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19 주일 설교(에베소서 강해 17)
부부가 하나되는 비밀
엡 5:22-33
서울광염교회 조현삼 목사가‘관계 행복’(생명의말씀사)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목회하면서 교인들끼리 싸우고 갈등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답니다. 한번은 교인들이 싸우기에 왜 싸우시냐고 했더니“목사님, 다 잘하자고 싸우는 것 아닙니까?”하기에“싸우면서 잘하기 보다 싸우지 말고 보통만 하자.”고 했답니다. 그것이 교회의 원칙이 되었답니다.
목사님이 책에서 사람은 누구나 연약함, 부족함, 허물이 있게 마련이고 뿐만 아니라 좋은 면도 뛰어난 점도 다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을 서로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것을 앝잡아보고, 부족한 것은 무시하고, 허물을 들추어내고 좋은 점은 작게 여기고 뛰어난 점에 대하여는 시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라고 지적하며‘연약함은 도와주고’,‘부족함은 채워주고’,‘허물은 덮어주고’,‘좋은 것은 말해주고’,‘뛰어난 것은 인정해 주자.’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집사님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예요.”정말 말해주어야 할 좋은 것은 두루뭉실 지나치고 하지 말아야 할 허물과 부족함만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달라집니다. 극단적으로 원수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인지 아닌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하신 다음에 가장 먼저 부부 관계에 대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결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변화는 당연히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부 사이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잘 믿으면 부부 관계가 좋아진다는 말에 혼란스러워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나도 예수를 열심히 믿는데 우리 부부 관계는 힘든데!’ 이런 경우는 예수를 믿는 것을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불신 남편이 아내가 새벽 기도가는 것을 보고“교회 나가는 것은 좋으나 제발 미치지는 말아라.”고 했다고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 때문에 부부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말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것이 꼭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마음에 계신 것을 알고 그 예수님이 주님이 되신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부부 관계가 좋아집니다.
22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데 싫어할 남편이 있겠습니까?
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데 불평한 아내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아내는 순종하고 남편은 사랑하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말씀입니다.
얼마 전 영화배우 김지미씨가 신문에서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지금 70세이지만 60년대 최고 흥행 배우이자, 미인의 대명사였습니다. 50년 영화배우로 살았던 그녀는 여러 유명인들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기를 "살아보니 대단한 남자 없더라."고 했습니다. 대단한 남자들과만 살았었던 그녀가 한 말입니다.‘그런 남자에게 순종하라니!’말이 됩니까? 그러나 남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이런 여자를 사랑하라’는 것은 또 말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남편에게 순종할 생각을 하면 아내를 사랑할 생각을 하면 끔찍한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만 다니는 믿음으로는 ‘순종하라 사랑하라’ 불가능합니다.
‘순종 아내 사랑 남편’은 예수님을 바로 믿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아내에게 남편에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했습니다. 아내가 평소에 예수님을 정말 주님으로 믿고 순종하며 사는 자라야 남편에게 주께 하듯 하지 않겠습니까?
남편들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알고 본 남편이어야 아내를 주님이 하신 것처럼 사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남편과 아내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아니면 ‘순종하라 사랑하라’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 번 설교도 해 보았지만 싸움거리만 되고 마는 것을 봅니다. ‘이것도 순종이야 이것이 사랑이예요’ 기대하다가 더 좌절합니다.
어떤 남자가 애인에게 프로포즈를 하였습니다.“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소.”그랬더니 여자가 대답했습니다.“저를 위해 죽을 각오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저를 위해 죽을 그 각오로 평생 저녁 설거지만 해 주세요.”이 말을 들은 남자는 한참 생각하더니“그건 좀 어렵겠는데요.”하더랍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되잖아요. ‘안된다, 못하겠다’ 하지말고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의 표징입니다.
더 이상 성공, 집, 차, 옷 등이 행복의 조건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결혼하면 잘 삽니다.
남편이나 아내 중에 한 사람이라도 영적으로 어른이면 부부관계는 유지됩니다. 배우자가 영적으로 어려서 예수님으로 행복하지 못하여 배우자에게 매달리면 업어주고 달랩니다. 투정할 때마다 안아주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 줍니다. 한 쪽이라도 행복하면 겉으로는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남편과 아내 둘 다 행복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항상 싸웁니다. 서로 요구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 어린 사람은 상대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상대로부터 떨어지기를 싫어하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끊임없이 배우자를 고치려 합니다. 배우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계속 불만이고 고통스럽습니다.
사람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도, 우리는 배우자를 완전할 수 있다고 믿고 기대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절망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 사람이 줄 수 없는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속 깊은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의심하지도 않으셨고 결코 악감정으로 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누구에게도 절망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에게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행복한 사람은 배우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어집니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래서 진정으로 배우자를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 문제의 원인을 바로 알아야 하고 해답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부부갈등이 생기면 배우자에게서 원인을 찾거나 배우자를 고치려 해서는 안됩니다.
부부관계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풀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내가 남편을 보는 눈을 바꾸어주십니다.
남편을 경외하라는 말은 아내에게 예수님을 믿으라는 밀고 같습니다.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도 남편에게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의 계획은 결혼이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곳이 결혼식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손님이실 때는 아무런 역사도 일으키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되셨을 때에야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기적입니까? 부부가 진정으로 한 몸이 되는 기적입니다.
31절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시고 아담에게로 데려오자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고백했습니다. 이 말은 아담의 눈에 하와가 자신과 한 몸처럼 보였다는 말입니다. 한 몸처럼 여겨야지가 아닙니다. 한 몸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 당시는 아담이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던 때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때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고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습니까?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한 몸인지 아닌지는 내 허물이냐 네 허물이냐 하는 생각이 사라졌는지 보면 됩니다. 자존심 싸움이 없어졌는지 보면 됩니다. 이익이다 손해다 그런 생각이 없어졌는지 보면 됩니다.
여러분 부부가 그렇습니까?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여러분 자신과 한 몸처럼 여겨진다면 성령충만하신 것입니다. 아니라면 예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어떻게 부부가 한 몸이 되어 사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32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왜 갑자기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입니까? 한 몸되는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신비한 동동체입니다. 단순히 교인들이 모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핵심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예수님과 교회는 한 몸을 이룹니다.
예수님을 믿는 부부 사이가 꼭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 된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부부생활의 열쇠는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목사인 저도 갑자기 우울한 마음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기분이 가라앉아 도무지 회복이 안될 때가 있습니다, 저 자신이 부족함 때문에, 가까운 사람에게 실망해서 그럴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누구와 기쁘게 밥을 먹다가 갑자기 내가 이렇게 해도 되나, 기쁜 것이 죄책감이 들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교인들이 많다보니 아픈 사람, 어려운 사람이 항상 많기 때문입니다. 어떨 때는 누가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없나, 무조건 나를 받아주고 내 기분을 좋게 해 줄 사람이 없나 찾게도 됩니다.
저는 주로 제 아내에게 의지합니다, 제 아내는 제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일을 잘 합니다. 주일 예배가 다 끝나고 교회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들어가면 다리가 부은 것을 보고 아내가 따뜻한 물로 제 발을 씻어줍니다. 목과 어깨를 주물러 줍니다.‘좋겠다.’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목사님 같은 분이니 사모님이 당연히 그렇게 하시겠죠.’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제가 그런 대접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어제 아내 부엌 일을 좀 거들었더니 딸이 하는 말이“내일 설교 때 써먹으려는 것이지요.”하더군요. 제가 아내의 섬김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내야말로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발을 씻겨주어야 하고 어깨를 주물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발 하나 편하게 맡기지 못합니다. 누군가에 마음 편하게 내 기분을 좋게 해줘 하고 발 하나 어깨 하나 맡기고 싶어 둘러보면 다 제가 섬겨 주어야 할 사람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기성아 내게로 와, 내가 너를 쉬게해 줄게.”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행복을 구하며 방황하고 있을 것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부부가 하나되는 비밀, 우리 마음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데 있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치고 우울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샘물의 근원이 되어 가족과 이웃 모두에게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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