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기쁨을 회복하는 법// 20011202
2001-12-07 23:58:42 read : 1084
주일 낮예배// 누가복음 5장 1-11절
< 기다림의 절기에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
요즘 현대인들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애를 걸만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분야에 관심은 많고 정보도 많지만, 소중하고 뚜렷한 목표가 없습니다.
왜 요새 사람들이 잘 낙심합니까? 무엇보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요새 사람들이 잘 기다리지 못합니까? 역시 목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2월은 흔히 기다림의 절기라고 하는데, 정작 기다릴 목표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은 주님의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임하는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이 대강절에 주님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지난 목요일 저녁부터 저는 항상 하던 씨름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주는 성탄을 준비하는 대강절 첫 주일인데 어떤 말씀을 전할까요?"
한참 동안 그 문제를 가지고 생각을 했지만 말씀의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다시 목양실 의자에 앉아 그 문제로 씨름했지만
역시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비몽사몽간에 남자가 없는 어떤 모녀 가정을 보여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어두웠고 희망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가정이 보였습니다.
이 모녀는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서 이 모녀에게 "예수님을 잡으세요"라고 외치다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오늘 본문 말씀이 생각나면서 예수님이 더욱 보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실패한 자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은혜로 기쁨을 회복하고,
그 과정에서 인생의 참 의미와 사명을 발견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이 어부들은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한 어부들이었습니다(5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살다보면 우리도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물에 고기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패가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실패 속에서 오히려 주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신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삶의 용기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그 믿음으로 시련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물을 씻되, 슬픈 마음으로 씻지 말고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씻어야 합니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반드시 고기를 잡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한번 더 시도하고, 한번 더 참아야 합니다.
포기하면 낙오자가 됩니다. 반드시 뒤쳐집니다. 포기하면 결코 전진하지 못합니다.
< 위기는 위험이면서도 동시에 기회입니다 >
가끔 어떤 분은 연이은 실패 앞에서 스스로 자책합니다. "나는 완전 실패작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시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 소리입니다.
내가 실패작이라면, 그 말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실패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우리가 실패해도 우리는 실패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패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반드시 작품 인생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실패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무시하면 또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패 속에서 예수님을 붙잡고 내일을 준비하면 반드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실패는 좋은 실패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좋은 실패의 경험을 잘 승화시키면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돈이 많아도 인격이 없고, 자리가 높아도 하나님이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성공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공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맡기신 나의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그 일을 하는 길 안에 있는 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비록 목적지에 도착은 하지 못했어도 그 길 안에 있으면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길을 아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모든 사건은 그 뜻과 길을 찾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과 길이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시간을 그냥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길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현실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그때 그물을 씻으십시오.
전도서 11장 4절에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좋은 시절에만 일을 하겠다고 하면 아무 것도 못하고, 발전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짐을 합니다. "앞으로 잘되면 좋은 일을 많이 해야지."
신앙인들을 보면 이런 다짐을 많이 합니다.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헌신해야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중에 일이 잘되고 여유를 찾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상 진정한 나눔은 여유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할 때 하는 것입니다.
진정 좋은 일이라면 여유가 없어도 지금 해야 하고, 바빠도 지금 해야 합니다.
여유가 없는 때 헌신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삶의 맛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그물을 씻으십시오.
"안된다, 죽겠다, 못살겠다, 힘들어죽겠다"고 하는 것은 결단코 마귀의 음성입니다.
믿음은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희망의 영이고, 생명의 영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명을 얻되 아주 풍성히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기는 오히려 주님이 함께 하실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혹시 지금 고기 없는 빈 배와 같은 심정이십니까? 이때 주님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비록 고기는 잡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잡은 사람이 정말 성공한 사람입니다.
매일 만선을 이루어도 고기만 잡고 주님을 잡지 못했다면 그것이 진짜 불행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예수님을 붙잡았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존재입니다.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십시오 >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가 어떻게 주님을 붙잡았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처음에 예수님은 두 배 중에 베드로의 빈 배 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배를 강단 삼아서 무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짜증낼 수 있었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배를 빌려드렸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소중한 장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원래 베드로의 성격은 불같은 다혈질입니다. 그래도 그의 인격은 아주 선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다른 사람이 도와달라는 요청을 외면하지 못하는 선함이 있었습니다.
실수는 많아도 그의 마음의 중심은 선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더 짜증날 수 있을만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입니다(4절).
지금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고기잡이 프로였습니다.
그가 주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불도저 앞에서 삽질한다고 생각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 말씀을 창조주 하나님 말씀으로 듣고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했을까요?
고기를 잡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보다 깊은 주님의 메시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더 차원 높은 삶'을 향해 나아가라는 예수님의 뜻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은 그러한 삶을 도전하고 있을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먹고 즐기는 것 이상의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어느 분야에 있든지 깊은 데로 가야 합니다.
피상적으로 살고, 피상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면 인생의 묘미를 알기가 힘듭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깊이 뛰어들어야 보다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도 깊이 보면 모든 비판이 사라지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봉사도 깊어야 합니다. 깊은 봉사는 알아주기를 원하지 않고 칭찬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봉사할 때는 잘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그분이 얼마간 없으면 당장에 표가 나고 너무 그 공백이 크게 느껴집니다.
그처럼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을 때 당장 표가 나는 봉사가 깊은 차원의 봉사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런 차원의 삶으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깊은 데로 가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깊은 데로 가야 참된 진리와 풍성함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 말씀에 의지하십시오 >
그런데 깊은 곳으로 가서 다시 그물을 내리려면 귀찮고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상식을 말씀으로 극복하고 고백합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때로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너무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와 달리 방법을 바꾸어보십시오. 방법을 바꾸면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한 번 방법을 새롭게 바꿔보십시오. 어떻게 바꿉니까? 말씀 중심으로 바꿔보십시오.
한번 진정으로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아보십시오. 축복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똑똑하고, 경험이 풍부하고, 많은 고급 정보가 있어도 그것이 축복을 주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우리 나라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최대의 지식인들이고,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고급 정보까지 가지고 있지만
그런 분들이 이끄는 나라가 IMF를 만났고, 공적 자금은 6조원이나 새지 않았습니까?
지식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지 않습니다. 결국 믿음이 우리에게 축복을 줍니다.
말씀을 의지하는 참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만이 두려움을 물리치는 힘입니다.
그 믿음만이 우리의 삶의 불황을 타개할 수 있고, 우리의 미래를 열어줄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믿음이고, 믿음은 하나님 말씀으로 굳건해집니다.
그렇게 말씀에 의지하여 굳건한 믿음으로 나가면 반드시 길은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을 일으켰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불신이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입으로 "곧 공황이 올 거야!"라는 소문이 돌면서 불신이 커졌습니다.
사람들이 예금을 찾아 현금으로 보관하기 시작했고, 물건을 마구 사재기했습니다.
그러자 은행 자금은 바닥나고, 공장은 돈을 구하지 못해 하나둘 쓰러졌습니다.
공장이 쓰러지니까 물건 값은 폭등하고,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고, 자살하는 사람과 굶어죽어 가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그 대공황을 무엇이 극복했습니까?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믿음이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그 믿음은 한 사람의 굳건한 믿음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믿음과 미소를 전했던 장애자 루스벨트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저녁 시간 '노변의 담화'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역설했습니다.
"국민들이여!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믿어주십시오."
대통령의 눈물겨운 호소가 국민들에게 먹혀들어 국민들 사이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믿고 은행에 돈을 맡겼습니다. 돈이 돌면서 공장이 돌아갔습니다.
믿음으로 마음의 불황을 극복하자 의외로 쉽게 환경의 불황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미국은 더욱 빠른 속도로 경제를 일으켜 세계 최강자의 자리를 확보했습니다.
주님께서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주님 안에서는 할 수 있거든..."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모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불황과 어려움을 반드시 극복하고 부흥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고난이 있어도 주님을 붙잡으면 그 고난은 반드시 축복의 재료가 됩니다.
그러므로 실패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재기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재기하고자 할 때 특히 필요한 것은 '나의 수고'보다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사람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항상 순종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을 진정 기뻐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십시오 >
결국 말씀의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베드로는 엄청난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대박이 터졌습니다. 이제 주님만 따라다니면 베드로는 큰돈을 만질 수 있게 됩니다.
요즘말로 하면 집도 늘리고, 자동차도 사고, 배도 새것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신나서 베드로는 또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이제 어디로 그물을 던질까요? 말씀만 하세요. 즉시 그물을 던지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베드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제 주님만 붙들면 떼 부자 되는데 왜 주님보고 떠나라고 합니까? 제 정신입니까?
주님께서 떠나가시려고 해도 "주님! 절대로 가지 마세요"라고 붙들어야 할 상황인데
주님을 떠나라고 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고 그가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순식간에 호칭부터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5절에서 베드로는 처음에 "선생이여!"라고 했다가 8절에서 바로 "주여!"라고 합니다.
그처럼 주님을 높이면서 왜 떠나시라고 합니까? 주님이 너무 높아 보였기 때문이고,
자기의 부족함이 보이면서 도저히 자신은 주님 앞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를 받을수록 이처럼 겸손한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성공할수록 자신을 크게 보고 높아지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은 성공할수록 주님을 크게 보고 낮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성공할수록 주님을 크게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성공이 삶의 보람을 가져다주고, 결국 실패하는 성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해도 주님을 크게 보아야 하고, 성공해도 주님을 크게 보아야 합니다.
옛날에 어떤 깊은 이치를 깨닫는 순간을 일컬어 '득도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오늘 본문에 있는 베드로의 고백이 진정한 득도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나의 죄인 된 모습을 발견하는 시야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의 죄인 된 모습과 하나님의 큰 뜻을 보는 영적인 시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영적인 시력이 있으면 내 삶이 다르게 보이고 내 삶의 목적이 뚜렷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안목과 욕심은 작게 보이고, 하나님의 섭리는 크게 보일 것입니다.
성도란 어떤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죄라고 여기지 않는 시시하게 보이는 것도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신앙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진실한 회개가 있는 신앙인에게 진정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개의 깊이'는 '은혜의 높이'와 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살면서 받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해결책도 이 베드로의 고백에 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
우리가 얻는 큰 축복은 바로 나 자신의 상처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처럼 내 마음이 치유되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리는 사랑의 샘물이 흘러나옵니다.
바로 그때 다른 사람을 희생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인생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주는 통로가 됩니다.
< 사명을 가지고 사십시오 >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랑의 고백이 있는 자에게 영혼 사랑의 사명을 주십니다.
본문 10절 후반부를 보면 베드로가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할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너는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 제자다운 제자가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그 한 마디를 듣고 베드로는 자신의 갈 길을 분명하게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즉시 그는 예수님을 좇게 됩니다.
그처럼 자기의 일을 분명히 발견하고, 주님 안에서의 사명을 발견한 삶이 확실하다면
그 다음에 어떤 삶이 펼쳐지든지간에 그는 이미 성공자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렇게 사명 따라 사는데 만약 우리에게 칭찬과 보상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넉넉해야 합니다. 부름 받은 종에게 칭찬은 덤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종으로서 주님이 내게 맡기신 일을 기쁘게 감당한다면 이미 성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 위에 확실히 서있는 삶은 더 이상 실패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다소 가난하게 살 수는 있고, 출세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삶이 축복된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명을 따라 살기만 하면 때로 슬픈 일을 만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 일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결국 우리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 대강절 첫 주일에 더욱 예수님을 사모함으로 기쁨을 찾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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