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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7,537편)〓/유기성 목사 설교

승리의 삶의 비결, 십자가 /에베소서 6:10-18

by 고동엽. 2023. 1. 24.

2010.3.28 주일 설교(종려주일)

 

승리의 삶의 비결, 십자가

에베소서 6:10-18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다시 월드컵의 열기가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동계 올림픽 때 온 국민이 얼마나 열광하였습니까?. 이것을 보면 우리 안에 승리의 갈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포츠 경기에서 경쟁국을 이겼을 때, 도무지 이길 수 없으리라 여겼던 대상을 이겼을 때, 흥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승리해야 하는 것은 스포츠나 기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광, 세계 야구 대회에서의 우승이 우리 삶에 무엇을 주었습니까? 목마름, 더욱 갈증만 일으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터넷 뉴스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시시콜콜한 동정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는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승리하게 되면 운동 경기 등은 시시하게 여겨집니다. 여러분이 인터넷 뉴스나 운동 경기에 빠져 있다면 당신은 가장 중요한 축복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 위에다 복과 부흥을 부어 주시지 않으십니다.

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오늘은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십자가에서 치르신 예수님의 고통은 엄청납니다.

 

멜깁슨이라는 영화배우가 감독한 The passion of Jesus Christ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이 영화를 본 어느 집사님은 3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답니다. 한기현 권사님이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니까“...호흡이 곤란하여 크게 입을 벌리고 숨을 쉬어가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오열하였다.”고 했습니다. 일본 선교사님 한 분은 이 영화에 나타난 예수님의 고난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새신자에게는 오히려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환상이 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이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얻으시려고 이런 희생을 치르신 것입니까? 무엇인가를 얻으시려고 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끔찍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일에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십자가 복음을 믿는 많은 성도들 조차 여전히 죄의 종노릇하며 삽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 중에도 실제로 한 주간 동안 죄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 앞에 무거운 마음 가지고 오신 분들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살지는 못합니다.

 

죄 때문에 무너지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가정도 무너지고 기업도 무너지고. 심지어 사역자들 중에도 죄로 인해서 무너지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히 죄에서 구원하시고 다시는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여전히 죄의 종노릇하고 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늘 또 다시 죄 가운데 살다가 왔습니다. 내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옵소서!” 기도합니다.

죄로 인하여 가정이 깨어지고 기업이 무너지고 사역이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실제는 죄의 종노릇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이유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인데, 왜 많은 성도들이 죄와의 싸움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것입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알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죄와 싸우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죄 안 지으려고 애를 씁니다. 나름대로는 죄를 이겨보려고 애를 씁니다.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해보고 결단도 해보고 기도원에도 가보고, 심지어는 죄 지은 값으로 감옥에도 들어갔다 오면서 이제는 완전히 죄를 청산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항상 결론은 좌절과 절망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 짓는 이유는 내가 죄짓지 않으려고 노력을 안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죄는 안 지으려고 노력해서 안 짓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죄를 안 지을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죄 짓지 말라고 하면 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주셨지만 십자가를 쳐다만 보지, 십자가로 무장하지 않고 죄와 싸우기 때문입니다.

죄는 이기려고 애를 쓴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이겨져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 죄가 이겨질까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고통을 당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를 온전히 죄에서 이기게 해주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십자가의 능력이 저절로 우리에게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복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냥 죄와 싸우려고 하면 반드시 집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됩니다. 죄 뒤에는 마귀가 역사합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죄와 싸우는 문제 뒤에는 마귀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죄와의 싸움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11절에서 우리의 싸움은 마귀와 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의 대상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싸우려 하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 죄와 싸우려 하는 것은 화살이 쏟아지는데 맨몸으로 싸우러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백전 백패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와 싸우는데 승리를 주시려고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우리가 무장하고 죄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을 입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좀 입혀드리겠습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에 아멘으로 따라오시면 예배가 끝나면 여러분이 아주 멋있는 전신갑주를 잘 입으시게 됩니다. 그러나 졸면 하나는 빠지고 이상하게 전신갑주를 입게 될 것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14절에서 먼저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십자가 복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정확한 복음을 알고 그것을 결론 삼으라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어도 십자가의 정확한 복음을 잘 알지를 못합니다. 또 알아도 그것을 결론 삼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례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에는 절대 죄를 지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여 아예 자신이 없기에 세례 받기를 미루는 사람입니다. 세례 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는 귀하나 그의 문제는 십자가의 복음을 정확하게 모르는 것입니다. 죄 안 짓게 되어 세례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세례는 죄를 다 청산한 다음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는 죄를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죄 안 짓고 살려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는 것은 십자가의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삶을 사는데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말이 진리의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이제는 예수님이 내 생명이십니다.’ 라는 믿음을 내가 결론 삼는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죄사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사는 거듭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를 이기는 삶인 것입니다.

 

제가 처음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정말 기분이 이상하였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시다!” 그 생각이 너무나 기이하고 놀라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자리에 누워도 일어나도 내가 사는지 예수님이 사시는지 황홀하였습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습니다. 영원히 이런 상태로 살고 싶었습니다. 늘 그런 상태는 아니지만, 자주 그런 상태를 경험합니다. ? 그것이 제게 결론이 되었으니까.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이제는 예수님이 내 생명이시다. 그때부터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바로 죄와의 싸움이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죄와의 싸움은 제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혼자만 있는 은밀한 시간은 언제나 죄의유혹에 넘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을 결론 삼는 순간부터 은밀한 시간은 은밀한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것은 목사님이니까 그런 정도의 체험을 하시지요.”할 분도 있으실이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처럼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김익두 목사는 원래 황해도의 깡패요, 그 당시 소도둑놈으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그 김익두가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고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즉시 [김익두 00일 죽어서 장사 지냅니다] 라는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부고장을 받아든 많은 사람들은 "예이, 그놈! 못된 짓만 골라가며 하더니 잘 죽었다"고 좋아했답니다. 그러다가 어느 주일 날 교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김익두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리고는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김익두는 겸손히 대답하였습니다. "예전의 못된 깡패 김익두가 예수 믿어 과거의 불량하던 김익두는 죽고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김익두입니다." 하였답니다.

 

김익두도 죽었는데 우리는 죽은 것입니다. 깡패였던 김익두라는 사람이 십자가 복음을 자기에게 적용하고 결론 삼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엄청난 희생을 치룬 십자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죄의 종노릇합니까? 내가 십자가를 내게 결론 삼지 않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아직도 진리의 허리띠를 띠지 않은 것입니다.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것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제 나는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시다

 

 

14절은 이어서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심장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계속하여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가 죽었다고 해도 우리의 육적인 본성을 들추어내어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라고 정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나는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내 생명이십니다.” 이렇게 고백을 해도 마귀가 처음에는 코웃음도 안 칩니다. ‘, 너 죽었냐? 너 안 죽은 것 보여줄 막 부추킵니다. ‘죽기는 뭐가 죽어? 너는 안 죽었어!’ 그런데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맥없이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고 하면서도 우리 안에 여전히 있는 혈기 정욕을 보면서 당황합니다. 우리가 나는 죽었습니다!” 고백하면 사방에서 조롱하고 핍박도 일어납니다.

내가 죽었다고 사람들한테 고백하고 나면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내가 안 죽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또 내 성질 북돋우고 찌르고 꼬집고 아휴, 안 죽었네. 죽었다면서 안 죽었네.” 사방에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여러분, 그때 의의 호심경, 가슴을 가로막는 갑옷을 입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육신 안에 여전히 있기 때문에 육신의 혈기, 정욕이 있는 것을 들추어내서 여러분이 안 죽었다고 증명하려고 하지만, 우리가 붙잡을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십자가 복음으로 우리 심장을 지켜야 합니다.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죽었고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시니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었다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이미 끝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여러분이 안 죽었다고 너 아직도 죄의 종이야!’라고 할 때 아니냐! 로마서 611절 말씀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여러분이 분명한 믿음을 붙잡고 선포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나는 예수님으로 사는 자야! 예수님의 의가 내 의가 되었어!”라고 여러분이 선포해야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714절에 보면 마지막 환란에서 구원 얻은 백성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영적인 눈을 뜨고 보면 전부 흰 옷 입은 성도들 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 옷 입고 사는 사람들 입니다. 그것이 바로 의의 호심경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옷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하듯이,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었음을 선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되시고 주인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한번은 마틴루터가 몹시 아파서 병상에 누워 있는데 마귀가 들어와서 루터를 비웃듯이 응시하더니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안고 온 큰 두루마리 책을 마루에다 두르르 펴놓는데 보니까 마틴루터가 평생 지은 죄를 다 기록해 놓았더랍니다. 루터는 그것 때문에 크게 낙심하고 다시 일어날 소망을 잃었는데, 갑자기 십자가 복음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래서 큰소리로 이것은 다 사실이다. 그러나 너 한 가지 잊은 것이 있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이 모든 죄를 다 씻었다!”라고 외치자 참소하는 마귀와 두루마리가 사라져 버리고 말더랍니다. 이것이 의의 호심경을 붙이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전쟁터에 나가시려면 신발이 중요합니다. 정말 편안한 신발을 신어야 됩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발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시시 때때로 영적 메말라지고, 평소같지 않게 조급해지고, 화가 나고, 쉽게 좌절하고 말이 거칠어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때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 내가 십자가를 놓쳤구나!’ 깨달으면 됩니다. 우리는 다시 십자가를 붙잡아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십니다.” 고백하면 반드시 우리 마음에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어떤 환경과 사람 앞에서도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평안하게 지키십니다. 여러분 마음이 평안해진 다음에 무슨 일이든지 해야 됩니다. 말을 하든지, 도장을 찍든지.

 

멕스웰화이트 목사님이 쓰신 <보혈의 능력>이라는 책에 보면 목사님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살았는데, 계속되는 독일 폭격기의 공습으로 인하여 몹시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특히 밤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예수님의 보혈로 그가 살던 집과 가족을 덮어달라고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에게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매일 밤 한 번도 깨지 않고 편안히 누워서 잘 수 있었다. 그 때 우리를 보호해 주셨던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너무도 생생해서 마치 우리가 어떤 종류의 폭탄에도 끄떡없는 튼튼한 방공호 속에서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우리 집 중심으로 반경 1,2Km 이내에 13개의 폭탄이 떨어졌을 때에도 우리 집 건물의 일부가 사소한 피해를 입었을 뿐 가족 모두가 무사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를 어떤 상황에서도 평강으로 이끄시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실제로 적용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16절에서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명심할 것은 마귀는 계속하여 불화살을 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목적은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는데서 벗어날 수 없다고 좌절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나 봐.’ 이런 좌절감을 가진 사람은 마귀의 불화살에 맞은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고집, 혈기, 습관적인 죄는 도무지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을까요? 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죄 안 짓고 살 수 있을까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하면 죄 안 짓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 그 보혈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해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냥 가서 심부름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벳세다 광야에 여자와 어린 아이를 뻰 5천 명의 사람들의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셨습니다. 역시 말도 안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가진 것이 무엇이 있다고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밥을 다 먹입니까?

이 명령이 말이 안되는 것은 그 일을 우리 자신이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행하실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힘으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무거운 짐입니다. 불가능합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해주신다면 불가능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방패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내 생명이시니 예수님은 얼마든지 나를 죄에서 건지고 죄에서 이기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 예수님께서 나로 하여금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는 것은. 나는 죽었습니다.”가 사랑입니다.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예수믿는 것입니다.

 

 

17절에서는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하였습니다.

마귀가 생각으로 무섭게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는 싸움에 있어 제일 첫 번째 싸움은 생각에서 오는 싸움입니다. 내가 얼마나 악한 생각, 더러운 생각, 끔찍한 생각을 넣어주는지 모릅니다. 제게 상담 메일이 왔는데 오늘 이 예배를 드리고 죽겠다고 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와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준 그 생각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저 자신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였을 때는 끔찍하고 부끄러운 생각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죽고 싶은 생각! 죽이고 싶은 생각! 슬픈 생각 자기 연민, 우울증, 집 나가고 싶은 생각! 온갖 음란한 생각! 런 생각으로 시달린다면 마귀가 생각으로 공격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32절을 보면 마귀는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성도들 생각 속에 마귀가 끔찍하고 더럽고 악하고 말도 안되는 생각, 죽이고 싶은 생각, 죽고 싶은 생각을 넣어주는지 모릅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에서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여러분, 구원의 투구를 써야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의 투구를 쓰지 않으면 생각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많은 생각에 시달리고 사십니까?

 

프랭크로바크(Frank Laubach) 선교사님은 생각을 지키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실험을 193011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프랭크 루박의 편지] 여러분에게도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너무나 복잡한 생각에 시달리며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다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얼마나 별에별 더럽고 추하고 끔찍한 생각들이 우리 일상 생각 속에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프랭크루바크 선교사님이 그때 마다 끊임없이 예수님을 다시 생각하고 또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렇게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5개월 뒤에 그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1930.05.14. 매 순간 끊임없이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을 내 생각의 주제 삼고, 내 대화의 짝 삼는 것, 이것이야말로 평생 접해 보지 못한 가장 놀라운 일이다. 점점 된다.

1930.05.24. 요즘은 걱정이 전혀 없고 잠도 잘 잔다. 거의 온종일 기쁨에 사로잡혀 있다.

거울을 봐도 내 눈빛과 얼굴에 새로운 광채가 있다. 어떤 일에도 더 이상 조급한 마음이 없다. 모든 일이 잘 된다.

6월 일기를 보면 그는 온전히 하나님만 생각하며 살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1930.06.01. 오 하나님, 하나님은 더 이상 낯선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온전히 제 안에 계십니다. 여기에...

6.15 어제는 나의 하루를 온전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문제에 관한 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완벽하게 성공한 날이었습니다.

6.22 오늘은 주님만을 생각하는데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이따금씩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표류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오늘이 다른 날들과 달랐던 것은 내가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기도하려고 애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혀로 또는 내 혀는 잠잠한데 나의 내적인 삶 속에서 말씀하시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자동문을 열고 닫는 것 만큼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도 온전히 하나님과 24시간 동행할 수 있음을 증명해 준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에 시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6개월만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을 생각하려고 한다면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계속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면 어떻게 죄를 짓습니까? 계속 예수님만을 바라보는데 주님이 보는 앞에서 어떻게 죄를 짓고 삽니까? 정말 죄 안 짓고 살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의 종노릇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짜 예수 믿는 삶이 아닙니다.

 

 

17절에서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공격하라고 하셨습니다.

마귀의 공격에서 우리를 지킬 뿐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니, 내게서 떠나가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었다. 내게 불신의 생각, 유혹을 심어주는 마귀는 떠나가라!” 하며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십자가로 무장하면 죄를 이기는 자가 됩니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저는 처음에는 이 말씀을 읽고 좌절했습니다. 믿어지지가 않는 말씀이니까. 죄를 짓고 살았기에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십자가를 쳐다만 보았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 살았기 때문임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십자가로 무장하고 죄와 싸우게 되면서부터 진짜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로 나신 자가 성령님께서 내 마음 안에서 악한 자가 나를 만지지도 못하게 막아주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하는 눈을 뜨게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죄와의 싸움에서 이김을 경험하게 되면서부터 여러분 삶 전체를 보게 되는 눈이 달라집니다. 재산을 많이 가진 것과 비교가 안됩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것과 비교가 안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열려진 이 놀라운 느낌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그것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잘 입으셨습니까? 오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다 입혀드렸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정말 놀라왔습니다. 정말 죄의 유혹은 느끼지만 죄를 이기는 삶을 주셨습니다. 제가 이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기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번 고난 주간 부흥회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다시 입는 기회입니다. 새벽부흥회 또 저녁 집회에 여덟 명의 강사님들이 십자가의 은혜, 부활의 영광에 대한 메시지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다시한번 입혀드릴 것입니다. 이번에 다 무장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활절 아침에 승리의 찬송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십시다. 늘 반복적으로 드리던 예배가 아니고, ‘정말 내게 승리를 주셨구나! 죄에서 이김을 주셨구나! 부활의 주님과 내가 함께 사는 구나.’ 그 감격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게 해주신다 말입니다.

십자가로 무장하고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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