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2 주일 설교(에베소서 강해 3)
영의 눈이 뜨여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
엡 1:15-23
“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
한 청년과 상담을 하는데, 결혼할 자매가 교회를 다녀야 한다고 해서 교회는 왔지만 하나님이 안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답답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로 들리지도 않으니 억지로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청년에게 “하나님을 호기심으로 알려 하지 말고 갈급함으로 알려고 할 때 믿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하나님은 안 믿어지는데 교회는 다니시는 분이 혹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아서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겠다는 사람은 하나님만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때가 어느 때인지 모릅니다. 살기는 살아도 지금이 어느 때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다 모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영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영 안이 열리지 않아서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적인 것과 관련된 것은 다 모르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내 마음의 눈을 열어 보여주시면 깜짝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릐 세계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눈이 뜨이지 않으면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이 아무리 은혜를 주셔도 전혀 모릅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 즉각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의 영을 주어서 알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그 순간에 마음의 눈을 열어주시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영안이 열린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더욱 영안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17절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8절에서 “마음의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과 성도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눈을 가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가져야 할 눈은 마음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영 안이 열리지 않으면 좋은 눈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화 [낮은데로 임하소서]의 주인공 안요한 목사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37년 동안 무신론자로 살았습니다. 아버님이 목사님이셨는데도 어릴 때 자라면서 교회 안에 되어지는 일들로 인해서 마음에 상처가 있고, 하나님을 부정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마음을 정하고는 마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열심히살아서 성공해 보려고 직장 생활, 사업도 하고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37살에 그만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도 떠난 버린 뒤 절망하여 남 도움 받아서 이렇게 비참하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고 자살을 하려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요한아 요한아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아니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여호수아 1:5-6)”그 순간 37년 동안 하나님을 부인한 죄를 회개하였습니다.‘하나님이 계시구나.’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의 눈은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간증하기를“저는 장님이 되고 수지 맞았습니다. 눈으로 보는 37년 보다 앞 못 보는 7년이 오히려 행복하고 보람이 있습니다. 온 천하를 다 가져도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만족과 기쁨과 감사가 없기에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 다 잃어도 하나님을 찾은 후 감사가 있기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영 안이 열리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시구나.’ 그러나 하나님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때가 되면 누구나 다 하나님을 압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부인하는 사람도 죽고 나면 다 압니다. ‘하나님이 계시구나!’ 그런데 문제는 지옥에 가서 알면 무엇하느냐 말입니다. 지옥에 가서 ‘하나님이 계시구나.’ 알면 더 원통할 뿐입니다.
성경에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그 부자가 죽어서 지옥에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고통에서 그는 더 이상 건짐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알아도 하나님과 내가 사랑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야 진짜 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교우들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마음의 눈을 열어주시므로 하나님도 알게 하시고 부르심의 소망도, 성도들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도 알게 하시고 그리고 성도들 안에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시다는 것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영안이 열리고 나면 ‘하나님이 계시구나!’ 하는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불러주시고, 나에게 하나님 나라의 엄청난 영광을 물려받도록 기업의 복을 주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내 능력이 되신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사람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도에게 주신 너무나 놀라운 복들을 다 깨닫게 됩니다. 성도의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풍성한 영광, 성도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능력에 대하여 알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만 알면 무엇합니까? 죽고 나면 누구나 다 알게 됩니다. 그러나 지옥에 가서 알게 되면 원통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알아도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된 것을 알아야 복된 것입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소망”이요 “성도의 기업의 영광”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유명한 주석가 메튜 헨리의 아버지 필립 헨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평민이었습니다. 그가 신분이 높은 여인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높은 신분에 속하는 그녀의 부모는 딸에게 충고하면서 “이 사람 필립 헨리는 어디 출신이냐?”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딸은 불후의 명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가 어디 출신인지 몰라요. 그러나 제가 아는 확실한 사실은, 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압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우리의 미래는 황홀할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보증으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영안이 열려서 이것을 알게 되면 삶이 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시던 그 분이십니다.
영 안이 열리면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셔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을 가지게 하셨고,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런 놀라운 축복을 알고 나면 삶이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고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아직 영 안이 안 열려서 이런 축복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짜증나는 일도 많고 좌절하는 일도 많고 원망 불평도 많게 사는 것입니다. 진짜를 못 보니까. 정말 받은 엄청난 복을 보지 못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로 인하여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도들 사이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믿음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왜? 진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말이니까.
여러분, 영안이 열려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복을 은혜를 알고 나면 여러분도 다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게 되어있습니다.
15-16절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믿음과 사랑, 이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진짜 그리스도인이었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영 안이 열리면 이처럼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믿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은 두려움이 사라졌다, 염려가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고, 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어있고,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셨으니 도대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며 염려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말입니다. 이것이 믿어지니 마음이 평안하고 또 이것이 믿어지니 어떤 처지에서도 기쁜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마음이 평안하다, 기쁘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까? 영 안이 열려 하나님을 알게 되고 소망이 생기고 성령의 능력을 얻게 될 때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정말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누리는 복입니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진짜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러한 삶이 믿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깨닫고 보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입니다. 앞으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엄청난 복을 알고 나니까 지금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또는 전도하는 것 때문에 고난 당한 것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런 엄청난 믿음이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는 것은 또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람이 완전히 바뀌는 것 중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소망을 갖게 되고 성령의 능력을 알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었다면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아직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은 가장 놀라운 기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려고 용서하려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되는 것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내게 오셔서 내 마음의 눈이 밝히 열려 하나님을 알고 내가 받은 복, 은혜를 알고 내 인생의 마지막을 알고, 내 안에 오신 성령의 능력을 알고 나면 정말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살게 됩니다.
어제 6층 예배실에서 일본 전도 찬양예배가 있었습니다. 그 집회에서 캐나다 밴쿠버에서 온 한 일본 청년이 간증을 하였습니다. 캐나다에 유학을 와서 정말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이었답니다. 일본에서 살면서 좋아한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말하지도 못하였답니다. 술로 도박으로 기분풀이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긴 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였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누가 나를 사랑하여 줄 것인가? 믿어지지 않았답니다. 그러다가 교회에 나와 예수님 안에서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신학생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말 예수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진짜 사랑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살지만, 사실은 혼자서 외롭게 고독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고 줄 줄도 모르고,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죄인인 나를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것이 정말 깨달아지고 나면 사랑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마음의 눈이 열릴 때 영안이 열릴 때 우리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 오늘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기도해야 되겠지요?
예수 믿는다는 것은 곧 사랑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 교우들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기를 기도했는데 이것은 곧 그대로 우리들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영국의 위대한 정치인 윌리암 윌버퍼스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고 국회의원으로서, 영국의 노예폐지 운동을 주도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예 제도가 영국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윌리엄 윌버퍼스가 국회의원으로서 노예제도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결국은 그가 세상 떠나기 바로 직전에 영국은 노예제도를 폐지하게 됩니다. 그의 친구인 윌리암 핏트는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습니다. 정치적인 능력도 학문적인 자질도 더 탁월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윌버퍼스는 수상이자 친구인 핏트와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설교자는 당시 유명한 설교자인 리챠드 세실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날 윌버퍼스는 그토록 성령 충만한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고 여겨질 정도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친구인 핏트는 설교가 끝난 후 친구 윌버포스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오늘 설교 내용이 무엇이지?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그 목사의 말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네.” 윌리암 핏트는 하나님의 진리가 전혀 이해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의 눈이 성령에 의하여 열려지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똑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영안이 열리는 것이 열쇠입니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도. 하나님이 은혜를 적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못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도 세상의 영을 가지고 살면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오늘 정말 여러분 마음 안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갈급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중에 “목사님, 저는 오늘 목사님이 설교하신 그 은혜의 세계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지 내가 정말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는지, 내게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졌는지, 내 안에 정말 성령님이 오셨는지, 제가 정말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그런 분이 계십니까? 아직까지 답을 얻지 못해서 답답해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에 대해서 갈급하고 여러분이 부름받은 것, 여러분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진 것,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을 진짜 여러분이 알고 싶다면 이미 성령님이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았는데 그런 갈급함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을 모르고 어떻게 가지고 싶어하겠습니까? 그게 좋다고 느껴지는 것 자체가 이미 성령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영 안이 열리지 않아서 안타까우신 분이 계십니까? 정말 안타까우십니까?
그 갈급함이 사실이라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갈급함은 그 자체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을 알지 못하는데 갈급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진짜 정말 하나님의 은혜의 눈이 뜨이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눈을 뜨게 되어있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약속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인 성령을 구하는 자에게 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혈루병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감히 예수님 앞에 나서지 못하였지만 옷 자락만 만져도 나음을 얻으리라고 믿는 갈급함으로 치유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갈급하면 반드시 응답받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고3 때 예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 안에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정말 제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고 싶은 갈급함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35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눈을 놀랍게 열어주셨습니다. 그 갈급함이 주님을 알게 해주시고 주님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정말 갈급함이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 복을 받은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여러분의 영안을 열어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영적 갈급함이 정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기를 싫어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롬 1:28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여러분이 마음에 진짜 주님을 원하시는지 아니면 솔직히 하나님이 부담스러운지 여러분이 대답하셔야 됩니다. 갈급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대답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예수님이 진짜 내 마음에 오시고 내 주심이시고 내 왕이 되시는 것을 내가 정말 원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 마음 속에 예수님에 대한 갈급함이 생겨 ‘예수님이 정말 내 안에 계실까?’ 그것을 정말 알고 싶었지만, 너무나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신학교 1학년 때,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고 얼마나 죄책감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괴로워하면서 회개하며 기도했지만, 다시는 이런 영화를 안 보겠다고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괴로워만 하다가 끝났습니다. 솔직히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예수님을 정말 마음에 모시고 이제는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은 돌아보지도 않고 오직 예수님 기뻐하시는 삶만 산다는 것이 제게는 부담스럽게 여겨졌습니다. 그것이 제 갈급함의 실체였습니다. 그러니 그 때는 예수님을 그렇게 밖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예수님을 향한 제 마음의 수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심을 알고 싶어하면서도 항상 예수님만 바라보며 사는 것은 솔직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아직 갈급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저에게 예수님을 향한 진정한 갈급함을 갖게 하셨고, 저는 예수님을 아는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 주님께 제게 정말 예수님 한 분만 원하느냐? 예수님이 진짜 주님 되는 것을 네가 원하느냐? 계속해서 제게 도전해오는 것입니다. 제가 그때 주님 앞에 그렇다고 결단할 때마다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주님을 아는 눈을 그때마다 열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심을 알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갈급함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징말 살아계시는 것을 모르고는 나 죽을 것 같아.’ 이런 갈급함이 있으면 누구나 다 하나님이 그 눈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였다고 하는데, 예수님을 마음 어디에 모시고 계십니까? 말씀 한 마디 못하시고 귀먹은 채 우두커니 계신 분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하였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 안에서 어떻게 계세요?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주님이고 왕이시라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예수 믿는 것이고, 진정 우리가 사는 길이요, 구원의 길이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눈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진짜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때가 예수님을 진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의 왕이시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시니까. 그리고 내 인생은 완전히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이렇게 결단하고 예수님을 믿으실 때부터 여러분의 인생에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비로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구원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만 사는 것이 아니고 온 가족도 다 살리고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 다 살려내는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 되심에 열쇠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왕 되심을 정말 원하고 마음이 정말 갈급하면 다 눈이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놀라운 삶의 시작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예배드리지만, 정말 하나님을 경배하십니까? 하나님도 그렇게 보실까요? 정말 여러분들은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경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배 드리는 것 자체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은 그냥 예배 시간에 앉아있는 것이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직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 드릴 때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를 드리면 우리 인생은 바뀝니다. 하나님은 진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쓰시는 지를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우리 삶은 반드시 변화되고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찬식을 받게 됩니다. 성찬식을 호기심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찬식은 호기심이 아니라 갈급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오늘 성찬을 하는데 무슨 은혜가 있을까?” 이런 태도는 호기심일 뿐입니다. 그 사람은 그저 떡과 포도즙을 먹고 마시는 형식적인 성찬식만 하고 맙니다.성찬식을 해도 끝나고 난 다음에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왜? 본인이 성찬식을 그저 호기심 정도로 생각하고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찬식은 예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워낙 믿음이 없으니 보지 않고는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찬을 베풀면서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눈과 눈으로 만날 때까지 ‘이 떡이 내 살이고 이 포도즙이 내 피라.’ 눈으로 보고 그렇게 우리 주님을 바라보게 하신 것이 성찬입니다. 예수님 앞에 서는 그 믿음 가지고 여러분이 성찬을 받으시면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은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서 무엇을 하지요? 불신앙 불순종 죄의 종노릇하던 여러분을 주님이 보혈로 다시 씻어주시고 예수님과 우리가 다시 하나 되는 은혜를 다시 주시고, 주님의 생명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우리를 묶고 있었던 모든 어두움의 권세는 다 풀어져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복을 받습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을까요? 내 마음이 진짜 갈급하면 성찬은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을 정말 무서운 저주와 같은 어둠의 권세에서 풀고, 질병에서 건지고, 여러분의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복된 시간이 됩니다. 주님이 눈을 열어주십니다.
나의 모든 불신앙, 불순종, 다 회개하고 예수님과 하나 되었음을 믿고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는 시간이 성찬입니다. 그 때 보혈로 정결케 하시며 예수님과 한 몸 되는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끝없는 욕심과 허영과 세상적 욕망에 사로잡혀 우리 마음이 어두워진 지 오래됐습니다. 주여, 우리 눈을 밝히시고 계시의 영을 주시사 우리 앞에 있는 소망도 알고, 우리 앞에 있는 기업도 알고, 내가 가고 있는 운명의 길을 바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계시의 영을 주시사 주의 음성을 조용히 들을 수 있게 하시며 바로 응답하며 늘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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