시편 강해 21)

 

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20:1-9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지난 미국 집회 중에 처 조부되시는 고 박용익목사님의 일화를 많이 들었습니다. 서울 중심부의 한 교회에 부임하셨을 때, 당시 교회는 극심한 내부 분열로 싸움이 그칠 날이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어린 아이였던 손녀 박은숙권사님이 할아버지를 찾으러 교회에 가면 박용익목사님은 언제나 예배당에서 강단 앞에 가마니 거적데기를 깔고 무릅꿇고 통곡을 하며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교회는 잠잠해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그에 대처하는 행동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러한 때 믿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빛과 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본 시편은 환난 날에하고 시작하는데, ‘환난이란 그저 어려운 일이 생긴 정도가 아니고 급작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를 뜻합니다. 다윗에게 어느 날인가 예기치 않은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 참 희한한 일을 합니다. 말이 몇 마리 있는지 병거가 몇 개나 되는지 병사가 얼마나 있는지를 점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새긴 깃발을 만들어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5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싸움터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적힌 깃발을 맨 앞에 세우고 그 깃발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며 싸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고백하였습니다.

7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 고백은 다윗이 소년 목동이었을 때,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 하였던 고백이기도 합니다.

삼상 17: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대단한 믿음입니다. 정말 큰 은혜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읽으면서 시험이 되기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말도 안돼,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거야? 그러면 죽어! 반드시 실패할 거야! 너무 현실을 모르는 말이야. 지나치게 치우친 사람이 될 거야. 이 말대로 하면 사회 부적응자가 될 거야. 다 잃어 버릴 거야!”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전쟁터에서 무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다!’ 이 사람이 제정신입니까? 광신자 아닙니까?

 

우리의 믿음은 이처럼 다릅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여도 믿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어느 목사님 안수식 때, 아직 믿지 않는 아버님이 참석하셨는데, 찬송을 부르시는데 가사가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하는 부분에서 그렇게 우시더랍니다. 그런데 목사님 아버님께서 우시는 것을 보시고, 그 여동생이 말하더랍니다.“아버님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교인들 중에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부르는 사람이 없잖아요!”하더랍니다.

정말 우리가 그렇습니다. 찬송가 가사 따로 우리의 믿음 따로입니다.

 

전쟁을 하는 것과 같이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도 믿음의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우리 머리 속에는 늘 은행 잔고가 얼마인지,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생활비 운영비 이자 경비 월급 세금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염려가 떠나지 않습니다. 어려운 생활이긴 해도 한번도 굶은 적도 없고 집이 없은 적이 없고 입을 옷이 없은 적도 없었는데, 주님이 지켜주신다 라는 생각보다는 계속 돈 돈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처럼 무모해 보일 정도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였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고 늘 함께 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역사에 분명히 실존하였던 인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행동이 결코 무모한 행동이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우리도 정말 하나님이 계시며 늘 함께 하심을 안다면 모두다 다윗처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윗만 살아계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성경은 분명히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귀로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이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우리는 할 일은 이 놀라운 약속을 믿고 주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4절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를 외면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김우현 감독이 몇 년 전 믿음으로 사는 남자들 총동원예배 때 간증자로 왔었을 때, 고백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언제나 무릅꿇고 기도한다고 했습니다.“성령님, 오늘도 인도해 주세요.”그리고 그 일년 동안 성령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인도하셨는지 모른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일이지만 진심으로 구한다면 누구나 경험하는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새벽에 이렇게 기도하십니까?

 

많은 성도들이 평소에는 하나님을 갈망하지 못하다가 환란을 당하여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워 합니다. 아닙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그러므로 환난은 변장하고 다가오는 축복입니다. 환난은 필요한 것입니다.

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란을 당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은 환란 중에도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께 나아와도 여전히 돈을 구하고 사람을 찾고 문제만 해결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꼭 환란을 만나야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환란 당하기 전 미리 깨닫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도 있습니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죄지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암에 걸리고서야 돌이켜야 합니까? 암이라면 마음에 걸릴 일, 회개할 일이 있다면, 지금 정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눈이 멀면 사람들의 도움을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지금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면 정말 하나님의 인도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초대교회 영적 지도자요 순교자였던 김익두 목사님의 손녀가 간증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익두목사님은 순교하였지만 그 후손들은 너무나 부유하게 잘 살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살기만 해서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매 맞고 깨닫기 전에 미리 깨닫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자! 결단하고 삶을 완전히 바꾸었답니다. 이처럼 매 맞기 전에 깨닫게 된 것도 할아버지의 믿음 유산 때문이라며 감사하였답니다.

 

물론 하나님을 갈망하는 중에도 낙심스런 일이 일어납니다.

 

지난 주간 참 신실한 한 남자 교우를 상담했습니다. 그 동안 누구도 모르는 은밀한 죄로 괴로워했답니다. 음란 동영상입니다. 그런데 영성일기를 쓰면서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 음란 동영상을 끊었고 삶이 새로워졌답니다.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간증도 하였답니다. 그런데 최근 어처구니 없게도 끊었던 음란 동영상에 다시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게 낙심하였습니다. 울먹이며 말하였습니다.“목사님, 저는 영성일기를 쓰면서 이제는 죄를 이겼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영성일기로도 안된다면 나는 끝인가요?”

그 교우를 상답하면서 내가 희대의 사기꾼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정말 죄를 이기기 원하십니까?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세요! 영성일기를 써 보세요!’하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런데 영성일기를 쓰면서도 다시 죄에 무너진 교우를 상답하면서 제 마음에 또다른 낙심이 밀려왔습니다.

요즘 영성일기에 대하여 뜨거운 관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내적으로 무너진 성도, 은밀한 죄를 이기지 못하는 성도, 삶이 변화되지 않아 갈등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영성일기를 쓰면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고 주님의 임재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말이 너무나 놀라운 희망 메시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영성일기를 쓰면서도 다시 죄에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성일기를 쓰는 것 자체가 죄를 이기는 완전한 방법은 아닙니다.

그러면 영성일기도 소용없다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프랭크 루박 선교사의 일기를 통하여 얻은 도전과 용기는 중간 중간의 실패를 넘어서게 해주는 믿음이었습니다. 실패가 있지만 다시 일어서면 반드시 주님이 붙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귀가 원하는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낙심시켜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했을 때, 명심할 것은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그 교우에게 대답했습니다.

영성일기를 써도 안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아직 죄를 이길 만큼 주님의 임재를 분명하게 느끼지 못하는 상태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영성일기를 쓰고 있기에 죄에 대하여 이처럼 민감하고도 강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이 죄의 종으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음란 동영상을 접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도님처럼 이렇게 괴로워할까요? 영성일기를 쓰고 있기에 그만큼 죄가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님이 주님의 임재하심 아래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성도님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하시는 주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이기게 하신다는 진리를 결론 삼고 계속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할 때, 순간 순간 다가오는 낙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릴 때는 기대 수준과 실제 경험이 다를 때, 자신에게 임한 은혜와 복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무너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달라집니다.

 

제가 1984년 광주통합병원에서 다리를 절게 될 상황에서 응급으로 다리 수술을 받을 때, 아버님을 찾았습니다. 그 때 제 믿음은 하나님 보다 아버님이 더 의지가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큰 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제 아내의 몸에 암이 생긴 것을 알았을 때, 저는 그 소식을 들은 즉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라고 기도하는 그 순간 응답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제 믿음이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 믿음은 수시로 흔들립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감사합니다. 그 자체가 주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극한 어려운 일을 만나 고통당하는 이가 있습니까?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갈망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주님을 갈망하는 것 자체가 주님의 역사입니다.

더욱 놀랍게 역사하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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